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오창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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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오창가는 푸만의 넷째 아들로, 1542년부터 1571년까지 건주좌위지휘사를 역임했다. 그는 허투알라를 근거지로 삼고, 닝구타 베이러를 이끌고 주변 부족을 통합하여 세력을 확장했다. 명나라와의 관계에서는 조공을 바치는 한편,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기도 했다. 1583년, 명나라가 아타이를 토벌할 때 길 안내를 맡았으나, 아타이를 회유하려다 명군에 의해 아들 탁시와 함께 살해되었다. 그의 죽음은 손자 누르하치가 후금을 건국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오창가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원래 이름lang=mnc/{{MongolUnicodemnc
기오창가(lang=mnc/{{만몽 유니코드mnc, )
묘호경조(景祖)
시호익황제(翼皇帝)
출생일1526년
사망일1583년 (57세)
왕조건주여진
할라아이신 할라
무쿤기오로 무쿤
아버지푸만
자녀탁시
관직
작위건주여진 오돌리 아이만 만호
작위2건주좌위지휘사
재위21542년-1571년
전임자2푸만
후임자2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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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족 관계

푸만 도독의 넷째 아들이다. 아버지 푸만과 다섯 형제(더시쿠, 러오단, 소오창가, 보올룽가, 보오시)와 함께 '육조(六祖)'로 불리며, 각자 성을 쌓고 세력을 이루었다. 기오창가는 허투알라를 근거지로 삼았다.

슬하에 다섯 아들(리둔 바투루, 아르군, 자이칸, 탁시, 타차 피양구)을 두었다. 이 중 넷째 아들인 탁시후금을 건국하고 청나라의 태조가 되는 누르하치의 아버지이다. 이로써 기오창가는 청나라 황실의 직계 조상이 된다.

장남 리둔 바투루의 딸은 그레(Gure, ᡤᡠᡵᡝmnc) 성주 아타이(Atai, 阿台)와 혼인했다.

2.1.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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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형더시쿠ᡩᡝᠰᡳᡴᡠmnc (德世庫, Déshìkù)
차형러오단 / 리오찬ᠯᡳᠣᠴᠠᠨmnc (劉闡/瑠闡, Liúchǎn)
삼형소오창가ᠰᠣᠣᠴᠠᠩᡤᠠmnc (索長阿, Suǒcháng'ā)
오제보올룽가 / 보오란가ᠪᠣᠣᠯᠠᠩᡤᠠmnc (包朗阿/寶朗阿, Bāolǎng'ā)
육제보오시ᠪᠣᠣᠰᡳmnc (寶實, Bǎoshí)

2.2. 아들

* 리둔 바투루(Lidun Baturu, ᠯᡳᡩᡠᠨ
ᠪᠠᡨᡠᡵᡠmnc, 禮敦巴圖魯 Lǐdūn Bātúlǔ)
딸: 이름 불명. 그레(Gure, ᡤᡠᡵᡝmnc) 성주 아타이(Atai, 阿台)의 아내.
* 아르군(Argun, ᡝᡵᡤᡠᠸᡝᠨmnc, 額爾袞 É'ěrgǔn)
* 자이칸(Jaikan, ᠵᠠᡳᡴᠠᠨmnc, 界堪 Jièkān)
* 탁시(Taksi, ᡨᠠᡴᠰᡳmnc, 塔克世 Tǎkèshì)
아들: 누르하치(Nurhaci) - 후금의 건국자이자 청나라의 태조.
* 타차 피양구(Taca Fiyanggū, ᡨᠠᠴᠠ
ᡶᡳᠶᠠᠩᡤᡡmnc, 塔察篇古 Tǎchá Piāngǔ)

3. 생애

(내용 없음)

3.1. 초기 활동과 부족 통합

도독 푸만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푸만의 여섯 아들(육조)은 각자 성을 쌓고 분거했으며, 기오창가는 다른 다섯 성에서 "가까운 곳은 5리, 먼 곳은 20리" 거리에 위치한 허투알라 지방을 근거지로 삼았다.

