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방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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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천 방초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크기의 중층 누각형식 팔작지붕 정자이다. 1625년 이정복이 조상을 추모하고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건립했으며, 두 차례 중건되었다. 자연석 온돌과 가변적 공간 구성을 통해 계절 변화에 대응하는 건축적 특징을 갖는다. 방초정 앞 최씨담은 방지쌍원도 형식을 간직한 정원 유구로 수질 정화 기능을 하며, 임진왜란과 관련된 역사적 배경을 지닌다. 1788년 중건 당시의 건축 양식을 잘 유지하고 있어 보물로 지정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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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방초정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김천 방초정 | |
![]() | |
종류 | 보물 |
지정 번호 | 2048 |
지정일 | 2019년 12월 30일 |
주소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 83번지 |
시대 | 조선시대 (1625년 건립, 1788년 중건) |
소유자 | 미상 |
참고 사항 | 구조 / 형식 / 수량 : 목조 / 정면3칸‧측면2칸, 팔작지붕, 이익공 / 1동 |
면적 | 미상 |
수량 | 1동 |
전승지 | 미상 |
전승자 | 미상 |
설명 | 미상 |
웹사이트 | 미상 |
문화재청 ID | 12,20470000,37 |
구 문화재 정보 | |
종류 | 유형문화재 |
지정 번호 | 46 |
지정일 | 1974년 12월 10일 |
해제일 | 2019년 12월 30일 |
문화재청 ID | 21,00460000,37 |
2. 역사
조선 선조(재위 1567∼1608) 때 이정복이 조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2층 누각이다. 몇 차례 화재와 홍수로 파손된 것을 정조 11년(1787년)에 다시 지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1]
당시 중수기와 중건기, 상량문 등에 담긴 내용으로 건립부터 현재까지 건축 내력을 비교적 충실하게 추적할 수 있다. 정자의 위치, 형식, 건립 동기 등을 통해 씨족 마을을 운영해 나가는 당시 문중의 공동체적 삶의 단면도 함께 엿볼 수 있다.[1]
방초정은 후대에 보수공사를 통해 몇몇 부재들이 교체되기는 하였지만, 기둥 상부에 결구된 이익공 포작과 충량의 결구 및 가구형식 등 전체적인 건축 수법이 대체로 조선 후기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1788년 중건될 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1]
2. 1. 건립 배경
연안 이씨 11세손 이정복이 조상을 추모하고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1625년 원터마을에 세운 정자로, 두 차례의 중건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1]2. 2. 화순 최씨와 최씨담
화순 최씨와 최씨담은 다음과 같은 관련이 있다. 방초정 앞 최씨담은 현재까지 알려진 국내 연못 중 방지쌍원도(方池雙圓島)의 전형을 오롯이 간직한 유일한 정원 유구이다. 마을과 감천 사이에 놓여 마을의 오수나 유출수를 재처리 여과하는 수질 정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생태 환경적 기능도 함께 지니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최씨담은 임진왜란 때 화순 최씨(방초정 건립자 이정복의 처)가 친정에서 시가로 오다가 왜병에 쫓기어 정절을 지키려고 이 못에 투신했고, 노비 석이(石伊)도 뒤를 따라 투신했는데 석이의 비석이 근래 이 못에서 발견되었다.[1]
2. 3. 중건과 이의조
1625년 연안 이씨 11세손 이정복이 조상을 추모하고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원터마을에 방초정을 세웠다. 이후 두 차례의 중건 과정을 거쳤는데, 특히 현재의 정자는 영조, 정조 때 영남 노론 학단을 대표하는 예학자인 이의조가 중건한 것이다. 이의조는 가례증해를 발간하기도 했다.[1]3. 건축
김천 방초정은 1625년에 처음 건립된 이후 두 차례 중건되었다. 중수기, 중건기, 상량문 등을 통해 건축 내력을 자세히 알 수 있다.[1] 정자의 위치, 형식, 건립 동기 등에서 당시 문중의 공동체적 삶을 엿볼 수 있다.[1] 특히, 현재 정자는 영조·정조 때 영남 노론 학단의 예학자이자 《가례증해》를 발간한 이의조가 중건하여 역사적 가치가 높다.[1]
방초정 앞 최씨담(崔氏潭)은 방지쌍원도(方池雙圓島)의 전형을 간직한 유일한 정원 유구이다. 마을과 감천 사이에서 오수나 유출수를 재처리하는 생태 환경적 기능도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1] 최씨담은 임진왜란 때 이정복의 처 화순 최씨가 정절을 지키기 위해 투신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1]
3. 1. 건물 구조
조선 선조(재위 1567∼1608) 때 이정복이 조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2층 누각이다. 몇 차례의 화재와 홍수로 파손된 것을 정조 11년(1787)에 다시 지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1]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2층 다락집으로, 2층 가운데 1칸을 방으로 만들어 꾸민 것이 특이하다. 가운데 부분에 사이기둥을 세우고 벽을 쳐서 문짝을 단 것인데, 뒷날 몇 가지의 구조물들이 첨가되어 구조상 어색한 점도 있다.[1]
많은 시인들이 정자에 올라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한 시가 건물 안에 걸려있다.[1]
건물·연못·나무의 배치 등은 우리나라 정원의 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1]
