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치 드래건스
1. 개요
주니치 드래건스는 1936년 창단된 일본 프로 야구 센트럴 리그 소속 구단이다. 1954년 일본 시리즈에서 우승했으며, 니시자와 미치오, 스기시타 시게루 등 유명 선수를 배출했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는 나고야 드래건스로, 1970년대 이후에는 주니치 드래건스로 팀명을 사용했으며, 요나미네 가나메 감독의 '타도 요미우리'를 외치며 센트럴 리그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2007년 일본 시리즈 우승, 2010년, 2011년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현재는 나고야 돔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며, 도아라, 샤오론, 파오론 등의 마스코트가 있다.
| 이름 | 주니치 드래건스 |
|---|---|
| 영어 이름 | Chunichi Dragons |
| 별명 | 류 (竜, 용) |
| 이전 이름 | 나고야군 (1936–1943) 산교군 (1944) 주부닛폰 (1946) 주부닛폰 드래건스 (1947) 주니치 드래건스 (1948–1950) 나고야 드래건스 (1951–1953) |
| 창단일 | 1936년 1월 15일 |
| 홈구장 | 반테린 돔 나고야 |
| 연고지 | 아이치현 나고야시 히가시구 |
| 구단주 | 오시마 우이치로 |
| 운영 | 주니치 신문사 |
| 모기업 | 주식회사 주니치 드래건스 |
| 마스코트 | 도아라, 샤오론, 파오론 |
| 감독 | 이노우에 가즈키 |
| 선수 회장 | 야나기 유야 |
| 색상 | 파란색, 흰색 |
| 공식 웹사이트 | 주니치 드래건스 공식 웹사이트 |
| 유튜브 채널 | 주니치 드래건스 공식 채널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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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그 | 일본 프로 야구 센트럴 리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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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그 우승 | 9회 (1954, 1974, 1982, 1988, 1999, 2004, 2006, 2010, 2011) |
|---|---|
| 일본 시리즈 우승 | 2회 (1954, 2007) |
| 아시아 시리즈 우승 | 1회 (2007) |
| 일본 시리즈 출전 | 10회 (2승 8패) |
| 일본 시리즈 출전 기록 | 1954 1974 1982 1988 1999 2004 2006 2007 2010 2011 |
| 클라이맥스 시리즈 출전 | 6회 (3승 3패) |
| 클라이맥스 시리즈 출전 기록 |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
| 아시아 시리즈 출전 | 1회 (2007) |
| 영구 결번 선수 | 핫토리 쓰구히로 (10번) 니시자와 미치오 (15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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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홈구장 | 나고야 스타디움 (1949–1996) 고라쿠엔 스타디움 (19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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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시의 스포츠팀 -
나고야 그램퍼스
나고야 그램퍼스는 1939년 토요타 자동차 축구부로 시작하여 J리그에 참가, J1리그 우승과 루반컵 우승을 기록했으며, 빨강색을 팀 색상으로 사용하는 일본의 프로 축구팀이다. -
나고야시의 스포츠팀 -
나고야 긴코군
나고야 긴코군은 나고야 신문이 모기업이었으며 나고야성의 상징인 긴샤치를 닉네임으로 사용했던 1936년부터 1940년까지 존재했던 일본의 프로 야구 구단으로, 태평양 전쟁의 영향으로 쓰바사군과 합병하여 다이요군이 되었고 이후 주니치 드래건스의 모태가 되었다. -
주니치 드래건스 -
고라쿠엔 구장
1937년 도쿄에 개장한 고라쿠엔 구장은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야구장이자 요미우리 자이언츠 등의 홈구장으로 사용되며 왕정치 선수의 홈런 기록 등 명장면을 연출했고, 야구 외 다양한 스포츠 및 문화 행사가 개최되었으며, 1987년 폐장 후 그 기능은 도쿄 돔으로 계승되었다. -
주니치 드래건스 -
나고야 구장
나고야 구장은 일본 나고야시에 위치한 야구장으로, 주니치 드래건스의 홈 구장으로 개장하여 현재는 2군 구장 및 연습장으로 사용되며, 과거 다양한 프로 야구 경기와 콘서트 등 여러 용도로 활용되었으나 소음 문제로 콘서트 개최가 제한된 바 있다. -
1936년 설립된 야구팀 -
오릭스 버펄로스
오릭스 버펄로스는 1936년 창단된 일본 프로야구팀으로, 한큐 브레이브스 시절 퍼시픽 리그 최강팀으로 군림하며 여러 차례 우승했고,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에는 이치로를 중심으로 1996년 우승, 2004년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와 합병 후 2022년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했으나 2023년 패배 후 팀 개편을 진행 중이다. -
1936년 설립된 야구팀 -
쇼치쿠 로빈스
쇼치쿠 로빈스는 1949년 센트럴 리그에 가입하여 1953년 다이요 웨일스와 합병될 때까지 존재했던 일본 프로 야구팀이며, 1950년 센트럴 리그에서 우승했고, 현재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의 전신으로 여겨진다.
