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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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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복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성인으로 추앙받을 자격이 있는 인물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절차이다. 1634년까지 지역 주교가 시복 권한을 가졌으나, 교황청으로 귀속되었으며, 1983년 개혁 이후 시복을 위해서는 기적이 필요하다. 순교자의 경우 기적 요건이 면제되며, 시복된 사람은 지역, 수도회 등에서 기념된다. 시복은 바티칸에서 이루어지며,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선포된다. 시복 절차는 '하느님의 종'에서 '가경자' 단계를 거쳐 시복되며, 이후 성인 추대 절차를 밟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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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복
시복
종류가톨릭교회 시복
목적복자로 선포
과정시성의 첫 단계
교황청
교황청 부서시성성
담당 부서신앙 증진을 위한 시복 및 시성
역사적 의미
의미특정 인물의 천상 축복에 대한 인정과 공표
과거교황의 승인 필요
현재교황과 교황청의 승인 필요
용어
라틴어beatificatio
영어Beatification
스페인어beatificación
기타
관련 용어시성
성인
복자

2. 역사

1983년 개혁 이전에는 시복을 위한 기적 요건이 항상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다. 순교가 공식적으로 선언된 경우에는 기적 요건이 면제되었다.[7] 시복된 사람의 축일은 보편적이지 않고, 특별한 공경을 받는 지역, 수도회, 공동체에서만 기념되었다. 예를 들어 카테리 테카위타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존 둔스 스코투스는 프란체스코회와 쾰른 대교구 등에서, 키아라 바다노는 포콜라레 운동에서 존경받았다.

2. 1. 시복 권한의 변화

1634년까지 지역 주교들에게 시복권이 있었으나, 우르바노 8세가 교황령 ''Cœlestis Jerusalem''을 통해 시복권을 교황청에 귀속시키면서 그 권한이 박탈되었다.[2][3] 중세에는 일부 시복이 주교의 권한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는데, 그중에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문제가 있는 것도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샤를마뉴는 궁정 주교에 의해 사후 곧바로 시복되었지만, 이후 시성되지 않았고 복자로서의 숭배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재 아헨오스나브뤼크에서는 샤를마뉴를 기념하는 미사를 거행하는 허가가 주어져 있지만, "복자"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대중의 환호(vox populi)에 의해 선출된 복자들은 지역적인 공경만을 받았다. 12세기부터 시성 절차가 로마 교황청에서 주관되었지만, 시복 절차는 13세기까지 지역적 규모로 계속되다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누구를 공경할 수 있는지에 대한 권한을 교황에게 귀속시키면서 정착되었다.[8]

2. 2. 시복 절차의 발전

지역 주교들은 1634년까지 시복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우르바노 8세가 교황령 ''Cœlestis Jerusalem''에서 시복권을 교황청에 귀속시키면서 그 권한이 박탈되었다.[2][3] 1983년 개혁 이후, 원칙적으로 시복될 사람의 전구를 통해 기적이 하나 일어났음을 확인해야 한다. 기적은 거의 항상 설명할 수 없는 의학적 치유이며, 의사와 신학자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과학적으로 조사한다.[4][5][6] 다만, 순교가 교회에 의해 공식적으로 선언된 경우에는 시복을 위한 기적 요건이 면제된다.[7]

시복된 사람의 축일은 보편적이지 않고, 그 사람이 특별한 공경을 받는 지역, 수도회 또는 공동체에서만 기념된다. 예를 들어, 카테리 테카위타는 복자 시절 미국과 캐나다에서 특히 존경받았고, 존 둔스 스코투스는 프란체스코회와 쾰른 대교구 등 여러 곳에서 존경받았다. 마찬가지로, 키아라 바다노에 대한 공경은 포콜라레 운동에 특유하다.

1831년 교회법 개정 이후 시복에는 해당 인물의 전구에 의한 최소 하나의 기적(초자연적 현상)이 필요하지만, 순교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대중의 환호(vox populi)에 의해 선출된 복자들은 지역적인 공경만을 받았다. 시성 절차가 12세기부터 로마 교황청에서 주관되었지만, 시복 절차는 13세기까지 지역적 규모로 계속되다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누구를 공경할 수 있는지에 대한 권한을 교황에게 귀속시키면서 정착되었다.[8]

현재 가톨릭교회에서 시복은 바티칸에 의해 이루어진다. 생전에 성덕을 보였다고 여겨지는 인물은 사후에 신청이 이루어짐으로써 시복 조사가 시작될 수 있다. 시복되기 위해서는 먼저 해당 인물이 살았던 지역의 주교의 조사가 이루어지고, 거기서 덕과 성덕이 인정되면 바티칸 시성성에 자료가 보내져 그곳에서 두 번째 조사 및 심의가 이루어진다.

