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 (신라)
1. 개요
김용수(金龍樹)는 신라의 왕족으로, 진지왕과 지도부인의 아들이다. 진평왕의 사위이자 태종무열왕의 아버지이며, 622년 이찬, 629년 대장군을 역임했다. 645년 황룡사 9층 목탑 건축을 주관했으며, 654년 아들 춘추가 왕위에 오르자 문흥갈문왕으로 추존되었다. 《화랑세기》에서는 용춘의 형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용춘이 풍월주를 역임하고 선덕여왕의 부군이 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 이름: 김용춘 / 김용수 | |
| 원래 이름: 金龍春 / 金龍樹 | |
| 작위: 이찬(伊飡) | |
| 별칭: 각간문흥갈문왕, 탁문흥갈문왕 | |
| 출생일: 579년 이전 | |
| 출생지: 신라 서라벌 | |
| 사망일: 646년 이후 | |
| 사망지: 신라 서라벌 | |
| 직업: 왕족 종실 | |
| 왕조: 신라 | |
| 종교: 불교 |
| 아버지 | 진지왕 |
|---|---|
| 어머니 | 지도부인 |
| 배우자 | 천명공주(본부인) |
| 자녀 | 태종 무열왕(장남) |
| 친인척 | 김비형(이복 동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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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8년 출생 -
방현령
방현령은 당나라 초기의 재상으로, 당 태종을 보좌하여 정관의 치를 이룩하고, 제도 정비와 역사서 편찬에 기여했으며, 능연각 24공신에 선정되었다. -
647년 사망 -
선덕여왕
선덕여왕은 신라 최초의 여왕으로, 진평왕의 딸로 태어나 화백회의에서 추대되어 즉위하여 재위 기간 동안 당나라와의 외교 강화, 불교 진흥, 황룡사 9층 목탑 건립, 첨성대 축조 등의 업적을 남겼으나 백제와 고구려의 침략, 비담의 난을 겪고 승하하였으며, 뛰어난 통찰력과 예지력을 보여주는 일화가 전해진다. -
647년 사망 -
비담
신라 선덕여왕 재위기에 상대등을 지낸 비담은 647년 염종과 함께 "여왕은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며 반란을 일으켰다가 김유신에게 진압되었으며, 그의 반란 배경에는 여성 통치자에 대한 반발, 왕위 계승 다툼, 김유신의 정치적 음모 등 여러 해석이 있다. -
신라의 대장군 -
알천
알천은 신라의 장군이자 상대등으로 선덕여왕, 진덕여왕 대에 활약하며 여근곡 전투와 칠중성 전투에서 백제와 고구려 군을 격파하는 등 신라의 정치와 군사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고, 진덕여왕 사후 김춘추를 지지하여 왕위에 오르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
신라의 대장군 -
석우로
석우로는 신라의 이찬이자 대장군으로, 우루상팔국과의 전투와 감문국 토벌 등 군사적 활약을 펼쳤으나, 왜의 사신에게 실언하여 왜인에 의해 화형당해 신라와 왜의 관계를 악화시킨 인물이다.
2. 생애
김용춘은 진지왕과 지도부인(知道夫人) 박씨의 아들로, 진지왕이 579년에 사망한 뒤 왕위 계승권에서 멀어졌다. 김용춘의 아들 김춘추는 진골 신분으로 나타나지만, 김용춘의 신분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삼국유사의 기록처럼 진지왕이 폐위된 것이 맞다면 김용춘의 신분이 성골에서 족강(族降)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김용춘은 진평왕의 딸인 천명공주와 혼인하여 602년에 아들 김춘추를 낳았다.
622년(진평왕 44년) 이찬(伊飡)의 관등에 있었으며, 내성사신(內省私臣)에 임명되었다. 629년에는 대장군이 되어 김서현, 김유신을 부장으로 이끌고 출진, 낭비성(娘臂城)을 함락시켰다. 635년(선덕여왕 4년)에는 주현(州縣)을 돌아보며 위문하였다. 645년에는 황룡사 9층 목탑 건축을 주관하였고, 이후에는 더 이상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다. 아들 김춘추가 왕위에 즉위한 654년에 문흥갈문왕으로 추존되었다.
한편 학계에서 위서로 의심받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김용춘과 김용수를 형제로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김용춘은 김용수의 동생으로, 김용수가 요절한 뒤 김용수와 결혼한 천명공주를 다시 맞아들였으며, 김용수의 아들인 김춘추를 아들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나 ‘황룡사9층목탑찰주본기’에 따르면 황룡사 9층 목탑을 건축할 당시인 645년경까지 김용수의 이름이 나타나고 있어 김용수가 요절하였다는 《화랑세기》의 기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화랑세기》는 김용춘의 일부 행적도 기록하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김용춘은 13대 풍월주를 역임하였으며 선덕여왕의 남편이 되었으나 자식이 없어 사임하였다고 한다.
3. 《화랑세기》에서의 기록
학계에서 위서로 의심받는 《화랑세기》에는 김용춘과 김용수를 형제로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김용춘은 김용수의 동생으로, 김용수가 요절한 뒤 김용수와 결혼한 천명공주를 다시 맞아들였으며, 김용수의 아들인 김춘추를 아들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나 ‘황룡사9층목탑찰주본기’에 따르면 황룡사구층목탑을 건축할 당시인 645년경까지 김용수의 이름이 나타나고 있어 《화랑세기》의 기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3.1. 풍월주 및 기타 행적
622년(진평왕 44년) 이찬(伊飡)의 관등에 있었으며, 내성사신(內省私臣)에 임명되었다. 629년에는 대장군이 되어 김서현, 김유신을 부장으로 이끌고 출진, 낭비성(娘臂城)을 함락시켰으며, 635년(선덕여왕 4년)에는 주현(州縣)을 돌아보며 위문하였다. 645년에는 황룡사구층목탑 건축을 주관하였다.
한편 학계에서 위서로 의심받는 《화랑세기》에는 김용춘과 김용수를 형제로 기록하고 있다. 《화랑세기》에 따르면 김용수는 13대 풍월주를 역임하였으며 선덕여왕의 남편이 되었으나 자식이 없어 사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황룡사9층목탑찰주본기’에 따르면 황룡사구층목탑을 건축할 당시인 645년경까지 김용수의 이름이 나타나고 있어 김용수가 요절하였다는 《화랑세기》의 기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