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분산성
1. 개요
김해 분산성은 낙동강 하류 평야를 조망할 수 있는 분산 정상에 위치한 둘레 약 900m의 석축 산성이다. 삼국시대에 처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 시대에는 왜구 방어를 위해 박위가 수리하고 임진왜란 이후 고종 8년(1871년)에 재건되었다. 성의 형태는 남북으로 긴 타원형이며, 서남부는 자연 암벽을 활용했다. 성 안에는 우물, 암자, 민가, 비석 등이 있으며, 주변에는 가야 무덤, 수로왕비릉, 구지봉 등 가야와 관련된 유적들이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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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김해 분산성 |
|---|---|
| 로마자 표기 | Gimhae Bunsanseong Fortress |
| 국가 | 대한민국 |
| 유형 | 사적 |
| 지정 번호 | 66 |
|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 |
| 시대 | 삼국시대 |
| 면적 | 52,923m2 |
| 주소 |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로405번안길 210-162 (어방동) |
| 문화재청 ID | 13,00660000,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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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의 성 -
김해 양동산성
김해 양동산성은 김해평야와 낙동강 하구를 조망하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하며, 가야 토기 조각 등 유물을 통해 원삼국시대부터 가야 시대까지 김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
가야의 성 -
의령 호미산성
의령 호미산성은 경상남도 의령군 호미산에 위치한 테뫼식 산성으로, 가야 시대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유격전을 펼쳤던 곳이다. -
김해시의 문화유산 -
김해 봉황동 유적
김해 봉황동 유적은 경상남도 김해시에 위치하며, 조개더미 성격의 유적으로 붉은 토기, 가야 토기 파편, 화천 등이 출토되어 한반도 남부 지역 선사시대와 중국 간의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
김해시의 문화유산 -
김해 대성동 고분군
김해 대성동 고분군은 1~5세기에 걸쳐 조성된 가야 시대의 무덤군으로, 다양한 형태의 무덤과 토기, 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피장자의 DNA 분석을 통해 가야 왕의 계통을 밝혀내기도 했다. -
경상남도의 사적 -
김해 봉황동 유적
김해 봉황동 유적은 경상남도 김해시에 위치하며, 조개더미 성격의 유적으로 붉은 토기, 가야 토기 파편, 화천 등이 출토되어 한반도 남부 지역 선사시대와 중국 간의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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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
진주성은 고려 시대부터 왜구 방어의 요충지였고 임진왜란 당시 격전지였던 경상남도 진주시에 위치한 석성으로,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인 제1차 진주성 전투와 많은 민관군이 순절한 제2차 진주성 전투의 역사를 지니며 현재 사적 제118호로 지정되어 촉석루, 의기사, 영남포정사 등 다양한 문화재와 유적을 포함하여 관리되고 있다.
2. 역사
김해 분산성은 낙동강 하류의 넓은 평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분산 정상에 있는 둘레 약 900m의 돌로 쌓은 산성이다. 처음 쌓은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시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전기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박위가 수리하여 쌓은 뒤, 임진왜란(1592) 때 무너진 것을 고종 8년(1871)에 다시 쌓았다.
산 위의 평탄한 지형을 둘러서 그 주위에 남북으로 긴 타원형을 이루도록 쌓았다. 서남부는 험준한 천연 암벽을 그대로 이용하였으며 현재 성벽이 부분적으로 남아있다. 성 안에 이르는 통로는 산성 서쪽에 있는 계곡을 거쳐 북쪽 뒤편에서 들어가는 길을 이용한 듯하다. 현재 성 안에 우물과 암자, 그리고 민가가 있으며 산꼭대기에는 3기의 비석이 있다.
2.1. 삼국시대
분산성은 낙동강 하류의 넓은 평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분산 정상에 돌로 쌓은 산성으로, 둘레는 약 900m이다. 처음 쌓은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시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로왕비릉, 구지봉등 가야의 건국설화와 관련있는 유적들이 성 주변에 있어 이 성과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2.2. 조선시대
분산성은 조선 전기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박위가 수리하여 쌓았다. 임진왜란(1592) 때 무너진 것을 고종 8년(1871)에 다시 쌓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3. 지리적 특징
낙동강 하류의 넓은 평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분산 정상에 돌로 쌓은 산성이다. 산 위의 평탄한 지형을 둘러 쌓았으며, 서남부는 험준한 천연 암벽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성 안에는 우물, 암자, 민가가 있으며 산꼭대기에는 3기의 비석이 있다. 성 주변에는 가야 무덤들과 수로왕비릉, 구지봉이 있어 이 성과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3.1. 위치 및 지형
분산성은 낙동강 하류의 넓은 평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분산 정상에 둘레 약 900m에 걸쳐 돌로 쌓은 산성이다. 산 위의 평탄한 지형을 둘러 그 주위에 남북으로 긴 타원형을 이루도록 쌓았다. 서남부는 험준한 천연 암벽을 그대로 이용하였으며 현재 성벽이 부분적으로 남아있다. 성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산성 서쪽에 있는 계곡을 거쳐 북쪽 뒤편에서 들어가는 길을 이용한 듯하다. 현재 성 안에는 우물과 암자, 그리고 민가가 있으며 산꼭대기에는 3기의 비석이 있다.
3.2. 성곽 구조
분산 정상에 둘레 약 900m에 걸쳐 돌로 쌓은 산성이다. 산 위의 평탄한 지형을 둘러 남북으로 긴 타원형을 이루도록 쌓았다. 서남부는 험준한 천연 암벽을 그대로 이용하였으며, 현재 성벽이 부분적으로 남아있다. 성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산성 서쪽에 있는 계곡을 거쳐 북쪽 뒤편에서 들어가는 길을 이용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