엄격한 심사를 마치고 교회에서 복자의 지위에 올리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되면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시복이 선포된다. 일반적으로 시복식은 바티칸에서 거행된다. 예외적으로 바티칸 이외에서 처음으로 거행된 시복식은 1981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거행된 필리핀인 최초의 복자(후에 성인이 된) 로렌소 루이스의 시복식이었다. 루이스는 16세기에 일본에서 순교했다.

모든 복자는 기념일을 가지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사망일이 그것에 해당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추가로 시성 조사가 이루어져 성인으로 추대될 수도 있다.

중세에는 일부 시복이 주교의 권한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중에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문제가 있는 것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샤를마뉴는 궁정 주교에 의해 사후 곧바로 시복되었지만, 그 후 그가 시성되는 일은 없었고, 복자로서의 숭배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재 아헨오스나브뤼크에서는 샤를마뉴를 기념하는 미사를 거행하는 허가가 주어져 있지만, "복자"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참고로 정교회에서 표현상 "복자"와 유사한 "복(さいわい)나는", "복(ふく)"(Blessed)는 성인의 칭호 중 하나이며,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2. 3. 역대 교황들의 시복 관행

지역 주교들은 1634년까지 시복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우르바노 8세가 7월 6일 교황령 ''Cœlestis Jerusalem''에서 시복권을 교황청에 귀속시킴으로써 그 권한이 박탈되었다.[2][3]

1983년 개혁 이후, 원칙적으로 시복될 사람의 전구를 통해 기적이 하나 일어났음을 확인해야 한다. 기적은 거의 항상 설명할 수 없는 의학적 치유이며, 의사와 신학자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과학적으로 조사한다.[4][5][6] 순교가 교회에 의해 공식적으로 선언된 경우에는 시복을 위한 기적 요건이 면제된다.[7]

시복된 사람의 축일은 보편적이지 않고, 그 사람이 특별한 공경을 받는 지역, 수도회 또는 공동체에서만 기념된다. 예를 들어, 카테리 테카위타는 복자 시절 미국과 캐나다에서 특히 존경받았다. 존 둔스 스코투스는 프란체스코회와 쾰른 대교구 등 여러 곳에서 존경받았다.

대중의 환호(vox populi)에 의해 선출된 복자들은 지역적인 공경만을 받았다. 시성 절차가 12세기부터 로마 교황청에서 주관되었지만, 시복 절차는 13세기까지 지역적 규모로 계속되다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누구를 공경할 수 있는지에 대한 권한을 교황에게 귀속시키면서 정착되었다.[8]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는 이전의 가톨릭 시복 관행을 현저하게 바꾸었다. 2004년 10월까지 그는 1,340명 이상을 시복했는데, 이는 오늘날 사용되는 것과 유사한 시복 절차를 확립한 식스토 5세(1585–1590) 이후 그의 모든 전임자들의 시복자 수를 합친 것보다 많다.

요한 바오로 2세의 후임자인 베네딕토 16세(2005–2013)는 부활 제2주일이자 하느님 자비의 주일인 2011년 5월 1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전임자의 시복 미사를 직접 집전했는데, 이 행사에는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했다.

3. 절차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시복 절차는 시복 대상자가 사망한 후에 진행되며, 시복된 이가 로마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검증 하에 성인으로 추대될 자격이 있는 경우 시복식 후에 성인 추대 추진자의 신청에 의해 성인 추대 절차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시복 후 성인 추대 절차가 개시되었다고 하여 모든 성인 추대 대상자들이 성인으로 선포되는 것은 아니다. 대개의 경우 시복 절차와 시성 절차에서는 각 단계에 있어서 그 대상자에 의해 이루어진 일정한 수의 기적에 대한 엄밀한 검증이 요구된다. 모든 검증 과정은 교회의 최고 결정권자인 교황이 이끄는 교황청 시성성(Congregatio de Causis Sanctorum)에서 추진한다.

