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효령대군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효령대군은 조선 태종의 차남으로, 문학에 능하고 불교에 심취하여 불경을 번역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17세에 효령대군에 봉해졌으며, 30세까지 서도의 명인으로 칭송받았다. 그는 불교를 숭상하여 숭유억불 정책 하에서도 불교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으며, 원각사 건립에 기여했다. 효령대군의 후손들은 번창하여 정치, 사회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관련 문화재로는 원각사지 십층석탑 등이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한국의 불교사 - 한국 불교의 역사
    한국 불교는 372년 고구려 전래 이후 삼국시대 왕권 강화와 사회 통합에 기여하며 발전했고, 고려 시대 융성, 조선 시대 억압, 일제강점기 탄압을 거쳐 현대에 이르러 발전과 대중화를 모색하고 있다.
  • 1486년 사망 - 마르코 바르바리고
    마르코 바르바리고는 베네치아의 도제였으며, 어쌔신 크리드 II에 등장하여 템플 기사단의 그랜드 마스터 로드리고 보르자의 꼭두각시로 에치오 아우디토레 다 피렌체에게 암살당한다.
  • 1486년 사망 - 사보이의 자크, 로몽 백작
    사보이 공작 루이와 키프로스의 앤 사이에서 태어난 사보이의 자크는 1460년 로몽 백작 칭호를 받았고 부르고뉴 공작 샤를 1세의 측근으로 활동했으나, 부르고뉴 전쟁 중 영토를 잃고 낭시 전투 후 합스부르크 궁정에 합류하여 프랑스 왕으로부터 유산을 받았다.
  • 1396년 출생 - 미켈로초
    미켈로초는 피렌체 출신의 초기 르네상스 건축가이자 조각가로, 로렌초 기베르티와 도나텔로의 제자였으며 코시모 데 메디치의 후원을 받아 메디치 궁전과 산 마르코 수도원 재건축 등 르네상스 건축 발전에 기여했다.
  • 1396년 출생 - 변효문
    변효문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문과 급제 후 농업 기술 및 법의학 발전에 기여하고 일본과의 계해약조 체결 등 외교적 역할도 수행했으나, 만년에 불법 장물 사건으로 파직되었다.
효령대군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이보
작위효령대군
왕조이씨 조선
가문전주 이씨
출생1396년 1월 6일
출생지한성
사망1486년 6월 12일
사망지신동면, 시흥군, 경기도
묘소방배동, 서초구, 서울특별시
신상 정보
부친태종 이방원
모친원경왕후
배우자정비 예성부부인 해주 정씨
측실평해 손씨
자녀7남 3녀
존호 및 시호
휘 (이름)호(祜), 이후 보(補)로 개명
선숙(善叔)
연강(蓮江)
시호정효(靖孝)
종교
종교유교(성리학), 이후 불교
기타
효령대군 영정
효령대군 영정

2. 생애

1396년 9월 16일, 태종원경왕후(여흥 민씨 출신)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2세에 정역의 딸인 례성부부인(해주 정씨 출신)을 맞이했고, 17세에 효령대군(孝寧大君)에 봉해졌다. 어려서부터 글 읽기를 좋아하여 학문과 글씨에 능했다. 궁술에도 능했으며, 아버지 태종의 총애를 받았다. 례성부부인과의 사이에 6남 2녀, 측실 모 여인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불교에 깊이 심취하여 원각경, 반야심경, 법화경, 능엄경, 선종영가집 등 불교 경전을 직접 번역하였다. 유교불교의 심법(心法)이 동일한 근원에서 비롯된다는 유불심법동일원(儒佛心法同一原)을 주장했으며, 1464년에는 원각사 건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1411년(태종 11) 동생 충녕에게 보위를 양보하고 전국을 떠돌던 양녕대군과 함께 경기도 과천시 관악산 연주대의 이름을 따서 연주암(戀主庵)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전해진다.[8][9]

1486년(성종 17) 음력 5월 11일 92세로 세상을 떠났다.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동에 묻혔으며, 묘소는 1972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었다. 1736년(영조 12) 왕명으로 묘 앞에 사당 '청권사'가 처음 세워졌다.[6]

2. 1. 가계 배경 및 초기 생애

조선 제3대 국왕 태종원경왕후 민씨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이다. 조선 세종대왕의 둘째 형으로, 왕실의 원로였다. 성씨는 '''전주 이씨'''(全州 李氏), 이름은 '''보'''(補)이며, 는 '''선숙'''(善叔), 는 '''연강'''(蓮江)[4]이다. 어릴 적 이름은 '''호'''(祜)였으나 19세에 '''보'''(補)로 개명하였다. 시호는 '''정효'''(靖孝)이다.

