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국기는 단네브로그(Dannebrog)라고 불리며, 흰색 스칸디나비아 십자가가 있는 붉은색 깃발이다. 16세기부터 전해지는 전설에 따르면, 덴마크 국기는 1219년 린다니세 전투에서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덴마크 국기는 여러 변형이 있으며, 왕실기, 정부기 및 해군기가 존재한다. 또한, 덴마크 왕국에 속한 그린란드와 페로 제도도 자체적인 깃발을 사용한다. 덴마크의 일부 지역에서는 비공식 깃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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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기 - 페로 제도의 기 페로 제도의 깃발은 흰색 바탕에 파란색 테두리가 있는 빨간색 노르딕 십자가로, 1919년 디자인되어 1940년 영국 점령 정부에 의해 사용이 승인된 후 1948년 덴마크 정부에 의해 공식 국기로 인정받았으며, 흰색은 바다의 거품과 하늘, 빨간색과 파란색은 북유럽 국가들과의 유대 관계를 상징하며 매년 4월 25일에 기념된다.
덴마크의 기 - 그린란드의 기 그린란드의 기는 1985년 채택된 국기로, 흰색 바탕에 붉은색 태양과 흰색 빙산을 상징하는 반원이 마주보는 형태이다.
국기 - 일본의 국기 일본의 국기는 흰색 바탕에 붉은 원이 그려진 디자인으로, 태양을 상징하며 1999년 법률에 의해 공식적으로 국기로 지정되었다.
국기 - 독일의 국기 독일 국기는 검은색, 빨간색, 금색 가로 줄무늬 삼색기로, 자유주의와 통일 독일을 상징하며, 1949년 서독과 동독, 그리고 1990년 독일 재통일 이후 통일 독일의 공식 국기로 채택되었다.
유럽 - 리투아니아 리투아니아는 발트 3국 중 가장 큰 국가로, 1009년에 이름이 처음 언급되었고, 1253년 통일 국가를 세운 후 폴란드와의 연합을 거쳐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었다가 제1차 세계 대전 중 독립, 소련 점령과 재독립을 거쳐 현재는 민주주의 공화국으로 유럽 연합, NATO, OECD 회원국이다.
유럽 - 벨기에 벨기에는 서유럽에 위치하며, 네덜란드, 독일, 룩셈부르크, 프랑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를 주로 사용하며, 유럽 연합과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의 창립 회원국으로서, 브뤼셀은 유럽 연합의 주요 기관들이 위치한 도시이다.
덴마크 국기의 빨간색("Dannebrog rød")에 대한 공식적인 정의는 없다. 민간 기업인 덴스크 스탠다드(Dansk Standard) 규정 번호 359(2005)에서는 국기의 빨간색을 팬톤 186c로 정의한다.
3. 디자인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단체 추발 메달 수여식에서의 덴마크 국기
1748년 규정에 따르면, 덴마크 국기는 4:4 비율의 정사각형 두 개와 6:4 비율의 직사각형 두 개로 구성되며, 흰색 십자가는 국기 높이의 1/7이다.[6]
3. 1. 제작 도면
현재까지도 시행되고 있는 1748년 규정에 따르면, 국기는 4:4 비율의 두 개의 정사각형으로 구성되며, 흰색 십자가는 국기 높이의 1/7이고, 두 개의 직사각형 영역은 6:4 비율이다.[6] 전체 숫자를 얻기 위해 비율에 3을 곱하면 제시된 구성표의 비율이 나온다 (28을 4로 나누면 흰색 십자가의 7이 된다).
4. 역사
덴마크 국기, 즉 '다네브로그(Dannebrog)'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16세기에 기록되기 시작했다. 이 전설에 따르면, 덴마크 국기는 발데마르 2세의 군사 원정 때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크리스티안 페데르센이 1520년부터 1523년까지 쓴 ''Danske Krønike''에 나타나는데, 이는 삭소 그라마티쿠스의 Gesta Danorum|게스타 다노룸la의 속편이다. 페데르센은 발데마르 왕의 해외 원정 중 국기가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1440년 에리크 포메라니아 왕이 망명길에 이 깃발을 가져갔다고 기록했다.[12]
이후, 로스킬데의 프란체스코 수도사 페트루스 올라이는 발데마르 2세의 리보니아 원정 중 1208년 펠린 근처 전투에서 덴마크 군이 패배 직전에 놓였을 때, 하늘에서 흰 십자가가 그려진 양가죽 깃발이 내려와 기적적으로 승리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올라이의 또 다른 기록인 ''Danmarks Tolv Herligheder''에서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지만, 1219년 린다니세 전투에서 국기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으로 연도가 수정되었다.
