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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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강용주는 1962년 광주 출생으로, 1980년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으며, 이후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14년간 복역했다. 출소 후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에 복학하여 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되었다. 2012년 광주트라우마센터를 설립하고 초대 센터장을 맡았으며, 고문 피해자 치유 모임과 인권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강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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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1980년 고등학교 3학년 때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5·18 당시 의사나 간호사들이 목숨을 걸고 부상자들을 돌보는 것을 보고 의료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으며, 학생운동에도 뜻을 두었다. 1985년 전두환 정부의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14년 동안 수감 생활을 했다. 출소 후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2008년 가정의학과 전문의 자격증을 획득했다. 2012년 광주트라우마센터 설립에 참여하고 초대 센터장이 되었다.

2.1. 5·18 민주화운동 참여와 수감 생활

1980년 고등학교 3학년 때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1980년 5월 19일부터 시위에 참가하고 유인물을 배포했으며, 5월 27일 계엄군이 도청을 함락하기 전까지 총을 들고 도청 앞을 사수했다. 도망나왔다는 죄책감 등으로 심적 고통이 심해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전라북도의 한 절에서 몇 개월간 생활했다.

1980년 겨울, 포장마차를 운영하다가 어머니의 권유와 옛 담임 교사의 도움으로 1981년 고등학교에 복학했고,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1980년 5월 당시 의사와 간호사들이 목숨을 걸고 부상자들을 돌보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아 의료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으며, 학생운동에도 뜻을 두었다.

1985년 전두환 정부가 학생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을 조작했고, 강용주도 이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을 구형받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14년 동안 수감 생활을 했다.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로 감옥에 갇혔지만 끝까지 전향을 거부했다. 대한민국 국가안전기획부는 이 사건에 대해 북한의 지령과 공작금을 받은 유학생 양동화에게 포섭당해 간첩활동을 했다고 발표했다.

2.2. 출소 후 활동과 의료인의 길

1985년 전두환 정부가 학생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구미유학생간첩단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4년 동안 감옥 생활을 했다. 출소 후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에 복학하여 5년간의 과정을 마치고 인턴 및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2008년 초 가정의학과 전문의 자격증을 획득했다.

그 무렵 조작간첩사건 피해자들이 재심을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고, 재심이 제대로 진행되려면 피해자들이 고문과 감옥 생활의 후유증을 제대로 치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문 피해자들은 다른 피해자들의 진상 규명과 치유를 돕기 위해 2010년 사단법인 '진실의 힘(이사장 명진)'을 만들었고, 강용주도 이사로 참여했다. 이후 2012년 광주트라우마센터 설립에 참여하고 초대 센터장이 되었다.

3.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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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내용
1962년광주 출생
1980년광주 민중항쟁 참가 (당시 동신고등학교 3학년)
1981년1년간 도피 생활 후 동신고등학교 복학
1982년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입학, 학생운동 참여
1985년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안기부 연행, 무기징역 선고
1992년사상전향제도 폐지 헌법소원
1998년UN인권이사회에 개인통보(Individual communication) 제출, 준법서약서 거부로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 관련자 중 유일하게 석방되지 않음.
1999년준법서약서 없이 세계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로 출소 (14년 복역), 전남대학교 의예과 복학
2001년보안관찰 대상자 신고 의무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
2002년보안관찰 처분 취소 행정소송 패소
2003년 7월UN인권이사회로부터 "한국의 사상전향제도가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6조(평등권)와 제18조 제1항(사상•양심의 자유), 제19조 제1항(표현의 자유)을 침해한 것"이라는 결정 통보 받음.
2004년 2월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의사면허 취득
2008년가정의학 전문의 취득, 국가인권위원회 사회권 전문위원(건강권, 2010년까지), 국가인권위원회 세계 인권 선언 60주년 기념 인권 홍보대사(2009년까지)
2009년(재)진실의힘 이사(2022년까지), 아나파 의원 원장(현재까지)
2010년서울대학교병원대한의사협회 공동 개설 의료경영 고위과정(AHP) 수료,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사회과학 최고위 과정 수료
2012년광주 트라우마 센터 초대 센터장(현재까지)
2013년광주일보 창사 61주년 광주전남 미래인물 61인 선정
2014년광주 MBC 창사 50주년 희망인물 선정
현재고문피해자 치유 모임 활동 (재단법인 진실의 힘), UN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 기념 대회(6월 26일) 조직

4. 사회 활동

강용주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1985년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14년간 복역하는 등 민주화 운동과 깊은 관련을 맺었다. 출소 후에는 고문 피해자 치유와 인권 운동에 힘쓰고 있다.

1980년 5월,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강용주는 광주 민중항쟁에 참여했다. 1981년 고등학교에 복학하고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학생운동을 이어갔다.

1985년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안기부에 연행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1999년 출소할 때까지 사상 전향을 거부했다. 1998년 UN인권이사회에 개인통보를 제출, 2003년 한국의 사상전향제도가 국제규약을 위반했다는 결정 통보를 받았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국가인권위원회 사회권 전문위원(건강권)으로 활동했고, 2009년부터 재단법인 진실의 힘 이사, 2012년부터 광주 트라우마 센터 초대 센터장을 맡고 있다.

4.1. 인권 운동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국가인권위원회 사회권 전문위원(건강권) 및 세계인권선언 60주년 기념 인권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UN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 기념 대회(6월 26일) 조직에 참여하는 등 국제적인 인권 운동에도 참여했다.

2001년 보안관찰대상자 신고 의무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되었고, 2002년 보안관찰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하는 등 국가 공권력 감시 활동도 했다.

4.2. 민주화 운동

1980년 고등학교 3학년 때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5월 19일부터 시위 참가, 유인물 배포 등을 했고, 5월 27일 계엄군이 도청을 함락하기 전까지 총을 들고 도청 앞을 사수했다. 도망나왔다는 죄책감 등으로 심적 고통이 심해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전라북도 소재 절에서 몇 개월 생활하였다. 1981년 고등학교에 복학하여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고,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1985년 전두환 정부가 학생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구미유학생간첩단사건을 조작했고, 이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4년 동안 감옥 생활을 했다. '공산주의자'란 혐의로 감옥에 갇혔지만 끝까지 전향을 거부했다. 출소 후 복학하여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2008년 초 가정의학과 전문의 자격증을 획득했다.

2010년 고문 피해자들의 진상 규명과 치유를 돕기 위해 설립된 사단법인 '진실의 힘' 이사로 참여했다. 2012년 광주트라우마센터 설립에 참여하고 초대 센터장이 되었다.

5. 평가

1980년 고등학교 3학년 때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5월 19일부터 시위에 참여하고 유인물을 배포했으며, 5월 27일 계엄군이 도청을 함락하기 전까지 총을 들고 도청 앞을 지켰다. 이후 죄책감 등으로 심한 심적 고통을 겪고 고등학교를 자퇴, 전라북도 소재의 절에서 몇 달간 생활했다.

1985년 전두환 정부는 학생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구미유학생간첩단사건을 조작했고, 강용주도 이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을 구형받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는 14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하면서도 '공산주의자'라는 혐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전향을 거부했다. 대한민국 국가안전기획부는 강용주가 북한의 지령과 공작금을 받은 유학생에게 포섭되어 간첩활동을 했다고 발표했다.

출소 후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에 복학하여 2008년 초 가정의학과 전문의 자격증을 획득했다. 그는 조작간첩사건 피해자들의 재심을 돕기 위해 2010년 사단법인 '진실의 힘' 이사로 참여했고, 2012년 광주트라우마센터 설립에 참여하여 초대 센터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