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옥
1. 개요
강신옥은 대한민국의 변호사이자 정치인으로,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되었고,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자유당 전국구 의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행정고시와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판사로 임용되었으나, 이후 변호사로 전향하여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다. 특히 인민혁명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10.26 사건 등에서 변호를 맡았으며,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후 정치 활동을 중단했다. 2021년 7월 31일 숙환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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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통합21 -
임동원
대한민국의 군인 출신 정치인이자 외교관인 임동원은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군과 정부의 요직을 거쳐 나이지리아, 오스트레일리아 대사, 통일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등을 역임하며 김대중 정부 시절 햇볕정책의 핵심 역할을 수행했으나, 제2연평해전 발언과 불법 감청 혐의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
국민통합21 -
한영수 (정치인)
한영수는 충청남도 서산군 출신의 정치인으로, 5·9·10·11·14·15대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신민당 대변인, 민한당 정책위 의장, 국회 국방위원장 등을 지냈으나 잦은 당적 변경과 간통 혐의로 비판받았다.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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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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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판사 -
추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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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판사 -
이상민 (법조인)
2. 생애
서울대 법대 재학 중 행정고시(10회)와 사법고시(11회)에 모두 합격했고, 사법관시보를 수료한 뒤 1962년에 판사로 임용되었다. 1년 반 정도 판사 생활을 하다가 박정희 최고위원 시절 정치적 이유로 경주지원으로 좌천되는 인사를 당했다. 이에 사법권 독립이 되지 않았다고 보고 항의의 뜻으로 판사직을 사임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인민혁명당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 등의 피고인들을 변호한 대표적인 1세대 인권 변호사 출신 정치인이었다. 10·26 사태 후 김수환 추기경의 부탁으로 김재규를 변호하는 등 인권변호사 활동을 하였다.
인민혁명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3.1 민주구국선언 사건, 10·26 사태, YWCA 위장결혼식 사건,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에서 변호를 담당하면서 이돈명, 홍성우, 조영래 등과 함께 1세대 인권변호사로 유명해졌다. 1986년에는 조영래, 이상수 등의 후배 인권변호사들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전신인 정법회를 창립하였다.
10·26 사건으로 박정희가 사망하고 김재규는 체포되어 군법회의에 넘겨졌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의 부탁으로 김재규의 변호를 맡았다.
13대 총선을 앞두고 노무현, 김광일 등 정법회 동료 변호사들과 함께 통일민주당에 영입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마포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김광일 등과 상도동계에 합류, 1990년 김영삼의 3당 합당에 동참하여 민주자유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1992년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 공천은 박주천에 밀려 탈락하고 대신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의 독주를 비판하며 신한국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2021년 7월 31일, 향년 85세에 숙환으로 사망했다.
2.1. 초기 활동
경북 영주 출신이다. 서울대 법대 재학 중 행정고시(10회), 사법고시(11회) 양 과를 합격했고 사법관시보를 수료한 뒤 1962년에 판사로 임용되었다. 판사생활을 1년 반쯤하다가 당시 박정희 최고위원 시절 정치적 이유로 경주지원으로 좌천되는 인사를 당해 사법권 독립이 되지 않았다고 보고 이에 대한 항의의 의사 표시로 판사직을 사임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항간에는 조용수 사건 때문에 판사직을 사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2.2. 인권변호사 활동
박정희 정권 시절 인민혁명당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 등의 피고인들을 변호한 대표적인 1세대 인권 변호사 출신 정치인이었다. 행정고시와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판사 생활을 하다가 변호사가 되었다. 1974년 4월에 발생한 민청학련 사건을 변론하다가 사법사상 처음으로 변론 중인 변호사가 법정 구속되는 일을 겪었다. 10·26 사태 후 김수환 추기경의 부탁으로 김재규를 변호하는 등 인권변호사 활동을 하였다.
인민혁명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3.1 민주구국선언 사건, 10·26 사태, YWCA 위장결혼식 사건,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에서 변호를 담당하면서 이돈명, 홍성우, 조영래 등과 1세대 인권변호사로서 유명해졌다. 1974년 7월 민청학련 사건에서 유인태 전 민주당 의원 등 관련자들의 결심 공판 때 “애국 학생들을 국가보안법 등으로 걸어 빨갱이로 몰아 사형을 구형하고 있으니 이는 사법살인행위다. 악법에 저항할 수 있다”고 변론했다. 당시 강 전 의원은 법정 모욕죄 등으로 변론 도중 구속되면서 많은 고초를 겪었다. 1974년 9월 20일, 1심인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10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선고받았고, 2심인 비상고등군법회의에서 항소 기각 판결을 받았다. 이듬해 대통령 특별조치로 석방되었다. 1986년에는 조영래, 이상수 등의 후배 인권변호사들과 함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전신인 정법회를 창립하였다.
이후 13대와 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의정활동을 하였고, 1996년 15대 총선에서 무소속 후보로 낙선하였으며, 2003년에 정치활동을 접었다.
2.3. 10.26사건 변호
10·26 사건으로 박정희가 사망하고 김재규는 체포되어 군법회의에 넘겨졌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의 부탁으로 김재규의 변호를 맡았다. 1980년 5월 20일 김재규의 사형이 확정되자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는데, 이날 보안사 요원들에 의해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 보름 동안 모진 고초를 겪었다. 내란사범 김재규 부장 구명운동을 했다는 점과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를 끄집어낸 것이 박근혜에 대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혐의였다. 변호인으로서 정당하게 수행한 변론활동이라고 맞서서 더 이상 처벌은 받지 않았다.
10·26 사건 항소심에서 박정희의 술과 여자문제를 폭로하는 전략으로 나갔다. 그것이 10.26 거사의 정당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10.26 거사가 어느 정도 정당성이 인정되고 불가피한 것이었다면 피고인들의 내란목적 살인죄는 정상참작이 가능해지거나 단순살인으로 낮추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것이 피고인들에게 극형을 면하게 해주는 길이었다.
훗날 이 일로 인해 박근혜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
2.4. 정치 활동
강신옥한국어은 13대 총선을 앞두고 노무현, 김광일 등 정법회 동료 변호사들과 함께 통일민주당에 영입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마포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박주천 후보, 평화민주당 김승목 후보 등을 꺾고 당선되었다. 김광일 등과 함께 상도동계에 합류, 1990년 김영삼의 3당합당에 동참하여 민주자유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1992년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 공천은 박주천에 밀려 탈락하고 대신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의 독주를 비판하며 신한국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그 후 한나라당 고문 겸 당무위원(2000년 12월~2001년 1월), 국민통합21 창당준비위원(2002년)과 국민통합21 당무위원 겸 상임위원(2002년 11월~2003년 1월)을 제외하고는 정치 활동을 그만두었다.
3. 주요 활동
박정희 정권 시절 인민혁명당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 등의 피고인들을 변호한 대표적인 1세대 인권 변호사 출신 정치인이었다. 행정고시와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판사 생활을 하다가 변호사가 되었다. 1974년 4월에 발생한 민청학련 사건 변론 중에는 사법사상 처음으로 법정구속되는 일을 겪었다. 10.26 사태 후 김수환 추기경의 부탁으로 김재규를 변호하는 등 인권변호사 활동을 하다가 13대와 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의정활동을 하였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무소속 후보로 낙선하였고 2003년에 정치활동을 접었다.
4.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
| 아들 | 강한승 |
| 아들 | 강동승 |
| 딸 | 강정은 |
| 사위 | 홍윤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