19세기와 20세기 덴마크 역사가들은 이 기원 설화의 역사적 사실 여부를 두고 다양한 논쟁을 벌였다. 아돌프 디틀레프 예르겐센은 테오도리히 주교가 1219년 전투에서 성 요한 기사단의 깃발을 들고 있었고, 적군이 이를 왕의 상징으로 오인하여 공격했다고 주장했다.[12] 반면, 덴마크 교회사가 L. P. 파브리시우스는 1208년 펠린 전투가 기원이라고 주장하며, 안드레아스 수네손 대주교나 압살론 대주교의 깃발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7] 헬게 브룬은 이 전설을 기독교 전설에서 흔히 나타나는 하늘에서 십자가가 나타나는 기적 이야기의 연장선에서 해석했다.[8]
겔레 팔장(fol. 55v)에 묘사된 덴마크 국왕의 문장. 흰색 바탕에 붉은 십자가 깃발이 함께 그려져 있다.
흰색 바탕에 붉은 십자가 문장은 십자군 전쟁 시대부터 사용되었으며, 신성 로마 제국의 전쟁 깃발로도 사용되었다. 1340년에서 1370년 사이에 제작된 ''겔레 팔장''에는 덴마크 국장과 함께 이 깃발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다네브로그를 색상으로 묘사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10] 발데마르 4세는 자신의 인장에 십자가 문장을 새겼으며, 에리크 포메라니아 공의 칼마르 동맹 국왕 인장에도 덴마크를 상징하는 세 마리 사자와 함께 다네브로그 깃발이 나타난다.
에리크 포메라니아 공의 1398년 칼마르 동맹 국왕으로서의 인장. 왼쪽 상단에 세 마리의 덴마크 사자가 들고 있는 작은 단네브로그 깃발이 묘사되어 있다.
14세기 덴마크 국왕들이 국장에 십자가 깃발을 사용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카스파르 팔루단뮐러는 리보니아 십자군 당시 교황이 보낸 깃발일 수 있다고 추정했고,[11] 아돌프 디틀레프 예르겐센은 몰타 기사단의 깃발일 가능성을 제기했다.[12]
16세기 초, 덴마크군은 "주요 깃발"(''hoffuitbanner'')을 보유했다는 기록이 있다. 닐스 헤밍스외는 1520년 웁살라 근처 전투에서 이 깃발이 스웨덴군에게 빼앗길 뻔했으나, 모겐스 귈덴슈티에르네와 페데르 스크람의 용기로 구해졌다고 언급했다. 한스 스바닝과 요한 란차우는 덴마크 ''hoffuitbanner''의 이후 상황을 기록했다. 전설에 따르면, 린다니세 전투의 원래 깃발은 1500년 한스 왕의 디트마르센 정복 시도 중 헤밍스테트 전투에서 분실되었다가, 1559년 프레데리크 2세가 되찾았다. 헨리크 란차우는 깃발이 반환되었을 때 상태가 좋지 않았으며, 슐레스비히 대성당에 보관되었다가 1660년경 훼손되었다고 기록했다.
1785년, 다네브로그는 덴마크 육군의 연대기로 도입되었고, 1801년에는 민병대에서도 사용되었다. 1842년부터는 덴마크군 전체의 깃발이 되었다.[13] 19세기 전반, 낭만적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군기는 점차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B.S. 잉에만, N.F.S. 그룬트비히, 외렌슐레거, 크리스티안 빈터,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등 당대 시인들이 ''Dannebrog''를 찬양하는 시를 썼다.[13] 1830년대에는 비공식적인 국기로 인기를 얻었으나, 1834년 민간 사용이 금지되었다.
1848년부터1850년까지의 슐레스비히-홀슈타인 1차 전쟁을 거치며 국가적 열정이 고조되면서 덴마크 국기는 널리 사용되었고, 1854년 민간 사용 금지가 해제되어 덴마크 시민들도 자유롭게 국기를 게양할 수 있게 되었다.[14] 1915년 덴마크 영토 내에서 다른 깃발을 게양하는 것이 금지되었으나,[15] 2023년 이 금지 조치가 해제되었다.[16]
프레데리시아 전투(1849) 후 코펜하겐으로 돌아오는 덴마크 군인들. 덴마크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1차 전쟁에서 독일 반군을 물리쳤다(오토 바체(Otto Bache)의 1894년 작품).