10세 때인 1405년 '''효령군'''에 책봉되었고, 12세 때인 1407년 해주 정씨(정역의 딸)와 혼인하였다. 17세 때인 1412년 '''효령대군'''에 봉해졌다. 1417년 자신의 아호(雅號)이기도 한 '''연강'''(蓮江)이라는 법명(法名)으로 수계를 받았다.

어려서부터 글 읽기를 좋아하여 30세 이전에 이미 학문과 덕성을 이루었고, 글씨에도 능하여 명필이었다고 전해진다. 활쏘기에도 능숙했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 태종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좌찬성 정역(鄭易)의 딸과 혼인하여 6남 1녀를 낳았으며, 서자녀로 1남 2녀를 두었다. 1396년 9월 16일, 태종원경왕후(여흥 민씨 출신)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태종 (1367년 5월 16일 – 1422년 5월 10일)
어머니원경왕후 (1365년 7월 11일 – 1420년 7월 10일)
형제
배우자와 소생


2. 2. 불교 활동과 숭유억불 정책

효령대군은 불교를 깊이 믿어 조선 조정의 숭유억불 정책 속에서도 불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원각사를 건립할 때에는 조성도감 도제조를 맡았다. 이때 만들어져 1985년까지 보신각에 달려 있던 큰 종과 탑골공원의 10층 석탑은 그 제작 기법과 예술성이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10층 석탑은 국보 제2호, 원각사지 대종은 보물 제2호로 지정되어 있다.

《법화경》, 《금강경》, 《원각경》, 《반야심경》, 《능엄경》, 《선종영가집》 등 불경 번역과 교정에 힘썼으며, 여러 사찰을 다니며 신도들을 올바르게 이끌었다. 또한, 마을의 자치 규약인 향헌(鄕憲) 56조를 만들어 백성들의 윤리 도덕심을 높이고, 유불심법동일원(儒佛心法同一原)의 이념을 추구하였다.

2. 3. 유불융합 사상

효령대군은 불교에 깊이 심취하여 원각경, 반야심경, 법화경, 능엄경, 선종영가집 등 불교 경전을 직접 번역하였다. 또한 유교와 불교의 심법(心法)이 동일한 근원에서 비롯된다는 유불심법동일원(儒佛心法同一原)을 주장하였다.[7] 1464년에는 원각사 건립을 주도하기도 했다.[7]

1411년(태종 11) 동생인 충녕에게 보위를 양보하고 전국을 떠돌던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 경기도 과천시 관악산 연주대의 이름을 따서 연주암(戀主庵)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전해진다.[8][9]

2. 4. 후손과 영향

효령대군은 조선 태종의 둘째 아들이자 세종대왕의 형으로, 왕실의 원로였다. 세조의 숙부이기도 하다. 조선의 숭유 억불 정책 속에서도 불교를 옹호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세종대왕 즉위 후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등 6대에 걸쳐 장수하였다.

정부인 해주 정씨 소생으로는 6남 2녀를 두었고, 측실 평해 손씨에게서 1남 2녀를 두었다.

부인자녀
예성부부인 해주 정씨
측실 평해 손씨



그의 아들 중 보성군의 후손들이 번창하여 역대 주요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보성군의 사위 임사홍성종과 연산군 대의 문신이며, 그의 아들(효령대군에게는 외증손) 임광재는 예종의 딸 현숙공주와 혼인하고, 다른 아들 임숭재는 성종의 딸 휘숙옹주와 혼인하여 왕실의 인척이 되었다.

보성군의 증손 전성군 이대는 생전에 용강현령, 병마동첨절제사에 이르렀지만, 후손들의 출세로 증 호조참판, 호조판서를 거쳐 의정부영의정으로 여러 번 증직을 받았다. 전성군 이대의 아들이 이량이고, 딸 부부인 이씨는 청송 심씨 심연원의 아들 심강과 혼인하여 자녀를 두었는데, 딸이 인순왕후명종의 비가 된다. 아들은 심의겸심충겸으로, 심의겸서인(西人)의 초대 당수가 된다.

선조, 광해군 때의 형제 정승 이충과 이명 역시 효령대군의 후손이자 보성군의 7대손이다.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정치인 만송 이기붕 역시 보성군의 후손으로, 효령대군의 20대손이자 보성군의 19대손이며 전성군 이대의 16대손이었다.

서원군 친의 아들 회의도정 이추의 사위 안온천은 세종의 딸 정의공주안맹담의 아들이다. 따라서 서원군 친은 안온천에게 외5촌 당숙이면서 처조부, 회의도정은 안온천에게 장인이면서 6촌 외재종형이 되고, 정의공주가 회의도정에게 5촌 당고모가 되므로, 안온천은 회의도정에게 사위이면서 내재종 동생이 된다.