김천 방초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크기의 이익공계 5량가 겹처마 팔작지붕 집으로 마룻바닥을 일정하게 높여 지은 중층 누각형식의 정자이다. 연안이씨 11세손 이정복이 조상을 추모하고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1625년에 원터마을에 세운 정자로 두 차례의 중건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1]
호박돌과 같은 자연석을 층층이 쌓아 구들과 고래를 둔 온돌을 방 하층부에 만든 다음 굴뚝과 아궁이를 앞과 뒤에 각각 설치하여 난방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사면이 개방된 정자는 통상적으로 겨울에 이용 효율이 떨어지는 데 반해 계절의 변화와 기능의 요구에 맞추어 마루와 방을 통합하거나 분리하여 쓸 수 있도록 한 방초정의 가변적 구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1]
방초정은 후대 이루어진 보수공사를 통해 몇몇 부재들이 교체되기는 하였지만, 기둥 상부에 결구된 이익공 포작과 충량의 결구 및 가구형식 등 전체적인 건축 수법이 대체로 조선 후기의 양식을 따르고 있어 1788년 정자가 중건될 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한 채 보존상태도 양호하여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의미에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가치가 있다.[1]
3. 2. 온돌과 가변적 공간 구성
방초정은 사면이 개방되어 겨울에는 활용도가 떨어지는 일반적인 정자와 달리, 계절 변화와 필요에 따라 마루와 방을 통합하거나 분리하여 사용할 수 있는 가변적 공간 구성이 돋보인다.[1] 이는 호박돌과 같은 자연석을 쌓아 구들과 고래를 설치하고, 앞뒤에 굴뚝과 아궁이를 설치하여 난방이 가능하도록 한 온돌 구조 덕분이다.4. 정원
방초정 앞에는 커다란 연못이 꾸며져 있으며 그 안에 2개의 섬이 있다. 건물, 연못, 나무의 배치는 우리나라 정원의 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1]
4. 1. 방초정과 최씨담
조선 선조(재위 1567∼1608) 때 이정복이 조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2층 누각이다. 몇 차례의 화재와 홍수로 파손된 것을 정조 11년(1787)에 다시 지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1]방초정 앞 최씨담(崔氏潭)은 현재까지 알려진 국내 연못 중 방지쌍원도(方池雙圓島)의 전형을 오롯이 간직한 유일한 정원 유구이다. 마을과 감천 사이에 놓여 마을의 오수나 유출수를 재처리, 여과하는 수질 정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생태 환경적 기능도 함께 지니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최씨담은 임진왜란 때 화순 최씨(방초정 건립자 이정복의 처)가 친정에서 시가로 오다가 왜병에게 쫓기어 정절을 지키려고 이 못에 투신했고, 노비 석이(石伊)도 뒤를 따라 투신했는데, 근래 이 못에서 석이의 비석이 발견되었다.[1]
4. 2. 생태 환경적 기능
방초정 앞 최씨담(崔氏潭)은 현재까지 알려진 국내 연못 중 방지쌍원도(方池雙圓島)의 전형을 오롯이 간직한 유일한 정원 유구이다. 마을과 감천 사이에 놓여 마을의 오수나 유출수를 재처리 여과하는 수질 정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생태 환경적 기능도 함께 지니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1]5. 문화적 가치
김천 방초정은 마룻바닥을 높게 지은 중층 누각형식의 정자로, 건축 내력을 비교적 자세히 추적할 수 있다. 정자의 위치, 형식, 건립 동기 등을 통해 당시 문중의 공동체적 삶을 엿볼 수 있다.[1] 또한 사면이 개방된 정자는 겨울철 이용 효율이 떨어지는데, 방초정은 계절 변화와 기능 요구에 맞춰 마루와 방을 통합하거나 분리하여 쓸 수 있도록 가변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뛰어나게 평가된다.
방초정 앞 최씨담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방지쌍원도(方池雙圓島)의 전형을 간직한 정원 유구이다. 마을과 감천 사이에 위치하여 마을의 오수나 유출수를 재처리하는 수질 정화 시스템을 갖춘 생태 환경적 기능을 지녀 학술적 가치가 높다.[1] 최씨담에는 임진왜란 때 정절을 지키기 위해 투신한 건립자 이정복의 처 화순 최씨와 노비 석이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5. 1. 보물 지정
김천 방초정은 1625년에 건립된 정자로, 두 차례의 중건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1] 기둥 상부에 결구된 이익공 포작과 충량의 결구 및 가구형식 등 전체적인 건축 수법이 조선 후기의 양식을 따르고 있어, 1788년 중건 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1] 보존 상태도 양호하여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가치가 높아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5. 2. 씨족 사회와 노론 학풍
연안 이씨 11세손 이정복이 조상을 추모하고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1625년에 방초정을 세웠다. 현 방초정 중건에 참여한 이의조는 영·정조 때 영남 노론 학단을 대표하는 예학자로, 가례증해를 발간한 인물이다. 이러한 사실은 방초정의 역사적 가치를 높게 평가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1]참조
[1]
간행물
문화재청고시제2019-176호(강릉 경포대 등 10건의 누·정 문화재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
http://gwanbo.mois.g[...]
관보(정호)
2019-12-30
[2]
간행물
경상북도 고시 제2020-7호, 《도지정문화재 지정해제 고시》
http://www.gb.go.kr/[...]
경상북도지사
2020-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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