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니콜라이 기아우로프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니콜라이 기아우로프는 불가리아 출신의 저명한 오페라 베이스 가수로, 1955년 파리 국제 성악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경력을 시작했다. 볼쇼이 극장, 라 스칼라, 로열 오페라 하우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 세계적인 오페라 무대에서 활동하며, 메피스토펠레스, 보리스 고두노프 등 다양한 배역을 소화했다. 1970년대 후반에는 마스네의 오페라 '돈 키호테'의 최초 스테레오 녹음에 참여했으며, 미렐라 프레니와 재혼하여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2004년 사망했으며, 사우스셰틀랜드 제도의 기아우로프 봉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2. 생애

니콜라이 기아우로프는 불가리아 남부의 산악 마을 벨링라드에서 태어난 세계적인 베이스 가수이다. 어린 시절부터 바이올린, 피아노, 클라리넷 등 다양한 악기를 배웠으며, 불가리아 국립 음악원과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본격적인 성악 공부를 했다.

1955년 파리 국제 성악 콩쿠르 우승을 계기로 국제적인 경력을 시작했으며, 같은 해 소피아에서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중 돈 바실리오 역으로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모스크바볼쇼이 극장, 밀라노의 라 스칼라, 런던코벤트 가든,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 세계 최정상급 오페라 극장에서 활발히 활동했다.[4][5] 그는 구노의 ''파우스트'' 중 메피스토펠레스 역, 무소르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의 타이틀 롤, 베르디의 ''돈 카를로스'' 중 필리포 2세 등 다양한 베이스 배역을 맡아 깊고 풍부한 음색과 뛰어난 표현력으로 큰 찬사를 받았다.

1961년 제노바 공연에서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와 처음 만났으며, 첫 번째 아내와 이혼 후 1978년 프레니와 재혼하여 그녀의 고향인 모데나에 정착했다. 두 사람은 이후 많은 오페라 공연과 음반 녹음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었다.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베이스 가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기아우로프는[2] 2004년 이탈리아 모데나 근교 병원에서 심장 발작으로 인해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니콜라이 기아우로프는 불가리아 남부의 작은 산악 마을인 벨링라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바이올린, 피아노, 클라리넷을 배웠다. 1949년 불가리아 국립 음악원에서 크리스토 브람바로프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음악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레닌그라드 음악원에서도 수학했으며, 국비 장학금을 받아 1950년부터 1955년까지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공부를 이어갔다.

2. 2. 경력

기아우로프의 경력은 1955년 파리 국제 성악 콩쿠르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고 프라하에서 열린 제5회 세계 청년 축제에서 1등과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같은 해 소피아의 오페라 극장에서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중 돈 바실리오 역으로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다. 이듬해인 1956년에는 에서 베르디의 ''아이다'' 중 람피스 역을 맡아 성공을 거두었으며, 모스크바볼쇼이 극장으로 옮겨 구노의 ''파우스트''에서 처음으로 메피스토펠레스 역을 노래했다.[4]

1958년에는 볼쇼이 극장에서 메피스토펠레스와 함께 무소르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 중 피멘 역을 맡아 주목받았고, 같은 해 이탈리아 볼로냐 오페라 극장에서 돈 바실리오 역으로 이탈리아 무대에 데뷔했다. 1959년에는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보리스 고두노프''의 바를람 역을 맡으며 국제적인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1961년 제노바에서 열린 ''파우스트'' 공연에서 메피스토펠레스 역을 맡아, 마르게리트 역의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와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었다. 이후 두 사람은 1978년 결혼하여 모데나에서 함께 살았으며, 무대와 녹음에서 자주 협연했다.

1962년에는 베르디의 ''운명의 힘''에서 파드레 과르디아노 역으로 코벤트 가든에 데뷔했으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지휘 아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베르디의 ''레퀴엠''에 처음 출연하며 명성을 높였다.[5] 1963년에는 시카고 리릭 오페라에서 구노의 ''파우스트''로 미국 무대에 데뷔했고, 이후 이 오페라단과 함께 ''보리스 고두노프'', ''돈 키호테'', ''메피스토펠레'' 등 12개의 배역을 소화했다.

1965년 11월 8일, 메피스토펠레 역으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데뷔했으며,[2] 1996년 10월 26일 ''리골레토''의 스파라푸칠레 역으로 마지막 무대에 설 때까지 총 81회의 공연을 가졌다. 그의 활동 무대는 모스크바볼쇼이 극장, 빈 국립 오페라, 코벤트 가든, 파리 오페라, 라 스칼라 등 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을 망라했다.