2. 5. 말년과 사후

1395년 음력 12월 11일에 태어나 92세의 나이로 1486년(성종 17, 丙午年) 음력 5월 11일에 세상을 떠났다. 현재의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동에 묻혔으며, 묘소는 1972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었다. 1736년(영조 12) 왕명으로 효령대군 묘 앞에 사당 '청권사'가 처음 세워졌다.[6]

슬하에 7남을 두었으며 1459년(세조 4) 정월, 여섯째 아들 원천군(原川君)을 병사한 아우 성녕대군에게 출계시켜 대를 이어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6]

생전에 손자 33인, 증손자 109인으로 후손이 번성하였다.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의 파종회 중에 자손이 가장 번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6] 서울특별시1984년 11월 7일 청권사 앞길을 '효령로'로 명명하였다.[7]

효령대군의 신주를 모신 사당은 청권사(淸權祠)라 불린다. ‘청권’은 옛날 중국 주(周)나라의 우중(虞仲)왕자가 아버지 태왕(太王)의 뜻을 헤아려 아우에게 왕위를 양보한 미덕을 칭찬하면서 공자(孔子)가 한 말에서 유래한다.[7]

청권(淸權)이란 중국 주(周)나라 때 태왕(太王)이 맏아들 태백과 둘째아들 우중을 건너뛰어 셋째아들 계력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태백과 우중 두 형제는 부왕의 뜻을 헤아려 삭발하고 은거하며 왕위를 사양했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훗날 공자는 태백은 지덕, 우중은 청권이라고 칭송하였다. 이러한 고사를 본떠 양녕대군을 모시는 사당을 지덕사, 효령대군을 모시는 사당을 청권사라 이름 하였다.[7]

효령대군은 아버지 태종의 의중을 헤아려 아우인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양보한 미덕을 보였다. 세종대왕은 '나의 형(효령대군)이 곧 청권'이라고 칭송하였고, 정조 대에 이르러 효령대군의 사당을 청권사로 사액(賜額)하였다. 효령대군의 사당과 묘소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 효령로에 있으며,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어 있다.[7]

조선 중기의 문신 김시민(金時敏, 1681~1747)이 편집한 『조야휘언』필사본에는 '세종이 태평관에서 중국 사신을 맞이하여 잔치를 하는데 효령대군이 술을 권하자 일어나 받았다. 이를 보고 사신이 말하길 "임금이 형을 우대하는 것이 이와 같구나"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왕실의 형제간 우애를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관악산 연주봉 남쪽 기슭에는 연주암(戀主庵)이라는 사찰이 있다. 관악산의 최고봉인 연주봉(629m) 절벽 위에 연주대(戀主帶:경기도 기념물 제20호)가 있고, 그곳에서 남쪽 과천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곳에 연주암이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로 나한도량(羅漢道場)의 하나로 알려져 있는 사찰이다. 나한은 여섯가지 신통(神通)과 여덟가지 해탈을 모두 갖추어 인간과 천인들의 소원을 성취시켜 주는 복전(福田)이기 때문에 통일신라시대부터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다.

연주대는 이성계가 무학대사의 권유로 의상대 자리에 석축을 쌓고 30m2 정도의 대를 구축하여 그 위에다 암자를 지은 것이라 한다. 이곳에 특이하게도 효령각을 만들어서 효령대군의 영정(경기도 문화재 제81호)을 봉안하고 있다. 찾는 등산객의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으로 소문이 나있는 곳이기도 하다.[8][9]

1411년(태종 11), 동생인 충녕에게 보위를 양보하고 전국을 떠돌던 양녕과 효령이 이곳에 머무르면서 관악사를 현위치로 옮기고 연주대의 이름을 따서 연주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위치를 바꾼 이유는 관악사의 원래 위치에서는 왕궁이 바로 내려다보였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3. 가족 관계

