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묘
1. 개요
대빈묘는 조선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생모인 희빈 장씨의 무덤으로, 정식 묘호는 옥산부대빈묘이다. 희빈 장씨는 신사옥사로 자진한 후 '희빈장씨묘'로 불렸으나, 경종이 즉위한 후 옥산부대빈으로 추존되면서 묘호가 변경되었다. 처음에는 양주 인장리에 조성되었으나, 1719년 광주 진해촌으로 이장되었고, 1969년에는 도로 건설로 인해 현재의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 경내로 이전되었다. 묘는 봉분, 곡담, 장명등, 문인석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적 제198호로 지정되었다.
-
고양시의 문화유산 -
서오릉
서오릉은 조선 왕실의 왕릉군으로, 경릉, 창릉, 익릉, 명릉, 홍릉 등 5기의 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순창원, 수경원, 대빈묘도 포함되어 있다. -
고양시의 문화유산 -
서삼릉
서삼릉은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조선 왕실의 능원이며, 희릉, 효릉, 예릉 등의 능과 원, 묘 등이 있으며 일부 구역은 일반인 출입이 제한된다. -
경기도의 사적 -
연천 전곡리 유적
연천 전곡리 유적은 1978년 발견된 구석기 시대 유적으로, 아슐리안 석기를 포함한 다양한 석기가 출토되었으며 전곡선사박물관이 건립되어 운영되고 구석기축제가 개최된다. -
경기도의 사적 -
서오릉
서오릉은 조선 왕실의 왕릉군으로, 경릉, 창릉, 익릉, 명릉, 홍릉 등 5기의 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순창원, 수경원, 대빈묘도 포함되어 있다. -
조선의 왕릉 -
태강릉
태릉은 조선 중종의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의 단릉으로, 원래 중종의 정릉 옆에 묻히길 원했으나 침수 문제로 현재 위치에 안장되었으며, 제향은 태릉봉향회에서 주관하고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 인근에 강릉과 태릉선수촌이 있고 2014년부터 일반에 공개되었다. -
조선의 왕릉 -
서오릉
서오릉은 조선 왕실의 왕릉군으로, 경릉, 창릉, 익릉, 명릉, 홍릉 등 5기의 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순창원, 수경원, 대빈묘도 포함되어 있다.
2. 묘호 및 추존
대빈묘는 조선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생모인 희빈 장씨의 무덤이다. 정식 명칭은 옥산부대빈묘이다. 경종이 즉위 후 어머니 장씨를 옥산부대빈으로 추존하면서 묘호가 변경되었다.
2.1. 묘호
조선 숙종의 후궁이자 계비이며, 경종의 생모인 희빈 장씨의 무덤으로 정식 묘호는 옥산부대빈묘이다.
1701년 무고의 옥(=신사옥사)으로 자진한 희빈 장씨의 본래 묘호는 희빈장씨묘였으나, 경종 2년에 신임사화로 노론을 정계에서 축출한 경종이 어머니 장씨를 옥산부대빈으로 추존하여 묘호가 옥산부대빈묘로 교체되었다.
3. 조성 및 이장
1701년 음력 10월 8일 희빈가 사사된 후, 처음에는 무덤이 양주 인장리(현재의 경기도 구리시 일대)에 있었다. 그러나 묘자리가 불길하다는 의견이 많아 1718년(숙종 44년) 음력 2월 20일 숙종이 천장을 명하였다. 예조참의가 1년여 간 경기도 내에서 길지를 찾은 끝에, 그해 음력 12월 수원 청호촌과 광주 진해촌(현재의 경기도 광주시 문형동) 두 곳으로 좁혀졌다. 최종적으로 수원보다 광주 진해촌이 좋겠다는 숙종의 결정에 따라 1719년(숙종 45년)에 천장하였다.
1969년 묘소를 통과하는 도로가 생기는 바람에 희빈의 묘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의 서오릉 경내로 이전되었다.
3.1. 조선 시대
1701년 음력 10월 8일 희빈가 사사된 후, 처음에는 무덤이 양주 인장리(현재의 경기도 구리시 일대)에 있었다. 그러나 묘자리가 불길하다는 의견이 많아 1718년(숙종 44년) 음력 2월 20일 숙종이 천장을 명하였다. 예조참의가 1년여 간 경기도 내에서 길지를 찾은 끝에, 그해 음력 12월 수원 청호촌과 광주 진해촌(현재의 경기도 광주시 문형동) 두 곳으로 좁혀졌다. 최종적으로 수원보다 광주 진해촌이 좋겠다는 숙종의 결정에 따라 1719년(숙종 45년)에 천장하였다.
천장 당시 세자(경종)와 세자빈 어씨(선의왕후)는 망곡례를 거행하였다. 한편, 희빈의 묘가 천장될 때는 희빈의 첫 며느리인 단의빈 심씨(단의왕후)의 상중이었는데, 세자가 상중에 생모의 묘를 옮기면서 생모의 복권을 시도하려 했다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희빈은 1722년(경종 2년) 음력 10월 10일 옥산부대빈(玉山府大嬪)으로 추존되고, 절기마다 제사를 받게 되었다.
3.2. 현대
현대에 들어 희빈의 묘는 거의 폐허와 다름없는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1969년 묘소를 통과하는 도로가 생기는 바람에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의 서오릉 경내로 이전하였다. 서오릉에는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 김씨의 능인 익릉,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민씨 및 인원왕후 김씨가 함께 묻혀있는 명릉이 있는데, 여기에 희빈의 묘까지 들어오면서 숙종과 그 왕비 4명은 모두 같은 곳에 묻히게 되었다.
4. 묘의 구성 및 특징
묘소는 봉분 주위를 곡담이 둘러싸고 있으며, 장명등과 문인석 한 쌍이 배치되어 있다. 보통 후궁들의 묘소 중 '원(園)'에는 문인석과 석마(石馬) 등이 갖춰져 있으나, 대빈묘에는 석마 등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또 희빈의 묘는 서오릉 경내에서도 매우 구석진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규모도 작을 뿐 아니라 전체적인 석물이나 분위기 등이 사대부가의 묘보다도 못하다고 한다.
5. 기타
1970년 5월 26일 서오릉이 사적 제198호로 지정될 때 함께 포함되어 지정되었다. 무덤의 면적은 1829.792m2이다.
대빈묘 봉분에서 약 7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바위로 묘역을 눌러야 희빈의 억센 기를 누를 수 있다."라며 가져다 놓은 바위라는 소문이 있었다.
2008년 경 대한민국의 인터넷 상에서, 대빈묘를 찾아가면 남자친구가 없는 여성에게 남자친구가 생긴다는 소문이 돌기도 하였다.
경기도 광주시 문형동에 있는 원래 희빈의 묘자리는 현재 사유지로 지정되어 있으며, 별다른 시설물 없이 공터로 남아있다.
숙종의 후궁이면서 희빈과 경쟁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던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무덤은 서오릉이 아닌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홀로 떨어져 있다. 숙빈의 무덤에는 소령원이라는 묘호가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