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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농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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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강릉농악은 강원도 영동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농악으로, 태백산맥의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독자적인 특징을 유지하며 발전해 왔다. 조선 성종 때부터 기록이 전해지며, 일제강점기에는 민족 문화 말살 정책에도 불구하고 명맥을 이어왔다. 강릉농악은 기수, 태평소, 상쇠, 부쇠, 징, 장구, 북, 소고, 무동 등으로 구성되며, 굿거리, 길군악칠채, 농사풀이 등 다양한 가락과 춤사위를 선보인다. 지신밟기, 정월대보름 농악, 2월 답교농악, 걸립굿, 화전놀이, 질먹기, 뱃놀이 등 다양한 형태로 지역 사회와 함께해 왔으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등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며 그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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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농악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강릉농악 그림
강릉농악
국가대한민국
유형국가무형문화재
번호11-4
지정일1985년 12월 1일
주소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시대알 수 없음
소유자알 수 없음
관리자강릉농악보존회
참고 사항알 수 없음
면적알 수 없음
수량알 수 없음
전승지알 수 없음
전승자상쇠 박기하(1985.12.1.), 부쇠 김용현(1989.12.1.)
지도알 수 없음
웹사이트알 수 없음
문화재청 ID17,00110400,32
설명
설명알 수 없음
참고 문헌
참고 문헌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농억-풍어제-민요편)

2. 유래 및 형성

강원 지역의 농악은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영서농악과 영동농악으로 구분된다. 강릉을 중심으로 행해지는 영동 농악은 태백산맥으로 인한 폐쇄성으로 각기 고유한 특성을 유지하면서 발전해왔다. 영동농악은 강원도 동해안 일대의 강릉, 삼척, 울진, 정선, 평창, 동해, 양양, 고성 등지에서 성행하여 경북 동해안 일부 지역과 함경도 지역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4]

강릉농악은 그 유래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조선 성종 때 『江陵府誌(강릉부지)』,『臨瀛誌(임영지)』에 “영동지방에 농악경연이 있었는데 강릉농악이 출연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일제 강점기에 간행된 『전승 예능 및 노래』에는 강릉 농악을 영동 농악의 본류라고 기록하고 있다.[5]

일제 강점기 일본의 전통문화 말살 정책에도 불구하고 강릉농악은 해방 후 1948년에 서울 동대문 운동장에서 광복경축 행사에 강릉유천동농악대가 강원도 대표로 참가하게 된 계기를 통해 부활하였다. 그러나 마을마다 있던 농악패가 1970년대부터 줄어들어 1980년 초에는 박기하를 상쇠로 한 홍제동 농악패만 남게 되어 강릉농악의 명맥을 유지하였다. 그러던 중 홍제동 농악패를 이끌었던 상쇠 박기하가 사천면 하평농악을 이끌던 김용현과 연합하게 되면서 강릉농악의 새로운 길을 열게 되었다.[6][7] 강릉농악은 꾸준히 전국단위 행사에 출전하여 입상해왔을 뿐만 아니라 특히 강릉단오제행사에 매번 공연함으로써 오늘날까지 그 전통적인 모습을 보존해오고 있다.