시복식 이전에도 거쳐야 할 다른 단계들이 있는데, 첫 단계를 지나면 '하느님의 종'으로 불리고 그 이후에는 '가경자'로 불린다. 가경자 단계를 지나 시복 시성 단계를 거치게 된다. 단, 모든 단계 이전에 추진 대상자가 살았던 지역 가톨릭 교구의 주교가 신청하는 공식 신청 절차와 함께 기타 관련자들의 신청 절차가 필요하다.

3. 1. 시복 심사 단계

시복 절차는 시복 대상자가 사망한 후에 진행되며, 로마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검증을 거쳐 성인으로 추대될 자격이 있는 경우 시복식 후에 성인 추대 절차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시복 후 성인 추대 절차가 시작되었다고 해서 모든 성인 추대 대상자들이 성인으로 선포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시복 절차와 시성 절차에서는 각 단계마다 대상자가 행한 일정 수의 기적(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엄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모든 검증 과정은 교회의 최고 결정권자인 교황이 이끄는 교황청 시성성(Congregatio de Causis Sanctorum)에서 추진한다.

시복식 이전에 거쳐야 할 단계들이 있다. 첫 단계를 지나면 '하느님의 종'으로 불리고, 그 이후에는 '가경자'로 불린다. 가경자 단계를 지나 시복 시성 단계를 거치게 된다. 단, 모든 단계 이전에 추진 대상자가 살았던 지역 가톨릭 교구의 주교가 신청하는 공식 신청 절차와 함께 기타 관련자들의 신청 절차가 필요하다.

현재 가톨릭교회에서 시복은 바티칸에서 이루어진다. 생전에 성덕을 보였다고 여겨지는 인물은 사후에 신청을 통해 시복 조사가 시작될 수 있다. 시복되기 위해서는 먼저 해당 인물이 살았던 지역의 주교의 조사가 이루어지고, 거기서 덕과 성덕이 인정되면 바티칸 시성성에 자료가 보내져 두 번째 조사 및 심의가 이루어진다. 1831년 교회법 개정 이후 시복에는 해당 인물의 전구에 의한 최소 하나의 기적이 필요하지만, 순교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3. 2. 시복 심사 주체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시복 절차는 시복 대상자가 사망한 후에 이루어진다. 시복된 사람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검증을 거쳐 성인으로 추대될 자격이 있는 경우, 시복식 후에 성인 추대 추진자의 신청으로 성인 추대 절차가 진행된다. 그러나 시복 후 성인 추대 절차가 시작되었다고 해서 모든 성인 추대 대상자들이 성인으로 선포되는 것은 아니다. 대개의 경우 시복 절차와 시성 절차에서는 각 단계마다 그 대상자가 행한 일정 수의 기적에 대한 엄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모든 검증 과정은 교회의 최고 결정권자인 교황이 이끄는 교황청 시성성(Congregatio de Causis Sanctorum)에서 추진한다.

시복식 이전에 '하느님의 종', '가경자' 단계를 거친다. 모든 단계 이전에 추진 대상자가 살았던 지역 가톨릭 교구의 주교가 신청하는 공식 신청 절차와 기타 관련자들의 신청 절차가 필요하다.

현재 가톨릭교회에서 시복은 바티칸에서 담당한다. 생전에 성덕을 보였다고 여겨지는 인물은 사후에 신청을 통해 시복 조사가 시작될 수 있다. 시복되기 위해서는 먼저 해당 인물이 살았던 지역의 주교의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거기서 덕과 성덕이 인정되면 바티칸 시성성에 자료가 보내져 두 번째 조사 및 심의가 이루어진다. 1831년 교회법 개정 이후 시복에는 해당 인물의 전구에 의한 최소 하나의 기적(초자연적 현상)이 필요하지만, 순교자는 예외이다.

엄격한 심사를 마치고 복자 지위에 올리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되면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시복이 선포된다. 일반적으로 시복식은 바티칸에서 거행된다. 중세에는 일부 시복이 주교의 권한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3. 3. 기적 심사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시복되기 위해서는 먼저 해당 인물이 살았던 지역의 주교의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조사에서 덕과 성덕이 인정되면 바티칸 시성성에 자료가 보내져 두 번째 조사 및 심의가 이루어진다. 시복에는 1831년 교회법 개정 이후 해당 인물의 전구에 의한 최소 하나의 기적(초자연적 현상)이 필요하지만, 순교자의 경우는 예외이다.

