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쓰 도시히로
1. 개요
고마쓰 도시히로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투수였다. 고치 상업고등학교 시절에는 1957년 춘계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1958년부터 1962년까지 선수로 활동했다. 은퇴 후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전력 분석원과 스카우트로 활동하며 V9 시대를 뒷받침했으며, 2023년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선수명 | 고마쓰 도시히로 |
|---|---|
| 원어명 | Toshihiro Komatsu |
| 로마자 표기 | Komatsu Toshihiro |
| 가나 | こまつ としひろ |
| 한자 | 小松 俊広 |
| 출신지 | 고치현 고치시 |
| 생년월일 | 1940년 1월 13일 |
| 사망일 | 2023년 10월 8일 |
| 신장 | 174 |
| 체중 | 71 |
| 利き腕 | 좌 |
| 타석 | 좌 |
| 수비 위치 | 투수 |
| 프로 입단 연도 | 1958년 |
| 첫 출장 | 1958년 4월 6일 |
| 마지막 출장 | 1960년 9월 27일 |
| 고등학교 | 고치시립 고치 상업 고등학교 |
|---|---|
| 프로 구단 | 요미우리 자이언츠 (1958 - 19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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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출생 -
콘스탄티노스 2세
콘스탄티노스 2세는 그리스 왕국의 마지막 국왕로, 재위 기간 중 정치적 혼란과 군사 쿠데타, 왕정 폐지를 겪었으며, 올림픽 요트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하다. -
1940년 출생 -
김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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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별 투수 성적을 포함한 문서 -
톰 글래빈
톰 글래빈은 메이저리그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소속으로 활동하며 뛰어난 투구와 타격 능력으로 다승왕, 실버 슬러거 상 등을 수상하고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 300승을 달성한 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좌완 투수이다. -
연도별 투수 성적을 포함한 문서 -
다도코로 젠지로
다도코로 젠지로는 시즈오카 상업고등학교 시절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서 전 경기 완봉승으로 우승을 이끌었으며, 고쿠테쓰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투수로 활동, 은퇴 후에는 코치, 야구 연맹 임원, 유소년 야구팀 대표를 역임했다. -
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 -
조성민 (야구인)
조성민은 일본 프로 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투수로 활동했으나 부상 후 한국 프로 야구 한화 이글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은퇴 후 야구 해설가와 코치로 활동했으며, 배우 최진실과의 결혼과 이혼, 사망 후 사회적 논란을 겪다 사망했다. -
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 -
후지타 모토시
후지타 모토시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며,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활약하며 리그 MVP를 2연패하고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했으며,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 학창 시절
고치 상업고등학교 시절, 모리타키 가즈미는 에이스 투수로 활약하며 1957년 춘계 선발 대회(제29회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 출전했다. 고쿠라 고등학교, 하치만 상업고등학교를 잇달아 꺾고 준결승에 진출했으며, 준결승에서도 구라시키 공업고등학교의 와타나베 히로후미 등을 상대로 3대 1로 승리했다. 그러나 결승전에서는 오 사다하루 투수를 앞세운 와세다 실업고등학교를 상대해 3대 5로 패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다.
같은 해 여름에 개최된 미나미시코쿠 대회(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 남사국 대회)에서도 결승에 진출했지만, 고치 고등학교에게 0대 1로 9회에 끝내기 패배를 당해 고시엔 대회 출전에는 실패했다. 당시 팀 동료로는 포수 사카모토 고이치(다이요), 유격수 오자키 야스오, 외야수 구라우치 아키라(니시테쓰) 등이 프로에 진출했다. 모리타키는 오 사다하루, 기요사와 다다히코와 함께 '왼손 투수 3인방'으로 주목받았다.
3. 프로 선수 시절
1958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하여 프로 1년 차부터 1군에 기용되었다. 그해 4월 13일에 히로시마 카프를 상대로 첫 선발 등판했고, 14경기에 등판하여 구원 및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 같은 해 최종전에서는 두 번째로 선발 등판하여 히로시마의 하시모토 노리시게와 투수전을 펼치며 5이닝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승리 투수가 되지는 못했다.
다음 해인 1959년 7월 2일 다이요 웨일스를 상대로 선발 등판하여 스즈키 다카시와의 좌완 맞대결에서 5와 2/3이닝 동안 2실점으로 막아내며 프로 첫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부상으로 인해 침체기를 겪다가 1962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4. 은퇴 이후
은퇴 후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전력분석원(1963년 ~ 1964년, 1984년 ~ 1985년)과 선발 스카우트(1965년 ~ 1983년)로 활동했다. 공식 경기에서 상대 팀의 데이터를 조사하여 요미우리 자이언츠 수뇌진, 오 사다하루나 나가시마 시게오 등 주력 선수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V9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뒷받침했는데, 선발 스카우트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2023년 10월 8일 가와사키시 내 병원에서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5. 상세 정보
고치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8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등번호는 1961년 시즌 도중까지 45번이었으나, 이후 47번으로 변경되었다.
프로 첫 등판은 1958년 4월 6일 국철 스왈로스와의 경기(고라쿠엔 구장)에서 7회 초 구원 등판하여 3이닝 무실점을 기록한 것이다. 같은 해 4월 16일 히로시마 카프와의 경기(히로시마 시민 구장)에서 첫 선발 등판했으나, 2⅔이닝 1실점(자책점 0)으로 승패는 기록되지 않았다. 1959년 7월 2일 다이요 웨일스와의 경기(고라쿠엔 구장)에서 5⅔이닝 2실점으로 첫 승리를 거두었다.
통산 3시즌 동안 35경기에 등판하여 6선발, 1승 2패, 평균자책점 3.42를 기록했다.
5.1. 선수 경력
요미우리 자이언츠(1958년 ~ 1962년)
5.3. 등번호
| 연도 | 등번호 |
|---|---|
| 1958년 ~ 1961년 시즌 도중 | 45 |
| 1961년 시즌 도중 ~ 1962년 | 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