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영은 일본 효고현 아마가사키시 출신의 재일 한국인 격투가로, 가라테를 시작하여 1990년대 K-1 무대에서 활약했다. 가라테 선수 시절 가라테 월드컵 우승, UKF 세계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등을 기록했고, 1993년 킥복싱으로 전향하여 K-1에서 활동하며 K-1 그랑프리 준우승, WMTC 세계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에 올랐다. 2000년 은퇴 후 2006년부터 종합격투기 선수로 활동하며 HERO'S, DREAM 등에서 경기를 가졌으며, 2006년과 2007년에는 최홍만의 K-1 선수 생활을 지도했다. 2012년 오사카에서 체육관을 운영했으나 2017년 임대료 미납으로 강제 퇴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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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은 1970년 일본효고현아마가사키시에서 재일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권유로 가라테 도장에 다니게 되었으나,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하여 6학년 때 가라테를 그만두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축구 선수로 활동하며 전국 대회 우승을 경험하기도 했다.[1] 고베 조선고등학교 시절 복싱을 배우고 싶어했으나 부모님의 반대로 학교 가라테부에 들어갔다. 조선대학교에 진학해서도 가라테부에서 활동했다.[2]
대학교 재학 중 사토 도장의 대회에 출전한 것을 계기로, 이시이 카즈요시에게 스카우트되어 졸업 후 정도회관에 입문하게 되었다.[2] 1992년부터 1995년까지 가라테 월드컵과 재팬 오픈에서 여러 차례 입상했다. (자세한 내용은 하위 섹션 '가라테 주요 전적' 참조)
2. 1. 가라테 주요 전적
【결승】
1995년 10월 8일
○
무사시
재연장 R 종료 판정 5-0
가라테 월드컵 '95 【준결승】
1995년 10월 8일
○
펠릭스 나토마자
본선 종료 판정 5-0
가라테 월드컵 '95 【준준결승】
1995년 10월 8일
○
토노오카 마사노리
연장 R 종료 판정 5-0
가라테 월드컵 '95 【3회전】
1995년 10월 8일
×
사타케 마사아키
연장 R 0:43 왼쪽 상단 무릎차기
가라테 월드컵 '93 풍림화산 "불의 장" 【준결승】
1993년 10월 3일
○
마이클 톰슨
재연장 R 종료 체중 판정
가라테 월드컵 '93 풍림화산 "불의 장" 【준준결승】
1993년 10월 3일
○
타마시로 아츠시
본선 종료 판정 5-0
가라테 월드컵 '93 풍림화산 "불의 장" 【1회전】
1993년 10월 3일
○
마이클 톰슨
재연장 R 종료 판정 2-0
K-1 GRAND PRIX '93 【스피릿 가라테 룰】
1993년 4월 30일
○
와다 하루로
1R 0:59 KO (오른쪽 뒤돌려차기)
성전 〜SANCTUARY I〜 【풀 컨택트 가라테 룰】
1993년 3월 30일
○
이나가키 카츠오미
1R KO
제2회 토와배 쟁탈 KARATE JAPAN OPEN TOURNAMENT 【3회전】
1993년 1월 31일
3. 킥복싱 전향 및 K-1 활약
1993년 가라테 선수에서 킥복싱으로 전향한 김태영은 UKF 세계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며 성공적인 데뷔를 알렸다.[4]1994년3월 4일 K-1 챌린지에서 참푸아 겍송릿을 꺾고 UKF 세계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후 K-1 무대에 진출하여 K-1을 대표하는 파이터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1995년7월 16일 K-3 그랑프리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5]1996년에는 WMTC 세계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1996년3월 30일 태국에서 열린 WMTC 세계 주니어 미들급 타이틀 결정전에서는 패배했지만, 같은 해 9월 1일 K-1 REVENGE '96에서 완롭 소 싸타판에게 승리하며 챔피언이 되었다.
2000년7월 30일, 스탠 더 맨을 꺾고 은퇴했다. 2007년 K-1에 복귀하여 K-1 월드 그랑프리 2007 홍콩에서 후지모토 유스케를 꺾는 등 활약했지만, 부상으로 결승에서 기권했다. 2009년 K-1 월드 그랑프리 2009 서울에서는 결승에 진출했지만, 싱 자이딥에게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김태영은 2006년 HERO'S를 통해 종합격투기 무대에 데뷔했다. 첫 경기에서 추성훈과 맞붙었으나, 경기 전 바셀린 도포 문제와 레프리 스톱 논란 끝에 판정패했다.[6] 김태영은 "완전히 기술이 들어간 게 아니라 15초 정도면 빠져나올 수 있었다. 처음 한순간 기술이 들어왔지만, 피했다. 추성훈이 기술이 들어갔다고 말하자 레퍼리가 시합을 멈췄다."라며 판정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6]
같은 해 12월 31일, K-1 다이너마이트 2006에서 이시자와 토키미츠를 상대로 1라운드 KO승을 거두며 종합격투기 첫 승을 신고했다. 2007년 7월에는 HERO'S 미들급 토너먼트 슈퍼 파이트에서 타무라 키요시를 판정으로 꺾었다.
2008년에는 DREAM 미들급 그랑프리에 출전, 1회전에서 미노와 이쿠히사를 판정으로 이겼으나, 2회전에서 젤그 갈레시치에게 팔꿈치 부상으로 TKO 패했다.
김태영은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최홍만의 K-1 선수 생활을 지도했다. 김태영이 최홍만의 코너맨으로 있는 동안 최홍만은 매우 발전했다. 그들은 거의 2년 동안 함께 훈련했는데, 이 기간 동안 최홍만은 9번의 경기를 치러 6승 3패를 기록했다. 3패는 제롬 르 밴너에게 두 번, 마이티 모에게 한 번 당한 것이다. 6번의 승리 중에는 K-1의 강자 세미 슐트를 이긴 것과, 마이티 모와의 재대결에서 승리한 것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김태영은 최홍만의 파이팅 스타일을 오른손잡이에서 왼손잡이로 바꿔 마이티 모의 강력한 오른손 오버핸드 공격을 더 잘 막을 수 있도록 했다.[1]
6. 은퇴 이후
김태영은 2000년7월 30일 스탠 더 맨을 판정으로 꺾고 선수 생활에서 은퇴했다.[1] 은퇴 후에는 후진 양성에 힘썼다. 2012년 12월, 일본오사카 나카츠에 Number.8 Workout Studio를 열고 치프 트레이너 겸 격투기 클래스 강사로 활동했다.[4] 그러나 2017년 9월, 체육관이 임대료 미납으로 강제 퇴거되었고, 10월 이후 김태영과 연락이 두절되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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