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바타케 마사사토
1. 개요
기타바타케 마사사토는 무로마치 시대의 무장으로, 기타바타케 가문의 당주였다. 그는 아시카가 요시마사로부터 이름을 받아 마사토모로 불렸으며, 아버지 노리카네의 사망 후 가독을 상속받아 마사사토로 개명했다. 이세의 수호로 임명되었으나 북이세 호족과의 항쟁에서 여러 차례 패배하여 마사카츠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1486년 출가하여 무외 잇포라고 칭하고 아들에게 가독을 물려주었으며, 궁도와 와카에 능한 교양인으로 평가받았다. 1508년에 사망했으며, 조간지에 그의 초상화가 보존되어 있다.
| 씨명 | 무라카미 겐지(村上源氏) 나카노인 가문(中院家) 서류, 기타바타케 가문(北畠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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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기타바타케 마사사토 (北畠政郷) |
| 이명 | 마사구 (政具) |
| 법명 | 무가이 이치호 (無外逸方)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묘소 | 미에현(三重県) 마쓰사카시(松阪市) 오아사카초의 조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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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 |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중기 - 센고쿠 시대(戦国時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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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 | 불명 |
| 사망 | 에이쇼(永正) 5년 12월 4일(12月4日) (1508년 12월 25일) 추정 |
| 개명 | 마사구 (政具) → 마사사토 (政郷) → 마사카쓰 (政勝) → 무가이 이치호 (無外逸方, 법호) |
| 관위 | 종4위상(従四位上), 고노에후(近衛府) 우고노에곤노츄조(右近衛権中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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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 | 아버지: 기타바타케 노리토모(北畠教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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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제 | 마사사토 (마사구) 오코우치 치카사토(大河内親郷) |
| 배우자 | 정보 없음 |
| 자녀 | 기타바타케 도모치카(北畠材親)(구모카타) 오코우치 치카타다(大河内親忠) 호시아이 치카야스(星合親泰) 다마루 아키하루(田丸顕晴) 기즈쿠리 모로시게(木造師茂) 고엔(孝縁) 오코우치 요리후사(大河内頼房)? 간베 도모모리(神戸具盛)? |
| 주군 | 정보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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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기 사항 | 정보 없음 |
| 역임 기간 | 1471년 ~ 150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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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수 | 5대 |
| 전임 | 기타바타케 노리토모(北畠教具) |
| 후임 | 기타바타케 요시카(北畠具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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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바타케씨 -
기타바타케 노리토모
기타바타케 노리토모는 무로마치 시대의 구게로, 아시카가 요시노리로부터 이름을 받아 이세 국사가 되었고, 가키의 난과 오닌의 난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권대납언까지 올랐다. -
기타바타케씨 -
오다 노부카쓰
오다 노부나가의 차남인 오다 노부카쓰는 기타바타케 가문 장악과 이가 침공 등의 활약과 혼노지의 변 이후 오다 가문의 후계 분쟁, 도요토미 히데요시와의 갈등을 겪으며 격변의 시대를 살았고, 도요토미 정권 하에서 다이묘로 활동하다 도쿠가와 막부 하에서 생을 마감한 인물이다. -
1508년 사망 -
르네 2세 드 로렌 공작
르네 2세 드 로렌 공작은 1473년 로렌 공작이 되어 낭시 전투에서 승리하여 부르고뉴 전쟁을 종식시켰으며, 보데몽 백작과 바르 공작 작위를 상속받고 가문을 번성시킨 인물이다. -
1508년 사망 -
조반니 2세 벤티볼리오
조반니 2세 벤티볼리오는 15세기 볼로냐의 군주이자 콘도티에로로, 도시를 통치하며 미관을 개선하고 예술을 후원했으나, 체사레 보르자에게 저항하다 교황에게 파문당하고 권좌에서 물러난 후 포로로 사망했다. -
무로마치 시대의 공가 -
기타바타케 아키이에
기타바타케 아키이에는 가마쿠라 시대 말에서 남북조 시대에 활약한 구게이자 무장으로, 고다이고 천황을 옹립하고 겐무 신정을 추진했으며 아시카가 다카우지에 맞서 남조를 지지하며 활약했지만 21세에 이시즈 전투에서 전사했고, 사후 메이지 유신 이후 재평가되어 그의 충절을 기리는 신사가 건립되었다. -
무로마치 시대의 공가 -
니조 요시모토
남북조 시대 공경인 니조 요시모토는 간파쿠와 셋쇼를 역임하며 조정의 안정과 권위 회복에 힘썼고, 렌가에 뛰어났으며, 아시카가 요시미쓰와의 관계를 통해 무가 정권과의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2. 생애
무로마치 막부 제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로부터 편휘를 받아 마사토모(政具)라고 이름 지었다.
