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중학교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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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금정중학교(부산)는 1906년 범어사 금어암에서 명정학교로 개교하여, 일제강점기 동안 두 차례 폐교되었다가 복교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3·1 운동 당시 학생들의 만세 시위 참여로 인해 첫 번째 폐교를 겪었으며, 이후 금정불교전문강원 및 금정초급중학교 시기를 거쳐 1950년 금정중학교로 개칭되었다. 학교는 3·1운동유공비와 4·19민주혁명추모탑을 통해 민족 수난과 저항의 역사를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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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중학교 (부산) - [지명]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금정중학교 |
한자 표기 | 金井中學校 |
영문 표기 | Geumjung Middle School |
교훈 | 지혜롭게 자비롭게 향기롭게 |
개교 | 1906년 |
설립 형태 | 사립 |
교장 | 권장석 |
위치 | 부산광역시 금정구 중앙대로 2104 (남산동) |
학생 수 | 371명 (2019년 5월 1일 기준) |
교직원 수 | 47명 (2019년 5월 1일 기준) |
상징 | 교목: 목련, 교화: 수국 |
학교 법인 | 금정학원 |
관할 관청 | 부산광역시동래교육지원청 |
웹사이트 | 금정중학교 웹사이트 |
2. 학교 연혁
- '''명정학교 시기 (1906년 ~ 1919년)'''
1906년 6월 20일 범어사 금어암에서 지방의 기초학교인 명정학교가 개교하였다. 1908년 5월 1일 사립명정학교로 인가(4년제)를 받았다. 1916년 2월 15일 범어사 침계료에 지방학림(중등정도)이 개설되었다. 1919년 3월 31일 재학생들이 기미독립운동에 참가하고 동래장날 만세 사건으로 인하여 폐교되었다.
- '''금정불교전문강원 및 금정초급중학교 시기 (1926년 ~ 1950년)'''
1926년 3월 15일 범어사 금정불교 전문강원이 개원하였다. 1943년 12월 1일, 원감 김법린의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폐원되었다.
1946년 3월 15일 금정초급중학교(4년제) 명칭으로 범어사 침계료에서 개교하였다. 1946년 9월 5일 재단법인 불교 경남 교무학원 명의로 금정초급중학교 설립 인가를 받았다.(초대 박정국 교장 취임) 1947년 6월 21일 제1회 수료식을 거행하였고, 11월 21일 범어사 침계료에서 현재 위치의 신축교사로 옮겼다.
1950년 6월 1일 교육법 개정에 따라 금정중학교(4년제)로 개칭되었다.
- '''금정중학교 시기 (1950년 ~ 현재)'''
1950년 6월 1일 교육법 개정에 따라 금정중학교(4년제)로 개칭되었다. 1950년 8월 5일 6.25 전쟁 중 제5교육대, 국민방위사관학교, 육군군의학교 등에 교사를 제공하고 청룡리 가교사로 옮겨 수업을 하였다. 1952년 12월 30일 본교사로 복귀하였다. 1956년 11월 1일 신축교사를 준공하였다.
1972년 4월 7일 학교법인 금정학원이 학교법인 원효학원(전불교경남교무학원)에서 분리되었으며, 초대 이영근 이사장이 취임하였다. 1986년 5월 13일 본관 24개 교실 개축이 준공되었다.
2007년 9월 7일 금정중학교 역사관에 소장되어 있던 ‘불설장수멸죄 호제동자 다라니경’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되었다. 2010년 3월 13일 도서관을 개관하였고, 2010년 5월 24일 법당 석조여래좌상이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2호로 지정되었다. 2011년 2월 22일 다목적 강당 및 급식실이 준공되었고, 4월 22일 명정관이 개관되었다. 2013년 9월 9일 인조잔디운동장 준공 및 명화갤러리가 개장되었다.
