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전한)
1. 개요
도청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고제 12년에 개봉후에 봉해지고, 문제 후2년에 어사대부, 경제 3년에 승상이 되었다. 그는 흉노에 사신으로 파견되었고, 오초칠국의 난 당시 조조를 참소하여 주살하는 데 관여했다. 경제 7년에 면직된 후 2년 뒤 사망했으며, 시호는 이(夷)이고, 작위는 아들 도언이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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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48년 사망 -
유영 (임강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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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48년 사망 -
기통
기통은 전한의 개국공신으로 양평후에 봉해져 52년간 다스리며 전한 초기의 정치적 안정에 기여한 인물이며 그의 생애는 사기와 한서에 기록되어 있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역사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역사에 관한 -
2013년
2013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교황 사임, 북한 핵실험, 용산 개발 사업 부도, 윤창중 사건, 스노든 폭로, 김연아 우승, 방탄소년단 데뷔, 넬슨 만델라 사망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2. 생애
(내용 없음)
2.1. 초기 생애와 관직 임명
고제 12년(기원전 195년), 아버지 도사의 뒤를 이어 하남군 개봉후(開封侯)에 봉해졌다.
문제 후2년(기원전 162년) 8월, 신도가의 뒤를 이어 어사대부에 임명되었다.
경제 원년(기원전 156년) 4월, 흉노에 사자로 파견되어 화친을 맺었다.
경제 3년(기원전 154년) 6월, 신도가가 죽자 같은 해 8월에 후임 승상으로 임명되었다. 같은 해 오왕 유비가 다른 여섯 제후왕들과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켰는데(오초칠국의 난), 도청은 반란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조조를 정위 구, 중위 가와 함께 참소하였다. 결국 경제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조조를 처형하였다.
2.3. 오초칠국의 난과 조조 주살
경제 3년(기원전 154년) 8월, 신도가의 뒤를 이어 승상이 되었다. 같은 해 오왕 유비를 포함한 일곱 제후왕들이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켰다(오초칠국의 난). 도청은 이 반란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명분으로 조조를 정위 구, 중위 가와 함께 참소하였고, 결국 경제는 조조를 주살하였다.
2.4. 승상 재임과 면직
문제 후2년(기원전 162년) 8월, 신도가의 뒤를 이어 어사대부에 임명되었다. 이후 경제 원년(기원전 156년) 4월에는 흉노에 사자로 파견되어 화친을 맺는 역할을 수행했다.
경제 3년(기원전 154년) 6월, 당시 승상이었던 신도가가 사망하자, 도청은 같은 해 8월에 그의 후임으로 승상에 올랐다. 그가 승상이 된 해에 오왕을 비롯한 일곱 제후왕들이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바로 오초칠국의 난이다. 이 난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조조가 지목되자, 도청은 정위 구와 중위 가와 함께 조조를 참소하였다. 결국 경제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조조를 처형하였다.
도청은 경제 7년(기원전 150년)에 승상직에서 물러났으며, 그로부터 2년 뒤인 기원전 148년에 세상을 떠났다. 사후 시호로 이(夷)를 받았고, 그의 작위는 아들 도언이 이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