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맹
1. 개요
강희맹은 1424년 한성부에서 태어나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서화가이다. 그는 세종의 부인이었던 소헌왕후의 조카이자 문종, 세조와 사촌 관계이며, 1447년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판서, 형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예종 때 남이를 참소하여 익대공신이 되었고, 서화와 문장에 능하여 도화서 제조를 지냈다. 저서로 《사숙재집》, 《촌담해이》 등이 있으며, 《금양잡록》에서 푄 현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강희맹 사후 묘는 경기도 시흥시에 있으며, 관련 드라마로 《한명회》와 《왕과 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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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4년 출생 -
윤호 (평정공)
윤호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의 아버지이며 영원부원군에 봉해졌고, 우의정까지 올랐으나 결단력 부족으로 비판받기도 했으며, 아들 윤탕로와 함께 『파천집』과 『구급간이방』을 편찬했고 시호는 평정이다. -
1424년 출생 -
크리스토포로 란디노
크리스토포로 란디노는 피렌체 출신의 르네상스 시대 인문주의자이자 작가로, 피렌체 스튜디오 교수, 플라톤 아카데미 회원으로서 철학, 문학 분야에서 저술 활동을 펼치며 이탈리아어 사용을 옹호하고 《아이네이스》와 《신곡》에 대한 주석을 남기는 등 르네상스 시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483년 사망 -
정희왕후
정희왕후는 조선 세조의 왕비로서, 계유정난을 통해 남편의 왕위 등극을 도왔으며, 성종 대에 수렴청정을 실시하여 정치적 안정을 이룩했다. -
1483년 사망 -
에드워드 5세
에드워드 5세는 1483년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4세의 아들로 왕위에 올랐으나, 외삼촌 리처드에 의해 런던 탑에 유폐된 후 실종되었으며, 리처드 3세가 왕위를 찬탈했다. -
조선 문종 -
세조 (조선)
세조는 조선의 제7대 왕으로서,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올라 왕권 강화를 위해 노력했으며, 육조직계제를 실시하고 경국대전 편찬을 시작하는 등 강력한 중앙집권 정책을 추진했다. -
조선 문종 -
현덕왕후
현덕왕후 권씨는 문종의 후궁이자 단종의 어머니로,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으나 단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사망 후 왕후로 추존, 세조 즉위 후 폐위되었다가 중종 때 복위되어 명예를 회복한 인물이다.
2. 생애
1447년(세종 29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 좌찬성에 이르렀다. 문장과 서화에 모두 뛰어나 도화서 제조를 맡기도 하였다. 예종 때 남이를 죽인 공으로 익대공신이 되었다. 성종 때에는 병조판서, 이조판서, 우찬성 등을 역임했다. 사후 서거정에 의해 유고가 편찬되었다. 저서로는 《사숙재집》, 《촌담해이》 등이 있다. 연산군이 어렸을 적 폐비 윤씨 관련 사건으로 궁궐이 흉흉했을 때, 강희맹의 집에서 지내기도 했다.
2.1. 가문 배경과 초기 생애
1424년 한성부에서 태어났으며, 경기도 시흥시(현재 서울 시흥4동에 강희맹의 집 터가 있다.)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냈다. 강석덕의 차남이자 소헌왕후의 조카이며, 문종, 세조와 이종사촌 간이다. 강석덕은 세종의 아랫 동서였다.
2.2. 관직 진출과 활동
1424년 한성부에서 출생하였고, 경기도 시흥 (현재 서울시 시흥4동에 강희맹의 집 터가 있다.)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냈다. 1447년(세종 29년) 문과 친시에 을과 1등으로 급제하여 벼슬에 올랐다. 세조 때 예조판서, 형조판서를 지냈고, 예종 때 남이를 죽인 공으로 익대공신이 되었다. 성종 때에는 병조판서를 거쳐 이조판서, 우찬성, 좌찬성 등을 지냈다. 그는 서화와 문장이 뛰어났으며, 도화서의 제조를 맡기도 하였다. 그가 죽은 뒤 서거정에 의하여 유고가 편찬되었다.
3. 사후
강희맹선생묘및신도비는 경기도 시흥시 하상동에 있다. 부인 안씨와의 합장묘이며 봉분 앞에 묘비·상석·향로석이 있고 그 좌우에 독특한 모습의 문인석이 있다. 묘역 왼쪽 아래에는 성종 19년(1488)에 세운 신도비(神道碑: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우던 비)가 있는데, 서거정이 비문을 짓고 박증영이 글씨를 쓴 것이다. 1985년 9월 20일 경기도의 기념물 제87호로 지정되었다.