2. 구단의 역사
1936년 나고야 클럽(Nagoya Club)으로 창단된 주니치 드래건스는 1946년 중일신문(Chunichi Shimbun) 신문사가 구단을 인수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 1947년 "드래건스"라는 팀명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1954년 주니치 드래건스(Chunichi Dragons)로 팀명을 확정했다.
니시자와 미치오(Michio Nishizawa)는 1936년부터 1958년까지 팀에서 활약한 주니치 드래건스의 대표적인 선수이다. 15세에 투수로 데뷔하여 1939년에는 20승 투수로 성장했다. 1942년 5월 24일, 고라쿠엔 구장(Korakuen Stadium)에서 다이요 웨일즈(Taiyō Whales)를 상대로 28이닝 동안 311개의 공을 던져 4대 4 무승부를 기록한 경기는 그의 야구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 중 하나이다. 같은 해 한큐 팀(Hankyu team)을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2차 세계 대전 참전으로 인한 부상으로 타자로 전향한 후에도 뛰어난 활약을 펼쳐 1950년에는 46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리그 신기록을 세웠다. 1952년에는 타율과 타점 부문에서 리그 1위를 차지했다.
스기시타 시게루(Shigeru Sugishita)는 포크볼을 주무기로 1950년부터 1955년까지 드래건스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센트럴 리그를 지배했다. 두 번이나 30승 이상을 기록했고, 세 번의 사와무라 에이지상(Eiji Sawamura Award)을 수상했다.
스기시타와 니시자와를 중심으로 드래건스는 1954년 재팬 시리즈(1954 Japan Series)에서 니시테쓰 라이온스(Nishitetsu Lions)를 4승 3패로 꺾고 첫 재팬 시리즈(Japan Series) 우승을 차지했다.
1962년 드래건스는 전직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스타 선수 래리 도비(Larry Doby)와 돈 뉴컴(Don Newcombe)을 영입하며 일본 프로 야구(NPB) 팀 최초로 MLB 선수를 영입한 팀이 되었다.
니시자와 미치오는 1964년부터 1967년까지 감독을 맡았다. 1977년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Japanese Baseball Hall of Fame)에 헌액되었으며, 그의 등번호 15번은 팀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요나미네 왈리(Wally Yonamine)는 1972년부터 1977년까지 감독을 맡아 일본 프로 야구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 되었다. 1974년 드래건스는 20년 만에 센트럴 리그(Central League) 우승을 차지하며 요미우리 자이언츠(Yomiuri Giants)의 10년 연속 리그 우승을 저지했다. 1999년에는 시즌 개막과 동시에 11연승을 기록하며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004년과 2006년 시즌에는 재팬 시리즈(Japan Series)에 진출했지만, 각각 세이부 라이온스(Seibu Lions)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Hokkaido Nippon Ham Fighters)에게 패했다. 1954년 이후 드래건스는 일본 프로 야구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재팬 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하고 있다.
2.1. 창단 초기 (1936년 ~ 1949년)
1936년 신아이치 신문사를 모기업으로 하여 '나고야군'으로 창단되었다. 초대 감독은 이케다 유타카였으며, 나카네 스스무, 벅키 해리스, 하가 나오카즈, 다카하시 요시오, 마스 가이치, 모리이 시게루 등이 초기 멤버였다.
1937년 초대 총감독이었던 고노 아쓰시가 구단을 떠나면서 선수 이탈과 감독 사임으로 침체기를 겪었다. 1942년 모회사였던 신아이치 신문사와 나고야 신문사가 통합하여 주부닛폰 신문사가 발족하면서 구단 경영이 어려워졌다. 1943년 시즌은 개인 자산 출자로 마쳤으나, 1944년 이화학 연구소 산하로 들어가면서 구단명을 산교군으로 변경하고 선수들은 공장 근로를 병행했다.
1945년 종전 후 1946년에 주부닛폰 신문사가 경영에 복귀하면서 팀명을 주부니혼으로 변경하고 재출발하였다. 1947년 구단 닉네임 도입에 따라 주부니혼 드래건스로 변경하였으나, 선수 이탈로 전력이 약화되었다.
1948년 팀 이름을 주니치 드래건스로 변경하고, 주니치 스타디움(주니치 구장)이 완공되면서 홈구장을 갖추게 되었다. 1949년 아마치 슌이치가 감독으로 취임하고 스기시타 시게루가 입단했으며, 니시자와 미치오가 복귀했다. 같은 해 일본 야구가 양대 리그로 나뉘면서 센트럴 리그에 가입했다.
2.2. 센트럴 리그 가맹 후 (1950년 ~ 현재)
1950년, 메이저 리그를 모방하여 구단과 구장을 동시 경영하게 됨으로써 주니치 구장을 경영하고 있던 주식회사 주니치 스타디움을 합병, 나고야 야구 주식 회사가 되었다. 이후 구단 운영 방식과 명칭에 여러 변화가 있었다.
