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 정씨 (인종)
1. 개요
귀인 정씨는 조선 인종의 후궁으로, 본관은 연일 정씨이며 사온서 령 정유침의 딸이다. 14세에 인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었으며, 세자궁 화재 시 서책을 구하고 요기가 돌 때 문을 닫는 등 인종을 보필했다. 인종 즉위 후 숙의에 봉해졌고, 명종 대에 소의, 귀인으로 진봉되었다. 1566년 인달방 사제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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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6년 사망 -
쉴레이만 1세
쉴레이만 1세는 오스만 제국의 10대 술탄으로, 활발한 군사 활동과 법률 개혁을 통해 제국의 영토를 확장하고 행정 체계를 정비하여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예술의 황금기를 열었다. -
1566년 사망 -
디안 드 푸아티에
디안 드 푸아티에는 프랑수아 1세와 앙리 2세 시대에 영향력을 행사한 귀족 여성으로, 앙리 2세의 총애를 받으며 왕실 정책에 관여하고 건축 사업에 참여했으나, 앙리 2세 사후 권력에서 물러나 여생을 보냈으며, 그녀의 삶은 다양한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
1520년 출생 -
휴정
휴정은 임진왜란 때 승군을 이끌고 활약했으며, 조선 불교 중흥에 기여하고 종교 간 화합을 강조한 승려이다. -
1520년 출생 -
교황 식스토 5세
교황 식스토 5세는 프란치스코회 출신으로 1585년부터 1590년까지 재임하며 교황령 치안 확보, 재정 개혁, 로마 도시 계획 등 다양한 업적을 남겼으나, 고대 유물 훼손, 강압적 재정 정책 등의 논란도 있는 제227대 교황이다. -
연일 정씨 -
정지용
정지용은 충청북도 옥천 출생으로 모더니즘 문학을 선도했으며, 시문학 동인과 구인회 활동을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했으나 한국 전쟁 중 행방불명되었다. -
연일 정씨 -
정희택
정희택은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으로 검사, 중앙수사국장 등 요직을 거쳐 제11대 국회의원, 감사원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언론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권위주의 정권과의 협력에 대한 비판도 있다.
2. 생애
본관은 연일로 사온서 령(令) 정유침(鄭惟沈)의 장녀이다. 어머니는 대사간 안팽수의 딸이다. 송강 정철의 누나이다.
1533년 인종의 후궁으로 뽑혀 들어갔으며, 인종이 즉위하자 내명부 종 2품 숙의에 올랐다. 1551년(명종 6년), 명종이 아들 순회세자를 낳은 것을 기념하여 정2품 소의로 품계가 올랐고, 1563년(명종 18년) 귀인이 되었다.
2.1. 간택과 입궁
귀인 정씨는 1520년(중종 15년) 8월 해양(海陽)의 삼곡리(三谷里)에서 태어났다. 1533년(중종 28년), 14세의 나이로 당시 세자였던 인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입궁하였다.
2.2. 인종과의 관계
1544년(중종 39년) 세자궁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정씨는 위험을 무릅쓰고 인종이 아끼던 서책들을 구해냈다. 또한, 궁궐 안에 요기(妖氣)가 있어 검은 기운이 지나갔는데, 인종이 두려워하여 창문을 닫고 싶었으나 마땅히 시킬 사람이 없었다. 이때 정씨가 침착하게 문을 닫아 인종의 신임을 얻었다.
2.3. 후궁으로서의 삶
1551년(명종 6년), 명종이 아들 순회세자를 낳은 것을 기념하여 종2품 숙의에서 정2품 소의로 올려주었다. 1563년(명종 18년) 귀인이 되었다.
정씨는 1544년 세자궁에 불이 났을 때 세자가 아끼는 서책들을 구해 내고, 궁궐 안에 요기가 돌아 세자가 창문을 닫고 싶어할 때 홀로 문을 닫는 등 인종을 보필하는데 힘썼다.
3. 가족 관계
貴人중국어 정씨의 아버지는 정유침, 어머니는 죽산 안씨 안팽수의 딸이다. 남동생 정철은 조선 중기 서인의 영수이자 저명한 문인으로, '관동별곡', '사미인곡' 등의 가사 작품을 남겼다.
| | 이름 || 비고 | ||
|---|---|---|
| 남편 | 조선 인종 | |
| 자녀 | 없음 | |
| 조카 | 귀인 정씨 (선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