2016년 6월 27일 제15대 김정목 교장이 취임하였고, 12월 12일 교훈을 '지혜롭게, 자비롭게, 향기롭게'로 변경하였다. 2018년 9월 1일 제17대 권장석 교장이 취임하였다. 2019년 2월 12일 제73회 졸업식을 통해 총 22,566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2. 1. 명정학교 시기 (1906년 ~ 1919년)
1906년 6월 20일 범어사 금어암에서 지방의 기초학교인 명정학교가 개교하였다. 1908년 5월 1일 사립명정학교로 인가(4년제)를 받았다. 1916년 2월 15일 범어사 침계료에 지방학림(중등정도)이 개설되었다. 1919년 3월 31일 재학생들이 기미독립운동에 참가하고 동래장날 만세 사건으로 인하여 폐교되었다.2. 2. 금정불교전문강원 및 금정초급중학교 시기 (1926년 ~ 1950년)
1926년 3월 15일 범어사 금정불교 전문강원이 개원하였다. 1943년 12월 1일, 원감 김법린의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폐원되었다.1946년 3월 15일 금정초급중학교(4년제) 명칭으로 범어사 침계료에서 개교하였다. 1946년 9월 5일 재단법인 불교 경남 교무학원 명의로 금정초급중학교 설립 인가를 받았다.(초대 박정국 교장 취임) 1947년 6월 21일 제1회 수료식을 거행하였고, 11월 21일 범어사 침계료에서 현재 위치의 신축교사로 옮겼다.
1950년 6월 1일 교육법 개정에 따라 금정중학교(4년제)로 개칭되었다.
2. 3. 금정중학교 시기 (1950년 ~ 현재)
1950년 6월 1일 교육법 개정에 따라 금정중학교(4년제)로 개칭되었다. 1950년 8월 5일 6.25 전쟁 중 제5교육대, 국민방위사관학교, 육군군의학교 등에 교사를 제공하고 청룡리 가교사로 옮겨 수업을 하였다. 1952년 12월 30일 본교사로 복귀하였다. 1956년 11월 1일 신축교사를 준공하였다.1972년 4월 7일 학교법인 금정학원이 학교법인 원효학원(전불교경남교무학원)에서 분리되었으며, 초대 이영근 이사장이 취임하였다. 1986년 5월 13일 본관 24개 교실 개축이 준공되었다.
2007년 9월 7일 금정중학교 역사관에 소장되어 있던 ‘불설장수멸죄 호제동자 다라니경’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되었다. 2010년 3월 13일 도서관을 개관하였고, 2010년 5월 24일 법당 석조여래좌상이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2호로 지정되었다. 2011년 2월 22일 다목적 강당 및 급식실이 준공되었고, 4월 22일 명정관이 개관되었다. 2013년 9월 9일 인조잔디운동장 준공 및 명화갤러리가 개장되었다.
2016년 6월 27일 제15대 김정목 교장이 취임하였고, 12월 12일 교훈을 '지혜롭게, 자비롭게, 향기롭게'로 변경하였다. 2018년 9월 1일 제17대 권장석 교장이 취임하였다. 2019년 2월 12일 제73회 졸업식을 통해 총 22,566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3. 학교 동문
금정중학교의 동문은 분류:금정중학교 (부산) 동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4. 민족 수난과 저항의 역사
대한제국 시기인 1906년에 개교한 오래된 학교로, 인근 금정산에 있는 불교 사찰인 범어사 직속으로 세워진 '''명정학교'''가 모태이다. 일제 강점기 동안 항일운동 사건으로 두 차례 폐교당했다.
첫 번째 폐교는 3·1 운동 때 한용운의 지시에 따라 범어사를 중심으로 부산 지역의 만세 시위가 조직되었을 때, 이 학교 학생과 졸업생들이 적극적으로 참가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격문을 작성하고 태극기를 인쇄해 동래시장에서 시위를 주도했다가 학생 34명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학교는 문을 닫게 되었다.[1] 반면 명정학교 교장인 범어사 주지 김용곡은 불교계 수장인 삼십본산연합사무소 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3·1 운동을 비난한 바 있다.[1]
7년이 지난 1926년에 복교하여 다시 운영하고 있던 중, 일제 강점기 말기에 발생한 조선어학회 사건에 금정학원 원장인 김법린이 연루되면서 두 번째로 폐교되었다. 이때는 1945년 일제 패망 후에야 다시 복교할 수 있었다. 저명한 불교학자인 김경주가 이 학교의 교장을 지내는 등 영남 지역 불교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김법린 외에 소설가 김정한, 시인 김어수 등이 명정학교에서 수학했다.[1]
교정에는 3·1 운동 참가 사실을 기념하는 3·1운동유공비가 서 있고, 4·19 혁명 때 시위 중 경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한 이 학교 졸업생 신정융을 추모하기 위하여 1981년에 4·19민주혁명추모탑이 세워졌다.[2]
4. 1. 3.1 운동과 첫 번째 폐교
1906년 대한제국 시기에 금정산의 범어사 직속으로 세워진 '''명정학교'''가 모태이다. 일제 강점기 동안 항일운동 사건으로 두 차례 폐교당했다.3·1 운동 때 한용운의 지시에 따라 범어사를 중심으로 부산 지역의 만세 시위가 조직되었을 때, 이 학교 학생과 졸업생들이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격문을 작성하고 태극기를 인쇄해 동래시장에서 시위를 주도했다가 학생 34명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학교는 문을 닫게 되었다. 반면 명정학교 교장인 범어사 주지 김용곡은 불교계 수장인 삼십본산연합사무소 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3·1 운동을 비난한 바 있다.
