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기 (독립운동가)
1. 개요
김한기는 1896년 경상남도 동래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이다. 1911년 승려가 되어 3.1 운동 관련 시위를 계획하고 실행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4년 환속 후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맞이하였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 이름 | 김한기 |
|---|---|
| 본명 | 김말종(金沫淙) → 김한기(金漢琦) |
| 출생일 | 1897년 12월 27일 |
| 사망일 | 1982년 3월 25일 |
| 거주지 | 일제강점기 조선 경상남도 부산부 |
| 출생지 | 대한제국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면 남산리 403번지 |
| 사망지 | 대한민국 부산직할시 부산진구 범천동 |
| 활동 기간 | 1911년~1924년 |
| 학력 | 경남부산동래고등보통학교 1학년 1학기 중퇴(1910년 5월) |
| 배우자 | 없음(생전 미혼 독신) |
| 자녀 | 없음 |
| 별칭 | 불교 승려 시절 승명: 말종(末鍾) |
| 종교 | 불교 |
| 직업 | 항일 독립 운동가 겸 환속 불교 승려 |
| 형제 | 2남 4녀 중 차남(막내) |
| 부모 | 김낙중(부), 진주 강씨 부인(모) |
| 친척 | 김윤재(할아버지) |
| 본관 | 김해(金海) 김씨 문경공파 |
| 국적 | 대한민국 |
| 주요 경력 | 1919년 3월 17일 경남 부산 범어사 앞거리 대한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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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훈 |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장 추서(1986. 03. 01.)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1990. 03. 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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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활동 | 독립운동 |
|---|---|
| 주요 활동 | 삼월 대한 독립 만세 운동 |
| 웹사이트 | 독립유공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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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고등보통학교 중퇴자 -
김동렬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김동렬은 17세에 독립운동을 돕다 옥고를 치렀고, 광복 후 통일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여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1990년 독립운동 공훈으로 대통령 표창을 받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
창녕초등학교 동문 -
오연서
오연서는 1987년 6월 22일에 태어난 대한민국의 배우로, 2002년 걸그룹 LUV의 멤버로 데뷔하여 배우로 전향,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며 사랑의 열매 홍보대사로 사회 활동도 펼치고 있다. -
창녕초등학교 동문 -
박기웅
박기웅은 2004년 데뷔 후 배우로서 활동하며 '맷돌춤'으로 인기를 얻었고, 드라마와 영화 등 다양한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으며, 2021년에는 화가로 데뷔하여 미술계에서도 활동 중이다. -
동래구 출신 -
박관용
박관용은 1938년 부산 출생으로 6선 국회의원, 김영삼 정부 대통령비서실장, 제16대 국회의장을 역임했으며, 2010년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
동래구 출신 -
배정남
배정남은 부산경상대학교 의상학과를 중퇴하고 2009년 드라마 《드림》으로 데뷔한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모델이다.
2. 생애
대한제국 시기인 1896년 경상남도 동래(현 부산광역시)의 중농가에서 태어났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1911년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고,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24년 환속하였으며, 1945년 8.15 광복과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고향 동래에서 맞이하였다.
2.1. 어린 시절
대한제국 시기 경상남도 부산 동래의 농토를 가진 중농가에서 2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처음 아명(兒名)은 김말종(金沫淙)이었으나, 1901년 5세 때 김한기(金漢琦)로 개명(改名)하였다.
1904년 3월 경남김해사립육영보통학교에 입학하여 학업을 시작했다. 이후 1908년 3월에는 경남부산사립부산진육영보통학교 5학년으로 전학하였고, 다음 해인 1909년 3월에는 경남창녕군립남창보통학교 6학년으로 다시 전학하여 1910년 3월 졸업하였다.
같은 해(1910년) 5월 경남부산동래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1학년 1학기 만에 자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2.2. 출가와 독립운동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늑약(庚戌國恥勒約)이 체결되자 이를 통탄하였고, 이듬해인 1911년 2월(15세 때) 동자승(童子僧, 어린 불교 승려)으로 출가하여 말종(末鍾)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1919년 3월 17일 경상남도 부산 범어사(梵魚寺)에서 차상명 등과 함께 3.1 운동 관련 만세 시위를 계획하고 실행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로 인해 1919년 4월 17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특수소요죄 등으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5월 2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듬해인 1920년 3월 17일 만기 출감하였다.
2.3. 환속 이후
1924년, 출가한 지 13년 만에 개인적인 이유로 환속하였다. 당시 나이는 28세(만 26세경)였다. 이후 1945년 8월 15일 8.15 광복과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모두 부산광역시 동래에서 맞이하였다.
3. 사후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86년 3월 1일 대통령 표창을, 1990년 3월 1일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