16세기에 기록된 전통에 따르면 덴마크 국기의 기원은 발데마르 2세의 원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크리스티안 페데르센(Christiern Pedersen)의 ''Danske Krønike''에 있으며, 여기에는 발데마르의 해외 군사 원정 중 하나에서 국기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이야기가 나온다.[12]
두 번째 자료는 프란체스코 수도사 페트루스 올라이(Petrus Olai)의 저술이다. 이 기록은 1208년 펠린 근처에서 벌어진 전투를 묘사하는데, 덴마크군이 패배 직전에 하늘에서 흰 십자가가 그려진 양가죽 깃발이 떨어져 기적적으로 승리했다는 내용이다. 페트루스 올라이의 세 번째 기록 ''Danmarks Tolv Herligheder''에서는 거의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지만, 연도가 1219년으로 수정되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국기는 1219년 6월 15일 린다니세 전투에서 하늘에서 떨어졌다.[12]
이 세 번째 기록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일부 역사가들은 이것을 15세기 전반에 작성된 (소실된) 자료에서 가져온 주요 기록으로 간주한다. 올라이의 기록에 따르면 전투는 덴마크군에게 불리하게 진행되었고 패배가 임박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덴마크의 안데르스 수네센(Anders Sunesen) 주교가 언덕 위에서 팔을 들고 기도하자 덴마크군이 승리에 가까워졌다. 주교가 팔을 내리면 에스토니아군이 덴마크군을 밀어냈고, 시종들이 달려와 다시 팔을 들면 덴마크군이 다시 돌격했다. 주교는 두 명의 병사의 도움을 받아 팔을 들고 있어야 했다. 덴마크군이 패배 직전에 놓였을 때, ''Dannebrog''(덴마크 국기)가 기적적으로 하늘에서 떨어졌다. 왕이 이를 가져다 군대에게 보여주자 군인들은 용기를 얻었고 덴마크군은 전투에서 승리했다.[12]
이 기원 설화의 역사적 토대는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덴마크 역사가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논의되었다. 아돌프 디틀레프 예르겐센(Adolf Ditlev Jørgensen)은 테오도리히 주교가 1219년 전투에서 성 요한 기사단의 깃발을 들고 있었을 것이며, 적들이 이것이 왕의 상징이라고 생각하고 실수로 테오도리히 주교의 텐트를 공격했다고 추측한다.[12]
덴마크 교회사가 L. P. 파브리시우스(1934)는 기원을 1219년 린다니세 전투가 아닌 1208년 펠린 전투로 돌린다. 파브리시우스는 이것이 안드레아스 수네손(Andreas Sunesøn) 대주교의 개인적인 교회 깃발이었거나, 에스토니아에서 여러 차례의 소규모 십자군을 이미 수행했던 아브살론(Absalon) 대주교의 깃발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 깃발은 이미 에스토니아에서 알려져 있었을 것이다. 파브리시우스는 적들이 실수로 왕의 텐트라고 생각하고 테오도리히 주교의 텐트 앞에 꽂힌 깃발을 공격했다는 예르겐센의 생각을 반복한다.[7]
헬게 브룬(Helge Bruhn, 1949)은 이 이야기를 기독교 전설에서 하늘에 십자가가 기적적으로 나타나는 널리 퍼진 전통의 맥락에서 해석하며, 특히 1217년 9월 10일 알카사르 근처 전투에서 하늘에 흰 바탕에 금십자가가 나타나 기독교인들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었다는 사건과 비교한다.[8]
18세기 스웨덴의 국민 역사에는 덴마크 전설과 유사한 이야기가 있는데, 1157년 핀란드에서 벌어진 스웨덴 전투 중에 푸른 하늘에 금십자가가 나타났다는 이야기이다.[9]
1219년 6월 15일 린다니세 전투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덴마크 국기. 크리스티안 아우구스트 로렌첸(Christian August Lorentzen)이 1809년에 그린 그림.
4. 2. 중세 시대
16세기 기록에 따르면 덴마크 국기의 기원은 발데마르 2세(재위 1202~1241)의 원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크리스티안 페데르센의 ''Danske Krønike''에 있으며, 이는 1520년부터 1523년까지 쓰여진 삭소 그라마티쿠스의 Gesta Danorum|게스타 다노룸la의 속편이다. 여기에는 발데마르의 해외 군사 원정 중 하나에서 국기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이야기가 나온다. 페데르센은 또한 같은 깃발이 1440년 에리크 포메라니아에 의해 망명으로 가져가졌다고 명시한다.[12]
두 번째 자료는 로스킬데의 프란체스코 수도사 페트루스 올라이(Peder Olsen, 사망)의 저술이다. 이 기록은 발데마르 2세의 에스토니아 원정 중 1208년 펠린 근처에서 벌어진 전투를 묘사한다. 덴마크군은 패배 직전에 놓였는데, 하늘에서 흰 십자가가 그려진 양가죽 깃발이 떨어져 기적적으로 덴마크군의 승리를 가져왔다고 한다. 페트루스 올라이의 세 번째 기록인 ''Danmarks Tolv Herligheder'' ("덴마크의 열두 가지 영광")의 아홉 번째 영광에서도 거의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며, 연도를 1219년으로 수정하는 단락이 삽입되어 있다. 이제 국기는 린다니세 전투, 즉 발데마르 전투(덴마크어: ''Volmerslaget'')로도 알려진 1219년 6월 15일 에스토니아 린다니세(탈린) 근처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하늘에서 떨어진다.
