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록 (미학자)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김정록은 일제강점기 말 남작 작위를 세습하고 친일 행위 논란에 휩싸였으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은 미학자이다. 만철실업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에서 동양학과 문학을 수학한 후, 혜화전문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교수를 역임하며 동양미학을 연구했다. 시인 김지하와 유홍준이 그의 제자이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김정록 (미학자)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김정록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작위조선귀족 남작
가문경주 김씨
출생일1907년
출생지대한제국 한성부
사망일1982년 11월 18일
부모친조부: 김춘희
경력서울대학교 미학과 석좌교수
조선귀족 남작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대한민국의 미학자 - 진중권
    대한민국의 미학자이자 작가, 평론가, 대학교수인 진중권은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철학 박사 과정을 밟았으며, 여러 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하며 미학, 예술, 정치, 사회에 대한 저술 및 번역 활동과 진보 정당 활동을 해왔다.
  • 대한민국의 미학자 - 박정자 (교수)
    박정자는 미셸 푸코와 장 폴 사르트르 연구를 통해 인문학 대중화에 기여한 한국의 대표적인 인문학자이며, 푸코를 국내에 처음 소개하고 사르트르 철학 입문서를 저술하는 등 학술적 성과와 대중적 인지도를 동시에 얻었다.
  • 조선남작 - 김가진
    김가진은 조선 말기 문신이자 대한제국 관료였으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서얼 출신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해 개화파 관료로서 독립협회에서 활동, 을사조약에 반대하고 대한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3·1 운동 후 상하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 조선남작 - 이항구
    이항구는 대한제국 시기 관료를 지냈고 일제강점기 이왕직 차관과 장관을 역임했으며, 《고종실록》 편찬 당시 편찬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일제 식민사관에 부역했다는 비판을 받아 친일반민족행위 관련 명단에 포함되었고, 그의 아버지 이완용 또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정경심
    정경심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복역 후 가석방된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대학교수였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서형원
    서형원은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거쳐 과천시의회 의원 및 의장을 역임하고 녹색당 풀뿌리정치지원단장으로 활동한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2. 생애

김정록은 한성부 출신으로, 김홍집의 조카인 할아버지 김춘희는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 남작 작위를 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김춘희가 1926년 사망하자 작위는 아들 김교신을 거쳐 1932년 김정록에게 세습되었다.

광복 후 1949년 김정록은 남작 작위 세습과 경복회 재산 수령 사실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자수, 조사받았다. 그는 중국 유학 중 감시를 받아 작위를 거부하면 사상불온으로 몰릴 수 있어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반민특위는 그가 순진한 학자이며, 작위 세습을 알리지 않아 주변에서 몰랐다는 점 등을 들어 불기소 처분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미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과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2.1. 유년 시절 및 학업

한성부에서 태어나 1926년 만주 만철실업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배영전문학교 등에서 동양학과 문학을 공부했다. 이후 전문학교 교수를 지냈다.

2.2. 교수 활동

1926년 만주 만철실업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배영전문학교 등에서 동양학과 문학을 수학했다. 이후 전문학교, 1939년 동국대학교 전신인 혜화전문학교 교수를 지냈으나 신병으로 사임했다. 서울대학교 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동양미학을 연구했다. 김지하 시인이 존경하는 스승으로 김정록을 꼽았으며, 유홍준도 그의 제자로서 영향을 받았다.

3. 친일 행적 논란

김정록은 한성부 출생으로 1926년 만주에서 만철실업학교를 졸업한 뒤 중국에서 동양학과 문학을 수학하고 전문학교 교수를 지냈다. 할아버지 김춘희는 김홍집의 조카로,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 남작 작위를 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인물이다. 김춘희의 작위는 세습되는 것이었다.

이후 김정록은 서울대학교 미학과 교수가 되었고, 김지하와 유홍준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과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3.1. 작위 세습과 반민특위 조사

김정록의 할아버지 김춘희는 조선 말기의 정치인인 김홍집의 조카였다.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 남작 작위를 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김춘희가 받은 조선귀족 작위는 세습되는 것이어서, 1926년 사망한 후 아들 김교신을 거쳐 1932년 7월 경에 손자인 김정록이 습작하였다.

남작 작위를 세습하고 조선귀족 단체인 경복회에서 재산을 수령한 사실이 있어 광복 후인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에 자수하여 조사를 받았다. 당시 김정록은 1939년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혜화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했다가 신병으로 사임한 상태였다.

김정록은 반민특위 조사에서 당시 중국 유학생이라 감시를 받고 있었고, 작위를 물려받지 않으면 사상불온으로 낙인찍힐 수 있어 어쩔 수 없이 습작했다고 해명하였다. 반민특위는 김정록이 순진한 학자풍의 인물로 남을 모함하지 않으며, 습작 사실 자체를 외부에 알리지 않아 주위에서 그가 남작 신분인 것을 알지 못했다는 점 등을 들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3.2. 친일인명사전 등재 논란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습작 부문에 친조부와 함께 포함되었으며,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김정록은 반민특위 조사에서 당시 중국 유학생이라 감시를 받고 있었는데, 작위를 물려받지 않으면 사상불온이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어 어쩔 수 없이 작위를 세습했다고 해명했다. 반민특위는 김정록이 순진한 학자풍의 인물로 남을 모함하지 않으며, 작위 세습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아 주위에서 그가 남작 신분인 것을 알지 못했다는 점 등을 들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4. 평가

(참조할 원문 소스가 비어있으므로 내용을 생성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