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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 (18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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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김경재(金璟載, 1899년 1월 14일 ~ ?)는 일제강점기의 사회운동가이자 언론인입니다. 본관은 수안(遂安)이며, 황해도 황주군 출신입니다. 김작, 적성, 진영철, 김광우 등의 필명을 사용했으며, 창씨개명한 이름은 가네자와 히데오(金澤秀雄)입니다.
생애 및 활동:


  • 1899년 7월 16일 황해도 황주에서 출생했습니다. (출생일은 자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 황주공립보통학교를 거쳐 1919년 3월 수원농림학교를 졸업했습니다.
  • 1920년 고향에서 독립운동단체인 향촌회를 조직하고, 신흥청년회 회장을 지냈습니다.
  • 같은 해 군비주비단(軍備籌備團)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상하이로 망명했습니다.
  • 1922년 상하이에서 『독립신문』 기자와 『신한공론』 주필로 활동했습니다.
  • 1923년 신한독립당(新韓獨立黨) 비서과장 및 산업부장을 지내다가 하얼빈 일본영사관 경찰에 검거되었습니다.
  • 1925년 5월 사상단체 화요회(火曜會)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 1926년 2월 잡지사 조선지광사(朝鮮之光社) 기자로 활동하던 중 '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검거되었습니다.
  • 1929년 8월 만기 출옥하였습니다.
  • 1932년 전향하여 일제의 식민지배에 협력하기 시작했습니다.
  • 1935년 10월 만주로 이주하여 친일 활동을 했습니다.
  • 1937년 만주국협화회 촉탁, 1938년 만주국협화회 수도본부 간부, 만선일보(滿鮮日報) 촉탁 등으로 활동했습니다.
  • 1940년 상하이로 이주하여 일본군 촉탁을 지냈으며, 상해시보사(上海時報社) 사장에 취임했습니다.
  • 1941년부터 친일단체 상해계림구락부의 기관지 『광화』의 편집 겸 발행인으로 내선일체와 침략전쟁을 선전하였습니다.
  • 1943년 이후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변절 및 친일 행적:김경재는 초기에는 민족주의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1932년을 기점으로 전향하여 친일 행위를 시작했습니다. 만주와 상하이에서 일제의 침략 전쟁을 옹호하고, 내선일체를 주장하는 등 적극적으로 친일 활동을 했습니다.
참고 자료:

  • [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A%B2%BD%EC%9E%AC_(1899%EB%85%84)](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A%B2%BD%EC%9E%AC_(1899%EB%85%84))
  •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8741](https://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8741)
  • [https://dcollection.sogang.ac.kr/dcollection/srch/srchDetail/000000051997](https://dcollection.sogang.ac.kr/dcollection/srch/srchDetail/00000005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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