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량 순교 현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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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기량 순교 현양비는 1857년 풍랑으로 중국 광동 해역까지 표류했다가 홍콩에서 세례를 받고 제주에서 선교 활동을 펼치다 병인박해 때 순교한 김기량(1816-1867) 펠릭스 베드로의 신앙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김기량은 귀국 후 제주에서 '제주의 사도'로 불리며 복음을 전파했고, 병인박해로 체포되어 순교했다. 그의 순교를 기리기 위해 고향에 현양비가 세워졌다.

김기량 순교 현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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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와 순교

함덕리 출신 김기량(金耆良, 1816-1867, 세례명 펠릭스 베드로)은 1857년 풍랑으로 중국 광동 해역까지 표류했다가 영국 배에 구조되어 홍콩의 파리 외방 전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이듬해 귀국하여 최양업 신부 등을 만난 뒤 제주로 돌아와 이웃에 복음을 전하며 '제주의 사도'로 활동했다. 베르뇌 주교에게 선교사 파견을 약속받기도 했으나 병인박해로 무산되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통영에서 천주교 신자임이 밝혀져 체포되었고, 모진 형벌에도 신앙을 지키다 1867년 1월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박해자들은 그의 굳건한 신앙에 두려움을 느껴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만행을 저질렀다.

2.1. 표류와 세례

함덕리 출신인 김기량(金耆良, 1816-1867, 세례명 펠릭스 베드로)은 1857년에 풍랑을 만나 중국 광동 해역까지 표류하게 되었다. 다행히 영국 배에 구조되어 홍콩의 파리 외방 전교회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휴양 중이던 조선인 신학생에게 천주교 교리를 배웠다. 이후 같은 해 5월 31일(음력 5월 9일)에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2.2. 제주 선교 활동

1858년 귀국한 김기량은 최양업 신부와 페롱 신부를 만난 뒤, 고향인 제주로 돌아왔다. 그는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제주의 사도'로서 활발히 활동하였다. 당시 조선교구장 베르뇌 주교를 만나 제주 지역에 선교사 파견을 약속받기도 하였으나, 박해가 일어나면서 이는 실현되지 못했다.

2.3. 병인박해와 순교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면서 조선 내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되었다. 당시 무역차 통영으로 갔던 김기량은 그곳에서 천주교 신자임이 밝혀져 체포되었다.

김기량은 체포된 후 모진 형벌과 고문을 당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신앙을 증거하였다. 결국 그는 1867년 1월(음력 1866년 1월) 교수형으로 순교의 길을 걸었다. 박해자들은 그의 굳건한 신앙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순교한 그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잔혹한 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는 당시 박해의 가혹함과 순교자들의 강한 신념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있다.

3. 평가와 현양

김기량의 순교는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증거한 뛰어난 용기로 평가받는다. 그의 굳건한 신앙은 박해자들마저 두려움을 느끼게 할 정도였으며, 이는 당시 천주교 신앙이 가진 힘과 의미를 보여준다. 그는 병인박해 시기 신앙의 빛을 밝힌 인물로 기억되며, 그의 고향 함덕리에 세워진 현양비는 이러한 김기량의 숭고한 삶과 순교 정신을 기리고 후세에 전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3.1. 현양 사업

함덕리 출신 김기량(金耆良, 1816-1867) 펠릭스 베드로는 '제주의 사도'로 불리며 이웃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데 힘썼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무역차 경상남도 통영에 갔던 김기량은 천주교 신자임이 드러나 체포되었다. 그는 모진 형벌과 고문에도 끝까지 신앙을 증언하며 굴하지 않았고, 결국 1867년 1월(음력 1866년 1월)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박해자들은 그의 굳건한 신앙심에 두려움을 느껴 시신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잔혹한 행위를 저지르기까지 했다. 이처럼 뛰어난 용기와 굳은 믿음으로 순교하며 신앙의 빛을 밝힌 김기량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그의 고향인 이곳 함덕리에 현양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