1951년 나고야 야구 주식회사에서 주식회사 나고야 야구 클럽이 분리되었고, 나고야 철도가 경영에 참여하면서 구단명이 나고야 드래건스로 변경되었다. 나고야 철도와 주니치 신문사가 격년으로 구단을 경영하는 체제가 시작되었고, 첫 해는 나고야 철도가 경영을 맡았다. 그해 8월 19일에는 주니치 구장이 경기 도중 화재로 전소되어, 오프 시즌에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재건되었다.
1953년, 주니치 신문사가 단독으로 구단을 경영하게 되었고, 1954년 주식회사 주부닛폰 야구 협회로 상호를 변경하며 팀 이름도 주니치 드래건스로 되돌렸다. 같은 해 나고야 제철은 구단 경영에서 손을 뗐다. 1954년, 아마치 슌이치 감독의 지휘 아래 센트럴 리그 첫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을 동시에 달성했다.
1959년 이세 만 태풍으로 주니치 구장이 수몰되어 일부 경기를 다른 구장에서 치렀다. 1960년, 회사명을 주식회사 주부닛폰 야구 협회에서 주식회사 주니치 드래건스로 변경했다. 1961년 노닌 와타루 감독 부임 후 신인 곤도 히로시의 활약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추격했으나, 역전 우승에는 실패했다.
1962년, 래리 도비와 돈 뉴컴을 영입하며 일본 프로 야구 최초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선수를 영입한 팀이 되었다. 1964년부터 1967년까지는 니시자와 미치오가 감독을 맡았다.
요나미네 왈리는 1972년부터 1977년까지 감독직을 수행하며, 일본 프로 야구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 되었다. 1974년, 팀은 20년 만에 센트럴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10년 연속 리그 우승을 저지했다. 1999년에는 시즌 개막과 동시에 11연승을 기록하며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2004년과 2006년 시즌에는 재팬 시리즈에 진출했지만, 각각 세이부 라이온스와 닛폰햄 파이터스에게 패했다. 주니치는 1954년 이후 일본 프로 야구에서 가장 긴 우승 가뭄을 겪고 있었다.
2.2.1. 1950년대 ~ 1960년대
1950년, 메이저 리그를 모방하여 구단과 구장을 동시 경영하게 됨으로써 주니치 구장을 경영하고 있던 주식회사 주니치 스타디움을 합병하여 나고야 야구 주식 회사가 되었다. 이듬해 1951년에는 나고야 야구 주식회사로부터 주식회사 나고야 야구 클럽이 분리되었고, 같은 해 2월 6일 나고야 철도가 경영에 참가하게 됨에 따라 구단명을 나고야 드래건스로 개칭하였으며, 이에 따라 나고야 철도와 주니치 신문사가 각각 격년으로 구단을 경영하게 되었다. 첫해인 이 해에는 나고야 철도가 경영을 맡았다. 8월 19일에는 주니치 구장이 경기 도중 화재로 전소되면서 오프 시즌에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재건했다.
1953년 12월 19일, 이후의 구단 경영은 주니치 신문만이 도맡아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으며, 다음 해인 1954년 1월 14일에 주식회사 주부닛폰 야구 협회로 상호를 변경하고 팀 이름도 주니치 드래건스로 되돌렸다. 1월 30일에 나고야 제철이 구단 경영에서 손을 뗐다. 1954년 시즌에는 아마치 슌이치 감독의 지휘 아래 처음으로 센트럴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일본 시리즈에서도 니시테쓰 라이온스를 4승 3패로 제압하며 처음으로 일본 시리즈 우승에도 성공하였다.
1959년 이세 만 태풍으로 인해 주니치 구장이 수몰되면서 정규 경기의 일부를 다른 구장에서 치렀고, 1960년 2월에는 회사명을 주식회사 주부닛폰 야구 협회에서 주식회사 주니치 드래건스로 바꿨다. 1961년 노닌 와타루 감독이 취임했으며, 신인 곤도 히로시의 활약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1경기 차까지 추격했으나 역전 우승에 실패하며 2위에 머물렀다.
1962년, 일본 프로 야구 사상 최초로 메이저 리그에서 주전으로 뛰던 돈 뉴컴과 래리 도비를 영입하며 전력을 강화했으나 리그 3위에 그쳤다. 1965년부터 1967년까지 니시자와 미치오 감독의 지휘 아래 3년 연속으로 리그 2위를 차지했으나,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2.2.2. 1970년대 ~ 1980년대
1974년, 요나미네 왈리 감독 체제 하에 주니치는 20년 만에 센트럴 리그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10년 연속 리그 우승을 저지한 것이었다.
1982년에는 곤도 사다오 감독 체제에서 센트럴 리그 우승을 달성하였다.
