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보
1. 개요
고려시보는 1933년 10명의 동인에 의해 동인제로 발행을 시작한 간행물이다. 1935년 주식회사로 전환되었으며, 김정호, 여운형 등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현존하는 고려시보 원본은 6.25 전쟁 이후 입수되어 개성시민회에 기증되었으며, 1941년 폐간 전까지의 신문이 포함되어 있다. 박광현은 아버지 박재청의 글을 발췌하여 《고려시보 발췌》를 출간하기도 했다. 관련 연구로는 박재청의 문학 작품 연구와 박아지의 정체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고려시보 원본은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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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폐간 -
스트랜드 매거진
스트랜드 매거진은 1890년 조지 뉴네스에 의해 창간된 영국의 월간 잡지로, 셜록 홈즈 시리즈를 처음 연재하여 인기를 얻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 잠시 폐간 후 미국에서 복간되어 현재까지 발행되고 있다. -
일제강점기의 신문 -
동아일보
동아일보는 1920년 창간되어 민주주의, 민족주의, 문화주의를 사시로 내걸고 민족운동 등을 전개했으며, 일제강점기 폐간 후 복간되어 방송 사업을 시작했고, 여러 논란을 겪으며 현재 주 6일제로 신문을 발행한다. -
일제강점기의 신문 -
매일신보
매일신보는 대한매일신보를 전신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기관지 역할을 하며 일제 정책을 선전하고 황국신민화를 강요하는 도구로 이용되었으나, 한국 최초 신춘문예 시행 및 여기자 채용 등 한국 언론사에 기록을 남긴 일간지이다. -
1933년 창간 -
뉴스위크
뉴스위크는 1933년 창간된 미국의 주간 뉴스 잡지로, 워싱턴 포스트 컴퍼니에 인수되어 국제적으로 성장, 온라인 전환 후 인쇄판을 재개했으며, 여러 사건과 논란을 거치며 디지털 플랫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
1933년 창간 -
U.S. 뉴스 & 월드 리포트
U.S. 뉴스 & 월드 리포트는 1948년 두 주간지가 통합되어 창간된 미국의 시사 주간지로, 정치, 경제, 보건, 교육 분야를 다루다 1983년부터 다양한 분야의 순위 발표로 유명해졌으며, 2010년 이후 온라인 중심으로 전환하여 소비자 대상 순위 제품을 제공하고 있다.
2.2. 주식회사 발기인 (1935)
1935년 6월, 고려시보는 주식회사로 발전하였다. 이때 발기인은 34명이었다.
여운형은 민족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로서, 고려시보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신문의 민족주의적 성향 강화에 기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3. 주요 필진 및 활동
박재청은 고려시보에서 부장 및 주필로 활동하며, 본명 외에 춘파(春波), 박아지(朴牙枝), 봄물결 등의 필명으로 한시, 시조, 현대시, 수필, 소설, 논설 등을 기고했다. 2010년 서정시학에서 《춘파 박재청 문학전집》을 출간하여 그의 작품을 정리했다.
3.1. 박재청(박아지) 관련 논란
박재청은 '박아지'라는 필명으로도 활동했는데, 1920년대 말 농민 시인이자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회원이던 '박아지'와 동일 인물이라는 연구가 있다., 북한 문학사에서는 '박아지'를 함경북도 명천 출신 박일(朴一)로 기록하고 있으며, 해방 이후 월북한 작가로 분류한다.
4. 현존하는 발행본 및 관련 자료
현존하는 《고려시보》 원본은 (주)만몽산업과 개성양조장의 중역 김용남(金龍南)이 6.25 전쟁 이후 서울 근교의 인삼밭에서 우연히 구입한 것이다. 김용남은 개성 출신 인부의 집에서 아궁이에 불쏘시개로 쓰이던 《고려시보》 신문철을 보고 후하게 사례하여 입수하였는데, 창간호 앞부분은 이미 소실된 상태였다. 이후 김용남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이 원본을 (주)고려인삼흥업 유영준(劉永駿) 사장에게 넘겨주었고, 유영준은 2000년경 이를 개성시민회에 기증하였다. 이 원본에는 1941년 폐간되기 전까지 발행되었던 신문만 포함되어 있으며, 해방 이후 발행분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한편, 6.25 전쟁 중 16세의 나이로 홀로 월남한 박광현(박재청(朴在淸)의 넷째 아들)은 1978년에 《고려시보》에 실린 부친의 글을 발견하였다. 이듬해 1월, 박광현은 부친의 글이 실린 쪽들을 발췌하여 《고려시보 발췌(高麗時報 拔萃)》를 출간하고 동향인과 친지에게 비매품으로 배포하였다. 이 책은 어떤 인쇄소에서 무단으로 복사하여 여러 도서관에 판매되었다.
4.1. 영인본 및 자서전
개성시민회가 보관하고 있던 원본을 복사하여 제작한 《고려시보 전체 영인본》이 있다. 박재청의 아들 박광현은 1978년에 《고려시보》에 실린 부친의 글을 발견하고, 이듬해인 1979년 1월에 해당 글들을 발췌하여 《고리고개에서 추리골까지》를 출간하여 동향인과 친지에게 비매품으로 배포하였다. 이 책은 어떤 인쇄소에서 무단 복사되어 여러 도서관에 판매되었다.
4.2. 국립중앙도서관 기증
개성시민회에 2000년경 기증된 고려시보 원본은 (주)만몽산업과 개성양조장의 중역 김용남(金龍南)이 6.25 전쟁 이후 서울 근교의 인삼포에서 우연히 구입한 것이다. 김용남은 개성 출신 인부의 집에서 아궁이에 불쏘시개로 고려시보 신문철을 뜯어 태우는 것을 보고 후하게 사례하여 입수하였는데, 창간호의 앞부분은 이미 소실된 상태였다. 이후 김용남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이 원본을 (주)고려인삼흥업 사장 유영준(劉永駿)에게 넘겨주었고, 유영준은 이를 개성시민회에 기증하였다. 이 원본에는 1941년 폐간되기 전까지 발행되었던 신문만 포함되어 있으며, 해방 이후의 발행분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