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조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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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응조는 일제강점기 만주국 군인으로 활동했으며, 대한민국 육군 준장으로 예편 후 제5대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이다. 강원도 고성군 출신으로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군 중위까지 진급했으며, 화북흥아청향군 총사령관을 역임했다. 해방 후에는 전라북도 경찰국장을 거쳐 육군에 특별 임관하여 수도사단 부사단장, 제22연대장, 원산 방위 사령관, 제101사단장 등을 역임했다. 1960년 제5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국회의원으로 활동했으며, 민족민주사회당을 창당하고 부통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1996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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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씨명김응조
다른 이름위정(위정)
출생일1909년 10월 14일
사망일1996년 9월 2일 (86세)
출생지강원도 고성
사망지경기도 시흥시 물왕동
묘소국립서울현충원 제3장군묘역 52호
군 경력
소속 조직"
20px
20px
만주국군"
최종 계급상위(만주국군)
준장(한국 육군)
기타 이력
기타 이력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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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1909년 10월 강원도 고성군에서 태어났다. 장창국에 따르면, 만주국군 시절 김부대라는 한국인 부대를 이끌고 공산군 토벌에 출동했을 때 아군을 적군으로 오인하여 교전했다는 기록이 있다. 후에 아군으로 밝혀졌음에도 화가 나서 공격을 계속했기 때문에, 항일 혐의 등으로 일본군에 투옥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2.1. 일제강점기 활동

만주 펑톈에 있는 봉천군관학교를 제4기로 졸업하고 만주국 군인이 되었다. 화북흥아청향군 총사령관을 지냈으며, 만주군 중위까지 진급했다. 1936년 9월 중앙육군훈련처 제4기를 졸업하고, 견습군관을 거쳐 같은 해 12월 기병 소위로 임관하여 국경 감시대에 부임했다. 만주국군 상위였지만, 화북 흥아청향군 총사령관·소장이라는 소문으로 귀국했다고 한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군 부문에 포함되었다.

2.2. 해방 이후 군 경력

태평양 전쟁 종전 후 귀국하여 전라북도 경찰국장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육군에 몸을 담았다. 한국 전쟁에는 수도사단 22연대장으로 참전하여 최전선에서 공을 세웠고, 보병 제101사단장, 중부지구 정비사령관, 2군 정보처장 등을 역임했다. 육군 준장으로 예편한 뒤 재향군인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1946년, 전라북도 경찰국장을 역임했으나, 같은 해 2월 말 불법 행위를 범하고 죄수를 학대한 혐의로 해임되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 육군에 특별 임관하여 중령(군번 16879번)으로 수도사단 부사단장을 지냈다. 1950년 8월 17일에는 제22연대장, 1950년 10월 1일에는 원산 방위 사령관(대령)을 역임했다. 1951년에는 제101사단장, 1953년에는 제2군 사령부 창설 위원을 지냈다. 1954년에는 제2군 정보처장 준장을 역임했고, 1955년 11월 3일에 예비역으로 편입되었다. 1959년에는 재향군인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필립 찰스 하비브의 보고서에 따르면, 명민함에도 불구하고 고압적인 행동과 거만한 성격 때문에 장관으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고 한다. 한 감리교 목사가 김응조의 자택 근처에 있는 교회의 종을 쳤다는 이유로 구타당한 사건이 발생했고, 이에 미국 선교사가 불만을 제기하여 해고되었다고 한다.

2.3. 정치 활동

대한민국 제6대 총선에 고향 고성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국회20년》 책자에는 박력과 투지가 가득한 인물이라는 평이 실려 있다.

1960년 7월 제5대 총선에서 고성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민족민주사회당을 창설했다. 1960년 3월의 제4대 대통령 선거가 무효가 됨에 따라, 같은 해 8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민족민주사회당의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1981년, 민권당 전국구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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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명선거구정당득표수득표율순위당락비고
제4대 총선강원 고성군무소속3,003표25.33%2위낙선
제5대 총선강원 고성군무소속2,373표19.75%1위당선초선
제7대 총선강원 속초시·양양군·고성군자유당2,766표4.14%3위낙선
제11대 총선강원 속초시·양구군·인제군·고성군민권당8,888표9.28%3위낙선

2.4. 사망

1996년 9월 2일 오전 10시에 노환으로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3. 친일 논란

장창국에 따르면, 만주국군 시절 김부대라는 한국인 부대를 이끌고 공산군 토벌에 출동했을 때 아군을 적군으로 오인하여 교전했다는 기록이 있다. 후에 아군으로 밝혀졌음에도 화가 나서 공격을 계속했기 때문에, 항일 혐의 등으로 일본군에 투옥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4. 역대 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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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선거 종류소속 정당득표수 (득표율)순위당락비고
1958년총선무소속3,003표 (25.33%)2위낙선
1960년총선무소속2,373표 (19.75%)1위당선초선
1967년총선자유당2,766표 (4.14%)3위낙선
1981년총선민권당8,888표 (9.28%)3위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