1987년부터 호시노 센이치 감독 부임 후 LA 다저스 풍의 유니폼을 도입하였다. 1988년에는 호시노 센이치 감독 체제에서 센트럴 리그 우승을 달성하였다.
2.2.3. 1990년대 ~ 2000년대
1992년, 다카기 모리미치 감독이 부임하였다. 1993년, 이마나카 신지, 야마모토 마사히로 등의 활약으로 리그 2위를 기록하였다. 1994년, 이른바 '10월 8일 결전'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패배하며 리그 2위를 기록하였다. 1996년,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복귀하고, KBO 리그 해태 타이거즈에서 선동열을 영입하였다. 1997년, 나고야 돔으로 홈구장을 이전하였다. 1999년, 호시노 센이치 감독 체제에서 센트럴 리그 우승을 달성하였다.
2004년,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 부임 후 센트럴 리그 우승을 달성하였다.
2006년,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 체제에서 센트럴 리그 우승을 달성하였다.
2007년,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후, 일본 시리즈에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를 꺾고 53년 만에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하였다.
2.2.4. 2010년대 ~ 현재
2010년,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 체제에서 센트럴 리그 우승을 달성하였다. 시즌 초반에는 선발 투수들의 부진이 있었으나, 아사오 다쿠야와 다카하시 아키후미 등의 계투진과 이바타 히로카즈의 부상 공백을 메운 와다 가즈히로, 모리노 마사히코 등의 활약으로 요미우리, 한신과의 경쟁에서 승리하였다. 특히 홈에서 7할 5푼대의 높은 승률을 기록하며 4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일본 시리즈에서는 지바 롯데 마린스에게 2승 1무 4패로 패하며 우승에는 실패했다.
2011년에는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개막이 연기되는 등 어려움이 있었으나, 엔옐버트 소토를 비롯한 투수진의 활약과 오시마 요헤이, 히라타 료스케 등 젊은 선수들의 성장으로 센트럴 리그 2연패를 달성하였다. 이는 주니치 구단 역사상 최초의 2년 연속 리그 우승이었다. 일본 시리즈에서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 3승 4패로 패하며 2년 연속 일본 시리즈 우승에는 실패했다.
2012년, 다카기 모리미치 감독이 복귀하였으나 센트럴 리그 2위에 그쳤다.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패하며 탈락했다.
2013년에는 야마이 다이스케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기도 했지만, 팀은 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12년 만에 B클래스로 추락하였다. 시즌 후 다니시게 모토노부가 선수 겸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2014년에는 이바타 히로카즈와 나카타 겐이치가 팀을 떠나는 등 전력이 약화된 가운데, 8월에는 구단 최악의 기록인 월간 20패를 기록하는 등 부진하며 2년 연속 B클래스에 머물렀다.
이후 몇 년간의 자료는 주어지지 않았으나, 요약에 따르면 2021년에는 요다 쓰요시 감독 체제에서 센트럴 리그 5위를 기록하였고, 2022년과 2023년에는 다쓰나미 가즈요시 감독 체제에서 센트럴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였다. 2025년에는 이노우에 가즈키가 감독으로 취임할 예정이다.
3. 역대 감독
| 연도 | 이름 | 비고 |
|---|---|---|
| 1936년 | 이케다 유타카 | |
| 1937년 | 마스 가이치 | 제1차 |
| 1938년 ~ 1939년 | 네모토 유키사토 | |
| 1939년 ~ 1941년 | 고니시 도쿠로 | |
| 1941년 ~ 1942년 | 혼다 지카키 | |
| 1942년 ~ 1943년 | 마스 가이치 | 제2차 |
| 1944년 | 미야케 다이스케 | |
| 1946년 | 다케우치 아이이치 | |
| 1946년 ~ 1948년 | 스기우라 기요시 | 제1차 |
| 1949년 ~ 1951년 | 아마치 슌이치 | 제1차 |
| 1952년 ~ 1953년 | 쓰보우치 미치노리 | |
| 1954년 | 아마치 슌이치 | 제2차, 리그 우승, 일본 시리즈 우승 |
| 1955년 ~ 1956년 | 노구치 아키라 | |
| 1957년 ~ 1958년 | 아마치 슌이치 | 제3차 |
| 1959년 ~ 1960년 | 스기시타 시게루 | 제1차 |