3. 치배 구성 및 복장

치배구성인원역할복장
기수1~2명기수는 상쇠 앞에서 이동하며, 성황 굿을 할 때는 가운데에서 기를 흔들고 성황 굿이 끝나면 무동 뒤로 따라나가 본부석 좌측에 선다. 농기는 다른 지역보다 작고 백색 바탕에 흑색 글씨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중앙에 쓰고 왼쪽에 마을 농악대 이름을 쓰며 옆 부분은 검은색 삼각술을 달고 밑에는 청, 황, 홍색의 술을 길게 단다.[4]바지, 저고리, 삼색 끈, 고깔
태평소1명기수 바로 뒤에서 이동하며 공연 시에는 본부석 우측에서 연주한다.바지, 저고리, 삼색 끈, 고깔.
상쇠1명굿판의 지휘, 연출, 기획, 연행을 담당하고 가락의 순서가 넘어갈 때마다 두 손을 높게 들어 쇠를 친다.[4] 상쇠 채 끝에 5방색(검정, 청, 백, 적, 흑)의 너설을 단다.바지, 저고리, 남색쾌자, 삼색 끈, 벙거지상모.
부쇠1명상쇠의 박에 맞춰 상쇠와 함께 호흡을 같이 해야 한다.바지, 저고리, 삼색 끈, 벙거지상모.
삼쇠1명부쇠의 박에 맞춰 상쇠와 함께 호흡을 같이 해야 한다.바지, 저고리, 삼색 끈, 벙거지상모.
2명삼쇠 뒤에서 상쇠의 박에 맞춰 징을 친다.바지, 저고리, 삼색 끈, 벙거지
장구2명징 뒤에서 쇳소리에 장단을 맞추며 오고북 놀이에서는 중앙을 돌며 북 박을 맞추고 장구통놀이를 할 때에는 장구를 양손에 들어 올려 춤을 춘다.[4]바지, 저고리, 삼색 끈, 퍽을 단 상모.
3명장구 뒤에서 쇳소리에 박을 맞추고 오고북 놀이에서는 중앙을 돌며 북만 치고 농사풀이에서 "벼타작"할 때 북 2개가 "태상"이 되기도 한다.[4]바지, 저고리, 삼색 끈, 퍽을 단 상모.
소고(와 법고)8명소고보다 작은 "미지기"라는 악기를 친다. 상소고, 소고, 끝소고, 상법고, 법고, 끝법고 순으로 이동하며 황덕굿과 지신밟기에서는 상법고가 분리되어 상법고가 법고들을 이끌고 다닌다.[4]소고: 바지, 저고리, 삼색 끈, 퍽을 단 상모. (상소고는 +남색쾌자)
법고: 바지, 저고리, 삼색 끈, 벙거지 상모. (상법고는 + 남색쾌자)
무동8명무동패도 법고치배와 소고치배같이 상무동, 끝무동으로 구분하여 상무동은 끝법고 뒤를 따라가다 황덕굿, 지신밟기에서는 상무동이 무동패를 이끌고 다녀야 한다.[4]붉은치마, 노랑저고리, 남색쾌자, 삼색끈, 고깔. (고깔은 두꺼운 종이를 네모로 접어서 만들고 30~40개의 꽃을 단다.)
열두발 상모1~3명옛날에는 12발상모치배가 따로 있었으나 지금은 법고치배들이 12발상모할 때만 밖으로 나와 12발상모를 쓰고 들어가서 상모놀이를 한다.



농악 조직은 농기수, 방울수, 상쇠, 부쇠, 삼쇠, 징수, 장고수, 대북수, 소고수, 법고수, 그리고 무동(중애)으로 구성된다. 원칙적으로 쇠잽이는 벙거지를 쓰고 법고수는 삿갓을 쓰며, 나머지는 갓을 쓰지만, 현재는 무동만이 갓을 사용한다. 잽이는 색띠를 두르며, 무동은 붉은 치마에 녹색 저고리, 감색|남색중국어 두루마기를 입는다.[2]

4. 종류

강릉농악은 연행 시기와 목적에 따라 다음과 같이 여러 종류로 나뉜다.


  • 지신밟기(고사반, 덕담고사) 농악: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집집마다 돌며 지신을 밟고 복을 비는 농악이다.
  • 정월대보름(달맞이, 다리밟기) 농악: 정월 대보름에 달맞이와 다리밟기를 하며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농악이다.
  • 2월 답교농악: 음력 2월 6일(좀상날)에 횃불을 들고 다리밟기를 하며 풍년을 기원하는 농악이다.
  • 걸립굿: 지역의 공금을 모으기 위해 행하는 굿이다.
  • 화전놀이: 봄 농사를 마치고 경포대 등 경치 좋은 곳에서 풍물을 치며 즐기는 놀이이다.
  • 질먹기(두레농악): 모심기와 김매기를 할 때 두레를 조직하여 농악을 치고, 일이 끝난 후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 뱃놀이: 여름 농사가 마무리되면 배 위에서 즐기는 놀이이다.
  • 마당굿(판굿): 넓은 마당에서 여러 가락을 치며 기예를 겨루는 굿이다. 멍석말이, 황덕굿, 농사풀이, 동고리받기 등 다양한 놀이로 구성된다.[2] 잽이와 무동의 복색, 쇠가락, 춤사위 등에서 강릉농악만의 특징을 보인다.

