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아데오다토 2세
1. 개요
교황 아데오다토 2세는 672년부터 676년까지 재위한 로마 가톨릭교회 교황이다. 그는 단의설을 배격하고 수도원 규율을 개선했으며, 베네치아 공화국에 도제 선출 권한을 부여하는 등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또한 낡은 교회들을 복원하고 성 에라스무스 성당을 재건했으며, 성 베드로 대성전이 그의 재위 기간에 건설되었다. 그는 676년 6월 17일에 사망했으며, 일부에서는 그를 성인으로 추대하여 6월 26일을 축일로 기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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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1년 출생 -
구다라노코니키시 젠코
구다라노코니키시 젠코는 백제 의자왕의 손자로서 일본으로 망명하여 덴지 천황에게 구다라노코니키시 성을 받고 백제 유민 정착을 돕고 일본 조정에서 외교 및 문화 정책에 참여하며 종3위 정광사까지 오른 인물이다. -
621년 출생 -
아르다시르 3세
아르다시르 3세는 사산 왕조의 왕으로,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나 귀족들의 권력 다툼 속에서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다 장군에게 살해당하며 사산 왕조 멸망의 전조가 되었다. -
7세기 기독교 성인 -
교황 에우제니오 1세
에우제니오 1세는 온화한 성품으로 동로마 황제의 지지하에 교황으로 선출되었으나, 단성론 반대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불인정으로 황제와 갈등을 겪었으며, 이후 성인으로 시성되어 기념되고 있다. -
7세기 기독교 성인 -
교황 그레고리오 1세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6세기 후반 로마 교황으로,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며 교황권의 봉사 강조, 교회 개혁, 앵글로색슨족 기독교 전파, 전례 개정 및 그레고리오 성가 발전, 그리고 중세 영성에 큰 영향을 미친 저술 활동을 했다. -
베네딕도회 출신 교황 -
교황 비오 7세
교황 비오 7세는 1800년부터 1823년까지 재임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251대 교황으로, 나폴레옹과의 대립 속에서 프랑스 정부와의 관계 회복, 예수회 복원, 노예 무역 억제에 관여했다. -
베네딕도회 출신 교황 -
교황 첼레스티노 5세
교황 첼레스티노 5세는 은수자 출신으로 교황으로 선출되었으나 5개월 만에 자진 퇴위하여 교황 역사상 드물게 퇴위한 교황으로 기록되었으며, 사후 성인으로 시성되어 예술 작품에 영감을 주고 교황 사임의 선례로 재조명되고 있다.
3. 교황 선출
672년 4월, 교황 비탈리아노의 뒤를 이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당시 교황 선출은 동로마 제국 황제의 승인이 필요했으며, 라벤나 총독의 빠른 승인을 받았다. 아데오다토 2세는 정치적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단의설을 둘러싼 사건에서 벗어났다.
4. 교황 재위 기간의 업적
아데오다토 2세는 단의설을 둘러싼 신학적 논쟁에서 벗어나 교회 내부 문제에 집중하였다. 수도원 규율을 개선하고 낡은 성당을 복원했으며, 베네치아 공화국에 베네치아 도제를 선출할 권한을 부여했다.
4.1. 단의설과의 관계
아데오다토 2세의 교황 재위 기간은 교황 마르티노 1세와 막시무스 콘페소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와 일치했는데, 이들은 동로마 제국 황제의 단의설 지지에 저항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교황 아데오다토 2세는 단의설을 강하게 배격하였으며,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콘스탄티노 1세가 보낸 시노드 서한을 거부했다. 이 때문에 그의 이름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디튁에서 제외되었다. 그는 수도원 규율을 개선하고 단의설을 억압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4.2. 수도원 개혁
아데오다토 2세는 수도원 규율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성 베드로와 성 바울 수도원(성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을 보호하고, 투르의 마르무티에 수도원(성 투르의 마르티노 수도원)을 교황청의 권위에서 면제하는 등 수도원 공동체의 자율성을 강화하였다. 또한 성 에라스무스 수도원도 개선했다.
4.3. 기타 업적
아데오다토 2세는 낡은 교회들을 복원하는 데 힘썼다. 성 베드로와 성 바울 수도원(성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을 보호하고, 투르의 마르무티에 수도원 (성 투르의 마르티노 수도원)을 교황청의 권위에서 면제했으며, 성 에라스무스 수도원을 개선했다. 성 베드로 대성전이 비아 포르투엔시스 8마일 지점에 건설되었고, 성 에라스무스 성당도 재건되었다.
베네치아 공화국에 베네치아 도제를 선출할 권리를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