| 1961년 ~ 1962년 | 노닌 다카미 | |
| 1963년 ~ 1964년 | 스기우라 기요시 | 제2차 |
| 1964년 ~ 1967년 | 니시자와 미치오 | |
| 1967년 | 곤도 사다오 | 감독 대행 |
| 1968년 | 스기시타 시게루 | 제2차 |
| 1968년 | 혼다 이쓰로 | 감독 대행 |
| 1969년 ~ 1971년 | 미즈하라 시게루 | |
| 1972년 ~ 1977년 | 요나미네 가나메 | 리그 우승 |
| 1978년 ~ 1980년 | 나카 도시오 | |
| 1981년 ~ 1983년 | 곤도 사다오 | 리그 우승 |
| 1984년 ~ 1986년 | 야마우치 가즈히로 | |
| 1986년 | 다카기 모리미치 | 감독 대행 |
| 1987년 ~ 1991년 | 호시노 센이치 | 제1차, 리그 우승 |
| 1992년 ~ 1995년 | 다카기 모리미치 | 제1차 |
| 1995년 | 도쿠타케 사다유키 | 감독 대행 |
| 1995년 | 시마노 이쿠오 | 감독 대행 |
| 1996년 ~ 2001년 | 호시노 센이치 | 제2차, 리그 우승 |
| 2000년 | 시마노 이쿠오 | 감독 대행 |
| 2002년 ~ 2003년 | 야마다 히사시 | |
| 2003년 | 사사키 교스케 | 감독 대행 |
| 2004년 ~ 2011년 | 오치아이 히로미쓰 | 리그 우승, 일본 시리즈 우승 |
| 2012년 ~ 2013년 | 다카기 모리미치 | 제2차 |
| 2014년 ~ 2016년 | 다니시게 모토노부 | |
| 2016년 | 모리 시게카즈 | 감독 대행 |
| 2017년 ~ 2018년 | 모리 시게카즈 | |
| 2019년 ~ 2021년 | 요다 쓰요시 | |
| 2022년 ~ 2024년 | 다쓰나미 가즈요시 | |
| 2025년 ~ | 이노우에 가즈키 |
4. 주요 선수
* 호시노 센이치: 1996년 감독으로 복귀했다. 해태 타이거즈에서 선동열을 영입하는데 기여했다.
* 다카기 모리미치: 1992년에 감독직을 맡았으나 12년 만에 리그 최하위를 기록했다. 1995년에는 전년도 2위의 성적에도 불구하고 부진으로 시즌 도중 사임했다.
* 야마모토 마사히로: 1993년에 이마나카 신지와 함께 17승으로 리그 최다승을 기록했고, 최고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획득했다.
* 선동열: 1996년 해태 타이거즈에서 주니치로 이적했다. 일본 리그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첫 해에는 부진했다.
5. 영구 결번
* 10: 服部 受弘일본어(1960년 ~ )
* 15: 니시자와 미치오(1959년 ~ )
2009년까지 팀에 재직했던 타츠나미 카즈요시의 등번호 "3"도 일부 팬들이 영구결번으로 하자는 서명 운동을 벌였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2010년부터는 모리노 마사히코가 이어받는다고 구단에서 일단 발표했다. 하지만 모리노의 요청으로 2010년에는 결번 처리되었다. 등번호 3은 2011년부터 고교 후배인 요시카와 다이키가, 2015년부터는 다카하시 슈헤이가 사용하고 있다.
1954년 일본 시리즈 우승 당시 최대 공로자인 스기시타 시게루의 등번호 20도 영구결번이 아니다. 이는 주니치에서 핫토리와 니시자와의 등번호를 결번으로 하는 것은 두 선수가 은퇴할 때의 "타협점"이었고, 핫토리나 니시자와와 달리 스기시타는 당시 감독으로서 팀에 남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보류"해 두었다는 스기시타 시게루의 발언이 주니치 구단사에 기록되어 있다.
2015년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야마모토 마사루가 입단 이후 사용했던 34번에 대해서도 영구결번 제정에 대해 고사했다는 것이 산케이스포츠의 보도를 통해 알려졌으며, 2016년부터는 신인이자 왼손 투수인 후쿠 케이토가 이어받았다. 부상 치료를 위해 후쿠가 육성 선수 계약이 된 2018년에는 일시적으로 결번으로 하였고 (234번으로 변경) 시즌 중반에 다시 1군 등록된 후 34번을 다시 후쿠에게 주었다.
7. 팀 문화
1997년 나고야 돔 개장으로 주니치는 나고야 구장에서 나고야 돔으로 홈 구장을 이전했다. 그러나 나고야 구장을 기반으로 했던 '공룡 타선'은 넓은 구장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5년 만에 시즌 최하위로 추락했다. 하지만 선동열이 마무리 투수로 38세이브, 야마모토 마사히로가 3년 만에 통산 세 번째 최다승을 기록하는 등 투수진은 분투했다.
오프 시즌에 주니치는 새로운 구장에 적응하고 팀 스타일 변화를 위해 한신에서 야노 아키히로, 세키카와 고이치, 구지 데루요시를, 대한민국 해태 타이거즈에서 이종범을 영입, 타격 중심에서 투수력과 수비력을 강화했다.
시즌 후 오릭스 블루웨이브와 한국을 방문, 1993년 해당 팀과 지바 롯데 마린스 이후 4년 만의 일본 팀 한국 방문 프로야구 친선경기였다.
주니치 드래건스는 여러 미디어 매체에 등장했다.
