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야 정씨
1. 개요
낭야 정씨는 명나라 문연각 태학사를 지낸 정문겸의 증손인 정선갑을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정선갑은 명나라에서 진사를 지냈으며, 청나라의 명나라 침공으로 포로가 되어 심양에 압송되었다가 봉림대군을 만나 조선에 들어왔다. 효종과 북벌을 추진했으나 효종의 급서로 북벌이 좌절되자 조선에 정착했다. 본관인 낭야는 산동성에 속한 지역으로, 정씨와 왕씨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정씨는 정나라 공족의 후예이다. 낭야 정씨는 경기도 가평군, 포천시, 의정부시 등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낭야 정씨 - [성씨/가문]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 가문명 | 낭야 정씨 |
|---|---|
| 한자 표기 | 瑯琊 鄭氏 |
| 로마자 표기 | Nangya Jeong ssi |
| 국가 | 한국 |
| 관향 | 낭야군 |
기원
| 시조 | 정문겸 |
|---|---|
| 중시조 | 정선갑 |
기타 정보
| 비고 | 산둥성에서 유래 |
|---|---|
| 2000년 인구 조사 | 1,088명 |
2. 연원
시조 정선갑(鄭先甲)은 명나라 세종 때 문연각 태학사(文淵閣太學士)를 지낸 정문겸(鄭文謙)의 증손이다. 정선갑은 1617년 산동성에서 출생하였으며, 명나라에서 진사를 지냈다.
1644년 청나라의 명나라 침공으로 포로가 되어 심양(瀋陽)에 압송되었다. 정선갑, 왕이문(王以文), 왕봉강(王鳳崗) 등의 9의사는 심양에서 봉림대군을 만나 함께 조선에 들어왔다.
효종과 북벌을 추진하였고, 북벌이 성공하면 고국에 돌아가려고 하였으나, 1659년 효종의 급서(急逝)로 북벌이 좌절되자 조선에 정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