교정에는 3·1 운동 참가 사실을 기념하는 3·1운동유공비가 서 있고, 4·19 혁명 때 시위 중 경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한 이 학교 졸업생 신정융을 추모하기 위하여 4·19민주혁명추모탑이 1981년에 세워졌다.
4. 2. 조선어학회 사건과 두 번째 폐교
1906년 대한제국 시기에 금정산의 불교 사찰인 범어사 직속으로 세워진 '''명정학교'''가 모태이다. 일제 강점기 동안 항일운동 사건으로 두 차례 폐교당했다.[1]첫 번째 폐교는 1919년 3·1 운동 때 한용운의 지시에 따라 범어사를 중심으로 부산 지역의 만세 시위가 조직되었을 때, 이 학교 학생과 졸업생들이 적극적으로 참가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격문을 작성하고 태극기를 인쇄해 동래시장에서 시위를 주도했다가 학생 34명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학교는 문을 닫게 되었다. 반면 명정학교 교장인 범어사 주지 김용곡은 불교계 수장인 삼십본산연합사무소 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3·1 운동을 비난한 바 있다.[1]
1926년에 복교하여 다시 운영하고 있던 중, 일제 강점기 말기에 발생한 조선어학회 사건에 금정학원 원장인 김법린이 연루되면서 두 번째로 폐교되었다. 이때는 1945년 일제 패망 후에야 다시 복교할 수 있었다. 저명한 불교학자인 김경주가 이 학교의 교장을 지내는 등 영남 지역 불교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김법린 외에 소설가 김정한, 시인 김어수 등이 명정학교에서 수학했다.[1]
교정에는 3·1 운동 참가 사실을 기념하는 3·1운동유공비가 서 있고, 1960년 4·19 혁명 때 시위 중 경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한 이 학교 졸업생 신정융을 추모하기 위하여 4·19민주혁명추모탑이 1981년에 세워졌다.[2]
4. 3. 4.19 혁명과 민주화 운동
1906년 대한제국 시기에 개교한 오래된 학교로, 인근 금정산에 있는 불교 사찰인 범어사 직속으로 세워진 '''명정학교'''가 모태이다. 일제 강점기 동안 항일운동 사건으로 두 차례 폐교당했다.[1]첫 번째 폐교는 3·1 운동 때 한용운의 지시에 따라 범어사를 중심으로 부산 지역의 만세 시위가 조직되었을 때, 이 학교 학생과 졸업생들이 적극적으로 참가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격문을 작성하고 태극기를 인쇄해 동래시장에서 시위를 주도했다가 학생 34명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학교는 문을 닫게 되었다. 반면 명정학교 교장인 범어사 주지 김용곡은 불교계 수장인 삼십본산연합사무소 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3·1 운동을 비난한 바 있다.[1]
7년이 지난 1926년에 복교하여 다시 운영하고 있던 중, 일제 강점기 말기에 발생한 조선어학회 사건에 금정학원 원장인 김법린이 연루되면서 두 번째로 폐교되었다. 이번에는 일제 패망 후에야 다시 복교할 수 있었다. 저명한 불교학자인 김경주가 이 학교의 교장을 지내는 등 영남 지역 불교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김법린 외에 소설가 김정한, 시인 김어수 등이 명정학교에서 수학했다.[1]
교정에는 3·1 운동 참가 사실을 기념하는 3·1운동유공비가 서 있고, 1981년에는 4·19 혁명 때 시위 중 경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한 이 학교 졸업생 신정융을 추모하기 위하여 4·19민주혁명추모탑이 세워졌다.[2]
참조
[1]
서적
2006년도 조사보고서 II - 친일반민족행위결정이유서
[2]
뉴스
종립학교를 가다(14) 금정중학교
http://www.hyunbulne[...]
현대불교
2001-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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