4. 가족 관계
| | 이름 || 비고 | ||
|---|---|---|
| 조부 | 강회백(姜淮伯) | |
| 부친 | 강석덕(姜碩德) | |
| 외조부 | 심온(靑川府院君 沈溫) | 청천부원군 |
| 외조모 | 순흥 안씨(三韓國大夫人 順興 安氏) | 안천보(安天保)의 딸 |
| 모친 | 청송 심씨 | |
| 형 | 강희안(姜希顔) | |
| 장인 | 안숭효(安崇孝) | |
| 장모 | 한산 이씨 | 이숙묘(李叔畒)의 차녀 |
| 부인 | 순흥 안씨 | 정부인 |
| 장남 | 강귀손(姜龜孫) | 우의정 |
| 며느리 | 은진 송씨 | 송요년(宋遙年)의 딸 |
| 손자 | 강태수(姜台壽) | 강학손(姜鶴孫)의 아들이나 강귀손(姜龜孫)에게 입양됨, 부사(府使) |
| 손녀 | 이돈(李墩) | 지산부령(砥山副令) |
| 차남 | 강학손(姜鶴孫) | 한성부서윤, 무오사화 때 영광으로 유배 |
| 며느리 | 고령 신씨 | 감사(監司) 신면(申㴐)의 딸 |
| 손자 | 강영수(姜永壽) | 충좌위 사과 |
| 손자 | 강형수(姜享壽) | 별좌(別坐) |
| 손자 | 강태수(姜台壽) | 강귀손(姜龜孫)에게 출계, 부사(府使) |
| 손자 | 강기수(姜期壽) | |
| 손자 | 강구수(姜耉壽) | 주부(主簿) |
| 손자 | 강흔수(姜欣壽) | 감역(監役) |
| 손자 | 강곤수(姜坤壽) | |
| 손자 | 강종수(姜終壽) | |
| 손녀 | 덕림정(德林正) 이자(李孜)에게 출가 | |
| 손녀 | 경주 김씨 김우정(金禹鼎)에게 출가 | 호군(護軍) |
| 장녀 | 창녕 성씨 성세명(成世明)에게 출가 | 지중추(知中樞) |
| 차녀 | 김성동(金成童)에게 출가 | |
| 외손자 | 김도(金淘) | 별좌(別坐) |
| 외손자 | 김여(金濾) | 충의위(忠義衛) |
| 외손자 | 김언(金漹) | 판결사(判決事) |
| 외손녀 | 연안 김씨 김석린(金碩麟)에게 출가 | 현감(縣監) |
| 외손녀 | 문화 류씨 류수천(柳壽千)에게 출가 | |
| 외손녀 | 경주 최씨 최수준(崔秀俊)에게 출가 | 군수 |
| 외손녀 | 류여회(柳如晦)에게 출가 | |
| 외손녀 | 청주 한씨 한계상(韓繼常)에게 출가 | 충의위(忠義衛) |
| 3녀 | 고령 신씨 신렴(申濂)에게 출가 | 부사(府使) |
| 외손녀 | 동래 정씨 정응(鄭譍)에게 출가 | 전한(典翰) |
| 4녀 | 안동 권씨 권만형(權曼衡)에게 출가 | 감찰(監察) |
| 외손자 | 권현(權鉉) | 별좌(別坐) |
| 외손자 | 권상(權鏛) | |
| 외손자 | 권용(權鎔) | 부사(府使) |
| 측실 | 이름 미상 | |
| 서자 | 강오손(姜鰲孫) | |
| 서자 | 강종손(姜螽孫) |
5. 작품
강희맹은 직접 《금양잡록》, 《촌담해이》를 엮었고, 사후에 서거정이 성종의 명을 받아 《사숙재집》을 편찬하였다. 또한 《동국여지승람》, 《국조오례의》 등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5.1. 《금양잡록(衿陽雜錄)》
강희맹은 직접 《금양잡록(衿陽雜錄)》, 《촌담해이(村談解頤)》를 편집했고, 사후에 서거정이 성종의 명을 받아 《사숙재집(私淑齋集)》을 편찬했다. 《금양잡록》에서 강희맹은 "경기 지역에 동풍이 불고 심한 가뭄이 들어 밭의 물이 모두 마르는 해가 있었다."라고 푄 현상을 기록했다.
5.2. 《촌담해이(村談解頤)》
《촌담해이(村談解頤)》는 강희맹이 금양 지방의 민담과 관직 생활 중 들었던 여러 설화를 모은 것이다. 신기하거나 이상한 이야기, 음담패설 등을 수록하였다.
5.4. 기타
강희맹은 스스로 《금양잡록》, 《촌담해이》를 엮었고, 사후에 서거정이 성종의 명을 받아 《사숙재집》을 편찬하였다. 또한 《동국여지승람》, 《국조오례의》 등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 촌담해이: 금양 지방의 민담과 관직 생활 중 들었던 여러 설화를 모은 것이다. 신기하거나 이상한 이야기, 음담패설 등을 수록하였다.
* 사숙재집: 서거정이 강희맹 사후에 그의 글들을 모아 엮은 것으로, 한시와 교육, 삶의 지혜 등에 대한 글들을 담고 있다.
강희맹은 《금양잡록》에서 "경기에서는 동풍이 불 때 가뭄이 심해 어떤 해에는 논밭의 물이 모두 마른다."고 푄 현상을 기록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