일본에는 1973년 제7차 NHK 이탈리아 오페라단 공연에서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 역으로 처음 방문했으며, 이후 제8차 공연에서는 ''시몬 보카네그라''의 피에스코 역을 불렀다. 1981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의 일본 공연에서는 다시 한번 ''시몬 보카네그라''의 피에스코 역을 맡아 시몬 역의 피에로 카푸칠리와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1970년대 후반에는 마스네의 오페라 ''돈 키호테''의 타이틀 롤을 맡아 최초의 완전한 스테레오 녹음을 남겼다. 그는 활발한 녹음 활동을 통해 돈 조반니, 돈 바실리오, 람피스, 콜린, 반코, 구노와 보이토의 메피스토펠레스, 보리스 고두노프 등 자신의 주요 배역들을 음반으로 남겼다.

기아우로프와 그의 아내 미렐라 프레니는 많은 오페라에서 함께 노래를 불렀으며,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시몬 보카네그라''(1971, 라 스칼라), ''파우스트''(1976, 코벤트 가든), ''돈 카를로스''(1976, 잘츠부르크), ''에르나니''(1982, 라 스칼라)가 있다.[4]

2000년 10월, 71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독일 울름에서 열린 제1회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기념 콘서트에 미렐라 프레니와 함께 출연하여 치레아, 차이코프스키, 베르디의 아리아와 듀엣을 불러 호평을 받았다.[6] 2004년 1월에는 베네치아에서 자신의 데뷔 배역이었던 돈 바실리오를 다시 노래했다.

마틴 베른하이머는 ''오페라 뉴스''에 기고한 부고 기사에서 기아우로프에 대해 "크고 따뜻하며 어두운 색깔의 놀라운 성악 기교를 구사했다. 그는 그의 지휘하에 울려 퍼지는 풍부한 음색을 아낌없이, 특히 윤기 나는 고음으로 쉽게 쏟아냈다"고 평가했다.

2004년 5월 심장 발작을 일으켜, 자택이 있는 (프레니의 고향) 모데나 근교의 병원에 입원했으나, 6월 2일에 사망했다.

2. 3. 미렐라 프레니와의 관계

니콜라이 기아우로프는 1961년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와 처음으로 함께 무대에 섰다. 당시 프레니는 마르게리트 역을, 기아우로프는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스 역을 맡았다. 기아우로프는 첫 번째 아내이자 피아니스트였던 즐라티나 미샤코바와 이혼한 후, 1978년 프레니와 재혼하여 그녀의 고향인 모데나에서 함께 거주했다.

두 사람은 자주 함께 공연했으며, 주요 협연 작품으로는 라 스칼라에서의 ''시몬 보카네그라''(1971), 코벤트 가든에서의 ''파우스트''(1976), 잘츠부르크에서의 ''돈 카를로스''(1976), 라 스칼라에서의 ''에르나니''(1982) 등이 있다.[4]

2000년 10월, 71세의 나이에도 기아우로프는 독일 울름에서 열린 제1회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기념 콘서트에 프레니와 함께 출연하여 호평을 받았다. 이 콘서트에서는 제임스 앨런 개어스의 지휘 아래 칠레아, 차이코프스키, 베르디의 오페라 아리아와 듀엣을 불렀다.[6]

2004년 5월, 기아우로프는 심장 발작을 일으켜 아내 프레니의 고향인 모데나 근교 병원에 입원했으나, 같은 해 6월 2일 사망했다.

2. 4. 일본과의 관계

1973년 제7차 NHK 이탈리아 오페라단 공연에서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 역을 맡아 일본 무대에 처음 섰다. 이후 제8차 NHK 이탈리아 오페라단 공연에도 참여하여 《시몬 보카네그라》의 피에스코 역을 노래했다.

2. 5. 말년 및 죽음

2004년 1월에는 데뷔 배역이었던 세비야의 이발사의 돈 바질리오 역을 베네치아에서 불렀다. 같은 해 5월, 심장 발작을 일으켜 자택이 있는 이탈리아 모데나 (두 번째 아내 미렐라 프레니의 고향) 근교의 병원에 입원했으나, 6월 2일에 사망했다.

3. 평가

마틴 베른하이머는 ''오페라 뉴스''에 기고한 기아우로프 부고 기사에서 그의 목소리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그는 크고 따뜻하며 어두운 색깔의 놀라운 성악 기교를 구사했다. 그는 그의 지휘하에 울려 퍼지는 풍부한 음색을 아낌없이, 특히 윤기 나는 고음으로 쉽게 쏟아냈다."