* 1992년 영화 《미스터 베이스볼》로 미국 관객에게 알려졌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2002년 소설 《해변의 카프카》에서 호시노는 주니치 드래건스 열렬한 팬으로 묘사된다.
* 2009년 어린이용 Wii 게임 《도알라 드 위》가 출시되었다.
* 2012년 비디오 게임 《용과 같이 5》에는 "나고야 와이번스"가 등장하는데, 이는 드래건스를 참고한 것이다.
7.1. 마스코트
주니치 드래건스의 마스코트는 도아라, 샤오론, 파오론 세 마리이다.
* [[도아라]]: 1994년 기존 마스코트 가브리를 대체하며 등장했다. 코알라를 모티브로 했는데, 나고야와 시드니가 자매 도시 관계여서 일본 최초의 코알라가 나고야에 있었기 때문이다. 묘기로 유명하다. 등번호는 처음에는 '000'이었으나, 이후 '1994'로 변경되었다.
* [[샤오론 (주니치 드래건스)|샤오론]]: 1997년에 등장한 파란색 용 마스코트이다. 오랫동안 팀 로고에 등장했다. 등번호는 처음에는 '777'이었으나, 이후 '1997'로 변경되었다.
* [[파오론]]: 2000년에 등장한 분홍색 용 마스코트이다. 등번호는 '2000'이다.
* [[가브리(마스코트)|가브리]]: 2006년 구단 창설 70주년을 기념해 설립된 구단 공식 팬클럽 마스코트이다. 1991년 스튜디오 지브리의 미야자키 하야오가 주니치 팬인 동료 스즈키 토시오를 위해, 당시 4번 타자였던 오치아이 히로미츠와 용을 모티브로 디자인했다. 이후 팬클럽 마스코트로 제공되었고, 스즈키 토시오는 명예 회원 1호 칭호를 받았다. 이름은 공모를 통해 정해졌다.
* [[나고야 돔#마스코트 캐릭터|돔라]]: 나고야 돔의 캐릭터로, 오랑우탄과 고릴라를 합쳐놓은 듯한 외모를 가졌다. 2008년 시즌 이후로는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7.2. 응원 문화
2008년, 룡심회와 백룡회 등 응원단 내 주도적인 단체들이 폭력단과의 관계 의혹으로 징계를 받았다. 이들은 징계에 불복하여 소송을 제기했으나, 최종적으로 패소하였다.
2008년 이후, 전국 주니치 드래건스 사설 응원단 연합에 가맹한 4개 단체가 악기 응원을 주도했다. 그러나 2014년, 이들 단체 역시 개선 요구 불이행으로 응원 허가가 보류되었다. 그 결과, 2014년 시즌에는 악기 응원 없이 메가폰을 두드리는 팬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후 구단 주도로 “주니치 드래건스 응원단(신응원단)”이 결성되어 악기 응원을 재개했다. 신응원단은 저작권 문제로 이전 응원가 대부분을 사용하지 못하고, 신곡 중심으로 응원을 진행했다.
2019년, 신응원단의 찬스 테마 중 일부 가사가 부적절하다는 구단 측의 지적으로 사용이 자숙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는 인터넷상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2020년 시즌에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응원단의 응원이 자제되었다. 2021년 시즌에는 반테린돔 나고야에서의 주최 경기에 한해 응원가를 녹음한 음원을 사용했다.
풍선은 나고야 구장에서 사용이 허용되었으나, 나고야 돔으로 본거지를 옮긴 이후로는 원정 경기나 지방 구장에서만 사용되었다. 2012년 이후 나고야 돔에서의 풍선 사용 해제 경기에서는 주니치 팬들에게 풍선이 제공되었다.
7.3. 미디어
* 승룡 -이자유케 드래건즈-
: 마쓰다이라 켄이 노래를 불렀다. 2015년에 제정되어 NPB 소속 12개 구단의 구단가 중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곡이다. 2015년 시즌을 앞두고 제작되어 2월 28일 나고야 돔에서 발표 기자회견이 열렸다. 부제인 '이자유케 드래건즈(いざゆけ ドラゴンズ)'는 과거 2대 전 구단가 '드래건즈의 노래(청운타카쿠)(ドラゴンズの歌(青雲たかく))'의 한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 과거의 구단가
* 나고야 군 응원가
: 1936년 3월 19일 나고야 군 공식 응원단 발회식에서 처음 연주되었다는 당시 신아이치(新愛知) 신문 보도가 있으며, 같은 해 3월 25일 발표된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한신 타이거스의 노래보다 1주일 정도 앞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NPB 현존 구단이 공식적으로 제정한 곡으로서는 가장 오래된 곡으로 여겨진다.
: 작사는 신아이치 신문사 학예부장 후루타 스보, 작곡은 전후에 주부 일본 관악 연맹 이사장이 된 카미나토 테루미로 알려져 있지만, 악보는 소실되어 지금까지 출판된 구단사에서도 다루어지지 않았다.
