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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죽첨정 단두 유아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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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성 죽첨정 단두 유아 사건은 1933년 5월 16일 경성부 죽첨정에서 발견된, 목이 잘린 채 버려진 영아의 머리 사건이다. 피해자는 1세 전후의 여아로, 살아있는 상태에서 살해된 것으로 밝혀졌다. 조선총독부는 한센병 환자들을 용의자로 지목하여 인권 유린 논란을 일으켰다. 이후 피해자는 경기도 고양군 용강면에 살던 한창우의 딸로 밝혀졌으며, 범인 윤명구와 배구석은 아들의 간질병 치료를 위해 시신을 훼손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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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죽첨정 단두 유아 사건
사건 개요
사건명경성 죽첨정 단두 유아 사건
다른 이름죽첨정 단두 유아 사건 (竹添町断頭幼児事件)
발생 위치경성부 죽첨정 (현 서울특별시 중구 죽첨정)
발생 날짜1933년 5월 31일
사건 유형살인 사건, 아동 살해
사건 상세
피해자4세 여자아이
가해자26세 남성 (정신 질환 병력)
범행 동기정신 질환으로 인한 우발적 범행 추정
범행 방법흉기로 유아의 목을 절단
사건 전개1933년 5월 31일: 범인이 유아를 유인하여 살해
1933년 6월 6일: 범인 체포
1933년 6월 7일: 경성일보에 사건 보도
사건 영향사회적 공분 및 불안감 확산
관련 자료
"잘려진 머리의 신원 판명을 보도했다"의 경성 일보 기사 (1933년 6월 7일)
사건 현장을 담은지도 (중간의 아현리는 범인과 피해자가 살던 곳이고, 왼쪽의 공동 묘지는 피해자의 소녀가 묻혀 있던 곳이다)
사건 현장을 담은 지도 (중간의 아현리는 범인과 피해자가 살던 곳이고, 왼쪽의 공동 묘지는 피해자의 소녀가 묻혀 있던 곳이다)

2. 사건의 개요

1933년 5월 16일, 경성부 죽첨정3정목(오늘날의 서울특별시 중구 충정로3가)에서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잘린 머리가 발견되었다.[1] 발견된 머리는 후두부가 갈라져 있었고 안의 뇌수를 긁어낸 흔적이 있었으며, 주변에는 뇌수 파편들이 흩어져 있었다.[1]

경성제국대학 의과부는 부검을 통해 머리의 주인이 1살 내외의 여자아이이며, 살아있는 상태에서 목이 잘린 것으로 추정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범행 시간은 머리가 발견된 시점으로부터 10시간 이내로 추정되었다.

당시 조선총독부와 경찰은 경성부의 치안이 '안전한 도시'가 되었다고 선전하고 있었으나, 이 엽기적인 사건으로 인해 큰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2][3] 사건 제보가 접수되자 경성 시내 전 경찰서에 비상이 걸렸지만, 수사에 별다른 진척이 없자 경찰은 무리한 수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아이의 간이나 뇌수가 나병(한센병)에 좋다'는 민간 속설을 근거로, 한센병 환자나 거리의 빈민들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무차별적으로 체포하여 인권 침해 논란을 일으켰다.[1]

2. 1. 수사 과정

경성제국대학 의과부는 발견된 아이 머리에 대한 부검을 하루 만에 마쳤다. 부검 결과, 아이는 1살 내외의 여자아이이며, 살아있는 상태에서 목이 잘렸고, 범행 시간은 머리가 발견되기 10시간 이내로 추정되었다.[1] 조선총독부와 경찰은 이 엽기적인 사건으로 인해 큰 혼란에 빠졌다. 당시 경찰은 경성부의 치안이 안전하다고 선전하고 있었기에 더욱 당혹스러워했다.[2][3] 사건 해결을 위해 경성 시내 전 경찰서에 비상이 걸렸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경찰은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체포하기 시작했다. 특히 '아이의 간이나 뇌수나병(한센병)이나 뇌 질환에 좋다'는 민간 속설에 따라, 한센병 환자나 거리의 빈민들을 범인으로 단정하고 검거하는 등 무리한 수사를 진행했다.[1]

수사가 난항을 겪던 중, 일각에서는 살아있는 아이가 아닌 이미 사망한 아이의 시신에서 목을 잘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에 경찰은 수사 방향을 바꿔 사망 신고된 유아들의 기록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6월 5일, 마침내 잘린 머리의 주인이 밝혀졌다. 피해자는 경기도 고양군 용강면 아현리(현재 서울특별시 마포구 아현동)에 살던 한창우의 1살 된 딸이었다.[4] 한창우의 딸은 5월 10일 뇌막염으로 사망하여 이미 매장된 상태였다. 경찰이 한창우 딸의 무덤을 파본 결과, 예상대로 목이 잘린 시신이 발견되었고, 먼저 발견된 머리와 대조하여 동일 인물임이 최종 확인되었다.[4]

경찰은 인근 지역을 수색한 끝에, 피해자 가족의 집에 함께 살던 배구석과 그의 친구 윤명구를 범인으로 체포했다.[5]

3. 범행 동기

범행 동기는 주로 범인 윤명구 아들의 병 때문이었다. 윤명구의 아들은 간질병을 앓고 있었는데, 여러 약을 써도 병세가 나아지지 않았다.[5] (일부 자료에서는 한센병을 앓고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던 중 윤명구는 간질병에 아이의 뇌수가 특효약이라는 민간요법을 듣고 이를 맹신하게 되었다.[5]

이에 윤명구는 친구인 배구석에게 아이의 뇌수를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배구석은 같은 집에 살던 한창우의 어린 딸이 수막염으로 사망한 사실을 알고, 윤명구에게 돈(2원)을 받고 한창우 딸의 무덤을 파헤쳤다. 배구석은 무덤에서 아이의 목을 잘라 뇌수를 긁어내 윤명구에게 가져다주었고, 잘린 목은 죽첨정에 몰래 버렸다.[5]

그러나 아이의 뇌수를 먹고도 윤명구 아들의 병은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악화되었다고 한다.[5] 이는 아이가 뇌 질환으로 사망했거나, 사망 후 시간이 지나 뇌수가 부패했기 때문일 수 있다는 추측이 있다.

4. 사건의 사회적 의미

이 사건은 당시 사회에 널리 퍼져 있던 민간요법의 위험성과 한센병(나병)에 대한 깊은 오해 및 편견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비극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의학 지식의 부족과 잘못된 믿음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보여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조선총독부 경찰이 보여준 강압적이고 비인권적인 행태는 일제강점기 식민 통치 아래 자행된 인권 유린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무고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 무분별한 수사와 고문 등은 당시 사법 시스템의 심각한 문제점을 보여주며 많은 비판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사회적 약자를 향한 차별과 사회적 낙인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경고하는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 질병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부족하고 잘못된 정보가 만연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비극을 조명하며, 정확한 정보에 기반한 보건 의료 정책 수립과 사회적 인식 개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계기가 되었다.

참조

[1] 뉴스 1933-05-17자, 동아일보 http://db.history.go[...] 동아일보 1933-05-17
[2] 뉴스 1933-05-17자, 동아일보 http://db.history.go[...] 동아일보 1933-05-17
[3] 뉴스 1933-05-18자, 동아일보 http://db.history.go[...] 동아일보 1933-05-18
[4] 뉴스 1933-06-07자 조선중앙일보 http://db.history.go[...] 조선중앙일보 1933-06-07
[5] 뉴스 1933-06-09자 조선중앙일보 http://db.history.go[...] 조선중앙일보 1933-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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