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균정
1. 개요
김균정은 신라 시대의 인물로, 애장왕 때 대아찬을 지냈으며, 헌덕왕 때 시중을 역임하며 정치적 역량을 발휘했다. 김헌창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흥덕왕 때 법광사를 후원하고 상대등에 올랐다. 흥덕왕 사후 왕위 계승 과정에서 김제륭과 싸우다 패배하여 사망했다. 그의 아들 신무왕이 즉위 후 성덕왕으로 추존되었으며, 혜강대왕으로 추존된 김예영이 아버지이고, 신무왕과 헌안왕이 아들이다. KBS 드라마 《해신》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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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6년 사망 -
흥덕왕
흥덕왕은 신라의 제42대 왕으로, 헌덕왕의 동생이며, 당나라와의 외교, 장보고의 청해진 대사 임명, 차 문화 장려, 귀족 사치 금지 등 사회 질서 유지에 힘썼다. -
836년 사망 -
이고 (당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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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추존왕 -
김알지
김알지는 신라 탈해 이사금 9년에 시림에서 금색 궤짝 안에 발견된 인물로,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로 여겨지며, 김씨 성을 받고 계림에서 발견되어 신라 국호의 기원이 되었다. -
신라의 추존왕 -
혜충태자
혜충태자는 신라 원성왕의 아들로 왕태자에 책봉되었으나 요절하였고, 그의 아들 준옹이 소성왕으로 즉위하면서 그의 혈통이 신라 왕실의 주류가 되었지만, 그의 죽음은 신라 왕위 계승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
신라의 상대등 -
김문영
김문영은 신라의 장군이자 정치인으로, 태종 무열왕 때 백제 공격과 고구려 정벌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으며, 옛 백제 지역에서 당나라 군대와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데 기여했고, 효소왕 때 상대등에 임명되었다. -
신라의 상대등 -
비담
신라 선덕여왕 재위기에 상대등을 지낸 비담은 647년 염종과 함께 "여왕은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며 반란을 일으켰다가 김유신에게 진압되었으며, 그의 반란 배경에는 여성 통치자에 대한 반발, 왕위 계승 다툼, 김유신의 정치적 음모 등 여러 해석이 있다.
2. 생애
김균정은 802년(애장왕 3년) 대아찬이 되었으나 일본에 인질로 보내지는 것을 거부했고, 812년(헌덕왕 4년)부터 814년까지 시중을 역임했다. 822년 김헌창이 난을 일으키자 군사를 이끌고 진압하여 성산에서 반군을 격파했다. 828년 비학산에 있는 법광사를 크게 후원했고, 835년 상대등이 되었다. 836년 흥덕왕이 아들 없이 죽자 왕위 다툼에서 김제륭(민애왕)과 적판궁(積板宮)에서 싸웠으나 패배하여 죽었다. 사후 아들 신무왕이 성덕왕(成德王)으로 추존했다.
2.3. 김헌창의 난 진압
822년 3월(헌덕왕 14년), 웅천주 도독 김헌창이 난을 일으키자(김헌창의 난), 이찬 김균정은 잡찬 김웅원, 대아찬 김우징과 함께 3군을 통솔하여 정벌에 나서 성산에서 반군을 격파하였다.
2.5. 상대등 역임과 최후
835년(흥덕왕 10년) 상대등이 되었으나, 836년 흥덕왕이 아들 없이 죽자 왕위를 계승하고자 김제륭과 적판궁(積板宮)에서 싸웠다. 김명(민애왕), 이홍(利弘), 배훤백(裵萱伯) 등은 김제륭을 지지하였다. 김균정은 이 싸움에서 패배하여 김제륭의 병사에게 죽었다. 사후 아들 신무왕이 성덕왕(成德王)으로 추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