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장
1. 개요
권순장은 조선 시대의 인물로, 형조참판 권진기의 장남이다. 1624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의금부도사 등을 지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도로 피난하여 의병을 모집했으나, 강화산성이 함락되자 김상용과 함께 화약에 불을 질러 자결했다. 사후 지평과 좌찬성에 증직되었으며, 강화도 충렬사에 제향되었다.
| 이름: 권순장 | |
| 한자 이름 | 權順長 |
|---|---|
| 출생일 | '1607년 12월 7일' |
| 사망일 | '1637년 2월 16일' |
| 출생지 | 조선 경기도 고양군 |
| 거주지 | 조선 한성부 |
| 사망지 | 조선 경기도 강화유수부 강화산성 |
| 배우자 | 전주 이씨 부인 |
| 자녀 | 1남 1녀(맏아들 권시경, 막내딸 권두영) |
| 분야 | 유교 성리학 |
| 국적 | 조선 |
| 당파 | 무소속 |
| 자 | 효원(孝元) |
| 시호 | 충렬(忠烈) |
| 본관 | 안동(安東) |
| 부모 | 권진기(부), 고성 남씨 부인(모), 경주 이씨 부인(계모) |
|---|---|
| 친인척 | 이구원(장인), 이시만(큰 매제), 홍재원(막내 매제), 권극중(친할아버지), 의령 남씨 부인(친할머니), 남언경(외할아버지), 이정직(법적 형식상 외할아버지뻘), 권덕여(친증조부), 퇴기 기첩 다만(친증조모), 고성 이씨 부인(적증조모), 평산 신씨 부인(계적증조모) |
| 형제 | 4남 2녀 중 장남(첫째), (동복 남동생 권순열, 이복 첫째 남동생 권순경, 이복 막내 남동생 권순후) |
| 복무 | 조선 의병대 |
|---|---|
| 참전 | 병자호란 |
| 작위 | 조선의 의금부 도사 |
| 임금 | 인조 이종 |
| 재임 기간 | '1625년 10월~1625년 12월' |
| 계급 | 조선군 의병 결사대 의병장 |
| 작위2 | 조선의 건원릉 참봉 |
| 임금2 | 인조 이종 |
| 재임 기간2 | '1625년 12월~1626년 2월' |
| 복무 기간 | '1636년 12월~1637년 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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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참전 군인 사망자 -
김익겸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청나라에 항거하다 분신자결한 김익겸은 사헌부 지평에 증직되고 충렬사에 제향되었으며, 인경왕후의 아버지 김만기와 소설가 김만중의 아버지이다. -
병자호란 참전 군인 사망자 -
슈무루 양구리
슈무루 양구리는 16세기 후반 동해여진 쿠르카부 출신으로 누르하치의 사위가 되어 여진족 통일 전쟁, 명나라 및 조선 정벌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으나 병자호란 당시 조선 침략의 선봉에서 광교산 전투에서 전사한 후 무훈왕으로 추봉된 인물이다. -
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607년 출생 -
야규 미쓰요시
야규 미쓰요시는 도쿠가와 쇼군을 섬긴 야규 무네노리의 아들이자 신음류 검술의 대가로, 쇼군의 검술 사범을 지냈으며 해임 후 12년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츠키노쇼"를 저술했고 복직 후 감찰관으로 활동하다 고향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그의 삶과 검술은 대중문화에서 다양하게 재해석되었다. -
1607년 출생 -
이치히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딸 이치히메는 다테 마사무네의 아들 다테 다다무네와 약혼했으나 요절하여 혼인하지 못했다.
2. 생애
권순장(權順長중국어)은 1624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625년 음서로 천거되어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거쳐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1626년 사직하였다. 이후 학문에 전념하다가 1636년 12월 청나라 군이 조선을 침공한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두 아우 권순열(權順悅)·권순경(權順慶)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강화도로 피난, 강화산성을 지키고 청나라 군을 물리치고자 의병을 모집하였다. 1637년 2월 16일 오전 강화산성 남문(江華山城 南門)에서 김익겸이 분신 자결하여 사기를 북돋웠고, 청나라 군과 접전을 벌였다. 그러나 같은 날 오후 강화산성이 함락되자 김상용과 함께 화약에 불을 질러 분신 자결하였다.
사후 지평(持平)과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었고, 강화도 충렬사에 제향되었다.
2.2. 직계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출생 - 사망 | 비고 |
|---|---|---|---|
| 조부 | 권극중 | 1558년 ~ 1653년 | |
| 조모 | 남난(南蘭) | 1561년 ~ ? | 몰년도 미상, 1640년대 초반 사망 추정 |
| 부친 | 권진기(權盡己) | 1578년 ~ 1629년 | 참판(參判) 역임 |
| 모친 | 고성 남씨 | ? ~ 1614년 | 남언경의 딸 |
| 본인 | 권순장(權順長) | 1607년 ~ 1637년 | |
| 부인 | 전주 이씨 | ? ~ 1637년 | 이구원(李久源)의 딸, 지사(知事) 역임 |
| 아들 | 권시경(權是經) | 1625년 ~ 1708년 | |
| 딸 | 권두영(權杜英) | 1628년 ~ ? | |
| 동복 여동생 | 안동 권씨 | 1609년 ~ 1637년 | 전주 이씨 이시만(李時萬)의 처, 감사(監司) 역임 |
| 동복 남동생 | 권순열(權順悅) | 1611년 ~ 1637년 | 슬하 2녀 |
| 동복 여동생 | 안동 권씨 | 1613년 ~ 1637년 | 남양 홍씨 홍재원(洪載源)의 처 |
| 계모 | 경주 이씨 | ? ~ 1633년 | 이정직의 딸 |
| 이복 남동생 | 권순경(權順慶) | 1616년 ~ 1637년 | 슬하 1녀 |
| 이복 남동생 | 권순후(權順厚) | 1620년 ~ 1637년 | 슬하 자녀 없음 |
2.3. 일생
1624년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이듬해 1625년 음서로 천거되어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거쳐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1년 후 1626년 사직하였다. 이후 학문에 전념하다가 1636년 12월 청나라 군이 조선을 침공한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두 아우 권순열(權順悅)·권순경(權順慶)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강화도로 피난, 강화산성을 지키고 청나라 군을 물리치고자 의병을 모집하였다. 1637년 2월 16일 오전 강화산성 함락 직전 김익겸이 강화산성 남문(江華山城 南門)에서 24세로 분신 자결하여 사기를 북돋웠고, 청나라 군과 접전을 벌였다. 그러나 같은 날 오후 1637년 2월 16일(음력 1월 22일) 강화산성이 함락되자 77세의 김상용과 함께 화약에 불을 질러 분신 자결하였으니, 향년 31세였다.
두 남동생 권순열(權順悅, 동복 아우, 당시 27세)과 권순경(權順慶, 이복 아우, 당시 22세)도 전사하였고, 아내와 두 여동생, 막내 이복 남동생 권순후(權順厚, 당시 18세)도 이 소식을 듣고 모두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2.4. 사후
사후 그는 지평(持平)과 좌찬성(左贊成)에 증직(贈職)되었고, 강화도 충렬사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