* 드래건즈의 노래
: 1950년부터 1977년까지 사용되었다. 작사는 고지마 키요시(「고지마 조」는 오기), 보작은 사토 하치로, 작곡/편곡은 후루쿠세 유지이며, 이토 히사오가 노래를 불러 레코드로 발매되었다. 1950년 초에 주부 일본 신문사가 가사를 일반 공모하여, 요미우리 자이언츠, 도큐 플라이어스, 한신 타이거스의 구단가를 제작했던 후루쿠세에 의해 완성되었다. 전술한 「나고야 군 응원가」에 대한 기록이 소실되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이 「드래건즈의 노래」가 초대 구단가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 1950년 3월 21일, 센트럴리그 발족식에서 발표회가 열리고 레코드가 발매되었다. B면에는, 중일과 마찬가지로 나고야에 본사를 둔 나고야 타임스사의 일반 공모 당선 가사에 후지우라 코의 보작사, 후루쿠세 작곡, 안자이 아이코가 노래한 나의 드래건즈가 수록되었지만, 중일 신문과 나고야 타임스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 곡 모두 역사의 흐름 속에 묻혔다. 「드래건즈의 노래」는 2006년 발매된 앨범『승룡혼〜드래건즈 70주년 기념 송스〜』에 수록되었다.
* 승리의 함성
: 1978년부터 2014년까지 사용되었다. 노래는 아사쿠라 타카시(호시노 센이치, 스즈키 타카마사, 오시마 야스노리, 후지나미 유키오, 타오 야스시가 백업을 맡았다) 외에 드래건 스타즈, 미즈키 이치로 버전이 있다. 공식적인 구단가이므로, 세 리그 개막전에서는 이 곡이 연주되었다.
* 燃えよドラゴンズ!
: 1974년 CBC라디오 프로그램 '바츠군 조키' 기획으로, 같은 프로그램 진행자이자 전 중일(中日) 투수였던 반도 에이지의 노래로 만들어진 응원가. 중일의 대표적인 응원가로, 2002년부터 럭키세븐에 "구장 합창 편"이 연주되고 있다. 매년 선수 교체와 함께 가사가 바뀌는 희귀한 응원가이기도 하며, 구단가·응원가 중 가장 널리 자리 잡았다.
* 꿈은 1001, 드래건즈
: 1987년, 호시노 센이치 감독 취임과 함께 '燃えよドラゴンズ!87'과 함께 발매된 중일의 이미지송.
* 드래건즈에 건배!
: 1991년, '燃えよドラゴンズ!91' 발매와 동시에 발매된 노래.
* 폭풍의 영웅(히어로)
: 1997년, 본거지 나고야 돔 이전을 계기로 발표된 공식 응원가. 노래는 드래곤 스타즈. 하지만 '燃えよドラゴンズ!'가 실질적인 응원가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팬들에게 널리 퍼지지는 않았다. 2002년부터 나고야 돔에서의 연주도 중지되고, 대신 '燃えよドラゴンズ! 구장 합창 편'이 연주되게 되었다.
; 텔레비전
* 스타캣 - ‘불타는 드래! 스타디움’(목요일 12:00 - 12:54)
* 도카이 TV - ‘드래 HOT 플러스’(토요일 17:00 - 17:26)
* CBC 텔레비전 - ‘선데이 드래건즈’(일요일 12:54 - 13:24)
* 주쿄 TV - ‘스포츠 스타디움 魂’(일요일 16:55 - 17:25)
* 메~테레 - ‘스포켄!’(매달 넷째 일요일 24:45 - 26:10)
* 텔레비 아이치
** 정규 프로그램은 방송되지 않지만, 주최 경기 중 텔레비 아이치가 방영권을 획득한 경기에 대해서는 방송 종료 후 ‘GO!GO! 드래건즈’라는 미니 프로그램이 편성된다(주로 21:54-).
; 라디오
* CBC 라디오 - 2000년 10월 2일부터 2009년 4월 2일까지는 ‘드래건즈 월드’가 시즌 오프·시즌 중 관계없이 방송되었다. 현재는 ‘더 토요 천국’(토요일 12:30-17:57)·‘와카사 게이이치의 스포온’(일요일 17:00 - 17:57) 등에서 드래건즈 정보를 다룬다. 2019년 시즌부터 정식으로 연속 정규 프로그램이 된 ‘드래혼 킹’(월-금)을 방송.
* 도카이 라디오 - 시즌 중에는 ‘가츠 나이터 최전선’을 방송한다. 시즌 오프에는 과거 ‘가츠 나이터 플러스’, ‘가츠다! 드래건즈’, ‘치어·스포’ 등 스포츠 정보 프로그램이 편성되었지만, 현재는 ‘오오사와 히로키의 드래건즈 스테이션’을 방송한다.
