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회 (1923년)
1. 개요
김종회는 1923년 충청남도 대덕군 출신으로, 중앙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대한청년단 대덕군 단장과 동국대학교 강사를 역임했으며, 1950년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덕 선거구 무소속으로 당선되어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1953년 영도 자택에서 급사했으며, 사인은 심장마비로 추정되었으나 타살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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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5·16 군사정변 주역이자 초대 중앙정보부장, 두 차례 국무총리를 지낸 김종필은 한일 국교 정상화 기여와 '김-오히라 메모' 논란, 9선 국회의원, DJP 연합을 통한 총리 재임 등 한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권위주의 시대의 어두운 면과 지역주의 정치의 상징으로도 평가받는 정치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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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택
정희택은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으로 검사, 중앙수사국장 등 요직을 거쳐 제11대 국회의원, 감사원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언론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권위주의 정권과의 협력에 대한 비판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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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이완구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국회의원과 충청남도지사를 지냈으며 국무총리를 역임했으나 성완종 리스트 사건 연루 의혹으로 사퇴 후 혈액암으로 사망했다.
2. 생애
김종회는 충청남도 대덕군 출신으로, 중앙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대한청년단 대덕군 단장과 동국대학교 강사를 역임했다. 1950년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1951년 3월 9일부터 12월 19일까지, 1952년 1월 24일부터 12월 19일까지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1953년 5월 27일 영도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추정되는 급사로 사망했다. 이복 형은 타살 의혹을 제기하며 부검을 의뢰했으나, 위액에서 독성 성분은 발견되지 않았다.
2.2. 정치 활동
김종회는 충청남도 대덕군 출신으로, 중앙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대한청년단 대덕군 단장과 동국대학교 강사를 역임했다. 1950년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3년 5월 27일 영도 자택에서 급사했다. 5월 26일 유세를 마치고 귀가하여 잠자리에 들기 전 "손발이 조금 아프다"고 말했고, 다음 날 아침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고 부인이 진술했다. 사인은 심장마비로 추정된다. 이복 형은 타살 의혹을 제기하며 부검을 의뢰했으나, 위액에서 독성 성분은 발견되지 않았다.
2.2.1. 제2대 국회의원
김종회는 1950년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충청남도 대덕군 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8,404표(28.34%)를 얻어 당선되었다. 1951년 3월 9일부터 12월 19일까지, 그리고 1952년 1월 24일부터 12월 19일까지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 선거명 | 직책명 | 대수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당락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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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대 총선 | 국회의원 | 2대 | 무소속 | 8,404표 | 28.34% | 1위 | 당선 | 초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