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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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시보는 1933년 10명의 동인에 의해 동인제로 발행을 시작한 간행물이다. 1935년 주식회사로 전환되었으며, 김정호, 여운형 등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현존하는 고려시보 원본은 6.25 전쟁 이후 입수되어 개성시민회에 기증되었으며, 1941년 폐간 전까지의 신문이 포함되어 있다. 박광현은 아버지 박재청의 글을 발췌하여 《고려시보 발췌》를 출간하기도 했다. 관련 연구로는 박재청의 문학 작품 연구와 박아지의 정체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고려시보 원본은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되었다.
1933년 10명의 동인이 모여 동인제(同人制)로 고려시보 발행을 시작했고, 1935년 6월에 주식회사로 전환되었다.[1]
2. 창립과 발전
2. 1. 창립 멤버 (1933)
공진항, 김학형, 김재은, 고한승, 이선근, 김영의, 박일봉, 김병하, 마태영, 박재청 등 10명이 동인으로 참여했다.
2. 2. 주식회사 발기인 (1935)
1935년 6월, 고려시보는 주식회사로 발전하였다. 이때 발기인은 34명이었다.[1]
| 성명 | 성명 | 성명 | 성명 | 성명 | 성명 | 성명 | 성명 | 성명 | 성명 |
|---|---|---|---|---|---|---|---|---|---|
| 김정호 | 김기영 | 박봉진 | 여운형 | 황중현 | 최인용 | 우상순 | 윤영선 | 김학형 | 김천호 |
| 하규항 | 공진항 | 박영균 | 박광진 | 임한조 | 김재은 | 고한승 | 최선익 | 장희순 | 이윤수 |
| 박상우 | 홍이표 | 이선근 | 이세환 | 김병하 | 이근태 | 진호섭 | 김진원 | 마태영 | 박상유 |
| 김희정 | 박상순 | 김동표 | 박재청 |
박재청은 고려시보에서 부장 및 주필로 활동하며, 본명 외에 춘파(春波), 박아지(朴牙枝), 봄물결 등의 필명으로 한시, 시조, 현대시, 수필, 소설, 논설 등을 기고했다. 2010년 서정시학에서 《춘파 박재청 문학전집》[2]을 출간하여 그의 작품을 정리했다.
여운형은 민족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로서, 고려시보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신문의 민족주의적 성향 강화에 기여했을 것으로 보인다.[1]
3. 주요 필진 및 활동
3. 1. 박재청(박아지) 관련 논란
박재청은 '박아지'라는 필명으로도 활동했는데, 1920년대 말 농민 시인이자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회원이던 '박아지'와 동일 인물이라는 연구가 있다.[3],[4] 북한 문학사에서는 '박아지'를 함경북도 명천 출신 박일(朴一)로 기록하고 있으며, 해방 이후 월북한 작가로 분류한다.
4. 현존하는 발행본 및 관련 자료
현존하는 《고려시보》 원본은 (주)만몽산업과 개성양조장의 중역 김용남(金龍南)이 6.25 전쟁 이후 서울 근교의 인삼밭에서 우연히 구입한 것이다. 김용남은 개성 출신 인부의 집에서 아궁이에 불쏘시개로 쓰이던 《고려시보》 신문철을 보고 후하게 사례하여 입수하였는데, 창간호 앞부분은 이미 소실된 상태였다. 이후 김용남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이 원본을 (주)고려인삼흥업 유영준(劉永駿) 사장에게 넘겨주었고, 유영준은 2000년경 이를 개성시민회에 기증하였다. 이 원본에는 1941년 폐간되기 전까지 발행되었던 신문만 포함되어 있으며, 해방 이후 발행분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한편, 6.25 전쟁 중 16세의 나이로 홀로 월남한 박광현(박재청(朴在淸)의 넷째 아들)은 1978년에 《고려시보》에 실린 부친의 글을 발견하였다. 이듬해 1월, 박광현은 부친의 글이 실린 쪽들을 발췌하여 《고려시보 발췌(高麗時報 拔萃)》를 출간하고 동향인과 친지에게 비매품으로 배포하였다. 이 책은 어떤 인쇄소에서 무단으로 복사하여 여러 도서관에 판매되었다.[1]
4. 1. 영인본 및 자서전
개성시민회가 보관하고 있던 원본을 복사하여 제작한 《고려시보 전체 영인본》이 있다. 박재청의 아들 박광현은 1978년에 《고려시보》에 실린 부친의 글을 발견하고, 이듬해인 1979년 1월에 해당 글들을 발췌하여 《고리고개에서 추리골까지》를 출간하여 동향인과 친지에게 비매품으로 배포하였다. 이 책은 어떤 인쇄소에서 무단 복사되어 여러 도서관에 판매되었다.[1]4. 2. 국립중앙도서관 기증
개성시민회에 2000년경 기증된 고려시보 원본은 (주)만몽산업과 개성양조장의 중역 김용남(金龍南)이 6.25 전쟁 이후 서울 근교의 인삼포에서 우연히 구입한 것이다. 김용남은 개성 출신 인부의 집에서 아궁이에 불쏘시개로 고려시보 신문철을 뜯어 태우는 것을 보고 후하게 사례하여 입수하였는데, 창간호의 앞부분은 이미 소실된 상태였다. 이후 김용남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이 원본을 (주)고려인삼흥업 사장 유영준(劉永駿)에게 넘겨주었고, 유영준은 이를 개성시민회에 기증하였다.[1] 이 원본에는 1941년 폐간되기 전까지 발행되었던 신문만 포함되어 있으며, 해방 이후의 발행분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1]5. 관련 연구
박아지(朴牙枝)에 대한 연구는 지속적으로 진행 중이다. 박재청의 작품은 2010년 서정시학에서 《춘파 박재청 문학전집》[2]으로 출간되었다. 최근에는 1920년대 말에 활동했던 농민시인이자 카프(KAPF) 회원이었던 박아지가 춘파 박재청이라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강영미 저 《고려시보와 박아지》, 상허학보 23집 225쪽[3] 및 《박아지 시의 실증적 연구》[4], 한국시학연구 24호 7쪽 참조). 북한 문학사의 기록에 따르면 박아지는 함경북도 명천 출신의 박일(朴一)로서 해방 이후 월북한 작가이다.
참조
[1]
서적
고리골에서 추리골까지
https://drive.google[...]
세기문화사
2005-01
[2]
서적
춘파 박재청 문학전집
https://drive.google[...]
서정시학
2010-08
[3]
간행물
고려시보와 박아지
https://drive.google[...]
2008-06
[4]
간행물
박아지 시의 실증적 연구
https://drive.google[...]
2009-04
[5]
뉴스
일제강점기 개성 신문 '고려시보' 원본 이미지 공개된다
http://www.yonhapnew[...]
2018-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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