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흥장군 일가 유품
1. 개요
남이흥장군 일가 유품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과 함께 전사한 남유의 아들인 남이흥 장군과 관련된 유물들을 포괄한다. 1970년과 2004년에 걸쳐 지정된 유물들은 구의, 답호, 호패, 고문서, 영정, 복식 등 다양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으며, 17세기 초의 생활상과 복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이 유물들은 충청남도 당진시에 소재하며, 의령남씨충장공파대종중에서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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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의 국가민속문화유산 -
외암마을
충청남도 아산시에 있는 외암마을은 16세기 초에 형성된 조선 시대의 예안 이씨 동족 마을로, 조선 시대 건축 양식과 마을 배치를 잘 보존하고 있으며, 독특한 수로와 전통 민속 행사, 그리고 영화 및 드라마 촬영지로도 활용되는 대표적인 전통 마을이다. -
당진시의 문화유산 -
당진 솔뫼마을 김대건신부 유적
당진 솔뫼마을 김대건 신부 유적은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로, 한국 천주교 역사와 사회 변천, 신앙의 자유를 위한 저항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현장이다. -
당진시의 문화유산 -
당진 신리 다블뤼주교유적지
당진 신리 다블뤼 주교 유적지는 손자손 생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내포 지역 초기 천주교 공소이자 조선교구청으로 운영되었던 역사적 유적지로, 다블뤼 주교를 비롯한 순교자들이 체포되어 순교하였으며 병인박해 순교자 32인의 유해가 안장된 곳이다. -
조선의 문화 -
사직단
사직단은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으로, 한국의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 중국의 명청시대까지 존재했으며, 현재는 한국의 사직단 터 일부와 중국 베이징의 사직단이 남아 각 지역 문화재로 보호받고 있다. -
조선의 문화 -
보부상
보부상은 삼국시대부터 존재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시대의 상인 집단으로, 부상과 보상으로 나뉘어 전국적인 조직 체계를 갖추고 국가적인 역할도 수행했으나 시대적 상황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며 관련 문화재가 남아있다.
2. 생애
남이흥(1576∼1627)은 임진왜란 노량해전에서 이순신과 함께 전사한 남유의 아들로, 선조 35년(1602)에 무과에 급제하고, 이후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남이흥 장군 일가 유품으로는 1차 지정 유물인 사슴가죽으로 만든 옷 1벌과 인조 임금이 하사하였다고 전하는 곤룡포 1점, 그리고 상아·나무·녹각 등으로 만든 장군과 가족들의 호패 7점이 있다. 2004년에는 고문서 13점, 영정 1점, 생활자료 10점, 복식 6점 등 총 30점의 유물을 추가로 지정하였다. 이 외에도 고서, 서한, 영정, 교지 등 500여 점의 유품들은 17세기 초의 생활상과 복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2.2. 이괄의 난 평정과 진무공신
남이흥(1576∼1627)은 임진왜란 노량해전에서 이순신과 함께 전사한 남유의 아들로, 선조 35년(1602)에 무과에 급제하고, 이후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남이흥 장군 일가 유품으로는 1차 지정 유물인,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입었던 사슴가죽으로 만든 옷 1벌과 인조 임금이 하사하였다고 전하는 곤룡포 1점, 그리고 상아·나무·녹각 등으로 만든 장군과 가족들의 호패 7점이 있다. 2004년에는 고문서 13점, 영정 1점, 생활자료 10점, 복식 6점 등 총 30점의 유물을 추가로 지정하였다. 이 외에도 고서(古書), 서한(書翰), 영정, 교지 등 500여 점의 유품들은 17세기 초의 생활상과 복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2.3. 사후 추증과 평가
