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석
1. 개요
김신석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인물이다. 부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와세다 대학에서 수료했으며, 조선은행 전무를 역임했다. 1935년 《조선공로자명감》에 수록되었으며, 1936년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어 태평양 전쟁 지원에 나섰다. 2002년 친일파 708인 명단,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사위는 홍진기이며, 드라마 《조선총독부》에서 박상조가 김신석 역을 연기했다.
-
중앙가 -
홍석현
홍석현은 중앙일보와 JTBC 회장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언론인이자 경영인으로, 서울대와 스탠퍼드대에서 학위를 취득 후 세계은행 등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중앙일보 사장으로서 한국 일간지 혁신을 주도하고 주미 한국대사를 지내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
중앙가 -
홍석조
홍석조는 서울대학교 법학과와 하버드 대학교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검사로 활동하다 BGF리테일 대표이사 회장으로 변신한 대한민국의 기업인이자 법조인이다. -
범삼성가 -
이맹희
이맹희는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의 장남이자 CJ그룹 명예회장으로, 삼성그룹 후계자 수업을 받았으나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후 제일비료 회장을 지냈고, 이건희와 상속 재산 관련 법정 다툼을 벌이다 폐암으로 별세했다. -
범삼성가 -
이병철
대한민국 기업인인 이병철은 삼성그룹의 창업주로, 무역업을 시작으로 제조업, 전자산업, 금융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여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
1948년 사망 -
도조 히데키
도조 히데키는 일본 제국 육군의 군인으로 육군 대신, 참모총장,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며 진주만 공격을 명령하여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고, 전범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
1948년 사망 -
라이트 형제
라이트 형제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미국의 발명가이자 항공 개척자로서, 최초로 동력 비행기를 제작하고 비행에 성공하여 항공 시대를 열었다.
2. 학력
* 부산상업고등학교 졸업
*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 수료
2.1. 정규 학력
* 부산상업고등학교 졸업
*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 수료
2.2. 명예 박사 학위
*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 명예박사
3. 생애
김신석은 1896년 9월 26일 경주 김씨 후손으로 태어나 부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 대학을 수료하였다. 이후 조선은행에서 전무 등을 역임하였다.
해방 이후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중 중추원 부문,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중추원, 경제, 친일단체 부문에 선정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명단에는 사위 홍진기도 들어 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3.1. 일제 강점기 활동
1896년 9월 26일 경주 김씨 후손으로 태어났으며, 부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명문대 와세다 대학에서 수료하였다. 이후 조선은행에서 전무 등을 역임하였다. 1935년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수록되어 있다.
1936년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참의에 임명되었다. 현준호는 1931년부터 중추원 참의직에 있었기에 김신석이 뒤이어 들어간 셈이며, 두 사람은 나란히 광복 시점까지 연임하며 중추원 참의로 재임했다. 김신석 중추원 참의가 소유한 하인과 시녀가 6백여 명에 달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태평양 전쟁 지원에 나서 대화동맹에 가담한 바 있다.
3.2. 해방 이후
1935년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수록되어 있다.
1936년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참의에 임명되었다. 현준호는 1931년부터 중추원 참의직에 있었기에 김신석이 뒤이어 들어간 셈이며, 두 사람은 나란히 광복 시점까지 연임하며 중추원 참의로 재임했다. 김신석 중추원 참의가 소유한 하인과 시녀가 6백여 명에 달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태평양 전쟁 지원에 나서 대화동맹에 가담한 바 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중 중추원 부문,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중추원, 경제, 친일단체 부문에 선정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명단에는 사위 홍진기도 들어 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5. 비판 및 논란
김신석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고위 관직을 역임하며 친일 행위를 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재직하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으며, 하인과 시녀가 600여 명에 달했다는 기록이 있다.
5.1. 친일 행적
1935년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수록되었다.
1936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었다. 현준호는 1931년부터 중추원 참의직에 있었기에 김신석이 뒤이어 들어간 셈이며, 두 사람은 광복 시점까지 연임하며 중추원 참의로 재임했다. 김신석은 중추원 참의 시절 하인과 시녀가 6백여 명에 달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태평양 전쟁 지원에 나서 대화동맹에 가담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중 중추원 부문,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중추원, 경제, 친일단체 부문에 선정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명단에는 사위 홍진기도 들어 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