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권
1. 개요
고환권은 고구려 영류왕의 아들로, 640년 당나라에 조공을 갔으며, 당 태종으로부터 위로와 폐백을 받았다. 고구려는 당나라의 압박에 대응하여 고환권을 인질로 보내 당나라와의 관계를 유지하려 했다. 당 태종은 고환권에게 직방랑중 벼슬을 내렸다. 이후 행적에 대한 기록은 부족하며, 연개소문의 영류왕 살해 이후 생존 여부는 불분명하다. 일본의 《신찬성씨록》에는 그의 형제로 추정되는 고복덕이 등장한다.
| 작위 | 고구려의 태자 |
|---|---|
| 휘 | 환권(桓權) |
| 별호 | 상권(相權) |
| 성별 | 남성 |
| 국적 | 고구려 |
| 가문 | 고씨 |
| 부왕 | 영류왕 |
|---|---|
| 아버지 | 고건무 |
| 어머니 | 미상 |
| 형제자매 | 미상 |
| 배우자 | 미상 |
| 자녀 | 미상 |
| 친인척 | 미상 |
| 출생일 | 미상 |
|---|---|
| 출생지 | 미상 |
| 사망일 | 미상 |
| 사망지 | 미상 |
| 매장지 | 미상 |
| 묘호 | 미상 |
|---|---|
| 존호 | 미상 |
| 시호 | 미상 |
| 능묘 | 미상 |
| 전각 | 미상 |
| 대관식 | 미상 |
| 즉위식 | 미상 |
| 전임자 | 미상 |
| 후임자 | 미상 |
| 섭정 | 미상 |
| 재상 | 미상 |
| 수상 | 미상 |
| 연호 | 미상 |
-
고구려의 태자 -
고조다
고조다는 고구려 장수왕의 아들이자 문자명왕의 아버지로, 태자와 고추대가를 역임했으나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손자인 문자명왕이 왕위를 이었다. -
고구려의 태자 -
도절
도절은 고구려 유리명왕의 아들이자 첫 번째 태자였으며, 부여의 공격을 받았으나 폭설로 인해 물러났고, 기원전 1년에 사망하였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
7세기 한국 사람 -
을지문덕
을지문덕은 612년 살수대첩에서 뛰어난 전략과 지휘 능력으로 수나라의 침략을 격퇴하고 고구려의 국력을 과시한 인물로, 민족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후대에 국난 극복의 영웅으로 기려지고 있다. -
7세기 한국 사람 -
고연수
고연수는 고구려 말기의 북부 욕살로, 안시성 공격 당시 안시성 구원에 나섰으나 당나라 군대에 패배하여 항복 후 사망했다.
2. 생애
640년 2월, 고환권은 영류왕의 명으로 당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조공하였다. 당 태종은 고환권의 노고를 치하하고 폐백(幣帛)을 하사하였다.
618년 영류왕 즉위 후, 고구려는 당나라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619년과 621년에는 당나라에 조공을 바쳤고, 624년에는 당나라로부터 "상주국·요동군왕·고려왕"으로 책봉되었다.
631년, 당나라가 돌궐을 멸망시킨 후, 고구려에 수나라 군인들의 유해로 만든 경관을 파괴하고 유해 반환을 요구하자 고구려는 위협을 느꼈다. 이에 부요성(지린성 눙안 현)에서 발해에 이르는 장벽을 쌓아 당나라의 침공에 대비했다. 635년 토욕혼, 640년 고창이 잇따라 당나라에 멸망하자, 고구려는 더욱 경계를 강화하고 당나라를 회유하기 위해 고환권을 인질로 보냈다. 당 태종은 고환권을 "직방랑중"에 임명하고, 진대덕을 "영로사"로 평양에 파견하여 고구려의 정세를 파악하고 수나라 군에 종군했던 한족들의 귀환을 촉구했다.
《삼국사기》에는 640년 조공 이후 고환권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여, 연개소문의 정변 이후 그의 생사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일본의 《신찬성씨록》에는 영류왕의 아들이자 고마(高麗) 가문의 시조인 고복덕이 등장하는데, 그는 고환권의 형제로 추정된다.
2.1. 당나라 파견 및 조공
640년 2월에 고환권은 당나라에 조공을 바치러 갔다. 당 태종은 그의 노고를 위로하고 폐백(幣帛)을 주었다. 635년에 토욕혼이, 640년에 고창이 당나라에 의해 멸망하자, 고구려는 경계를 강화하고 당나라를 회유하기 위해 고환권을 인질로 보냈다. 당 태종은 이를 칭찬하며 고환권에게 "직방랑중"의 직책을 주었다.
2.2. 당나라와의 관계
640년 2월, 영류왕은 고환권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게 하였다. 당 태종은 그의 노고를 위로하고 폐백(幣帛)을 주었다.
635년 토욕혼이, 640년 고창이 당나라에 의해 멸망하자, 고구려는 경계를 강화하고 당나라를 회유하기 위해 고환권을 인질로 당나라에 보냈다. 당 태종은 이를 칭찬하며 환권에게 "직방랑중"의 직책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