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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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습은 오(吳)나라의 장수로, 손책을 섬기며 강동 지역을 평정하는 데 기여했다. 손책 휘하에서 황룡라와 주발을 베어 별부사마가 되었고, 유훈, 황조 토벌에 참여했다. 손권이 즉위한 후에는 강동을 지키는 방안을 제시하여 칭찬을 받았으며, 팽호 등의 반란을 평정하고, 황조 공격에서 몽충을 격파하는 데 기여했다. 조조의 유수구 공격 당시 배가 침몰하며 사망했지만, 손권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유족을 후하게 대우했다.

동습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이름동습
본명동습 (董襲)
원세 (元世)
출생지저장성 위야오시
사망217년경
직업장군
관직
편장군200년대경 임명
위월교위? ~ 200년대경
양무도위?
소속 세력
주요 섬김손책, 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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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동습은 회계군 여요현(현재의 저장성 여요시) 출신으로, 키가 8척(약 184~190cm)에 달했으며, 야심차고 관대하며 전투 기술이 뛰어났다.

동습의 주요 활동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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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사건역할 및 공적
196년손책의 회계 점령고천정(高遷亭)에서 손책을 맞이함. 손책에게 등용되어 문하적조(門下賊曹)가 됨.
196년 이후산음(山陰)의 도적 황룡라(黃龍羅)와 주발(周勃) 토벌황룡라와 주발을 직접 베어 죽임. 별부사마(別部司馬)로 승진, 수천 명의 군대를 지휘.
199년유훈과의 순양(尋陽) 전투 및 황조와의 전투손책과 함께 참전.
200년손책 사후, 손권의 뒤를 이음오부인에게 강동의 안정에 대해 조언.
200년 이후파양(鄱陽)의 팽호(彭虎) 반란 진압능통, 보즐, 장흠과 함께 반란 진압. 위월교위(威越校尉) 및 편장군(偏將軍)으로 승진.
208년강하 전투 (황조 토벌)능통과 함께 선봉에서 활약. 황조의 몽충(蒙衝)을 묶은 밧줄을 끊어 승리에 기여.
217년유수구 전투5층 전함(五樓船) 지휘. 폭풍 속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사망.


조조유수구로 쳐들어오자, 손권은 동습에게 다섯 겹 누각이 있는 배(五樓船)를 맡겼다. 동습은 유수구에 배를 두고 지키고 있었는데, 밤에 갑자기 폭풍이 불어 배가 거의 전복되려 했다. 부하들은 거룻배로 흩어져 달아나기를 원했으나, 동습은 장군으로서 직무를 강조하며 거절하고, 철수하는 자를 베겠다고 엄명했다. 마침내 그날 밤 배가 망가지고 동습은 물에 빠져 죽었다. 손권은 옷을 고쳐 입고 친히 장례식에 왔으며, 유족들에게 후하게 이바지했다.

2.1. 손책 휘하에서의 활약

손책원술의 허락을 받고 강동으로 진격하여 회계에 이르렀을 때, 고천정(高遷亭)에서 손책을 맞이했고, 손책의 눈에 들어 문하적조(門下賊曹)가 되었다. 손책이 산음(山陰)의 오래된 도둑 황룡라(黃龍羅)와 주발을 쳤고, 동습은 손수 황룡라와 주발을 베어 별부사마(別部司馬)가 되어 병사 수천 명을 받았다. 199년, 손책이 원술의 잔당을 흡수하여 세력을 키운 여강태수 유훈을 치자, 동습도 이를 따라가 유훈의 거점 환성을 공격했고, 또 심양에서 유훈을 격파했으며, 황조 토벌에도 종군했다.

200년, 손책이 죽고 손권이 어린 나이로 뒤를 잇자, 불안하게 여긴 태비에게 장소 등과 함께 불려나가서 강동을 지킬 방안을 상담받았다. 동습은 강동의 험한 지세와 손견, 손책 2대에 걸친 사업이 있고, 장소가 온갖 사무를 책임지고 자신과 같은 무부들이 조아가 되어 지리와 인화를 갖추면 걱정할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모두 장하게 여겼다.