4. 기타

사우스셰틀랜드 제도의 리빙스턴 섬에 있는 기아우로프 봉은 니콜라이 기아우로프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5. 주요 출연작

1955년 소피아의 오페라 극장에서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중 돈 바실리오 역으로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다. 이듬해인 1956년에는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으로 옮겨 메피스토펠레스 역을 처음 맡았고,[4] 에서는 베르디의 ''아이다''에서 람피스 역을 맡아 성공을 거두었다.

1958년에는 볼쇼이 극장에서 구노의 ''파우스트'' 중 메피스토펠레스 역과 무소르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 중 피멘 역을 맡아 주목받았으며, 같은 해 이탈리아 볼로냐 오페라 극장에서 돈 바실리오 역으로 이탈리아 무대에 데뷔했다. 1959년에는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보리스 고두노프''의 바를람 역을 맡으며 국제적인 경력을 시작했다.

1961년 제노바에서는 훗날 아내가 되는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와 처음으로 한 무대에 섰다. 당시 공연은 구노의 ''파우스트''였으며, 기아우로프는 메피스토펠레스 역을, 프레니는 마르게리트 역을 맡았다.

1962년에는 베르디의 ''운명의 힘''에서 파드레 과르디아노 역으로 런던 코벤트 가든에 데뷔했으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지휘 아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베르디의 ''레퀴엠''에도 처음 출연했다.[5] 1963년에는 시카고 리릭 오페라에서 구노의 ''파우스트''로 미국 무대에 데뷔했으며, 이후 이 극장에서 ''보리스 고두노프'', ''돈 키호테'', ''메피스토펠레'' 등 12개의 배역을 소화했다.

1965년 11월 8일, 메피스토펠레 역으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데뷔했다.[2] 그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총 81번의 공연을 했으며, 1996년 10월 26일 ''리골레토''의 스파라푸칠레 역을 마지막으로 메트로폴리탄 무대를 떠났다. 그의 경력 동안 모스크바볼쇼이 극장, 빈 국립 오페라, 코벤트 가든, 파리 오페라 등 세계 유수의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했다.

1970년대 후반에는 마스네의 오페라 ''돈 키호테''의 최초 완전 스테레오 녹음에서 타이틀 롤을 맡았다. 그는 많은 음반을 남겼으며, 돈 조반니, 돈 바실리오, 람피스, 콜린, 반코, 구노와 보이토의 메피스토, 보리스 고두노프 등 그의 대표적인 무대 배역들을 포함한 다수의 오페라 전곡 녹음에 참여했다.

아내 미렐라 프레니와는 여러 오페라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었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시몬 보카네그라''(라 스칼라, 1971), ''파우스트''(코벤트 가든, 1976), ''돈 카를로스''(잘츠부르크, 1976), ''에르나니''(라 스칼라, 1982) 등이 있다.[4]

일본에는 1973년 제7차 NHK 이탈리아 오페라단 공연에 참여하여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 역을 맡았고, 이어진 제8차 공연에서는 ''시몬 보카네그라''의 피에스코 역을 불렀다. 1981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의 일본 공연에서는 다시 ''시몬 보카네그라''의 피에스코 역을 맡아 시몬 역의 피에로 카푸칠리와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2000년 10월, 71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독일 울름에서 열린 제1회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기념 콘서트에 참여하여 제임스 앨런 개어스의 지휘 아래 칠레아, 차이코프스키, 베르디의 오페라 아리아와 듀엣을 아내 미렐라 프레니와 함께 불러 호평을 받았다.[6] 2004년 1월에는 베네치아에서 자신의 데뷔 배역이었던 돈 바실리오 역을 다시 한번 불렀다.

6. 영상 자료

참조

[1] 서적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https://archive.org/[...] Macmillan Publishers Limited
[2] 웹사이트 Nicolai Ghiaurov, Operatic Bass, Dies at 74 https://www.nytimes.[...] 2016-05-06
[3] 웹사이트 Nicolai Ghiaurov, Gifted operatic bass who commanded the international stage for 30 years https://www.theguard[...] 2016-05-07
[4] 웹사이트 Nicolai Ghiaurov https://www.independ[...] 2021-02-18
[5] 웹사이트 Nicolai Ghiaurov - Obituary https://www.telegrap[...] 2016-05-06
[6] 웹사이트 Official Herbert von Karajan - online archive 1. Herbert von Karajan Memorial concert http://www.karajan.o[...] 2016-05-25
[7] 웹인용 Nicolai Ghiaurov, Operatic Bass, Dies at 74 https://www.nytimes.[...] 2016-05-06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