4. 1. 지신밟기(고사반, 덕담고사) 농악

덕담고사를 지내는 '''지신밟기'''는 정월대보름부터 약 3일에서 4일간에 걸쳐 행해진다. '''지신밟기'''를 시작하기 전인 음력 14일 밤에 ‘서낭님 서낭님 동구밖에 서낭님’이라는 사설과 함께 '''서낭굿'''을 친다.[8] 정월 보름이 되면 서낭기를 들고 집집마다 돌며 '''문굿'''을 치고 '''고사반(덕담고사)'''를 하고 '''마당굿'''을 치기 시작하는데, 규모가 큰 집에서는 '''마당굿'''으로 멍석말이, 황덕굿, 진놀이, 농사풀이, 자매놀이, 조왕굿, 성주굿, 측간굿, 우물고사, 장독굿 등을 하며 집안 구석구석을 누비는 것에 반해 규모가 작은 집에서는 마당굿을 치지 않고 고사만 지낸다.[7]

4. 2. 정월대보름(달맞이, 다리밟기) 농악

강릉지역에는 정월 대보름에 '''지신밟기'''와 함께 '''달맞이'''와 '''다리 밟기'''를 하는 마을이 많다. 월호평, 산대월, 월미골 등 달과 관련된 지명도 있을 정도로 달과 친숙한 강릉에서는 보름달이 뜨기 전에 농악과 횃불을 들고 산에 올라가 달맞이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했다.[8] 달맞이 제에 올라가지 못한 사람들은 짚 앞에 삼꼬리, 머리카락을 태우는 '''횃불'''을 집 앞에 두고 잡귀의 침입을 예방하기도 했다. 달맞이 제를 마치고 마을 사람들은 농악을 치며 마을로 내려와서 '''다리밟기'''를 하였는데, 마을에 따라서는 내를 사이에 둔 이웃마을끼리 먼저 다리를 밟기 위해 싸우기도 하였다. 먼저 다리를 밟으면 마을에 풍년이 들고 질병이 창궐하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한다.[8] 강릉지역에서의 다리밟기와 횃불 풍습은 정월 대보름뿐만 아니라 '''2월 좀상날''' (음력 2월 6일)에도 행해졌으며, 2월 좀상날 행해지는 '''다리밟기'''와 '''횃불놀이'''는 한 해의 농사를 점치는 것으로 주로 사천 하평리에서 전해져 내려왔다고 한다.[8]

4. 3. 2월 답교농악

'''2월 답교농악'''은 사천면 하평리에서 전해내려오는 '''2월 좀상날'''(음력 2월 6일)의 풍습으로 주로 사천 답교 농악대가 전승하였다. 좀상날에 마을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모두 모여 다리밟기를 하면서 농악을 치는 풍습으로 마을의 우환을 없애고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였다.[8] 좀상날 다음 날부터는 농사 일이 시작되므로 좀상날은 농사일에 힘쓰기 시작하는 마지막 날로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먹고 마시고 노는 날이었다.[7] '''‘좀상’'''이라는 것은 음력 2월 초에 좀생이별을 보아 1년 동안의 농사일과 신수를 점치는 풍속으로서, 좀생이 별이 배가 부르면 달을 멀리 따라가고 배가 고프면 달을 가까이 따라간다고 생각하여 좀생이 별과 달 사이의 거리가 멀면 그해 농사는 풍년이고 반대로 거리가 가까우면 흉년이라고 보아 점을 쳤다.[8] 예전 좀상 날에는 마을에서 집집마다 쌀을 조금씩 모아 만든 막걸리인 “좀상주”를 ‘초군방’ 또는 ‘도방’에 모인 농악대에게 주고 마시게 하였다고 한다.[8] 좀상날 꼬마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장작을 모아 횃불을 만들면, 이른 저녁을 먹고 여러 마을 사람들이 사천 앞에 놓인 다리에 모여 횃불을 밝히고 있다가 “떴다”라는 신호와 함께 마을의 장정들이 다리에 먼저 도착하기 위한 달리기를 시작한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다른 마을 사람들이 다리 위로 올라오지 못하게 몸싸움을 벌이고 이렇게 다리를 차지하려는 행위는 풍년을 기원하는 종교 행사이자 놀이였다고 한다.[8] 근래에는 다리 중간에서 동해를 향해 제사를 지내는데, 제사 후에는 농악대와 마을 사람들이 판굿을 하며 밤새 논다.[8]

4. 4. 걸립굿

걸립굿은 지역의 공금을 걷기 위해 결성한 걸립패가 하는 굿으로, '걸궁' 혹은 '글립굿'이라고도 한다. 예전에는 사찰걸립, 서낭걸립, 다리걸립, 서당걸립 등을 하였는데, 현재는 다리 걸립이 주로 남아있다.[7] 다리 걸립은 마을 자체 내에서 이루어지며, 걸립굿을 시작하기 전에 서낭기를 앞세워 서낭을 모시러 간다. 서낭굿을 치고 제사를 지낸 후 마당굿을 친다. 서낭굿을 한 다음 날부터 걸립을 시작하는데, 다른 마을에 들어가면 인사굿을 치고 동네 큰 마당에서 걸립패가 먼저 치고 그 마을 농악대가 뒤따른다. 그 뒤엔 집집마다 다니며 고사굿을 쳐주고 쌀을 받았다.[8]

