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요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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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요협은 1833년에 태어나, 절충장군 중추부 첨지사를 지낸 김명환의 아들이다. 1872년 선공감 감역으로 관직에 오른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전라남도 화순군수, 진안 현감, 군위 군수 등을 역임했으며, 최종 종2품 가선대부에 이르렀다. 두 아들에게 유산을 분배하였으며, 장남은 김기중이고 차남은 김경중이다.

김요협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김요협
본관울산
별명자는 원중, 호는 낙재
출생
출생일1833년
출생지조선 전라남도 장성군
사망
사망일1909년
사망지조선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거주지
국적
국적조선, 대한제국
학력
직업
직업금부도사, 영릉참봉, 화순·진안·군위군의 군수
종교
종교유교(성리학)
가족 관계
배우자정씨
자녀김경중, 김기중
부모김명환, 김인후의 10대손
친척손자 김성수, 형 김요문(金堯汶), 형 김요윤(金堯允), 장인 정계량, 손자 김연수
서명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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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김요협은 1833년 절충장군 중추부첨지사를 지내고 사후 가선대부 내부협판에 추증된 김명환(金明煥)과 부인 전의이씨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김명환은 노인직으로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가 되었으나, 실직은 아니어서 가계는 가난하였다.

신체가 건장하였으나 가난하게 자랐다고 한다. 부친에 의해 전라북도 고창군의 부자 정씨의 무남독녀 딸과 혼인하였고, 이후 처가가 있는 전북 고창으로 이주했다. 이후 처가의 재력을 바탕으로 몰락한 가문을 다시 일으켰다.

1872년 (고종 9년) 선공감 감역으로 관직에 오른 후 여러 관직을 거쳤다. 1894년 이후 중추원의관, 비서원승, 시종원 부경에 임명되었고, 최종 관직은 종2품 가선대부에 이르렀다.

김요협은 두 아들에게 유산을 분배할 때 장남 김기중에게 1천 석, 차남 김경중에게 2백 석을 물려주었으나, 이재에 능한 김경중이 형보다 더 많은 토지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2.1. 관직 생활

1872년(고종 9년) 선공감 감역으로 관직에 올랐다. 이후 참봉, 봉사, 도사(都事), 별제, 주부(注簿) 등의 경관직을 지냈다. 민씨 정권 하에서 금부도사·영릉참봉·상서원별제·사옹원주부를 지내다가 통훈대부로 승진, 1888년 전라남도 화순군수로 부임하였다.

이후 전라북도 행진안현감(行鎭安縣監)·경상북도 군위군수 등을 지냈다. 1894년 이후 중추원의관·비서원승·시종원 부경에 임명되었다. 그 뒤 첨지중추부사를 거쳐 최종 관직은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2.2. 가문의 부흥과 유산 분배

김요협은 1833년 절충장군 중추부첨지사를 지내고 사후 가선대부 내부협판에 추증된 김명환(金明煥)과 부인 전의이씨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김명환은 노인직으로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가 되었으나, 실직은 아니어서 가계는 가난하였다.

김요협은 신체가 건장하였으나 가난하게 자랐다고 한다. 부친에 의해 전라북도 고창군의 부자 정씨의 무남독녀 딸과 혼인하였고, 이후 처가가 있는 전북 고창으로 이주했다. 이후 처가의 재력을 바탕으로 몰락한 가문을 다시 일으켰다.

김요협은 두 아들에게 유산을 분배할 때 장남인 김기중에게는 1천 석의 농토를, 차남인 김경중에게는 2백 석을 물려주었으나, 이재에 능한 김경중은 형보다 더 많은 토지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3.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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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이름
고조부김윤조
증조부김방신
조부김도휴
아버지김명환
어머니전의이씨
형님김요문
형님김요윤
부인증 정부인 연일정씨(1831년 ~ 1911년)
장남김기중(1859년 ~ 1933년)
손자김성수
손자김재수
차남김경중(1863년 ~ 1945년)
손자김연수
장인정계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