파양(鄱陽)에서 팽호(彭虎) 등이 손씨에 반항하는 자 수만 명을 모으자, 능통, 보즐, 장흠과 함께 각각 토벌하러 나갔다. 가는 곳마다 적을 깨뜨렸고, 팽호 등은 동습의 정기만 보고도 흩어져 달아났으며, 열흘 만에 평정되었다. 월기교위(越騎校尉)가 되었고, 편장군(偏將軍)으로 옮겼다.

208년, 손권이 황조를 공격했다. 황조는 면구(沔口)에 몽충(소가죽으로 선체를 감싸 견고하게 만든 배) 두 대를 가로로 놓고, 큰 새끼줄로 엮고 돌로 닻을 삼아 매고, 그 위에 1천 명을 두어 쇠뇌를 교대로 쏘게 하니, 화살이 비 오듯 쏟아져 손권 군은 진격할 수가 없었다. 동습은 능통과 함께 선봉을 맡아 결사대 1백 명을 모으고, 겹으로 갑옷을 입히고 큰 배를 타고 황조의 몽충으로 돌입했다. 동습이 친히 나아가 몽충을 엮은 새끼줄을 끊으니, 몽충은 이내 물에 휩쓸려갔고, 손권 군은 마침내 진격할 수 있었다. 황조는 문을 열고 달아났으나, 결국 추격을 받아 베였다. 다음날, 손권은 작은 술잔(觴)을 들고 동습의 공로를 치하했다.

2.2. 손권을 보좌하다

손책원술에게서 허락을 받고 강동으로 진격하여 회계에 이르렀을 때, 동습은 고천정()에서 손책을 맞이했고, 손책의 눈에 들어 문하적조(門下賊曹)가 되었다. 건안 5년(200년), 손책이 죽고 손권이 어린 나이로 뒤를 잇자, 불안하게 여긴 태비는 장소 등과 함께 동습을 불러 강동을 지킬 방안을 상담받았다. 동습은 강동의 험한 지세와 손견, 손책 2대에 걸친 사업이 있고, 장소가 온갖 사무를 책임지고 자신과 같은 무부들이 조아가 되어 지리와 인화를 갖추면 걱정할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모두 장하게 여겼다.

파양(鄱陽)에서 팽호(彭虎) 등이 손씨에 반항하는 자 수만 명을 모으자, 동습은 능통, 보즐, 장흠과 함께 각각 토벌하러 나갔다. 가는 곳마다 적을 깨뜨렸고, 팽호 등은 동습의 정기만 보고도 흩어져 달아났으며, 열흘 만에 평정되었다. 동습은 월기교위(越騎校尉)가 되었고, 편장군(偏將軍)으로 옮겼다.

208년, 손권이 황조를 공격했을 때, 황조는 면구(沔口)에 몽충(소가죽으로 선체를 감싸 견고하게 만든 배) 두 대를 가로로 놓고 큰 새끼줄로 엮고 돌로 닻을 삼아 매고, 그 위에 1천 명을 두어 쇠뇌를 교대로 쏘게 했다. 화살이 비 오듯 쏟아져 손권 군은 진격할 수가 없었다. 동습은 능통과 함께 선봉을 맡아 결사대 1백 명을 모으고, 겹으로 갑옷을 입히고 큰 배를 타고 황조의 몽충으로 돌입했다. 동습이 친히 나아가 몽충을 엮은 새끼줄을 끊으니, 몽충은 이내 물에 휩쓸려갔고, 손권 군은 마침내 진격할 수 있었다. 황조는 문을 열고 달아났으나, 결국 추격을 받아 베였다. 다음날, 손권은 작은 술잔(觴)을 들고 동습의 공로를 치하했다.

조조가 유수구로 쳐들어오자, 손권은 동습에게 다섯 겹 누각이 있는 배(五樓船)를 맡아 유수구에 두었는데, 밤에 갑자기 폭풍이 불어 배가 거의 전복되려 했다. 부하들은 거룻배로 흩어져 달아나기를 원했으나, 동습은 완고하게 거절했고, 마침내 그날 밤 배가 망가지고 동습은 물에 빠져 죽었다. 손권은 옷을 고쳐 입고 친히 장례식에 왔으며, 유족들에게 후하게 이바지했다.

2.3. 황조 토벌전

199년, 손책원술의 잔당을 흡수하여 세력을 키운 여강태수 유훈을 칠 때 동습도 따라가 유훈의 거점 환성을 공격했고, 심양에서 유훈을 격파했으며, 황조 토벌에도 종군했다.

