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실업 축구
1. 개요
대한민국의 실업 축구는 20세기 초 축구 붐과 함께 등장하여, 1939년 경성실업축구연맹 결성을 시작으로 리그가 운영되었다. 1964년부터 한국실업축구연맹 주최로 전국실업축구연맹전이 개최되어 프로축구리그 출범 전까지 1부 리그 역할을 수행했다. 1983년 프로축구 슈퍼리그 출범과 함께 코리언리그가 운영되었으나, 이후 실업축구연맹전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2부 리그 역할을 했다. 2003년 K2리그로 재출범한 후 2006년 내셔널리그로 변경되어 2019년까지 지속되었으며, 2020년 K3리그에 합병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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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축구 -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전국실업축구연맹전은 1964년부터 2002년까지 운영된 대한민국의 실업 축구 리그로, K리그 출범 전에는 최상위 리그 역할을 했으며 춘계와 추계 리그로 나뉘어 매년 두 차례 개최되었다. -
실업축구 -
전국실업축구선수권대회
전국실업축구선수권대회는 1991년 창설되어 실업 축구 활성화와 프로-아마추어 축구 균형 발전을 목표로 한 대한민국의 축구 대회로, K3리그와 K4리그 시스템 통합을 통해 아마추어 축구 활성화 및 프로 축구 연계 강화에 기여하며 한국 축구 저변 확대에 이바지하고 있다. -
한국의 축구 -
축국
축국은 중국에서 기원하여 군사 훈련, 오락 등으로 발전했으며, 한나라 시대에 황실에서 인기를 얻고 송나라 시대에 전성기를 누렸으나 명나라 시대에 쇠퇴하여 사라진 공을 차는 스포츠이다. -
한국의 축구 -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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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축구 대회 -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전국실업축구연맹전은 1964년부터 2002년까지 운영된 대한민국의 실업 축구 리그로, K리그 출범 전에는 최상위 리그 역할을 했으며 춘계와 추계 리그로 나뉘어 매년 두 차례 개최되었다. -
대한민국의 축구 대회 -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는 해방 직후 한국 축구 발전과 선수 발굴에 기여했으나, K리그 출범과 FA컵 신설로 위상이 낮아져 2000년 폐지 후 FA컵에 흡수 통합된 아마추어 스포츠 대회이다.
2. 초창기 실업축구
20세기 초, 서울과 평양을 중심으로 실업 축구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며 전국 단위 대회에 참가했다. 1921년 제1회 전조선축구대회에 한성은행(조흥은행의 전신) 축구팀이 참가했고, 1922년 제2회 전조선축구대회에는 평양의 주작구락부라는 실업팀이 참가했다.
1930년 평양에서 열린 전조선축구대회 (관서체육회 주최)는 실업부를 만들어 평양 일대 실업팀들의 참여를 확대했고, 1942년 마지막 대회에서는 경평대항실업축구전이라는 부문이 따로 만들어져 평양과 서울의 실업팀 연합이 2경기를 치렀다.
1939년 서울 지역의 실업축구계 인사들이 모여 실업축구연맹을 결성하고 제1회 실업축구리그를 개최하였다. 경성실업축구연맹은 이후 서울시실업축구연맹을 거쳐 한국실업축구연맹으로 이어졌다.
해방 이후 1946년부터 서울신문 주최로 실업축구대회가 다시 열렸다. 1949년에는 대한축구협회 서울시지부 주최로 리그 틀을 갖춘 봄, 가을 서울시실업축구연맹전이 개최되었고, 1946년 이후 매년 열리던 실업축구대회는 그사이에 열려 일종의 리그컵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1950년 춘기 실업축구연맹전을 끝으로 모든 실업축구대회는 중단되었다. 1950년대에는 실업축구 자체를 위한 대회나 리그 기록은 찾아보기 어려우며, 전국축구선수권대회, 대통령배쟁탈축구대회, 전국체육대회, 전국도시대항축구대회 등에 실업팀들이 참가했던 기록이 있다.
1960년대에는 아시안컵 2연패 달성, 여러 실업팀 창단 등으로 축구 열기가 뜨거워졌다. 1960년 8월 서울특별시체육회 주최 실업축구대회가 열렸고, 1963년 3월에는 경남축구협회와 국제신보사 공동 주최로 부산공설운동장에서 군실업대학초청축구대회가 열렸으며, 6월에는 대한축구협회 주최로 서울운동장에서 춘계 전국일반및군,대학종별축구리그전이 열렸다.