관계이름출생사망비고
아버지태종1367년1422년조선 제3대 왕
어머니원경왕후 민씨1365년1420년
배우자이름출생사망비고
정부인예성부부인 해주 정씨1394년1470년정역의 딸
측실평해 손씨1400년?
자녀이름출생사망비고
장남의성군 이채1411년1493년정부인 소생
자부회인군부인 성주 이씨
차남서원군 이친1413년1475년정부인 소생
자부의령군부인 경주 이씨
3남보성군 이합1416년1499년정부인 소생
자부청풍군부인 이씨광록시소경 이무창의 딸, 영락제 후궁 이소의의 조카
4남낙안군 이녕1417년1474년정부인 소생
자부양산군부인 언양 김씨
5남영천군 이정1422년?정부인 소생, 어우동의 시아버지
자부군부인 예천 권씨
6남원천군 이의1433년1476년정부인 소생, 성녕대군에게 출계
자부군부인 백천 조씨
자부군부인 한양 조씨
서장남안강도정 이량1430년?측실 소생
자부신부인 전주 류씨
자부함양 이씨
이름출생사망비고
장녀비인현주1427년1514년정부인 소생, 한산 이씨 이훈에게 출가
서장녀현주 이씨측실 소생, 천안 전씨 전진형에게 출가
서차녀현주 이씨측실 소생, 김현에게 출가
기타이름출생사망비고
처조카정종경혜공주의 남편
처조카춘성부부인영응대군의 계부인, 질부이자 처조카
손녀사위임사홍


4. 평가 및 관련 문화재

효령대군은 불교를 깊이 믿어 조선 조정의 숭유억불 정책 속에서도 불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원각사 창건 당시 조성도감 도제조를 맡았으며, 이때 만들어진 보신각 종(원각사 대종)과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그 제조 기법과 예술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국보 제2호, 보신각 종(원각사 대종)은 보물 제2호로 지정되어 있다.[7]

《법화경》, 《금강경》, 《원각경》, 《반야심경》, 《능엄경》, 《선종영가집》 등 불경 번역과 교정에 힘썼고, 여러 사찰을 다니며 신도들을 이끌었다. 향촌 자치 규약인 향헌(鄕憲) 56조를 지어 백성들의 윤리 도덕심을 높이고, 유불심법동일원(儒佛心法同一原)의 이념을 추구하였다.[7]

효령대군의 사당은 청권사라 불리는데, 이는 중국 주나라 우중 왕자가 왕위를 양보한 미덕을 칭송한 공자의 말에서 유래한다. 양녕대군의 사당은 지덕사, 효령대군의 사당은 청권사라 이름 붙여졌다.[7] 세종대왕은 효령대군을 '나의 형이 곧 청권'이라 칭송하였고, 정조는 효령대군의 사당을 청권사로 사액하였다. 청권사와 묘소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 효령로에 있으며,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어 있다.[7]

조선 중기 문신 김시민(金時敏, 1681~1747)의 『조야휘언』에는 세종중국 사신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효령대군이 술을 권하자 일어나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해 당시 왕실 형제간의 우애를 짐작할 수 있다.[7]

경기도 과천시 관악산 연주봉에는 연주대(경기도 기념물 제20호)와 연주암이 있다. 연주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로, 나한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연주대는 이성계가 무학대사의 권유로 의상대 자리에 석축을 쌓고 암자를 지은 것이다. 이곳에는 효령대군의 영정(경기도 문화재 제81호)을 모신 효령각이 있다.[8][9]

1411년(태종 11)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은 세종에게 보위를 양보하고 전국을 떠돌다 이곳에 머무르며 관악사를 옮기고 연주대의 이름을 따 연주암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관련 문화재

명칭지정번호소재지비고
원각사지 십층석탑국보 제2호서울 종로 탑골공원 내
보신각 종(원각사 대종)보물 제2호국립중앙박물관 경내 종각
묘법연화경 권4~7보물 제766-1호
반야바라밀다심경약소(언해)보물 제771호
선종영가집(언해)보물 제774-2호
부모은중장수태골경합부보물 제1247호
효령대군이보묘역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호서울시 서초구 방배동 190-1번지 (서초구 효령로 135)
효령대군영정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1호경기도 과천시 연주암가로 70cm X 세로 90cm


5. 관련 작품

=== 드라마 ===


=== 영화 ===

5. 1. 드라마

5. 2.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 (2012, 배우: 강남현)[1]

참조

[1] 문서 불교 법명
[2] 문서 음력 1395년 12월 11일
[3] 문서 음력 5월 11일
[4] 문서 불교 법명
[5] 문서 세종-세조-예종-성종-중종-명종
[6] 뉴스 춘3월의 둘째날, 관악산 연주대에 올라 https://news.naver.c[...] 서울경제신문 2010-05-15
[7] 뉴스 세종대왕의 '형님'으로 세상 살아가기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10-05-15
[8] 뉴스 연주암 점심공양 300그릇에서500그릇으로 늘어나,관악산 체감경기 https://web.archive.[...] 이코노믹리뷰 2010-05-15
[9] 뉴스 이웃과 함께하는 열린 종단 일궈낼 것 http://news.mk.co.kr[...] 매일경제 2010-05-15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