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요협
1. 개요
김요협은 1833년에 태어나, 절충장군 중추부 첨지사를 지낸 김명환의 아들이다. 1872년 선공감 감역으로 관직에 오른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전라남도 화순군수, 진안 현감, 군위 군수 등을 역임했으며, 최종 종2품 가선대부에 이르렀다. 두 아들에게 유산을 분배하였으며, 장남은 김기중이고 차남은 김경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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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정치인 -
안창호
안창호는 평안남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교육자, 사상가로서, 서양식 교육과 기독교 입교 후 독립협회 활동, 대한국민회 설립 등 해외 독립운동, 신민회 조직, 흥사단 재건 등 국내외 민족 교육과 계몽 운동에 헌신하며 민족 개조를 주창하고 이상촌 건설을 추진하다 일제의 탄압으로 옥중에서 병사하였다. -
대한제국의 정치인 -
김구
김구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 통일운동가로서, 동학 입교, 치하포 사건, 대한민국 임시정부 참여, 한인애국단 조직, 한국광복군 창설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 안두희에게 암살당했다. -
장성군 출신 -
이병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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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군 출신 -
김황식 (법조인)
전라남도 장성 출신의 김황식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판사, 대법관, 감사원장을 거쳐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현재는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법조인, 정치인이다. -
1833년 출생 -
정범조 (183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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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3년 출생 -
빌헬름 딜타이
빌헬름 딜타이는 독일에서 태어난 철학자, 역사가, 교육학자로, 역사주의 철학을 발전시키고 '정신과학'을 정립하려 했으며, '이해' 개념을 중심으로 인문과학 이론을 구축하여 후대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삶의 철학'으로 불리는 사상을 남겼다.
2. 생애
김요협은 1833년 절충장군 중추부첨지사를 지내고 사후 증 가선대부 내부협판에 추증된 김명환(金明煥)과 부인 전의이씨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김명환은 노인직으로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가 되었으나, 실직은 아니어서 가계는 가난하였다.
신체가 건장하였으나 가난하게 자랐다고 한다. 부친에 의해 전라북도 고창군의 부자 정씨의 무남독녀 딸과 혼인하였고, 이후 처가가 있는 전북 고창으로 이주했다. 이후 처가의 재력을 바탕으로 몰락한 가문을 다시 일으켰다.
1872년 (고종 9년) 선공감 감역으로 관직에 오른 후 여러 관직을 거쳤다. 1894년 이후 중추원의관, 비서원승, 시종원 부경에 임명되었고, 최종 관직은 종2품 가선대부에 이르렀다.
김요협은 두 아들에게 유산을 분배할 때 장남 김기중에게 1천 석, 차남 김경중에게 2백 석을 물려주었으나, 이재에 능한 김경중이 형보다 더 많은 토지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2.1. 관직 생활
1872년(고종 9년) 선공감 감역으로 관직에 올랐다. 이후 참봉, 봉사, 도사(都事), 별제, 주부(注簿) 등의 경관직을 지냈다. 민씨 정권 하에서 금부도사·영릉참봉·상서원별제·사옹원주부를 지내다가 통훈대부로 승진, 1888년 전라남도 화순군수로 부임하였다.
이후 전라북도 행진안현감(行鎭安縣監)·경상북도 군위군수 등을 지냈다. 1894년 이후 중추원의관·비서원승·시종원 부경에 임명되었다. 그 뒤 첨지중추부사를 거쳐 최종 관직은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2.2. 가문의 부흥과 유산 분배
김요협은 1833년 절충장군 중추부첨지사를 지내고 사후 증 가선대부 내부협판에 추증된 김명환(金明煥)과 부인 전의이씨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김명환은 노인직으로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가 되었으나, 실직은 아니어서 가계는 가난하였다.
김요협은 신체가 건장하였으나 가난하게 자랐다고 한다. 부친에 의해 전라북도 고창군의 부자 정씨의 무남독녀 딸과 혼인하였고, 이후 처가가 있는 전북 고창으로 이주했다. 이후 처가의 재력을 바탕으로 몰락한 가문을 다시 일으켰다.
김요협은 두 아들에게 유산을 분배할 때 장남인 김기중에게는 1천 석의 농토를, 차남인 김경중에게는 2백 석을 물려주었으나, 이재에 능한 김경중은 형보다 더 많은 토지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