2.1. 실업팀들의 등장 (1910년대–1930년대)
20세기 초, 축구 붐과 함께 학교팀, 학교 졸업생팀, 순수 동호회 팀과 같은 다양한 유형의 클럽들이 등장했고, 같은 직장 동료들로 구성된 실업팀들도 나타났다. 특히 상공업이 발달했던 서울과 평양을 중심으로 실업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며 전국 단위 대회에 참가했다. 1921년 제1회 전조선축구대회에 한성은행(조흥은행의 전신) 축구팀이 참가했고, 1922년 제2회 전조선축구대회에는 평양의 주작구락부라는 실업팀이 참가했다.
평양에서 열린 전조선축구대회 (관서체육회 주최)는 1930년부터 실업부를 만들어 평양 일대 실업팀들의 참여를 확대했고, 1942년 마지막 대회에서는 경평대항실업축구전이라는 부문이 따로 만들어져 평양과 서울의 실업팀 연합이 2경기를 치렀다.
2.2. 경성실업축구연맹 결성과 실업축구리그 (1939년)
1939년 서울 지역의 실업축구계 인사들이 모여 실업축구연맹을 결성하고 제1회 실업축구리그를 개최하였다. 비록 이 리그는 1회만 열리고 중단되었지만, 경성실업축구연맹은 이후 서울시실업축구연맹을 거쳐 한국실업축구연맹으로 이어졌다. 당시 연맹에는 경성을 기반으로 한 공기업, 은행, 사기업체들이 주로 참여했는데, 이들은 해방 이후에도 대한민국 실업축구의 근간이 되었다. 서울은 한국 정치, 경제의 중심지로서 주요 기업들의 본거지였기 때문에 실업축구 활동도 주로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는 이후 40여 년간 한국 축구에서 1부 리그 역할을 하는 실업축구에 지역 연고 도입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2.3. 해방과 한국전쟁 직후 (1940년대–1960년대 초)
해방 이후 1946년부터 서울신문 주최로 다시 실업축구대회가 열렸다. 1949년에는 대한축구협회 서울시지부 주최로 리그 틀을 갖춘 봄, 가을 서울시실업축구연맹전이 개최되었고, 1946년 이후 매년 열리던 실업축구대회는 그사이에 열려 일종의 리그컵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1950년 춘기 실업축구연맹전을 끝으로 모든 실업축구대회는 중단되었다. 1950년대에는 실업축구 자체를 위한 대회나 리그 기록은 찾아보기 어려우며, 전국축구선수권대회, 대통령배쟁탈축구대회, 전국체육대회, 전국도시대항축구대회 등에 실업팀들이 참가했던 기록이 있다.
1960년대에는 아시안컵 2연패 달성, 여러 실업팀 창단 등으로 축구 열기가 뜨거워졌다. 1960년 8월 서울특별시체육회 주최 실업축구대회가 열렸고, 1963년 3월에는 경남축구협회와 국제신보사 공동 주최로 부산공설운동장에서 군실업대학초청축구대회가 열렸으며, 6월에는 대한축구협회 주최로 서울운동장에서 춘계 전국일반및군,대학종별축구리그전이 열렸다.
3. 실업축구연맹전
제1회 춘계 전국실업축구연맹전은 1964년 7월 한국실업축구연맹 주최로 열렸다. 이 대회는 매년 봄, 가을 두 차례 열리는 정규리그로서, 프로축구리그가 창설되기 전까지 대한민국 축구의 1부 리그 역할을 했다. 1960년대 후반에는 금융단 축구단들이 대거 창단되어 금융단 축구대회가 따로 열릴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한국실업축구 발전에 한 획을 그었다.
1982년 말, 슈퍼리그 개막을 앞두고 실업축구를 1, 2부로 나누고 명칭을 코리언리그로 바꾸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이는 1980년부터 시행하려던 것이었으나 구단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1983년, 한국 축구 최초로 1부 7개 팀, 2부 8개 팀으로 리그를 운영하였다. 1부 리그는 프로축구처럼 연고지 제도를 도입했고(2부는 서울에서만 경기), 이 해에는 슈퍼리그(1부), 코리언리그 1부(2부), 코리언리그 2부(3부)의 세 개 디비전이 존재했다. 하지만 1984년 대한축구협회는 다시 통합리그로 환원시키고, 체육부의 외래어 순화 정책으로 대회 명칭도 실업축구연맹전으로 변경되었다. 1989년에는 전반기(청룡), 후반기(화랑) 운영으로 바뀌었으며, 청룡리그 당시에는 연고지 제도가 시행되기도 했다.
