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조 (군인)
1. 개요
김응조는 일제강점기 만주국 군인으로 활동했으며, 대한민국 육군 준장으로 예편 후 제5대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이다. 강원도 고성군 출신으로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군 중위까지 진급했으며, 화북흥아청향군 총사령관을 역임했다. 해방 후에는 전라북도 경찰국장을 거쳐 육군에 특별 임관하여 수도사단 부사단장, 제22연대장, 원산 방위 사령관, 제101사단장 등을 역임했다. 1960년 제5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국회의원으로 활동했으며, 민족민주사회당을 창당하고 부통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1996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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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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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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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출생 -
이병철
대한민국 기업인인 이병철은 삼성그룹의 창업주로, 무역업을 시작으로 제조업, 전자산업, 금융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여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
1909년 출생 -
딘 러스크
딘 러스크는 미국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으로, 케네디 및 존슨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하며 쿠바 미사일 위기 외교적 해결 지지, 베트남 전쟁 미국 군사 개입 확대 옹호 등의 활동을 했다. -
대한민국 육군 준장 -
김종필
5·16 군사정변 주역이자 초대 중앙정보부장, 두 차례 국무총리를 지낸 김종필은 한일 국교 정상화 기여와 '김-오히라 메모' 논란, 9선 국회의원, DJP 연합을 통한 총리 재임 등 한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권위주의 시대의 어두운 면과 지역주의 정치의 상징으로도 평가받는 정치인이다. -
대한민국 육군 준장 -
권정달
권정달은 육군 출신 대한민국 정치인으로, 제5공화국에서 활동하며 국회의원을 지냈고, 김영삼 정부 이후에도 정계 활동을 이어갔으며, 한국자유총연맹 총재를 역임했다.
2. 생애
1909년 10월 강원도 고성군에서 태어났다. 장창국에 따르면, 만주국군 시절 김부대라는 한국인 부대를 이끌고 공산군 토벌에 출동했을 때 아군을 적군으로 오인하여 교전했다는 기록이 있다. 후에 아군으로 밝혀졌음에도 화가 나서 공격을 계속했기 때문에, 항일 혐의 등으로 일본군에 투옥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2.1. 일제강점기 활동
만주 펑톈에 있는 봉천군관학교를 제4기로 졸업하고 만주국 군인이 되었다. 화북흥아청향군 총사령관을 지냈으며, 만주군 중위까지 진급했다. 1936년 9월 중앙육군훈련처 제4기를 졸업하고, 견습군관을 거쳐 같은 해 12월 기병 소위로 임관하여 국경 감시대에 부임했다. 만주국군 상위였지만, 화북 흥아청향군 총사령관·소장이라는 소문으로 귀국했다고 한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군 부문에 포함되었다.
2.2. 해방 이후 군 경력
태평양 전쟁 종전 후 귀국하여 전라북도 경찰국장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육군에 몸을 담았다. 한국 전쟁에는 수도사단 22연대장으로 참전하여 최전선에서 공을 세웠고, 보병 제101사단장, 중부지구 정비사령관, 2군 정보처장 등을 역임했다. 육군 준장으로 예편한 뒤 재향군인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1946년, 전라북도 경찰국장을 역임했으나, 같은 해 2월 말 불법 행위를 범하고 죄수를 학대한 혐의로 해임되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 육군에 특별 임관하여 중령(군번 16879번)으로 수도사단 부사단장을 지냈다. 1950년 8월 17일에는 제22연대장, 1950년 10월 1일에는 원산 방위 사령관(대령)을 역임했다. 1951년에는 제101사단장, 1953년에는 제2군 사령부 창설 위원을 지냈다. 1954년에는 제2군 정보처장 준장을 역임했고, 1955년 11월 3일에 예비역으로 편입되었다. 1959년에는 재향군인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필립 찰스 하비브의 보고서에 따르면, 명민함에도 불구하고 고압적인 행동과 거만한 성격 때문에 장관으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고 한다. 한 감리교 목사가 김응조의 자택 근처에 있는 교회의 종을 쳤다는 이유로 구타당한 사건이 발생했고, 이에 미국 선교사가 불만을 제기하여 해고되었다고 한다.
2.3. 정치 활동
대한민국 제6대 총선에 고향 고성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국회20년》 책자에는 박력과 투지가 가득한 인물이라는 평이 실려 있다.
1960년 7월 제5대 총선에서 고성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민족민주사회당을 창설했다. 1960년 3월의 제4대 대통령 선거가 무효가 됨에 따라, 같은 해 8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민족민주사회당의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1981년, 민권당 전국구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