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종가 유물 일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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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정희 종가 유물 일괄은 월성위 김한신 관련 유물과 김정희 필적인 『신해년책력』의 김정희 필적을 포함한다. 월성위 김한신 관련 유물에는 김한신의 시집 『매헌난고』, 일지 『교사시말』, 행장 『월성위행장』, 영조 어필 묘표와 제문, 숙빈 최씨 시책문 등이 있으며, 서예사 연구에 가치가 있다. 『신해년책력』에는 김정희의 필적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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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희 종가 유물 일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 유형 | 보물 |
| 지정 번호 | 547-2 |
| 지정일 | 2006년 7월 18일 |
|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로 44 추사유물전시관 |
| 시대 | 조선시대 |
| 소유자 | 공유 |
| 수량 | 10점, 표제 1점, 유묵 15점 |
| 지도 | 대한민국 |
| 꼬리표 | 추사유물전시관 |
| 문화재청 ID | 12,05470200,50 |
2. 월성위 김한신 관련 유물
추사 김정희 고택에 전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 중 월성위 김한신(金漢藎, 1720~1758)과 관련된 유물 10점을 가리킨다.[1] 김한신은 영조의 둘째 딸인 화순옹주의 남편(부마)으로, 이 유물들은 김한신의 개인적인 기록과 당시 왕실과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들이다. 특히, 김한신 본인 및 영조의 글씨 등이 포함되어 있어 서예사 연구 자료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1] 이 유물들은 다음과 같다.
- '''『매헌난고(梅軒亂稿)』''': 김한신의 시집
- '''『교사시말(郊舍始末)』''': 김한신이 필사한 일지
- '''『월성위행장(月城尉行狀)』''': 아들 김이주가 기술한 김한신의 행장
- '''영조어필 월성위김한신묘표(英祖御筆 月城尉金漢藎墓表)''': 영조의 어필로 추정되는 김한신 묘표 제서
- '''월성위김한신묘표 음기(月城尉金漢藎墓表 陰記)''': 유척기가 기술하고 김이주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묘표 음기
- '''영조어제 화순옹주유제문(英祖御製 和順翁主諭祭文)''': 영조가 화순옹주에게 내린 제문
- '''숙빈최씨시책문(淑嬪崔氏諡冊文)''': 김한신이 필사한 영조의 모친 숙빈 최씨 시책문
- '''영조어필 춘축(英祖御筆 春祝)''': 영조의 어필
- '''영조어제어필 희우(英祖御製御筆 喜雨)''': 영조가 짓고 쓴 칠언절구
- '''영조어제어필 칠절(英祖御製御筆 七絶)''': 영조가 짓고 쓴 칠언절구
2. 1. 『매헌난고(梅軒亂稿)』
월성위 김한신의 시집(詩集)으로, 그가 13세부터 34세까지 지은 시들을 모아 엮은 것이다(총 20면). 『교사시말』과 함께 김한신 본인의 자필(自筆)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김한신의 문집이 간행된 바 없고 다른 필사본도 거의 전해지지 않아, 『월성위행장』과 더불어 김한신 연구에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은 유물로 평가받는다.[1]2. 2. 『교사시말(郊舍始末)』