3.1. 프로축구 출범 전 (1964년–1983년)
1964년 7월 전국실업축구연맹(이후 한국실업축구연맹) 주최로 제1회 춘계 전국실업축구연맹전이 열렸다. 이 대회는 매년 봄, 가을 두 차례 열리는 정규리그로서, 프로축구리그가 창설되기 전까지 대한민국 축구의 1부 리그 역할을 했다. 1960년대 후반에는 금융단 축구단들이 대거 창단되어 금융단 축구대회가 따로 열릴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한국실업축구 발전에 한 획을 그었다.
1960년대부터 실업축구 리그 운영은 대략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 한국실업축구연맹 주최
전국실업축구연맹전(춘계/추계): 2002년 제39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2003년부터 현 내셔널리그 정규리그로 전환되었다.
군-실업 축구대회: 1993년 제25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
대통령배 금융단 축구대회: 1993년 제25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
국무총리배 금융단 축구대회: 1976년 제8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
전국실업축구선수권대회: 2002년 제11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2003년부터 현 내셔널리그 축구선수권대회로 전환되었다.
* 대한축구협회 주최
전국축구선수권대회: 2000년 제55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2001년부터 현 FA컵과 통합되었다.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2009년 제57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
* 대한체육회 주최
전국체육대회
대회 수는 적지 않았으나, 여러 중소 대회가 난립하면서 축구팬들의 외면 속에 텅 빈 경기장에서 치러지는 대회가 많았다. 이에 실업축구연맹은 리그를 1부와 2부로 나누어 승강제를 도입하는 디비전 시스템을 구상했다. 이를 위해 1975년 춘계리그에는 19개 팀이 171경기를 치르는 풀리그 제도를 도입했다. 또한, 그 해 우승팀은 가을에 열리는 한일실업축구정기전에 참가하여 일본 실업 우승팀과 경기를 갖도록 하여, 현재의 AFC 챔피언스리그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게 했다. 그러나 일부 실업팀의 반발로 디비전 제도는 백지화되었고, 이는 4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한국 축구의 숙제로 남아있다.
3.2. 프로축구 출범 후 (1983년–2002년)
1983년 프로축구 슈퍼리그 개막을 앞두고, 1982년 말 실업축구를 1, 2부로 나누고 명칭을 코리언리그로 바꾸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1980년부터 시행하려다 구단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던 이 계획은, 1983년 한국 축구 최초로 1부 7개 팀, 2부 8개 팀으로 구분하여 리그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실현되었다. 1부 리그는 프로축구처럼 연고지 제도를 도입했고(2부는 서울에서만 경기), 이 해에는 슈퍼리그(1부), 코리언리그 1부(2부), 코리언리그 2부(3부)의 세 개 디비전이 존재했다. 하지만 1984년 대한축구협회는 다시 통합리그로 환원시키고, 체육부의 외래어 순화 정책으로 대회 명칭도 실업축구연맹전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1980, 90년대 실업축구는 2부 리그 역할을 했지만, 프로축구와의 승강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편 1991년에는 제1회 전국실업축구선수권대회가 개최되어, 리그컵대회로서 현재의 내셔널축구선수권대회로 이어지고 있다. 1989년에는 전반기(청룡), 후반기(화랑) 운영으로 바뀌었으며, 청룡리그 당시에는 연고지 제도가 시행되기도 했다.
4. 내셔널리그 (2003년–2019년)
2000년 대한축구협회는 프로 2부리그 창단 방안을 검토하면서 기존의 춘계실업연맹전을 실험적으로 현대자동차 K2리그로 운영하였다. 그 후 2001년과 2002년에 '프로2부리그 도입을 포함한 축구발전 10대 과제 연구용역 및 발표' 등 다각도의 준비 작업을 거쳐 2003년 K2리그라는 이름으로 재출범하였다. 이는 대한민국 축구 리그 시스템에서 2부 리그에 해당한다. 2006년 리그 이름을 [[내셔널리그 (대한민국의 축구)|내셔널리그]](Korea National League)로 변경하여 2019년까지 지속되었다.
2020년부터 내셔널리그는 새로 출범하는 3부 세미프로리그인 K3리그에 합병되면서 2019시즌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