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무네카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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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도쿠가와 무네카쓰는 에도 시대 중기의 다이묘로, 오와리 번의 9대 번주이다. 그는 타카스 번의 마츠다이라 요시타카의 양자로서 타카스 번주를 거쳐, 1739년 사촌 형의 은거로 인해 오와리 번주가 되었다. 번 재정 재건을 위해 검소한 생활을 실천하고 증세를 하지 않는 긴축 재정 정책을 펼쳐 성공했으며, 후세 카이요사이 등을 등용하여 학문소를 설립하고 형법을 정비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시행했다. 15남 11녀의 자녀를 두었으며, 그의 후손들은 현재까지 도쿠가와 종가와 번조의 남자 후손으로 이어지고 있다.
| 씨명 | 가와다쿠보 마쓰다이라 가 → 요쓰야 마쓰다이라 가 → 오와리 도쿠가와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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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도쿠가와 무네카쓰 / 마쓰다이라 요시아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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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 | 에도 시대 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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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 호에이 2년 6월 2일 (1705년7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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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일 | 호레키 11년 6월 22일 (1761년7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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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명 | 마쓰다이라 다이고로 → 도모스케 → 도모아쓰 → 요시아쓰 → 도쿠가와 무네카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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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이름 | 겐모쓰 (통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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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호 | 겐류인 온요지세이겐다이 대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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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소 | 불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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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위 | 종삼위, 권중납언, 우근위권중장, 우병위독, 다지마노카미, 좌근위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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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부 | 에도 막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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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군 | 도쿠가와 요시무네 → 이에시게 → 이에하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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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 | 오와리 번 고렌시 → 다카스 번 번주 → 오와리 번 번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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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족 | 가와다쿠보 마쓰다이라 가 → 요쓰야 마쓰다이라 가 → 오와리 도쿠가와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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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 | 아버지: 마쓰다이라 도모아키, 어머니: 유모토 씨 (시게루, 엔주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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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제자매 | 불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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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자 | 정실: 도쿠가와 요시미치의 차녀, 미쓰히메 (호렌인) 측실: 구라바야시 씨 (스메・주코인), 바바 씨 (토세・세이코인), 데라시마 씨 (소요・센유인) 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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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 | 만야, 무네치카, 마쓰다이라 요시토시, 마쓰다이라 요시마사, 마쓰다이라 가쓰나가, 마쓰다이라 가쓰쓰나, 다케노코시 가쓰오키, 이노우에 마사쿠니, 나이토 요리타다, 마쓰다이라 가쓰타카, 나이토 마사나가 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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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책 | 가와다쿠보 마쓰다이라 가 당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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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기 | 1728년 ~ 173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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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수 | 2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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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임 | 마쓰다이라 도모아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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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임 | 요쓰야 가의 상속으로 인한 가와다쿠보 가 단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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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책 | 다카스 번 번주 (요쓰야 마쓰다이라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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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기 | 1732년 ~ 173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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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수 | 3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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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임 | 마쓰다이라 요시타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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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임 | 마쓰다이라 요시토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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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교호 17년, 오와리 번의 지번인 다카스 번의 마쓰다이라 요시타카의 양자가 되어 그 뒤를 이었다. 다카스 번주 시절에는 마쓰다이라 요시아쓰라고 불렀다. 겐분 4년 1월 13일, 오와리 번주였던 사촌 형 소슌이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에 의해 강제로 은거당하자, 그 뒤를 이었다. 훗날 쇼군 요시무네에게 편휘를 받아 무네카쓰로 이름을 바꾸었다.
무네카쓰는 무네하루의 방만한 재정으로 인해 궁핍해진 번 재정 재건을 위해 번정 개혁을 시도한다. 스스로 검약을 실천하고, 백성들을 위해 증세를 하지 않는 긴축 재정 정책을 펼쳐 번 재정을 재건하였다.
무네카쓰는 후세 카이요사이를 등용하여 번교·메이린도(明倫堂)의 전신이 되는 학문소를 창설하고, 여러 문화 서적 편찬과 형법 정비 등을 시행했다. 형법 정비에 있어서는 관대하기도 했지만, 도적 단속을 위해 사형 제도를 부활시키는 등 엄격한 면도 있었다.
호레키 11년(1761년) 6월 22일, 57세로 사망했으며, 뒤는 차남 도쿠가와 무네치카가 이었다.
2.1. 오와리 번주 취임 이전
어린 시절에는 할머니의 친척인 스즈키 쥬베에 밑에서 자랐다. 그 후에도 낮은 신분의 관리 밑에서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보냈다. 유년 시절 이름은 다이고로였고, 그 후 도모스케, 도모아쓰로 이름을 고쳤다. 교호 17년에는 오와리 번의 지번인 다카스 번의 마쓰다이라 요시타카의 양자가 되어 그 뒤를 이었다. 다카스 번주 시절에는 마쓰다이라 요시아쓰라고 불렀다. 그러나 겐분 4년 1월 13일, 오와리 번주였던 사촌 형 소슌이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에 의해 강제로 은거당하자, 그 뒤를 이었다(엄밀히 말하면 소슌의 양자가 된 것은 아니며, 일단 몰수된 번의 영지를 무네카쓰에게 내려주는 형태로 오와리 번을 이었다). 다카스 번주는 셋째 아들 마쓰다이라 요시토시가 이었다. 훗날 쇼군 요시무네에게 편휘를 받아 무네카쓰로 이름을 바꾸었다.
2.2. 오와리 번주 취임 후
이 무렵, 무네하루의 방만한 재정으로 인해 오와리번의 재정 궁핍화가 심각해졌다. 이 때문에 번주가 된 무네카쓰는 번 재정 재건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번정 개혁을 시도한다. 스스로 검약을 솔선수범하고, 영민들을 괴롭히지 않기 위해 증세를 하지 않는, 이른바 긴축 재정 정책을 채택했는데, 이것이 성공하여 번 재정이 재건되었다. 다만 이에는 선대인 무네하루 때에 구축된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의견도 있다.
무네카쓰는 후세 카이요사이를 등용하여 번교·메이린도(明倫堂)의 전신이 되는 학문소를 창설하고, 더 나아가 다양한 문화적 서적의 편찬 외에 형법의 정비 등도 시행했다. 형법의 정비에 있어서는 관대한 일면이 있는 한편, 도적 단속을 위해 사형 제도를 부활시키는 등 엄격한 일면도 있었다.
선대 번주에 무네하루가 있었기 때문인지, 무네카쓰의 그림자는 옅지만, 오와리번의 명군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호레키 11년(1761년) 6월 22일, 57세로 사망했으며, 뒤를 차남 도쿠가와 무네치카가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