4. 5. 화전놀이

예전에는 봄 농사를 끝내고 모심기를 하기 전에 봄 농사의 품삯 계산을 하고 마을마다 경포대나 경포 솔밭, 시루봉, 화부산, 월대산 등으로 화전놀이를 갔다.[7] 경치 좋은 곳에서 풍물을 치며 여름 농사 시작 전의 여유를 즐겼는데, 이 화전놀이는 오늘날 경포대 벚꽃놀이 축제로 계승되었다.[7]

4. 6. 질먹기(두레농악)

강릉지역에서는 모를 심거나 김을 맬 때 두레를 조직하는 것을 “질을 짠다.”고 한다.[7] 기수, 날라리, 쇠 2명, 징 1명, 장구 1명, 북 1명으로 구성된 두레패는 들에 나가고 들어올 때 농악을 친다. 모심기와 김매기가 끝나면 하루 날을 잡아 음식을 장만하여 풍물을 치며 즐기는 데 이것을 '''“질먹는다”'''고 한다. 이때 차리는 상을 '''“질상”'''이라고 하는데, 농악대의 회장이 주관하여 모내기와 김매기에 동원된 사람들의 품삯 계산이 확실하게 다 되었는지 점검하면서 농사일의 규모와 논 주인의 형편을 고려하여 적당한 양의 술과 음식을 가져오도록 한다.[7] 그러면 각자의 집에서 마을에서 정해진 장소로 질꾼을 먹일 음식을 가져와 질상을 차린다. 모내기 후의 '''질먹기'''는 이틀에서 사흘 정도, 김맨 후 질먹기는 닷새에서 엿새 정도 먹고 놀기 때문에 질상은 며칠 동안 놀면서 먹을 만큼 거두어 들인다.[8]

4. 7. 뱃놀이

7월 이후 여름 농사가 마무리되면 배 위에서 뱃놀이를 하는데, 뱃놀이를 하면 질먹기의 연장선상에서 두레 조직이 해체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사실상 두레농악의 마지막 행사이다.[7]

4. 8. 마당굿(판굿)

'''마당굿'''은 걸립패나 두레패 등이 넓은 마당에서 갖가지 가락을 치며 순서대로 기예를 겨루는 것으로, 주로 규모가 큰 집에 가서 굿을 칠 때, 화전놀이를 할 때, 질 먹을 때 행해진다. 마당굿은 종교적인 의미나 의식적인 의미보다는 구경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유희적 측면이 강하다.[8] 예전의 마당굿 진풀이는 정방형, 체조대형, ㄷ자형 멍석말이, 오방진 등이 있어 다른 지역의 농악과는 달리 전투적인 측면이 보이는데, 이는 강릉지역이 산악지대가 많아 마을을 돌기 위해 산을 넘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8] 강릉농악의 마당굿은 단체적인 놀이를 위주로 한 무동들의 춤과 동고리, 농사일을 흉내 내는 연극적인 요소를 가진 농사풀이를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8]

원칙적으로 쇠잽이는 벙거지를 쓰고 법고수는 삿갓을 쓰며, 나머지는 갓을 쓰지만, 현재는 무동만이 갓을 사용한다. 잽이는 색띠를 두르며, 무동은 붉은 치마에 녹색 저고리, 감색(남색) 두루마기를 입는다. 쇠가락에는 일채(천당불공), 삼채, 굿거리, 길군악칠채, 길놀이 가락 등이 있는데, 요즘에는 길군악칠을 연주하는 경우가 드물고, 새로운 길놀이 가락이 있다. 판굿에는 멍석말이, 황덕굿, 황덕굿 무동놀이, 황덕굿 고놀이, 진놀이, 농사풀이, 단동고리, 삼동고리, 법고춤, 열두발 상모 등이 있다. 요즘에는 동고리 판을 벌이는 경우가 드물고 대신 농사풀이를 많이 한다. 농사풀이는 다양한 농사 동작을 춤으로 표현한다. 강릉농악은 법고와 소고가 구분되고, 무동을 많이 조직한다는 점에서 다른 농악과 차이가 있다. 판굿은 법고, 소고, 무동의 춤이 주를 이룬다. 단순하고 매우 빨라서 전국에서 가장 빠른 농악으로 평가받으며, 춤의 대부분이 달리는 동작이라 매우 강하고 활기 넘치지만, 여유로운 멋은 없다.[2]

4. 8. 1. 마당굿 놀이과장

마당굿 놀이과장은 보통 12과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마을마다 조금씩 다르다.