이 세 번째 기록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일부 역사가들은 이것을 15세기 전반에 작성된 (소실된) 자료에서 가져온 주요 기록으로 다루었다.
올라이의 기록에 따르면 전투는 좋지 않게 진행되었고 패배가 임박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덴마크의 안데르스 수네센 주교는 전투가 벌어지는 언덕 위에 있었고 팔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기도를 하자 덴마크군이 승리에 가까워졌다. 주교가 팔을 들자 덴마크군이 돌격했지만, 팔이 지치자 팔을 내리자 에스토니아군이 덴마크군을 밀어냈다. 시종들이 달려와 다시 팔을 들었고, 덴마크군이 다시 돌격했지만, 두 번째로 팔이 지쳐 팔을 내리자 덴마크군은 다시 불리해졌고 패배에 가까워졌다. 주교는 두 명의 병사의 도움을 받아 팔을 들고 있어야 했다. 덴마크군이 패배 직전에 놓였을 때, ''Dannebrog''(덴마크 국기)이 기적적으로 하늘에서 떨어졌다. 왕이 이를 가져다 군대에게 보여주자 군인들은 용기를 얻었고 덴마크군은 전투에서 승리했다.
이 기원 설화의 역사적 토대는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덴마크 역사가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논의되었다. 그 한 예로 아돌프 디틀레프 예르겐센은 테오도리히 주교가 발데마르 2세에게 보낸 1218년 알베르트 폰 북스회프덴 주교의 질의의 원래 제기자였으며, 이것이 발트 십자군에 대한 덴마크의 참여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예르겐센은 테오도리히 주교가 1219년 전투에서 성 요한 기사단의 깃발을 들고 있었을 것이며, "적들은 이것이 왕의 상징이라고 생각하고 실수로 테오도리히 주교의 텐트를 공격했다"고 추측한다.[12]
덴마크 교회사가 L. P. 파브리시우스(1934)는 이 이야기에 관한 가장 초기 자료를 바탕으로 기원을 1219년 린다니세 전투가 아닌 1208년 펠린 전투로 돌린다. 파브리시우스는 이것이 안드레아스 수네손 대주교의 개인적인 교회 깃발이었거나, 에스토니아에서 여러 차례의 소규모 십자군을 이미 수행했던 압살론 대주교의 깃발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 깃발은 이미 에스토니아에서 알려져 있었을 것이다. 파브리시우스는 적들이 실수로 왕의 텐트라고 생각하고 테오도리히 주교의 텐트 앞에 꽂힌 깃발을 공격했다는 예르겐센의 생각을 반복한다.
파브리시우스가 간략하게 논의하고 헬게 브룬(1949)이 더 자세히 설명한 다른 이론이 있다. 브룬은 이 이야기를 기독교 전설에서 하늘에 십자가가 기적적으로 나타나는 널리 퍼진 전통의 맥락에서 해석하며, 특히 1217년 9월 10일 알카세르두살 근처 전투에서 하늘에 흰 바탕에 금십자가가 나타나 기독교인들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었다는 사건과 비교한다.[8]
18세기 스웨덴의 국민 역사에는 덴마크 전설과 유사한 이야기가 있는데, 1157년 핀란드에서 벌어진 스웨덴 전투 중에 푸른 하늘에 금십자가가 나타났다는 이야기이다.[9]
흰색 바탕에 붉은 십자가 문장은 십자군 전쟁 시대에 유래했다. 12세기에는 신성 로마 제국은 이를 전쟁 깃발로 사용하기도 했다.
