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열
1. 개요
김덕열은 일제강점기 중앙고등보통학교, 보성전문학교 법과, 일본 주오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미군정청 관재처 감찰관과 양주군 주내면장을 역임했다. 1948년 제1대 총선에서 양주군 갑구 무소속으로 당선되어 제헌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무소속구락부, 산업노농위원회, 수산 입법 위원회, 신정회, 대한국민당 등에서 활동했다. 한국 전쟁 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갔으며, 이후 재북 평화통일 촉진 협의회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다가 평안북도 협동농장으로 이주한 후 소식이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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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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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제헌 국회의원 -
허영호 (정치인)
허영호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신간회 활동을 했으나, 중일전쟁 이후 친일로 전향하여 해방 후 혜화전문학교 교장과 동국대학교 학장을 역임했으며, 제헌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지만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사후 친일 행적이 드러나 건국훈장이 취소되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다. -
대한민국의 제헌 국회의원 -
이승만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운동가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역임하고 해방 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독재적 통치와 부정부패에 대한 비판도 받으며 4·19 혁명 후 하와이로 망명하여 서거하였다. -
대한민국의 제헌 국회의원 -
허영호 (정치인)
허영호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신간회 활동을 했으나, 중일전쟁 이후 친일로 전향하여 해방 후 혜화전문학교 교장과 동국대학교 학장을 역임했으며, 제헌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지만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사후 친일 행적이 드러나 건국훈장이 취소되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다. -
대한민국의 제헌 국회의원 -
이승만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운동가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역임하고 해방 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독재적 통치와 부정부패에 대한 비판도 받으며 4·19 혁명 후 하와이로 망명하여 서거하였다.
3. 생애 및 정치 활동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출신이다.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30년에 경성법학전문학교(현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였고 1933년에는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법과에 입학했다. 1936년에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중앙대학 법학부에 입학하여 1940년에 졸업했다.
해방 이후 김덕열은 미군정청에서 관재처의 감찰관, 양주군 주내면장 등을 역임했다. 1948년 5월 제1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양주군 갑구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어 제헌 국회의원이 되었다. 당선 후 6월에 무소속구락부에 참가하여, 상임위원회의 산업노농위원회에 소속되었다. 1949년 2월에 수산 입법을 위한 위원회에 참여했고, 같은 해 9월에 신정회에 가맹했으며, 10월부터 개정 국회법에 의해 설치된 산업위원회에 소속되었다. 1950년 1월에 새롭게 결성된 대한국민당에 참여했으며, 같은 해 4월에 조병옥을 후임 국무총리로 추천하는 연서에 서명했다. 한국 전쟁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갔다. 1956년 7월, 재북 평화통일 촉진 협의회 중앙위원을 맡았으며, 1957년 초 평안북도에 있는 협동농장으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소식 불명.
3.1. 해방 이전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출신이다.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30년에 경성법학전문학교(현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였고 1933년에는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법과에 입학했다. 1936년에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중앙대학 법학부에 입학하여 1940년에 졸업했다.
3.2. 해방 이후
해방 이후 김덕열은 미군정청에서 관재처의 감찰관, 양주군 주내면장 등을 역임했다. 1948년 5월 제1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양주군 갑구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어 제헌 국회의원이 되었다. 당선 후 6월에 무소속구락부에 참가하여, 상임위원회의 산업노농위원회에 소속되었다. 1949년 2월에 수산 입법을 위한 위원회에 참여했고, 같은 해 9월에 신정회에 가맹했으며, 10월부터 개정 국회법에 의해 설치된 산업위원회에 소속되었다. 1950년 1월에 새롭게 결성된 대한국민당에 참여했으며, 같은 해 4월에 조병옥을 후임 국무총리로 추천하는 연서에 서명했다. 한국 전쟁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갔다. 1956년 7월, 재북 평화통일 촉진 협의회 중앙위원을 맡았으며, 1957년 초 평안북도에 있는 협동농장으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졌다。이후 소식 불명。
3.3. 제헌 국회의원 활동
김덕열은 경기도 양주군 주내면 유양리(현 양주시 유양동) 출신으로, 제헌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와 고려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일본 중앙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광복 후 미군정청에서 관재처 감찰관, 양주군 주내면장 등을 역임했다.
1948년 5월 제1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양주군 갑구에서 출마하여 11,215표(38.12%)를 얻어 당선되었다. 당선 후 무소속구락부에 참가하여 산업노농위원회에 소속되었고, 1949년 2월에는 수산 입법을 위한 위원회에 참여했다. 같은 해 9월 신정회에 가맹했으며, 10월부터 개정 국회법에 의해 설치된 산업위원회에 소속되었다. 1950년 1월 대한국민당에 참여했고, 4월에는 조병옥을 후임 국무총리로 추천하는 연서에 서명했다.
한국 전쟁 중에 북한에 납북되었으며, 1956년 7월 재북 평화통일 촉진 협의회 중앙위원을 맡았고, 1957년 초 평안북도 협동농장으로 이주했다. 이후 소식 불명.
3.4. 한국 전쟁과 납북
김덕열은 한국 전쟁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갔다. 경기도 양주군 주내면 유양리(현 양주시 유양동) 출신으로,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와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경성법학전문학교와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졸업했다. 일본 중앙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광복 후 미군정청에서 관재처 감찰관, 양주군 주내면장 등을 역임했다. 1948년 제1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양주군 갑구에서 당선되어 제헌 국회의원이 되었다. 당선 후 무소속구락부에 참가하여 산업노농위원회에 소속되었고, 수산 입법을 위한 위원회, 신정회, 대한국민당 등에 참여했다. 1950년 4월에는 조병옥을 후임 국무총리로 추천하는 연서에 서명했다.
1956년 7월 재북 평화통일 촉진 협의회 중앙위원을 맡았으며, 1957년 초 평안북도에 있는 협동농장으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후 소식은 불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