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길
1. 개요
김호길은 한국 최초의 가속기물리학자이자 포항공과대학교 초대 총장이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버밍엄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 교수,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 선임과학자로 활동했다. 1971년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KSEA) 간사장과 회장을 역임했으며, 사이클로트론 연구를 통해 "킴스 코일"을 창안했다. 1985년 포항공대 총장으로 취임하여 연구 중심 대학을 표방하며 포항방사광가속기 건설을 주도했으나, 1994년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그는 국민훈장 동백상, 상허문화대상,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연암공대 4년제 대학 인가 무산과 관련하여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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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공과대학교 총장 -
백성기
백성기는 코넬 대학교에서 재료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과학기술연구소와 오크리지 국립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포항공과대학교 교수, 부총장, 포항가속기연구소 소장, 포스텍 총장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재료공학자이다. -
포항공과대학교 총장 -
박찬모
박찬모는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메릴랜드대학교에서 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대한민국의 공학자이자 교육자로, 포항공과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 및 총장,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대통령실 과학기술특별보좌관을 역임하고 현재 평양과학기술대학 명예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이학부 동문 -
허원제
허원제는 언론인 출신 정치인으로, 국제신문 기자로 시작하여 KBS, SBS 등에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을 거쳐 제18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이학부 동문 -
정근모
정근모는 대한민국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물리학자이자 과학기술정책가로서, 주요 과학기술 기관 설립을 주도하고 과학기술처 장관 등을 역임하며 국내 기초연구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고 한국형 원전 표준 설계 사업을 주도하여 원자력 기술 자립에 기여했다. -
대한민국의 물리학자 -
남창희 (물리학자)
남창희는 서울대학교, KAIST,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KAIST와 GIST 교수를 거쳐 IBS 상대론적 레이저 과학 센터 초대 센터장을 지낸 대한민국의 물리학자로, 펨토초 레이저, 고차조화파, 아토초 펄스, 연엑스선 간섭계 및 현미경 기술 등을 연구하며 IUPAP 등 국제 학술 단체에서 활동했고, 미국 물리학회 및 미국 광학회 펠로우, 한국과학기술한림원상, 숭도광과학상, 대통령 표창 등을 수상했다. -
대한민국의 물리학자 -
문미옥
2. 생애
2.1. 유년 시절과 교육
2.2. 미국에서의 연구 활동
김호길은 1964년부터 1966년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UC버클리) 로렌스 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1966년부터 1978년까지는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물리학과 및 전기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핵물리학 및 플라즈마물리학을 연구했다.
1969년에는 구소련 국제가속장치학회에 참석했는데, 이는 대한민국 국적자로서 구소련을 첫 공식 방문한 사례였다. 김호길은 사이클로트론(cyclotron) 연구를 통해 "킴스 코일(Kim's coil)"을 창안하기도 했다.
1971년에는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KSEA)를 창립하고 간사장을 역임했으며, 1977년에는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KSEA) 제6대 회장을 맡았다. 1978년에는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 선임과학자가 되어 입자가속장치 개발에 참여했다.
2.3. 한국에서의 교육 및 연구 활동
3. 주요 경력
* 1966년 ~ 1978년: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 교수
* 1978년 ~ 1983년: 미국 로런스 버클리 국립연구소 선임과학자
* 1983년 ~ 1985년: 연암공과대학교 학장
* 1985년 ~ 1994년: 포항공과대학교 학장
* 재미한국과학자협회 제6대 회장 (1971년~1972년)
* 한국물리학회 부회장 (1989년 5월~1993년 2월)
* 대통령자문기구 교육정책자문위원 (1989년 5월 ~ 1993년 2월)
5. 업적
1933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나, 1964년 영국 버밍엄 대학교에서 입자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김호길은 한국 최초의 가속기물리학자이다. 원형 궤도에서 입자를 가속하는 장치인 사이클로트론(cyclotron) 연구를 많이 남겼는데, 특히 입자 가속을 위한 “킴스 코일(Kim’s coil)”을 창안했다.
1971년 미국 템플 대학교의 물리화학자 김순경 교수를 회장으로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KSEA)가 발족할 때 그는 간사장을 맡아 협회의 기틀을 다졌고, 1977년에는 제6대 회장이 되었다.
1985년 포항공과대학교 초대총장으로 선임된 그는 1994년 4월까지 재직하면서 연구 중심의 교육을 통해 기술 입국을 실현할 수 있었다. 당시 한국에는 새로운 개념이었던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며, 포항제철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해외 60여 명의 한인 우수과학자를 유치했다. 그리고, 대학원 조기 개설, 전원 박사학위 소지자 교수 채용, 중진교수 중심체계 구축 등 새로운 제도를 시행했고,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대학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포항공대가 단시간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국내 다른 대학에도 연구중심대학 모델이 확산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총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입자물리학자로서도 포항공대의 연구역량 강화에 크게 기여했다. 설립 당시부터 방사광가속기 건설을 약속했고, 막대한 예산 수요나 국내의 기술적 역량 등에 대한 여러 갈래의 회의론을 극복하고 이를 관철시켰다. 세계적인 가속기 연구자로서 자신의 경륜을 발휘하여, 순수 국내 기술로 범국가적연구시설인 포항방사광가속기의 건설을 주도하였다.
1994년 4월 포항공대 교내 체육대회 중 발야구를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며 포항방사광가속기의 완공을 보지못했다. 포항방사광가속기(Pohang Light Source)는 그의 사후인 12월에 완공되었다. 이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 제3세대형 방사광가속기이며 한국에서는 최초이자 아직까지 유일한 입자가속기이다. 포항방사광가속기는 현재까지 1만3천여 건의 연구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한국의 기초과학 역량을 크게 높였다.
6. 비판과 논란
6.1. 연암공대 4년제 대학 인가 무산
1985년 1월 5일 연암공대의 4년제 대학 인가가 나지 않자, 전두환 대통령에게 인가를 얻어내기 위해 쓴 상소문에서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 대한민주공화국이라 하지 말고 대한사기공화국이라 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