약 1340년~1370년에 작성된 ''겔레 팔장''에는 덴마크 국장과 함께 이러한 깃발이 묘사되어 있다.[10] 이는 단네브로그의 가장 오래된 확실한 색상 묘사이다. 거의 같은 시기에 발데마르 4세는 자신의 ''Danælog'' 인장 (''Rettertingsseglet'', 1356년)에 십자가 문장을 새겼다. 겔레 팔장의 이미지는 현재 스웨덴 국립문서보관소에 있는 15세기 문장 책에 있는 이미지와 거의 동일하다. 에리크 포메라니아 공(1398년)의 칼마르 동맹 국왕으로서의 인장에는 덴마크의 주요 우측 문장인 세 마리 사자가 새겨져 있다. 이 버전에서 사자들은 단네브로그 깃발을 들고 있다.
14세기 덴마크 국왕들이 국장에 십자가 깃발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카스파르 팔루단뮐러(1873년)는 리보니아 십자군 당시 교황이 국왕을 지원하기 위해 보낸 깃발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11] 아돌프 디틀레프 예르겐센(1875년)은 이 깃발을 몰타 기사단의 깃발로 확인했는데, 이 기사단은 12세기 후반부터 덴마크에 존재했다.[12]
13세기부터 15세기, 심지어 그 이전부터 외국과 국내 모두에서 여러 개의 동전, 인장, 이미지가 존재하며, 왕실 국장(금색 방패에 세 마리의 파란 사자)과 함께 유사한 문장 디자인을 보여준다.
16세기 초 덴마크군이 "주요 깃발"(''hoffuitbanner'')을 가지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깃발은 1570년 닐스 헤밍스외가 웁살라 근처에서 덴마크인과 스웨덴인 간의 1520년 전투와 관련하여 언급했는데, 스웨덴군에 의해 거의 빼앗길 뻔했지만 깃발 운반자인 모겐스 귈덴슈티에르네와 페데르 스크람의 용감한 행동으로 구해졌다고 한다. 기적적인 기원을 발데마르 2세(재위 1202-1241)의 원정으로 돌리는 전설은 1520년대에 크리스티안 페데르센과 페트루스 올라이에 의해 기록되었다.
1558년부터 1559년까지 한스 스바닝의 ''한스 왕의 역사''와 1569년 요한 란차우의 ''최근 디트마르센 전쟁에 관한 역사''는 덴마크 ''hoffuitbanner''의 후속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전통에 따르면, 린다니세 전투의 원래 깃발은 1500년 한스 왕이 서쪽 홀슈타인(북부 독일)에 있는 디트마르센을 정복하려고 시도했던 소규모 원정에서 사용되었다. 이 깃발은 2월 17일 1500년 헤밍스테트 전투에서의 참패로 분실되었다. 1559년 프레데리크 2세 국왕은 자신의 디트마르센 원정 중에 이를 되찾았다.
1576년 요한 란차우의 아들인 헨리크 란차우도 전쟁과 깃발의 운명에 대해 기록하며, 깃발이 반환되었을 때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언급한다. 그는 깃발이 덴마크로 돌아온 후 슐레스비히 대성당에 보관되었다는 것을 기록한다. 슐레스비히 역사가 울리크 페터센(1656-1735)은 17세기 초 대성당에 이러한 깃발이 있었음을 확인하고, 약 1660년경에 깃발이 무너져 내렸다고 기록했다.
헤밍스테트 전투를 묘사하는 당시 기록에는 원래 단네브로그의 분실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항복 문서에는 1500년에 분실된 모든 덴마크 깃발을 반환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2월 22일 1500년 올루프 스티그손에게 보낸 편지에서, 요한 왕은 전투를 묘사하지만 중요한 깃발의 분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사실, 편지 전체는 패배한 전투가 제한적인 중요성을 지녔다는 인상을 준다. 1598년 네오코루스는 1500년에 붙잡힌 깃발이 뵈어던의 교회로 가져와서 59년 동안 걸려 있었고 1559년 평화 협정의 일환으로 덴마크인들에게 반환되었다고 썼다.
4. 3. 근현대
16세기부터 해상 깃발로 사용되어 온 덴마크 국기(Dannebrog)는 1785년 덴마크 육군의 연대기로 도입되었고, 1801년에는 민병대(landeværn)에서 사용되었다. 1842년부터는 덴마크군 전체의 깃발로 사용되었다.[13]
19세기 전반,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 낭만적 민족주의가 발전하는 것과 병행하여, 군기는 점차 국가 자체를 대표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B.S. 인게만(Ingemann), N.F.S. 그룬트비히(Grundtvig), 외렌슐레거(Oehlenschläger), 크리스티안 빈터(Chr. Winther),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C. Andersen) 등이 ''Dannebrog''을 묘사한 당시의 시를 썼다.[13] 1830년대까지 군기는 비공식적인 국기로 인기를 얻었고, 1834년 1월 7일 시행된 공문에서 민간인의 사용이 금지되었다.
