대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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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신가는 일본의 옛 가문으로, 후지와라 북가 칸인류와 무라카미 겐지 등 3개의 가문으로 구성된다. 오기마치산조가(사가가)와 산조니시가는 후지와라 북가 칸인류에 속하며, 쿠가 가문은 무라카미 겐지에 속한다. 이들은 유직고실, 향도, 와카 등을 가업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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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카미 겐지 - 청화가
청화가는 일본 고산조 천황 시대 이후 섭관가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은 명문 가문들을 지칭하며, 대신 및 대장 승진 자격과 황후 배출 지위가 중요했고, 에도 시대에는 대신까지 승진할 수 있었으나 태정대신은 오르지 못했으며, 메이지 시대 화족령에 따라 후작 작위를 받았다. - 무라카미 겐지 - 우림가
우림가는 일본 공가의 가문으로, 후지와라 북가를 중심으로 우다 겐지, 무라카미 겐지 계통을 포함하며, 간인류, 화산원류 등 여러 류파로 나뉘어 구가 사회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 공가 - 판적봉환
판적봉환은 1868년부터 1871년까지 일본에서 시행된 제도로, 봉건적 막번 체제를 개혁하고 중앙집권화를 강화하기 위해 각 번의 토지와 백성을 천황에게 반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 공가 - 공경
공경은 고대 중국에서 유래하여 일본 궁중 관리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며, 율령 체제에서 대신들을 포함하고 메이지 유신 이후 화족 제도가 창설되면서 폐지되었다. - 일본사 - 도쿄부
도쿄부는 1868년 에도에서 개칭된 도쿄에 설치된 일본의 행정 구역으로, 에도 시가지에서 현재의 도쿄도와 거의 같은 영역으로 확장되었으며, 1943년 도쿄도제가 시행되면서 도쿄도로 개편되었다. - 일본사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간 지속된 시기로, 강제 병합, 경제적 착취, 정치적 억압, 문화적 동화 정책 등이 특징이며, 3·1 운동과 같은 독립 운동이 전개되었고, 위안부 문제 등 심각한 인권 유린이 있었으며, 현재까지도 다양한 논의와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신가 | |
---|---|
개요 | |
종류 | 공가 |
가계 | 후지와라 북가 |
신분 | 당상가 |
설명 | 내대신까지 승진할 수 있는 공가의 가계 |
목록 | |
3대 대신가 | 오기마치산조가 산조니시가 나카노인가 |
2. 역사
대신가는 청화가의 서류(庶流)에서 파생된 가문으로, 청화가에 준하여 승진했다. 섭가·청화가가 임명되지 않는 참의를 거쳐 중납언이 되었으며, 대신에 결원이 생길 경우 대납언에서 근위대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내대신으로 승진하는 가계였다. 다만 청화가와는 달리 근위대장을 겸할 수는 없었다.[1]
원래 청화가는 구로우도노토를 거치지 않고 참의에 임명되었으나, 대신가는 구로우도노토를 거쳐 참의에 임명되었다.[1]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서 청화가는 참의[2]에, 대신가는 구로우도노토에 임명되는 경우는 없어졌다는 설도 있다.[3][4]
극위극관은 태정대신이었으나, 에도 시대의 태정대신은 섭정·관백 경험자에 한정되었다. 드물게 우대신으로 승진한 예 (산조니시 사네토미, 나카인 미치미)가 있을 뿐, 현실적으로 대신가에서 내대신을 넘어 승진한 사례는 적었다. 준대신 이상으로 승진한 것은 나카인가 (미치카타부터 미치토미까지 25대)에서 10명[5], 오기마치 산조가 (킨우지부터 킨카츠까지 29대)에서 8명[6], 산조니시가 (공시부터 킨유까지 17대)에서 6명[7]으로, 대신 배출률이 높다고는 할 수 없다.[8]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서작 내규의 "대납언까지 선임된 예가 많은 구당상"을 기준으로 백작이 되었지만, 사가가는 나중에 후작으로 승작했다.
2. 1. 기원
대신가는 원래 청화가의 서류에서 파생된 가문으로, 청화가에 준하여 승진하며 (단, 섭가·청화가가 임명되지 않는 참의를 거쳐 중납언이 된다), 대신에 결원이 생길 경우, 대납언에서 근위대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내대신으로 승진하는 가계이다 (청화가와는 달리 근위대장을 겸할 수 없다).[1]청화가와의 차이점에 대해, 원래 청화가는 구로우도노토를 거치지 않고 참의에 임명되는 반면, 대신가는 구로우도노토를 거쳐 참의에 임명되는 차이가 있었지만[1], 시대가 흐르면서 청화가는 참의[2]에, 대신가는 구로우도노토에 임명되는 경우는 없어졌다는 설도 있다.[3][4]
극위극관은 태정대신 (단, 에도 시대의 태정대신은 섭정·관백 경험자에 한정되었다)이지만, 드물게 우대신으로 승진한 예 (산조니시 사네토미, 나카인 미치미)가 있을 뿐이며, 현실적으로는 대신가에서 내대신을 넘어 승진한 사례는 적다.