육조가 각자 거점을 마련하기 시작했을 무렵, 인근 부락에는 유력한 두 씨족이 있었다. 석색납쇼세나의 아홉 아들은 모두 강인했으며, 가호개프의 일곱 아들은 모두 날쌔고 힘이 셌다. 두 세력 모두 무력을 믿고 각지를 침범하여 약탈을 일삼았다. 그러나 재치가 풍부했던 기오창가는 아들 리둔, 그리고 형제인 녕고탑 베이러닝구타 베이러를 이끌고 출병하여 쇼세나의 아홉 아들과 개프의 일곱 아들을 토벌했다. 그 결과, 오령 동쪽과 숙수후 강 서쪽 200리 지역의 여러 부족이 복속하여 육조의 세력이 커졌다.

한편, 요동 순무 후여량의 주청 문서에는 기오창가가 "적의 수괴"로 이름이 거론된 것으로 보아, 그가 건주우위도지휘사 왕고의 명나라 변방 침입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후 마음을 고쳐 명나라에 입공하였다고 전해진다.

3.2. 명과의 관계

요동 순무(遼東巡撫) 후여량(侯汝良)의 주청(奏請) 문서에는 기오창가가 "적의 수괴"로 언급되기도 했다. 이는 기오창가가 건주우위도지휘사 왕고의 명나라 변방 침입에 관여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이후 명나라 측 기록에 따르면 기오창가는 태도를 바꾸어 명에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고 한다.

3.3. 죽음

만력 11년(1583년) 구력 2월, 명나라는 변방을 자주 침범하여 혼란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수쿠수후・비라부의 그레성 성주 아타이를 토벌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명나라는 이성량을 장수로 삼고, 기오창가와 그의 아들 탁시에게 길 안내를 맡겼다. 기오창가는 명나라 군대와 함께 그레성으로 갔으나, 아타이에게 시집간 손녀를 구하고 아타이를 설득하기 위해 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같은 수쿠수후・비라부 소속인 투룬성의 성주 니칸 와이란의 선동을 받은 명나라 군대에 의해 아들 탁시와 함께 오살(誤殺, 잘못 죽임)당했다.

이 사건은 훗날 누르가치가 명나라를 공격하는 이유로 내세운 7대 한의 첫 번째 조항(恨一)이 되었으며, 누르가치가 명나라 정벌을 결심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4. 평가 및 영향

기오창가는 아버지 푸만의 뒤를 이어 건주여진의 세력을 확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허투알라 지방을 근거지로 삼아, 주변의 다른 다섯 형제(오조)와 함께 세력을 이루었다.

당시 인근에는 쇼세나(石色納)와 개프(加虎)라는 강력한 씨족이 있었는데, 이들은 무력을 바탕으로 주변 지역을 침범하고 약탈했다. 기오창가는 아들 리둔 바투루와 함께 이들을 토벌하여 오령 동쪽과 숙수후 강 서쪽 200리 지역의 여러 부족을 복속시켰다. 이를 통해 기오창가를 포함한 육조(六祖)의 세력은 크게 신장되었다. 이러한 군사적 성공은 건주여진 내부에서 그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기반이 되었다.

한편, 명나라와의 관계에서는 초기 건주좌위 지휘사 왕고의 명나라 변경 침입에 관여했던 것으로 보이나, 이후 명나라에 조공하며 관계를 유지하려 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오창가의 이러한 활동과 세력 확장은 훗날 그의 손자인 누르하치가 여러 여진 부족을 통합하고 후금을 건국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그의 아들 탁시를 거쳐 손자 누르하치로 이어지는 가계는 청나라 황실의 직접적인 기원이 되었으며, 기오창가는 청나라에서 경조(景祖)로 추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