4. 시복식

일반적으로 시복식은 바티칸에서 거행된다. 예외적으로 1981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필리핀인 최초의 복자(후에 성인이 된) 로렌소 루이스의 시복식이 바티칸 이외에서 처음으로 거행되었다. 루이스는 16세기에 일본에서 순교했다.[1]

모든 복자는 기념일을 가지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사망일이 그것에 해당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추가로 시성 조사가 이루어져 성인으로 추대될 수도 있다.[1]

중세에는 일부 시복이 주교의 권한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중에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문제가 있는 것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샤를마뉴는 궁정 주교에 의해 사후 곧바로 시복되었지만, 그 후 그가 시성되는 일은 없었고, 복자로서의 숭배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재 아헨오스나브뤼크에서는 샤를마뉴를 기념하는 미사를 거행하는 허가가 주어져 있지만, "복자"라고 부르지는 않는다.[1]

참고로 정교회에서 표현상 "복자"와 유사한 "복(さいわい)나는", "복(ふく)"(Blessed)는 성인의 칭호 중 하나이며,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1]

4. 1. 시복 선포

현재 가톨릭교회에서 시복은 바티칸에 의해 이루어진다. 생전에 성덕을 보였다고 여겨지는 인물은 사후에 신청을 통해 시복 조사가 시작될 수 있다. 시복되기 위해서는 먼저 해당 인물이 살았던 지역의 주교의 조사가 이루어지고, 거기서 덕과 성덕이 인정되면 바티칸 시성성에 자료가 보내져 그곳에서 두 번째 조사 및 심의가 이루어진다. 또한, 시복에 있어서는 1831년의 교회법 개정 이후 해당 인물의 전구에 의한 최소 하나의 기적(초자연적 현상)이 필요하지만, 순교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엄격한 심사를 마치고 교회에서 복자의 지위에 올리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되면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시복이 선포된다. 일반적으로 시복식은 바티칸에서 거행된다. 예외적으로 바티칸 이외에서 처음으로 거행된 시복식은 1981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거행된 필리핀인 최초의 복자(후에 성인이 된) 로렌소 루이스의 시복식이었다. 루이스는 16세기에 일본에서 순교했다.

5. 한국 가톨릭교회의 시복 사례

현재 주어진 원본 소스에는 한국 가톨릭교회의 시복 사례가 나타나 있지 않다. 따라서 이 섹션에는 한국 가톨릭교회의 시복과 관련된 내용은 포함되지 않는다. 다만, 일본에서는 시복식이 두 차례 거행된 사례가 있다.

5. 1. 일본에서의 시복식

일본에서는 두 차례 시복식이 거행되었다.

  • 2008년 11월 24일, 일본 최초의 시복식이 나가사키현(長崎県) 나가사키시(長崎市)의 나가사키 현영 야구장(長崎県営野球場)에서 거행되어, 페트로 기부를 비롯한 에도 시대(江戸時代)에 일본 각지에서 순교한 188명이 복자가 되었다(페트로 기부와 187 순교자).
  • 2017년 2월 7일, 오사카부(大阪府) 오사카시(大阪市)의 오사카 성 홀(大阪城ホール)에서 기리시탄 다이묘(キリシタン大名) 다카야마 우콘(高山右近)의 시복식이 거행되어, 우콘이 복자로 선포되었다.

참조

[1] 웹사이트 American Saints and Blesseds https://www.usccb.or[...] 2020-09-20
[2] 서적 Juris Canonici et Juris Canonico-Civilis Compendium Desclée de Brouwer et Sii 1928
[3] 웹사이트 Beatification and Canonization http://www.newadvent[...] 2015-11-01
[4] 웹사이트 The Science of Miracles: How the Vatican Decides https://www.livescie[...] 2019-09-15
[5] 뉴스 Miracles under the microscope https://www.economis[...] 2019-09-15
[6] 웹사이트 How The Catholic Church Documented Mother Teresa's 2 Miracles https://www.npr.org/[...] NPR 2019-09-15
[7] 웹사이트 Sarno, Robert J., "Process of Canonization", Archdiocese of Oklahoma City http://www.archokc.o[...] 2018-06-05
[8] 간행물 Les joyaux de la Couronne Sainteté et monarchie en Espagne après le concile de Trente http://dx.doi.org/10[...] Presses universitaires de Liège 2022-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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