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화 (193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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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병화는 1936년 대한민국 경기도 출생으로, 일본 고베에서 성장한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이다. 고베조선고급학교를 졸업하고 도쿄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다 1960년 북한으로 귀국하여 평양국립예술극장에서 활동했다.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지휘를 배우고, 1970년 조선국립교향악단 수석지휘자가 되었다. 이후 북한의 대표적인 관현악곡을 초연하고, 윤이상의 작품을 연주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김일성훈장을 수여받았다. 2021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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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화 (1936년) | |
---|---|
김병화 | |
로마자 표기 | Kim Byeong-hwa |
한글 | 김병화 |
한자 | 金 炳華 |
가타카나 | キム・ビョンファ |
기본 정보 | |
출생 | 1936년 5월 16일 |
사망 | 2021년 |
출생지 | 일본 오사카부 |
국적 | 북한 |
직업 | 지휘자, 작곡가 |
장르 | 클래식 음악 |
악기 | 지휘 |
2. 경력
김병화는 대한민국 경기도 출신으로, 일본 효고현 고베시에서 성장하여 고베조선고급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음악을 배웠다. 1955년부터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다가 1960년 북한으로 귀국하여 지휘자로 활동했다.[1] 1972년, 1986년에 각각 공훈예술가,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았다.[1]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고, 2005년에는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북한 유일의 실내 오케스트라인 윤이상관현악단에 객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1]
2011년에는 이미 수석지휘자 직을 사퇴했으며, 2021년에 사망하여 김정은이 조화를 보냈다.[2]
2. 1. 유년기 및 일본에서의 활동 (1960년 이전)
김병화는 대한민국 경기도 출신으로, 일본 효고현 고베시에서 성장했다. 고베조선고급학교 1기 졸업생이다.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도쿄의 일본음악센터에서 작곡과 피아노를 배웠다.[1] 1955년부터 도쿄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하여 1959년 바르토크의 피아노곡을 연주했다.2. 2. 북한으로의 귀국 및 지휘자 활동 (1960년 ~ 2000년)
1960년 6월 북한으로 귀국했다. 평양국립예술극장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면서 김원균명칭음악종합대학(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지휘를 배웠다. 1962년 공훈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았다.[1] 1963년 대학을 졸업하고 국립예술극장 지휘자에 취임했으며, 1969년 조선국립교향악단(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립교향악단)에 지휘자로 입단했다. 1970년 국립교향악단의 수석지휘자로 임명되었다.수석지휘자 취임 후, 관현악곡 「그네토이는 딸」, 「나의 고향 그리운 집」, 「청산개원에 풍년이 왔다」 등을 포함한 북한의 대표적인 관현악곡을 초연했다. 그 공로로 1972년 공훈예술가 칭호를 다시 수여받았다. 1986년에는 국립교향악단과 함께 폴란드 순회공연을 하고 윤이상의 작품을 연주했으며, 같은 해 인민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았다.[1]
1987년에는 윤이상의 칸타타 「나의 조국, 나의 민족이여!」를 세계 초연했다. 1992년에는 국립교향악단과 함께 일본을 방문하여 도쿄, 오사카, 고베에서 공연을 했다. 2000년에는 서울특별시를 방문하여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하고 KBS 교향악단과의 합동 연주도 했다.
2. 3. 국제 활동 및 남북 교류 (1992년 ~ 2005년)
1992년 국립교향악단과 함께 일본을 방문하여 도쿄, 오사카, 고베에서 공연했다.[1] 2000년 서울특별시를 방문하여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하고 KBS 교향악단과 합동 연주도 했다.2005년 김일성훈장을 수여받았다.[1]
2. 4. 은퇴 및 사망 (2011년 ~ 2021년)
2011년 조선국립교향악단에 객원으로 참여했던 일본의 지휘자 이노우에 미치요시(井上道義)는 김병화가 이미 수석지휘자 직을 사퇴했다고 보고했다. 이노우에는 방북 당시 김병화에게 직접 통역을 받았다.[1]연합뉴스가 보도한 조선중앙통신의 2021년 3월 24일 발표에 따르면, 김병화는 이미 사망했으며, 김정은은 전날인 3월 23일에 김병화의 빈소에 조화를 보냈다.[2]
3. 레퍼토리
클래식 음악, 현대 음악을 포함하여 폭넓은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으며, 국가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작곡된 많은 관현악곡도 연주하였다.
북한의 레코드 회사 KMC에서 많은 CD를 발매하였고, 일본 카메라타 도쿄에서 윤이상의 『교향곡 제1번』과 『나의 조국, 나의 민족이여!』를 녹음하여 발매하였다.
참조
[1]
간행물
朝鮮画報
1987-12
[2]
뉴스
20년전 '서울공연' 김병화 전 북한국립교향악단 지휘자 사망
https://www.yna.co.k[...]
2021-03-24
[3]
뉴스
20년전 '서울공연' 김병화 전 북한국립교향악단 지휘자 사망
https://www.yna.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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