『교사시말(郊舍始末)』은 월성위 김한신이 직접 필사한 1747년 7월 12일부터 22일까지의 일지(日誌)이다.[1] 총 32면으로 구성되어 있다.[1]2. 3. 『월성위행장(月城尉行狀)』
김한신의 아들 김이주(金頤柱)가 아버지의 행적을 기록한 행장(行狀)이다.[1] 글씨는 김이주가 직접 쓴 것으로 알려진 ‘월성위김한신묘표 음기’와는 확연히 달라 다른 사람의 필적으로 여겨진다.[1]2. 4. 영조어필 월성위김한신묘표(英祖御筆 月城尉金漢藎墓表)
김한신 묘표의 제목(題書) 부분으로, 영조(英祖)의 글씨(어필)로 추정된다.[1] 현재 충청남도 예산군에 있는 김한신 묘표의 앞면에는 “유명조선수록대부월성위…지묘 화순옹주부좌(有明朝鮮綏祿大夫月城尉…之墓 和順翁主祔左)”라고 새겨져 있고, 마지막에는 작은 글씨로 “망칠지년 문체이사(望七之年 抆涕以寫)”라는 8글자가 새겨져 있다.[1] 그러나 이 필사본 유물에는 “유명조선(有明朝鮮)” 부분과 마지막의 8글자가 빠져 있어 실제 묘표와 차이를 보인다.[1]2. 5. 월성위김한신묘표 음기(月城尉金漢藎墓表 陰記)
유척기 兪拓基zho (1691~1767)가 기술한 김한신 묘표의 음기(陰記)로, 글씨는 김한신의 아들 김이주 金頤柱zho가 쓴 것으로 여겨진다.[1] 현재 충청남도 예산군에 있는 김한신 묘표의 음기에는 “불초남이주서 숭정기원후삼신사 월 일립(不肖男頤柱書 崇禎紀元後三辛巳 月 日立)”이라고 새겨져 있어, 김이주가 직접 쓰고 1761년(영조 37년)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1] 이 필사본 유물은 실제 묘표의 글씨와 서풍(書風)은 동일하지만, 글자의 형태(자형, 字形)가 다른 경우가 일부 발견된다. 또한, “일행(一行)ㆍ이행(二行)ㆍ삼행(三行)…”과 같이 각 행의 순서를 표시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김이주가 필사하여 남긴 또 다른 부본(副本)일 것으로 추정된다.[1]2. 6. 영조어제 화순옹주유제문(英祖御製 和順翁主諭祭文)
1758년(영조 34년) 3월 15일에 영조가 호상중관(護喪中官) 이세태(李世泰)를 시켜 둘째 딸인 화순옹주의 영전에 바치게 한 제문이다. 글씨를 쓴 사람(서자, 書者)은 누구인지 알려져 있지 않다.[1]2. 7. 숙빈최씨시책문(淑嬪崔氏諡冊文)
1756년(영조 32년)에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1670년 ~ 1718년)에게 '휘덕(徽德)'이라는 시호를 추가로 올릴 때, 김한신이 직접 필사한 책문(冊文)이다. 이 책문은 절첩장(折帖粧) 형태이며, 총 8면으로 구성되어 있다.[1]2. 8. 영조어필 춘축(英祖御筆 春祝)
영조가 봄을 맞아 축하하는 의미로 직접 쓴 글씨이다.[1] 종이에 먹으로 쓴 것(지본묵서)으로, 김정희 종가 유물 일괄의 일부이다.[1]2. 9. 영조어제어필 희우(英祖御製御筆 喜雨)
영조가 가뭄 끝에 내리는 반가운 비를 기뻐하며 직접 쓴 칠언절구 1수이다.[1] 종이에 먹으로 쓴 것(지본묵서)으로, 김정희 종가 유물 일괄 중 월성위 김한신 관련 유물에 포함된다.[1]2. 10. 영조어제어필 칠절(英祖御製御筆 七絶)
영조가 직접 짓고 쓴 칠언절구이다. 종이에 먹으로 쓰여 있다.[1]3. 『신해년책력(辛亥年冊曆)』의 김정희 필적
김정희가 1851년(철종 2)에 사용한 『신해년책력(辛亥年冊曆)』에 포함된 다양한 필적들을 일컫는다. 이 필적들은 시고(詩稿), 서간(書簡), 제서(題書), 임서(臨書) 등 여러 형태로 남아 있어, 김정희의 서예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1]
3. 1. 개요
추사 김정희 고택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들로, 월성위 김한신 관련 유물 10점과 김정희가 사용했던 『신해년책력』에 포함된 필적 17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유물들은 서예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1]'''월성위 김한신 관련 유물 (10점)'''