분메이 3년(1471년) 아버지 기타바타케 노리카네가 사망한 후 가독을 상속받아 기타바타케 가문의 당주가 되었고, 이름을 마사사토(政郷)로 바꾸었다. 이세 슈고로 임명되었으나 북이세 호족들과 항쟁을 벌이다 패배하고, 이후 마사카츠(政勝)로 다시 개명하였다. 1486년 출가하여 무게이 잇포(無外逸方)라 칭하고 아들 토모치카에게 가독을 물려주었다. 1508년 사망했다.
2.1. 가독 상속과 이세 슈고 임명
분메이 3년(1471년) 아버지 기타바타케 노리카네가 사망하자, 가독을 상속하여 기타바타케 가문의 당주가 되었다. 이때 휘를 마사토모에서 마사사토(政郷)로 개명한 것으로 보인다.
마사사토는 가독 계승과 동시에 이세 슈고로 임명되었으나, 북이세 진출의 명분으로 삼았다. 그러나 분메이 11년(1479년) 잇시키 요시하루가 새로운 슈고로 임명되면서, 북이세 호족인 아노 군 고쿠진나가노 씨의 나가노 마사타카 등 여러 호족과 기타바타케 가문 간의 항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마사사토는 여러 차례 북이세 진출을 시도했지만 크게 패하여, 분메이 12년(1480년)에 화해해야 했다. 나가노 씨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것을 계기로 마사사토에서 마사카츠(政勝)로 개명했다。
2.2. 북이세 호족과의 항쟁
분메이 11년(1479년) 잇시키 요시하루가 이세 슈고로 임명되자, 아노 군의 국인인 나가노 씨의 나가노 마사타카 등 여러 호족과 기타바타케 가문과의 항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마사토는 자주 북이세로 진출을 시도했지만 크게 패하여, 분메이 12년(1480년)에 화해를 강요당했다. 나가노 씨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것을 계기로 마사토에서 마사카츠(政勝)로 개명했다.
2.3. 출가와 은거
1486년 7월에 출가하여 무게이 잇포(無外逸方)라고 칭하고, 40세 전후로 가독을 적자 토모카타(具方, 후에 토모치카)에게 물려주었다.
마사사토의 대에 우지야마다 전투가 재발하자, 1486년경에 개입했다는 기록이 있다. 1495년에 발생한 토모치카와 코조 시게모치와의 내분 시에는, 시게모치의 편을 지원했다고도 한다.
3. 인물
기타바타케 마사사토는 궁도와 마술에 뛰어나고, 와카에도 능했던 교양인이었다. 불교에도 관심이 깊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높은 관직에 오른 것에 비해, 마사사토는 낮은 관직에 머물렀고, 공가 일기에는 그의 승진이 실수라고 기록되기도 했다.
3.1. 정치적 평가
기타바타케 마사사토는 궁도와 마술에 뛰어나고, 와카에도 능했던 교양인으로 여겨진다.
불교에 대한 관심이 깊어 정안사의 개기 외에도 료안 케이고를 초청하여 개안 공양 등을 행했다.
한편, 공가로부터는 멀리되었다고 하며, 아버지 기타바타케 교구가 종2위 권대납언, 아들 기타바타케 구방이 정3위 권대납언까지 서임된 데 반해, 자신은 종4위 상 우근위 권중장까지 머물렀으며 공가의 일기에는 중장으로의 승진도 무슨 실수라고 기록된 것도 있다고 한다.
4.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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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8년 마사사토가 건립한 보리사인 조간지 (미에현 마쓰사카시 오아사카정)에는 마사사토의 수장(생전에 그려진 초상화)인 '당사 개기 무외 일방 대선정문지 수상'이 있다. 중세 일본 초상화로서는 드물게 서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으며, 오른쪽 위의 일륜을 올려다보고 있다. 찬은 상주가 직접 만든 게문을 조간지 개산인 다이쿠 겐코가 1494년에 썼다. 게문의 의미는 "깨달음을 얻으면 운명에 휩쓸리는 일도 없다. 만물은 본래 생기지도 멸하지도 않는다."이다.
5. 가계
* 아버지: 기타바타케 노리토모
* 어머니: 불명
* 생모 불명인 자녀
마사사토의 계통에서는 넷째 아들 아키하루로부터 타마루 씨가 나왔다. 지카타다는 오코치 씨의, 모로시게는 키즈키 씨, 토키모리는 칸베 씨의 양자가 되었다. 그 외 남자로 코후쿠지의 벳토(별당) 도몬인에 들어간 코엔이라는 승려가 있다. 칸베 토키모리와, 지카타다의 뒤를 이은 요리후사에 대해서는 자식 혹은 손자(이에치카의 자식)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