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백치성
1. 개요
고흥 백치성은 천등산과 비봉산 능선 중간 지점인 당치 정상부를 둘러싼 산성이다. 백제 시대에 처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총 둘레 444m의 직사각형 형태를 띤다. 주변에 고흥 독치성, 고흥 오치 음성, 고흥 남양리 산성과 인접해 있으며, 기와 조각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전남 동부 지역 백제 산성 연구에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 이름 | 고흥 백치성 |
|---|---|
| 로마자 표기 | Goheung Baekchiseong |
| 국가 | 전라남도 |
| 유형 | 기념물 |
| 지정 번호 | 209 |
| 지정일 | 2002년 11월 27일 |
| 주소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신호리 산29, 30 일대 |
| 시대 | 백제 |
| 면적 | 22,511m2 |
| 문화재청 ID | 23,02090000,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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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양현읍성
흥양현읍성은 왜구 침입 방어를 위해 고려 말 축성되어 조선 시대 보수를 거쳤으며, 조선 초 읍성 축조 양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 읍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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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향교
고흥향교는 세종 23년에 건립되어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후 숙종 21년에 재건되었으며, 대성전과 명륜당 등을 갖춘 전학후묘의 배치로 조선 시대 교육 기능을 수행하다 갑오개혁 이후 제사 기능만 유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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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왜성
순천왜성은 임진왜란 때 고니시 유키나가 등이 호남 공략 거점으로 삼아 순천에 약 3개월 만에 축조한 왜성으로, 남해안 왜성들을 연결하는 군사 요충지였으며 현재 전라남도기념물로 지정되어 왜교성 전투와 축성 방식으로도 주목받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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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입암산성
장성 입암산성은 전라남도 장성군 입암산에 위치한 산성으로, 1256년 송군비가 축조한 것으로 전해지며 조선 시대 개축과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중요한 방어 시설로 활용되었고, 15km에 달하는 성벽과 남문, 북문, 장기간 방어를 위한 물 확보 설계가 특징이며 주변 관광 명소와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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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왜성은 임진왜란 때 고니시 유키나가 등이 호남 공략 거점으로 삼아 순천에 약 3개월 만에 축조한 왜성으로, 남해안 왜성들을 연결하는 군사 요충지였으며 현재 전라남도기념물로 지정되어 왜교성 전투와 축성 방식으로도 주목받는다.
2.1. 주변 산성과의 관계
백치성은 천등산(해발 550m)에서 비봉산(해발 447.6m)으로 연결되는 능선의 중간 부분인 당치(해발 207.6m) 정상부를 둘러싼 산성이다. 지리적으로 백치성에서 북쪽의 고흥 독치성(전남기념물 제208호)과 남서쪽의 고흥 오치 음성(전남기념물 제210호)이 눈으로 관찰될 정도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고흥 독치성, 고흥 남양리 산성(전남기념물 제207호)과 함께 전남 동부 지역의 백제 산성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3. 구조
백치성은 천등산(해발 550m)에서 비봉산(해발 447.6m)으로 연결되는 능선의 중간 부분인 당치(해발 207.6m) 정상부를 둘러싼 산성이다. 지리적으로 북쪽의 고흥 독치성(전라남도 기념물 제208호)과 남서쪽의 고흥 오치 음성(전라남도 기념물 제210호)이 눈으로 관찰될 정도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돌로 쌓은 산성으로 성의 총둘레는 444m이며, 평면 형태는 남북 방향으로 직사각형이다. 성 안에는 건물터로 추정되는 4곳이 남아 있다.
백치성은 성이 자리 잡은 위치 및 쌓은 방법, 출토 유물 등으로 보아 백제 시대에 처음으로 쌓았던 산성으로 추정된다. 고흥 독치성, 고흥 남양리 산성(전라남도 기념물 제207호)과 함께 전남 동부 지역의 백제 산성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3.1. 건물터
천등산에서 비봉산으로 연결되는 능선의 중간 부분인 당치(해발 207.6m) 정상부에 있는 산성으로, 성 안에는 건물터로 추정되는 4곳이 남아 있다.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기와류인데, 격자문·선문·무문·복합문 등의 평기와 조각이다.
5. 역사적 의의
백치성은 백제 시대에 처음으로 쌓았던 산성으로 추정된다. 성이 자리 잡은 위치 및 쌓은 방법, 출토 유물 등이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한다. 성 안에는 건물터로 추정되는 4곳이 남아 있으며, 출토된 유물은 격자문, 선문, 무문, 복합문 등의 평기와 조각이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