| 유물명 | 설명 |
|---|---|
| 『매헌난고(梅軒亂稿)』 | 김한신의 시집으로, 13세부터 34세까지 지은 시를 모은 것이다. 김한신의 자필로 추정된다. 아직 김한신의 문집이 간행되지 않았고 다른 필사본도 드물어 가치가 높다.[1] |
| 『교사시말(郊舍始末)』 | 김한신이 1747년 7월 12일부터 22일까지의 일을 기록한 일지이다. 김한신의 자필로 추정된다.[1] |
| 『월성위행장(月城尉行狀)』 | 아들 김이주(金頤柱)가 기술한 김한신의 행장이다. 글씨는 김이주의 다른 필적과 달라 다른 사람이 쓴 것으로 보인다.[1] |
| 영조어필 월성위김한신묘표 | 김한신 묘표의 제서(題書)로, 영조의 어필로 추정된다. 현재 예산에 있는 실제 묘표의 글씨와 일부 차이가 있다.[1] |
| 월성위김한신묘표 음기 | 유척기(兪拓基, 1691~1767)가 짓고 김한신의 아들 김이주가 쓴 것으로 여겨지는 묘표의 음기이다. 실제 묘표 음기와 서풍은 같으나 글자 모양이 다른 경우가 있어, 김이주가 필사한 다른 부본(副本)으로 추정된다.[1] |
| 영조어제 화순옹주유제문 | 1758년(영조 34) 영조가 둘째 딸 화순옹주의 영전에 내린 제문이다. 쓴 사람은 알려지지 않았다.[1] |
| 숙빈최씨시책문(淑嬪崔氏諡冊文) | 1756년(영조 32)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에게 휘덕(徽德)이라는 시호를 더할 때 김한신이 필사한 책문(冊文)이다. (총 8면의 절첩장 형태)[1] |
| 영조어필 춘축(英祖御筆 春祝) | 영조의 어필. (종이에 먹으로 씀)[1] |
| 영조어제어필 희우(英祖御製御筆 喜雨) | 영조가 짓고 쓴 칠언절구 시. (종이에 먹으로 씀)[1] |
| 영조어제어필 칠절(英祖御製御筆 七絶) | 영조가 짓고 쓴 칠언절구 시. (종이에 먹으로 씀)[1] |
'''『신해년책력(辛亥年冊曆)』의 김정희 필적'''
김정희가 사용했던 1851년(철종 2)의 『신해년책력』 앞표지에는 예서체로 쓰인 "신해칠정(辛亥桼正)"이라는 제목과 "길상여의관(吉羊如意館)"이라는 소장처 표시가 있다. "신해칠정(辛亥桼正)"은 책력 내용으로 보아 "신해년(1851년)의 칠정(七政, 해·달과 오행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책력 내부에는 김정희의 다양한 서체를 보여주는 시고(詩稿), 서간(書簡), 제서(題書), 임서(臨書) 등 총 17점의 필적이 붙어 있다. 이 필적들은 김정희의 서예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 중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해서대련'과 '전서'를 제외한 15점이다.[1]
3. 2. 주요 필적
김정희가 사용했던 『신해년책력』에는 그의 다양한 필적이 남아있다.[1] 이 책력의 앞표지에는 "신해칠정(辛亥桼正)"이라는 제목과 "길상여의관(吉羊如意館)"이라는 소장처 이름이 예서로 쓰여 있다. 책력 제1면에 적힌 "대청함풍원년 세차신해 칠정경위 숙도오성 복견목록(大淸咸豊元年 歲次辛亥 七政經緯 宿度五星 伏見目錄)"이라는 내용을 통해, "신해칠정(辛亥桼正)"은 "신해칠정(辛亥七政)" 즉, 신해년(1851년, 철종 2년)의 천문 현상 등을 기록한 책력임을 알 수 있다.[1]이 책력에는 시고(詩稿, 시의 초고), 서간(書簡, 편지), 제서(題書, 그림이나 글씨에 부기하는 글), 임서(臨書, 다른 사람의 글씨를 보고 베껴 쓰는 것) 등 김정희의 필적 17점이 붙어 있다. 이 유물들은 김정희의 서예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다만,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대상은 이 중 ‘해서대련’과 ‘전서’를 제외한 15점이다.[1] 구체적인 15점의 목록은 현재 공개된 자료에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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