  • 두루치기
  • 성황 모시기
  • 멍석말이
  • 지신밟기
  • 황덕굿(법고, 소고, 무동)
  • 농식놀이 : 소고, 법고, 무동들이 1년 동안 진행되는 농사일을 흉내내는 놀이과장. 가래질, 논갈이, 씨뿌리기, 모판누르기, 모찌기, 모심기, 김매기, 콩심기, 벼베기, 벼광이기, 타작하기, 벼모으기, 방아찧기로 구성된다.
  • 자매놀이
  • 오고북놀이
  • 굿거리
  • 동고리받기 (삼동고리)
  • 열두 발 상모돌리기
  • 장구통놀이
  • 여흥놀이


'''물방아놀이''', '''거북이놀이''', '''소몰이놀이''', '''길군악''', '''땅재주''', '''무동놀이''', '''동고리받기''' 등은 고도의 기능이 연마되어야 할 수 있는 특이하고 어려운 과장들이다.[7]

4. 8. 2. 마당굿 놀이순서

강릉농악의 마당굿 놀이 순서는 다음과 같다.[2]

: 인사굿(입장) → 두루치기(발맞추기) → 성황모시기 → 칠채 멍석말이 → 오방 지신밟기 → 황덕굿 → 농사풀이(농식놀이) → 자매놀이 → 오고북놀이 → 굿거리 → 동고리 받기(삼동고리) → 열두 발 상모 → 장구통 놀이 → 여흥놀이 → 뒤풀이

5. 수상 실적

강릉농악은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제2회(1961, 서울), 제10회(1969, 대구), 제13회(1972, 대전), 제14회(1973, 청주)에서 공로상과 장려상을 받았고, 제18회(1977, 수원)에서는 강릉농악의 한 형태인 평창 백옥포 농악이 문공부장관상을, 제19회(1978, 춘천)에서는 박기하가 상쇠를 맡은 평창농악이 국무총리상을 받았다.[7] 강원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는 제1회(1983, 원주)에 강릉홍제농악, 제3회(1985, 속초)에 명주하평답교농악이 출전하는 등 2004년 제21회(2004, 동해)까지 강릉농악은 16회 출전하여 8회를 수상하였다.[7]

수 상 년 도수 상 내 역장 소참 여 단 체주 체
1961년제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공로상서울강원농악문화공보부
1969년제10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장려상대구강원농악문화공보부
1972년제13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공로상대전강원농악문화공보부
1973년제14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공로상청주강원농악문화공보부
1977년제1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문공부장관상수원백옥포농악문화공보부
1978년제1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국무총리상춘천평창농악문화공보부
1981년제2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장려상인천강릉대보름농악문화공보부
1982년 6월 ~ 현재강릉농악경연대회단오장14개마을농악KBS강릉방송
1985년 9월 20일제26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문공부장관상강릉명주하평답교농악문화공보부


6. 명예보유자

성명성별생년월일기·예능주소지정일자해제일자해제사유
박기하1920.4.7상쇠강원 강릉시 내곡동 ***1985.12.012017.04.19사망[9]


참조

[1] 서적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농억-풍어제-민요편) https://www.arirangb[...]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1982
[2] 웹사이트 Gangneung Nongak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3] 웹사이트 문화재청 http://www.cha.go.kr[...]
[4] 웹인용 강릉농악보존회 http://www.gnnongak.[...] 2010-06-03
[5] 웹인용 강릉농악보존회 http://www.gnnongak.[...] 2010-06-03
[6] 간행물 강릉농악(江陵農樂) 국립문화재연구소 1997
[7] 웹인용 강릉농악보존회 http://www.gnnongak.[...] 2010-06-03
[8] 간행물 강릉농악(江陵農樂) 국립문화재연구소 1997
[9] 뉴스 국가무형문화재 명예보유자 인정 해제 http://gwanbo.mois.g[...] 문화재청장 2017-04-26
[10] 웹인용 문화공보부고시제654호(중요무형문화재지정및보유자인정 http://theme.archive[...] 1985-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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