; 기타
응원 방송 이외에도 드래건즈의 화제를 다루는 코너가 있으며, NHK 나고야 방송국에서는 ‘마루토!’과 ‘뉴스 845 도카이’에서, 도카이 TV에서는 ‘도카이 테레 뉴스’ 후에 경기 경과나 결과를 방송하고 있다(“드래건즈 today”).
* NHK 나고야 방송국 『NHK 프로야구』
* CBC 라디오 『CBC 드래건스 나이터/CBC 드래건스 스페셜/CBC 드래건스 새터데이/CBC 드래건스 선데이』
* 도카이 라디오 『도카이 라디오 갓츠 나이터/도카이 라디오 갓츠 나이터 스페셜/도카이 라디오 드래건스 스페셜』
* 시즈오카 방송 『SBS 빅 나이터』
* 도카이텔레비방송 『야구도』, 『DRAGONS LIVE』(로컬 중계)
* 미에텔레비방송 『미에텔레비나이터』
* CBC텔레비 『S☆1 BASEBALL』, 『불타라 드래곤즈!』(로컬 중계)
* 텔레비아이치 『텔레비아이치 10찬베이스볼』
* 산텔레비전 『산텔레비박스석』
* J SPORTS 『J SPORTS STADIUM』
* 스타캐트 『불타라 드래곤즈! 스타디움 웨스턴리그/오픈전』 - 2009년
* 유스트림(Ustream)(『드래건즈 라이브TV』)
* 니코니코 동화(ニコニコ動画)(『니코니코 프로야구 채널』)
* DAZN(DAZN)
8. 기타
* 중부일본신문사(현재의 중일신문사)는 전시 중의 신문통제로 인해 신아이치(新愛知)(오시마가(大島家))와 나고야 신문(名古屋新聞)(고야마가(小山家))가 합병하여 설립된 신문사이다. 과거에는 각각 구단(신아이치=나고야군(名古屋軍), 나고야신문=나고야킨샤쿠군(名古屋金鯱軍). 드래곤즈의 전신은 나고야군)을 소유했던 경험이 있어, 중일신문사가 된 현재에도 양가에서 사주(社主)를 배출하는 2오너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오시마가와 고야마가가 번갈아 최고 경영자직을 맡는 체제이다. 원칙적으로 중일신문사의 최고 경영자가 구단 오너를 겸임하므로, 구단 사장이나 구단 대표 등의 직책에는 오너와 같은 파벌 간부를 임명하는 경우가 많다.
오시마가 집권 시에는 팀 강화에 돈을 최대한 쓰지 않으며, 감독・코치 임명에 있어서도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마찬가지로 출신 OB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대로, 고야마가 집권 시에는 팀 강화에 많은 돈을 쓰는 경우가 많으며, 외부 출신 OB나 완전 외부 출신 감독・코치 등용에도 관대한 편이다. 전자의 경우 곤도 사다오, 오치아이 히로미쓰, 다니시게 모토노부 등을, 후자의 경우 야마다 히사시(후임의 임시 감독이었던 사사키 교스케도 완전 외부 출신이다), 모리 시게카즈를 감독으로 임명했다. 예외적으로, 제1차 호시노 센이치 감독 시대와 제1차・제2차 다카기 모리미치 감독 시대는 모두 고야마가 집권 시대였지만, 두 경우 모두 오시마가 간부의 협력을 얻을 수 있었다.
* 세 리그의 인기 매치인 요미우리와 한신의 대결은 "전통의 일전"으로 불리며, 도쿄 돔과 고시엔 구장 모두 관객 동원력이 높고 축제 분위기의 매치 카드이다. 또한 모회사 간의 관계가 무협약 시대 양 구단의 상호 출자나 요미우리 신문사의 오사카 진출에 대한 한신 전기 철도의 협력 등 과거 경위도 있어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요미우리와 주니치의 대결은 모회사가 신문사로서 경쟁 관계에 있기 때문에 라이벌 의식이 강한 매치 카드로 여겨진다. 특히 나고야 돔(현・반테린 돔 나고야)에서 열리는 주니치 대 요미우리전은 홈 게임 중 가장 인기가 높으며, 전통의 일전에 준하는 매치 카드로 여겨진다.
* 최근 몇 년 동안 주니치 드래건스는 젊은 선수들의 육성을 목표로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열리는 윈터리그에 선수들을 파견하고, 함께 간 코치와 스태프들이 외국인 선수들을 조사하고 있다. 모리시게 카즈마사가 저서에서 2004년 오프 시즌 당시 감독이었던 오치아이 히로미쓰와의 대화를 통해 재정적인 측면에서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전환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선수를 영입함으로써 저렴하고 우수한 선수들이 주니치에 입단하는 사례가 늘어나 독자적인 루트를 개척했다고 할 수 있다.
* 주니치의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로 "3D"가 있다. 이 유닛은 2015년 시즌 단 1시즌만 기능했지만, 특히 시즌 전반기 타선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