남이흥(1576∼1627)은 임진왜란 노량해전에서 이순신과 함께 전사한 남유의 아들로, 선조 35년(1602)에 무과에 급제하고, 이후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1차 지정 유물은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입었던 사슴가죽으로 만든 옷 1벌과 인조가 하사하였다고 전하는 곤룡포 1점, 그리고 상아, 나무, 녹각 등으로 만든 장군과 가족들의 호패 7점이다. 2004년에는 고문서 13점, 영정 1점, 생활자료 10점, 복식 6점 등 총 30점의 유물을 추가로 지정하였다. 이 외에도 고서(古書), 서한(書翰), 영정, 교지 등 500여 점의 유품들은 17세기 초의 생활상과 복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3. 유물 목록
남이흥장군(1576∼1627)은 임진왜란 노량해전에서 이순신과 함께 전사한 남유의 아들이다. 선조 35년(1602) 무과에 급제하고,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1차 지정 유물은 사슴가죽으로 만든 옷 1벌, 인조가 하사하였다고 전하는 곤룡포 1점, 상아·나무·녹각 등으로 만든 장군과 가족들의 호패 7점이다. 2004년에는 고문서 13점, 영정 1점, 생활자료 10점, 복식 6점 등 총 30점이 추가 지정되었다. 이 외에도 고서, 서한, 영정, 교지 등 500여 점의 유품들은 17세기 초 생활상과 복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3.1. 1970년 지정 유물
3.2. 2004년 추가 지정 유물
2004년에는 고문서 13점, 영정 1점, 생활자료 10점, 복식 6점 등 총 30점의 유물이 추가로 지정되었다.
| 번호 | 명칭 | 지정일 |
|---|---|---|
| 21-5호 | 고문서 | 2004년 9월 25일 |
| 급제교지 | 2004년 9월 25일 | |
| 교서 | 2004년 9월 25일 | |
| 진무공신교서 | 2004년 9월 25일 | |
| 교서 | 2004년 9월 25일 | |
| 추증교지 | 2004년 9월 25일 | |
| 교서 | 2004년 9월 25일 | |
| 교서 | 2004년 9월 25일 | |
| 별급문기 | 2004년 9월 25일 | |
| 별급문기 | 2004년 9월 25일 | |
| 화회문기 | 2004년 9월 25일 | |
| 화회문기 | 2004년 9월 25일 | |
| 별급문기 | 2004년 9월 25일 | |
| 허여문기 | 2004년 9월 25일 | |
| 21-6호 | 남이흥장군영정 | 2004년 9월 25일 |
| 21-7호 | 광대 | 2004년 9월 25일 |
| 단서함 | 2004년 9월 25일 | |
| 지휘봉 | 2004년 9월 25일 | |
| 화살통과화살 | 2004년 9월 25일 | |
| 남여 | 2004년 9월 25일 | |
| 요여 | 2004년 9월 25일 | |
| 충정공내외관 | 2004년 9월 25일 | |
| 정경부인정씨내외관 | 2004년 9월 25일 | |
| 궁대 | 2004년 9월 25일 | |
| 시복 | 2004년 9월 25일 | |
| 21-8호 | 명주겹답호1 | 2004년 9월 25일 |
| 명주겹답호2 | 2004년 9월 25일 | |
| 명주겹철릭1 | 2004년 9월 25일 | |
| 명주겹철릭2 | 2004년 9월 25일 | |
| 명주겹철릭3 | 2004년 9월 25일 | |
| 명주겹장옷 | 2004년 9월 25일 |
4. 유물의 가치와 의의
남이흥 (1576∼1627)은 임진왜란 노량해전에서 이순신과 함께 전사한 남유의 아들로, 선조 35년(1602)에 무과에 급제하고, 이후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남이흥 장군 일가 유품은 1차 지정 유물과 2004년에 추가 지정된 유물로 나뉜다. 1차 지정 유물은 장군이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입었던 사슴가죽 옷 1벌, 인조가 하사했다고 전해지는 곤룡포 1점, 장군과 가족들의 호패 7점(상아, 나무, 뿔 등으로 제작)이다. 2004년에는 고문서 13점, 영정 1점, 생활자료 10점, 복식 6점 등 총 30점이 추가 지정되었다. 이 외에도 고서(古書), 서한(書翰), 영정, 교지 등 500여 점의 유품이 전해지는데, 이들은 17세기 초 조선의 생활상과 복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