1848년부터1850년까지 일어난 슐레스비히-홀슈타인 1차 전쟁에서 불붙은 국가적 열정 속에서, 이 깃발은 여전히 널리 사용되었고, 민간 사용 금지는 1854년 7월 7일 규정에 의해 폐지되었는데, 이 규정은 처음으로 덴마크 시민들이 덴마크 국기를 게양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하지만 삼각형 꼬리가 달린 ''Splitflag'' 변형은 제외).[14] 특히 1870년 이후로 ''Splitflag'' 사용에 대한 특별 허가는 개별 기관 및 민간 회사에 부여되었다. 1886년, 전쟁부는 왕족의 생일, 1849년 6월 5일 헌법 서명일, 군사 전투 기념일 등 13일 동안 군 시설에서 깃발을 게양해야 한다는 규정을 도입했다. 1913년, 해군부는 자체적인 깃발 게양일 목록을 발표했다. 1915년 4월 10일, 덴마크 영토에서 다른 깃발을 게양하는 것이 금지되었다.[15] 대법원 판결 이후 2023년 6월 24일 금지 조치가 해제되었다.[16] 1939년부터 2012년까지 연감 ''Hvem-Hvad-Hvor''에는 깃발 게양일 목록이 포함되어 있었다. 2019년 현재, 깃발 게양일은 [https://www.justitsministeriet.dk/temaer/flagning/flagdage/ "사법부(Justitsministeriet)"] 및 [http://www.danmarks-samfundet.dk "덴마크 협회(Danmarks-Samfundet)"]에서 확인할 수 있다.
5. 여러 국기들
덴마크에는 여러 종류의 국기가 사용된다. 대표적으로 정부기(''Splitflag'')와 해군기(''Orlogsflag'')가 있다.
정부기 (Splitflag): 제비꼬리 모양으로 끝나는 덴마크 국기로, ''Dannebrog red'' 색상이며 육상에서 사용된다.[17]
해군기 (Orlogsflag): 더 짙은 빨간색을 띠는 길쭉한 ''Splitflag''이며, 바다에서만 사용된다.[17]
''Splitflag''와 ''Orlogsflag''는 모양은 비슷하지만 크기와 빨간색 색조가 다르며, 법적으로 서로 다른 깃발이다. 표식이 없는 ''Orlogsflag''는 덴마크 왕립 해군에서만 사용할 수 있지만, 일부 기관은 예외적으로 게양 허가를 받았다. 표식이 있는 ''Orlogsflag''는 수십 개의 회사와 기관에 대해 승인되었다. 또한, ''Orlogsflag''는 추가 표식이 없는 경우에만 그렇게 설명되며, 색상에 관계없이 제비꼬리 모양의 깃발은 추가 표식이 있는 경우 ''Splitflag''라고 한다.
5. 1. 덴마크의 국기
1748년 규정에 따르면, 현재까지도 시행되고 있는 덴마크 국기는 4:4 비율의 두 개의 정사각형으로 구성되며, 흰색 십자가는 국기 높이의 1/7이고, 두 개의 직사각형 영역은 6:4 비율이다.[6]
DSR 조정 클럽 개장식에서 게양된 깃발
1748년 6월 11일 규정에는 상선용 민간기(''Koffardiflaget'')의 크기와 모양이 명시되어 있다. "갈라진 끝이 없는 흰 십자가가 있는 붉은색 깃발. 흰 십자가는 깃발 높이의 1/7이어야 한다. 처음 두 영역은 정사각형이어야 하며, 나머지 두 영역은 그 크기의 6/4 길이여야 한다." 따라서 비율은 세로로 3:1:3, 가로로 3:1:4.5이다. 이 정의는 오늘날까지 민간용 깃발(''Stutflaget'')과 상선용 깃발(''Handelsflaget'') 모두에 적용되는 덴마크 국기의 절대적인 비율이며, 두 깃발은 색상과 디자인이 동일하다.
1758년에 제정된 규정에 따라 지중해를 항해하는 덴마크 선박은 말타 십자군 기사단의 기와 유사하기 때문에 말타 선박과 구별하기 위해 깃발 중앙에 왕실 문장을 게양해야 했다.
1748년 6월 11일 규정에 따르면 색상은 단순히 붉은색이었는데, 오늘날 "Dannebrog rød"(“단네브로그 레드”)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사용 가능했던 유일한 붉은색 염료는 꼭두서니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선명한 붉은색 염료를 생산할 수 있으며 역사적으로 영국과 덴마크 군인의 재킷에 사용되었다. 1927년 5월 4일 규정은 다시 한번 덴마크 상선이 1748년 규정에 따라 깃발을 게양해야 함을 명시했다.