준대신 이상으로 승진한 것은 나카인가 (미치카타부터 미치토미까지 25대)에서 10명[5], 오기마치 산조가 (킨우지부터 킨카츠까지 29대)에서 8명[6], 산조니시가 (공시부터 킨유까지 17대)에서 6명[7]으로, 대신 배출률이 높다고는 할 수 없다.[8]
2. 2. 에도 시대
청화가의 서류에서 파생된 가문으로, 청화가에 준하여 승진하며 (단, 섭가·청화가가 임명되지 않는 참의를 거쳐 중납언이 된다), 대신에 결원이 생길 경우, 대납언에서 근위대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내대신으로 승진하는 가계이다 (청화가와는 달리 근위대장을 겸할 수 없다).[1]청화가와의 차이점에 대해, 원래 청화가는 구로우도노토를 거치지 않고 참의에 임명되는 반면, 대신가는 구로우도노토를 거쳐 참의에 임명되는 차이가 있었지만[1], 시대가 흐르면서 청화가는 참의[2]에, 대신가는 구로우도노토에 임명되는 경우는 없어졌다는 설도 있다.[3][4]
극위극관은 태정대신 (단, 에도 시대의 태정대신은 섭정·관백 경험자에 한정되었다)이지만, 드물게 우대신으로 승진한 예 (산조니시 사네토미, 나카인 미치미)가 있을 뿐이며, 현실적으로는 대신가에서 내대신을 넘어 승진한 사례는 적다.
준대신 이상으로 승진한 것은 나카인가 (미치카타부터 미치토미까지 25대)에서 10명[5], 오기마치 산조가 (킨우지부터 킨카츠까지 29대)에서 8명[6], 산조니시가 (공시부터 킨유까지 17대)에서 6명[7]으로, 대신 배출률이 높다고는 할 수 없다.[8]
2. 3. 메이지 유신 이후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서작 내규의 "대납언까지 선임된 예가 많은 구당상"을 기준으로 백작이 되었지만, 사가가는 나중에 후작으로 승작했다.3. 대신가 가문 목록
대신가에 속하는 가문은 다음 3가문이며, 모두 구(舊) 가문이다.
가문명 | 가계 | 시조 | 가업 |
---|---|---|---|
오기마치산조가(사가가) | 후지와라 북가 칸인류 산조 서류 | 산조 사네후사의 아들 킨우지 | 유직고실 |
산조니시가 | 후지와라 북가 칸인류 오기마치산조 서류 | 오기마치산조 사네츠구의 아들 킨토키 | 향도, 와카, 유직고실 |
중원가 | 무라카미 겐지 쿠가의 서류 | 쿠가 미치치카의 아들 미치카타 | 유직고실 |
3. 1. 후지와라 북가 칸인류 (藤原北家閑院流) (2가문)
- 오기마치산조가(사가가): 후지와라 북가 칸인류 산조 서류이다.[4] 시조는 산조 사네후사의 아들 킨우지이다.[4] 유신 이후 사가가로 개칭했다.[4] 구게公家|구게일본어이며, 가업은 유직고실이다.[4]
- 산조니시가: 후지와라 북가 칸인류 오기마치산조 서류이다.[5] 시조는 오기마치산조 사네츠구의 아들 킨토키이다.[5] 구게이며, 가업은 향도, 와카, 유직고실이다.[5]
3. 2. 무라카미 겐지 (村上源氏) (1가문)
중원가는 무라카미 겐지 쿠가의 분가이다.[1] 쿠가 미치치카의 아들 미치카타를 시조로 한다.[1] 가업은 유직고실이다.[1]4. 승진
대신가는 원래 청화가의 서류에서 파생된 가문으로, 청화가에 준하여 승진한다. 단, 섭가·청화가가 임명되지 않는 참의를 거쳐 중납언이 된다. 대신에 결원이 생길 경우, 대납언에서 근위대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내대신으로 승진하는 가계이다 (청화가와는 달리 근위대장을 겸할 수 없다).[1]
청화가와의 차이점에 대해, 원래 청화가는 구로우도노토를 거치지 않고 참의에 임명되는 반면, 대신가는 구로우도노토를 거쳐 참의에 임명되는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서 청화가는 참의[2]에, 대신가는 구로우도노토에 임명되는 경우는 없어졌다는 설도 있다.[3][4]
극위극관은 태정대신 (단, 에도 시대의 태정대신은 섭정·관백 경험자에 한정되었다)이지만, 드물게 우대신으로 승진한 예 (산조니시 사네토미, 나카인 미치미)가 있을 뿐이며, 현실적으로는 대신가에서 내대신을 넘어 승진한 사례는 적다.
준대신 이상으로 승진한 것은 나카인가 (미치카타부터 미치토미까지 25대)에서 10명[5], 오기마치 산조가 (킨우지부터 킨카츠까지 29대)에서 8명[6], 산조니시가 (공시부터 킨유까지 17대)에서 6명[7]으로, 대신 배출률이 높다고는 할 수 없다.[8]
유신 이후에는 서작 내규의 "대납언까지 선임된 예가 많은 구당상"을 기준으로 백작이 되었지만, 사가가는 (오기마치 산조가) 나중에 후작으로 승작했다.
참조
[1]
논문
中世前期における清華の家格とその昇進
同志社大学
2012-01-01
[2]
문서
[3]
문서
[4]
논문
近世蔵人頭に関する基礎的考察
國學院大学
2015-01-01
[5]
문서
[6]
문서
[7]
문서
[8]
서적
華族誕生 名誉と体面の明治
中公文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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