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수 (1926년)
1. 개요
김택수는 1926년 경상남도 김해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경남수직공업 주식회사 전무와 경남 체육회장을 역임하고, 제3공화국에서 민주공화당 경상남도 당 지부 위원장 등을 지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국회 건설 분과 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이후 제7대, 제1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66년 아시아 아마추어 복싱 연맹 회장 및 국제 아마추어 복싱 연맹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1971년에는 대한체육회 회장 겸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1977년 국제 올림픽 위원이 되었다. 3선 개헌에 반대했으며, 1981년 서울 올림픽 유치에 기여했다. 1983년 간암으로 사망했다. 대한민국 체육훈장 청룡장을 수여받았다.
| 이름 | 김택수 |
|---|---|
| 한자 표기 | 金澤壽 |
| 국적 | 대한민국 |
| 출생일 | 1926년 9월 10일 |
| 출생지 | 일제강점기 조선 경상남도 김해군 (現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
| 사망일 | 1983년 7월 17일 |
| 본관 | 김해 |
| 직업 | 미상 |
| 종교 | 미상 |
| 의원 선수 | 3선 |
|---|---|
| 의원 대수 | 6, 7, 10대 |
| 정당 | 민주공화당 |
| 훈장 내역 | 대한민국체육훈장 청룡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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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호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신간회 활동을 했으나, 중일전쟁 이후 친일로 전향하여 해방 후 혜화전문학교 교장과 동국대학교 학장을 역임했으며, 제헌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지만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사후 친일 행적이 드러나 건국훈장이 취소되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다.
2. 생애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김해군(현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김한수는 형이다. 경남고등학교를 거쳐 1952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그 후 경남수직공업 주식회사 전무를 역임했다.
정계 은퇴 후 스포츠계 활동에 전념했으며, 특히 1981년 서울 올림픽 유치에 큰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1. 정치 활동
제3공화국 출범과 함께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여 제6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63년 11월 26일에 실시된 제6대 총선에 민주공화당 공천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국회 건설 분과 위원장, 민주공화당 당무위원을 역임했다.
1967년 6월에 실시된 제7대 총선에 같은 당 공천으로 출마하여 재선되었으며, 민주공화당 원내총무 등을 역임했다. 김종필 계열의 핵심으로서 3선 개헌 강행에 반대하며 1969년 개헌 파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1978년 12월 12일에 실시된 제10대 총선에 같은 당 공천으로 출마하여 3선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제5공화국 출범과 함께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2.2. 체육 행정 활동
1961년 경상남도체육회 회장, 1966년 아시아 아마추어복싱 연맹 회장 겸 세계 아마추어복싱 연맹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1971년 대한체육회 회장 겸 한국올림픽위원회 위원장, 1973년 소련 모스크바 하계 유니버시아드 한국 대표단 단장, 1974년 국민체육진흥재단 이사장, 1975년 세계 아마추어복싱 연맹 집행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1977년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2.3. 사망
1983년 7월 17일, 국제 올림픽 위원회 위원으로 재임하던 중, 지병인 간암으로 자택에서 5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같은 해 7월 21일에 대한체육회의 주최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