''Splitflag''에 관한 최초의 규정은 1630년 3월 27일 크리스티안 4세 국왕이 노르웨이 ''Defensionskibe''(무장 상선)가 덴마크 전쟁에 참여할 경우에만 ''Splitflag''를 사용할 수 있도록 명령하면서 시작되었다. 1685년에는 슐레스비히의 여러 도시에 모든 선박이 덴마크 국기를 게양해야 한다는 명령이 내려졌고, 1690년에는 동인도, 서인도 또는 아프리카 해안을 항해하는 선박을 제외한 모든 상선은 ''Splitflag''를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1741년에는 1690년 규정이 여전히 유효하여 상선이 ''Splitflag''를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동시에 덴마크 동인도 회사는 적도를 지나 ''Splitflag''를 게양할 수 있었다.
''Splitflag''와 관련하여 혼란이 있었던 것 같다. 1696년 해군은 국왕에게 ''Splitflag''의 크기와 모양을 규정하는 표준에 대한 제안을 제출했다. 같은 해, 왕실 결의안은 ''Kongeflaget''(국왕의 깃발)이라고 불리는 ''Splitflag''의 비율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십자가는 깃발 높이의 1/7이어야 한다. 처음 두 영역은 정사각형이며, 변의 길이는 십자가 너비의 세 배이다. 나머지 두 영역은 직사각형이며, 정사각형 영역 길이의 1.5배이다. 꼬리는 깃발 길이와 같다."
이러한 수치는 숫자가 약간 변경되었지만 여전히 ''Splitflag''와 ''Orlogsflag''의 기준이 된다. ''Orlogsflag''라는 용어는 1806년부터 사용되었으며 덴마크 해군에서의 사용을 나타낸다.
1750년경부터 19세기 초까지 정부가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여러 선박과 회사가 ''Splitflag'' 사용 승인을 받았다.
1939년 10월 25일 덴마크 해군에 대한 왕실 결의안에서 ''Orlogsflag''는 진한 빨간색(''dybrød'') 또는 꼭두서니 빨간색(''kraprød'') 색상의 ''Splitflag''라고 명시되었다. 국기에 대해서는 색조가 명시되지 않았지만, 현재 195U로 명시되어 있다. 또한 새로운 결의안에서 크기와 모양이 수정되었다. "십자가는 깃발 높이의 1/7이어야 한다. 처음 두 영역은 정사각형이며, 높이는 깃발 높이의 3/7이어야 한다. 나머지 두 영역은 직사각형이며, 정사각형 영역 길이의 5/4이다. 꼬리는 직사각형 영역 길이의 6/4이다." 따라서 1696년 표준과 비교할 때 직사각형 영역과 꼬리의 크기가 감소했다.
''Splitflag''와 ''Orlogsflag''는 모양이 비슷하지만 크기와 빨간색 색조가 다르다. 법적으로는 두 개의 다른 깃발이다. ''Splitflag''는 제비꼬리 모양으로 끝나는 덴마크 깃발이며, ''Dannebrog red'' 색상이고 육상에서 사용된다. ''Orlogsflag''는 더 짙은 빨간색을 띠는 길쭉한 ''Splitflag''이며, 바다에서만 사용된다.
표식이 없는 ''Orlogsflag''는 덴마크 왕립 해군에서만 사용할 수 있지만, 몇 가지 예외가 있다. 몇몇 기관은 깨끗한 ''Orlogsflag''를 게양할 수 있도록 허가받았다. 표식이 있는 같은 깃발은 수십 년 동안 수십 개의 회사와 기관에 대해 승인되었다.
또한, ''Orlogsflag''는 추가 표식이 없는 경우에만 그렇게 설명된다. 색상에 관계없이 제비꼬리 모양의 깃발은 추가 표식이 있는 경우 ''Splitflag''라고 한다.
5. 2. 정부기 및 해군기
덴마크의 정부기인 ''Splitflag''(스플리트플라그)는 1630년 3월 27일 크리스티안 4세 국왕의 명령으로 처음 규정되었으며, 덴마크 전쟁에 참여하는 노르웨이 무장 상선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17] 1685년에는 슐레스비히 공국의 모든 선박이 덴마크 국기를 게양하도록 명령받았고, 1690년에는 동인도, 서인도, 아프리카 해안을 항해하는 선박을 제외한 모든 상선은 ''Splitflag'' 사용이 금지되었다. 1741년에는 1690년 규정이 여전히 유효함을 재확인하면서, 동시에 덴마크 동인도 회사는 적도를 지나 ''Splitflag''를 게양할 수 있게 되었다.
