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거열산성
1. 개요
거창 거열산성은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상리에 있는 석축 산성으로, 건흥산성이라고도 불린다.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격전지였으며, 백제 부흥운동 당시 신라군이 공격하여 700여 명을 참수한 기록이 있다. 덕유산 줄기 해발 563m 건마산 꼭대기에 위치하며, 성벽 둘레는 약 1.5km, 높이 8m이다. 성 안에는 망루, 건물터, 우물터 등이 있으며, 동쪽에는 수원지가 있다. 삼국시대 붉은 기와 조각 등 출토 유물을 통해 삼국시대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거열산성은 삼국통일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거창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다.
| 이름 | 거창 거열산성 |
|---|---|
| 한자 표기 | 居昌 居列山城 |
| 위치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중앙로 24-12 (상림리) |
| 종류 | 경상남도 기념물 |
| 지정 번호 | 22 |
| 지정일 | 1974년 12월 28일 |
| 참고 사항 | 거열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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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동국여지승람》에는 거창읍 북쪽 8리에 둘레 3리의 석축 산성이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성이 만들어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부근의 다른 성터와 함께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곳으로 전해진다.
특히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는 이곳에 웅거하던 백제의 부흥운동군을 신라 장군 흠순(欽純)과 천존(天存) 등이 공격하여 700여 명의 목을 베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백제 부흥운동이 신라에 의해 진압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 중 하나이다.
3. 구조
성벽의 둘레는 약 1.5km, 높이는 8m, 아랫부분의 폭은 7m, 윗부분의 폭은 4m이다. 성벽은 성 아래에서는 잘 보이지 않도록 산의 지세와 능선의 높낮이를 이용하여 요새와 같이 쌓았다.
성 안에는 망루를 세웠던 흔적 7곳과 건물터, 우물터 등이 남아 있으며, 동쪽에는 수원(水原)이 있다. 동쪽 성문터 밖에는 평탄한 대지가 있는데, 이곳은 병사를 훈련하거나 말을 키웠던 장소로 추정된다. 이 부근에서는 벽돌과 삼국시대의 붉은 기와 조각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에는 거열산성이 읍의 북쪽 8리에 있으며, 둘레가 3리(약 1.2km)에 달하는 돌로 쌓은 산성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4. 출토 유물
성의 동쪽 성문터 밖에는 병사의 훈련이나 말을 키웠을 것으로 보이는 평탄한 대지가 있으며, 이곳에서 벽돌과 삼국 시대의 붉은 기와 조각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물들은 거열산성이 삼국 시대에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여겨진다.
5. 의의
거창 거열산성은 일명 건흥산성(乾興山城)으로도 불리며, 삼국 시대, 특히 신라와 백제가 치열한 각축을 벌였던 중요한 역사적 현장이다. 성의 정확한 축조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부근의 다른 성터와 함께 두 나라 간의 격전지였음이 전해 온다. 특히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는 이곳을 거점으로 삼았던 백제 부흥운동 세력을 신라 장군 흠순(欽純)과 천존(天存)이 공격하여 격파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백제 부흥운동사 및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산성은 덕유산 줄기인 건마산 정상부의 지형과 능선 높낮이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성곽이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도록 축조된 천혜의 요새이다. 《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된 이 산성은 현재 둘레 약 1.5km, 높이 8m, 아랫부분 폭 7m, 윗부분 폭 4m 규모의 석축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성 내부에는 망루를 세웠던 7곳의 흔적과 건물터, 우물터 등이 남아 있으며, 동쪽 성문터 밖에는 병사 훈련이나 말 사육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평탄한 대지가 있다. 또한, 벽돌과 삼국시대의 붉은 기와 조각이 출토되어 당시의 생활상과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거열산성은 고대 거창 지역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유적이며, 삼국시대의 군사 전략과 축성 기술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서 역사 교육 및 연구에 있어 그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