208년, 손권은 약 17년 전 황조와의 전투에서 사망한 아버지 손견의 복수를 위해 황조를 상대로 징벌 원정을 시작했고, 이는 강하 전투로 이어졌다. 손권이 황조를 공격했을 때, 황조는 면구(沔口)에 몽충(소가죽으로 선체를 감싸 견고하게 만든 배) 두 대를 가로로 놓고, 큰 새끼줄로 엮고 돌로 닻을 삼아 매고, 그 위에 1천 명을 두어 쇠뇌를 교대로 쏘게 하니, 화살이 비 오듯 쏟아져 손권 군은 진격할 수가 없었다.

동습은 능통과 함께 선봉을 맡아 결사대 1백 명을 모으고, 겹으로 갑옷을 입히고 큰 배를 타고 황조의 몽충으로 돌입했다. 동습이 친히 나아가 몽충을 엮은 새끼줄을 끊으니, 몽충은 이내 물에 휩쓸려갔고, 손권 군은 마침내 진격할 수 있었다. 황조는 문을 열고 달아났으나, 결국 추격을 받아 베였다.

다음날, 손권은 작은 술잔(觴)을 들고 동습의 공로를 치하했다. 손권은 승리를 축하하는 연회를 열었고, 그 자리에서 동습에게 술잔을 올리며 "오늘의 연회의 목적은 밧줄을 자른 사람을 기리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2.4. 유수구 전투와 죽음

208년, 손권황조를 공격했을 때 황조는 면구(沔口)에 몽충(소가죽으로 선체를 감싸 견고하게 만든 배) 두 대를 가로로 놓고, 큰 새끼줄로 엮고 돌로 닻을 삼아 매고, 그 위에 1천 명을 두어 쇠뇌를 교대로 쏘게 하니, 화살이 비 오듯 쏟아져 손권군은 진격할 수가 없었다. 동습은 능통과 함께 선봉을 맡아 결사대 1백 명을 모으고, 겹으로 갑옷을 입히고 큰 배를 타고 황조의 몽충으로 돌입했다. 동습이 친히 나아가 몽충을 엮은 새끼줄을 끊으니, 몽충은 이내 물에 휩쓸려갔고, 손권 군은 마침내 진격할 수 있었다. 황조는 문을 열고 달아났으나, 결국 추격을 받아 베였다. 다음날, 손권은 작은 술잔(觴)을 들고 동습의 공로를 치하했다.

조조유수구로 쳐들어오자, 손권은 동습에게 다섯 겹 누각이 있는 배(五樓船)를 맡아 유수구에 두었는데, 밤에 갑자기 폭풍이 불어 배가 거의 전복되려 했다. 부하들은 거룻배로 흩어져 달아나기를 원했으나, 동습은 장군으로서 직무를 강조하며 거절하고, 철수하는 자를 베겠다고 엄명했다. 마침내 그날 밤 배가 망가지고 동습은 물에 빠져 죽었다. 손권은 옷을 고쳐 입고 친히 장례식에 왔으며, 유족들에게 후하게 이바지했다.

3. 삼국지연의에서의 동습

손책이 강동에 진출했을 때 엄백호를 토벌하고 손책에게 등용되었다. 이후 산적에게 습격당해 손권을 지키던 주태가 부상당하자 화타를 추천해 간병시켰다.

208년, 손권황조를 공격했을 때 감녕의 부장으로서 능통과 함께 선진에서 결사대를 이끌었다.

적벽 대전에서는 한천에서 조조의 진을 습격했고 합비 전투에서 위군과 대치했다.

215년, 유수구에서 서성과 함께 수군을 지휘했지만 폭풍우로 선단이 괴멸되어 익사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입이 큰 남자라는 용모로 묘사되며, 회계의 왕랑을 물리친 손책 앞에 도망간 엄백호의 목을 가지고 나타나 등용을 청했다. 우번과는 친한 친구라는 설정으로, 왕랑으로부터 멀어졌던 우번을 손책에게 추천했다. 마지막은 유수구 전투에서 사료와 마찬가지로 익사하고, 손권진무의 죽음과 함께 동습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겼다.

4. 평가

《후한서》에 따르면 동습은 강개한 지조와 절개, 굳세고 의로운 영웅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