1696년 왕실 결의안에서 ''Splitflag''의 비율은 다음과 같이 정의되었다. "십자가는 깃발 높이의 1/7이어야 한다. 처음 두 영역은 정사각형이며, 변의 길이는 십자가 너비의 세 배이다. 나머지 두 영역은 직사각형이며, 정사각형 영역 길이의 1.5배이다. 꼬리는 깃발 길이와 같다." 이 수치는 약간 변경되었지만, 여전히 ''Splitflag''와 ''Orlogsflag''의 기준이 된다.
1939년 10월 25일 덴마크 해군에 대한 왕실 결의안에서는 ''Orlogsflag''를 진한 빨간색(''dybrød'') 또는 꼭두서니 빨간색(''kraprød'') 색상의 ''Splitflag''라고 명시했다. 또한, 크기와 모양을 수정하여 "십자가는 깃발 높이의 1/7이어야 한다. 처음 두 영역은 정사각형이며, 높이는 깃발 높이의 3/7이어야 한다. 나머지 두 영역은 직사각형이며, 정사각형 영역 길이의 5/4배이다. 꼬리는 직사각형 영역 길이의 6/4배이다."라고 규정했다.
''Splitflag''와 ''Orlogsflag''는 모양은 비슷하지만 크기와 빨간색 색조가 다르다. 법적으로는 서로 다른 깃발이다. ''Splitflag''는 제비꼬리 모양으로 끝나는 덴마크 깃발이며, ''Dannebrog red'' 색상이고 육상에서 사용된다. ''Orlogsflag''는 더 짙은 빨간색을 띠는 길쭉한 ''Splitflag''이며, 바다에서만 사용된다.
표식이 없는 ''Orlogsflag''는 덴마크 왕립 해군에서만 사용할 수 있지만, 일부 기관은 예외적으로 게양 허가를 받았다. 표식이 있는 ''Orlogsflag''는 수십 개의 회사와 기관에 대해 승인되었다.
''Orlogsflag''는 추가 표식이 없는 경우에만 그렇게 설명되며, 색상에 관계없이 제비꼬리 모양의 깃발은 추가 표식이 있는 경우 ''Splitflag''라고 한다.
5. 3. 왕실기
현재 사용되는 왕실기는 1972년 11월 16일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이 새로운 개인 문장을 채택하면서 도입되었다. 왕실기는 덴마크 국기에 꼬리가 달린 모양이며, 흰색 정사각형 안에 덴마크 국왕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중앙 정사각형은 56:107 비율의 깃발에서 32부분을 차지한다.
5. 3. 1. 왕실 구성원 깃발
현재 사용되는 왕실기는 1972년 11월 16일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이 새로운 개인 문장을 채택하면서 도입되었다. 왕실기는 덴마크 국기에 꼬리가 달린 모양이며, 흰색 정사각형 안에 덴마크 국왕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중앙 정사각형은 56:107 비율의 깃발에서 32부분을 차지한다.
5. 4. 옛 국기
6. 덴마크 왕국의 다른 깃발
그린란드와 페로 제도는 덴마크 왕국의 자치령으로, 자체 공식 깃발을 가지고 있다.[18] 덴마크의 일부 지역에는 비공식 깃발이 있는데, 법적 인정이나 규정은 없지만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본홀름과 에뢰의 지역 깃발은 섬 주민들과 관광 관련 사업체에서 가끔 사용된다. 유틀란드 깃발 제안은 독특한 디자인 때문에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19] 벤드시셀(벤델브로그) 깃발은 드물게 보이지만 많은 주민들이 알고 있으며, ''노르위스케'' 신문 기사에 따르면 1980년대 올보르 공군기지 제723 비행대의 이전 휘장에 사용되었다.
거의 정사각형의 배너로 노란색, 녹색, 빨간색 가로 줄무늬가 세 번 반복된다. 2015년까지는 리투아니아의 국기와 유사한 역사적으로 부정확한 버전이 사용되었다.
1970년대
본홀름의 비공식 깃발
빨간색과 녹색의 북유럽 십자기. 노르웨이의 국기 디자인과 유사한 스타일로 녹색 십자가의 흰색 테두리가 있는 버전으로도 알려져 있다.
1975
유틀란드의 제안된 깃발
파란색, 녹색, 빨간색의 북유럽 십자기. 1975년 Per Kramer가 디자인했다.[20] 사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1976
벤드시셀의 비공식 깃발
파란색, 주황색, 녹색의 북유럽 십자기[21] Mogens Bohøj가 디자인했다.[2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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