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당
1. 개요
유이노당은 2013년 12월, 에다 겐지를 포함한 유어 파티 탈당 국회의원 13명이 창당한 일본의 정당이다. 2014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호소카와 모리히로를 지지했으며, 2014년 9월 일본유신회와 합당하여 유신당으로 해산되었다. 개혁과 반 기득권을 주축으로 자유주의와 평화주의를 강조했으며, 탈 관료주의, 탈 중앙집권, 탈 연고주의를 3대 탈피 과제로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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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타초 -
5·15 사건
5·15 사건은 1932년 일본 해군 청년 장교들이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를 암살하고 주요 시설을 공격했으나 실패한 쿠데타 미수 사건으로, 정당 내각 붕괴와 군부 영향력 강화로 이어져 일본이 군국주의 시대로 접어드는 계기가 되었다. -
나가타초 -
국립국회도서관
국립국회도서관은 일본 제국의회의 도서관과 제국도서관을 계승하여 미군 점령기의 민주화 과정을 거쳐 1948년 개관, 1949년 국립도서관과 통합되었으며, 현재 법정납본제도를 통해 수집된 방대한 자료를 국회 및 대중에게 제공하는 일본의 국립도서관이자 국회도서관이다. -
2013년 설립된 정당 -
대안당 (덴마크)
대안당은 2013년 창당된 덴마크의 녹색 정당으로, 기후변화 대응과 지속가능한 발전 등을 목표로 하며 2015년 총선에서 원내 진출 후 지도부 교체와 분당을 겪었으나 재정비를 통해 활동하고 있다. -
2013년 설립된 정당 -
한나라당 (2013년)
2013년 4월 이태희 전 대표가 창당한 새한나라당은 2014년 2월 한나라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였으며, 이는 기존 한나라당의 명맥을 잇는 시도였으나 낮은 득표율을 보였다. -
2014년 폐지 -
청원군
청원군은 충청북도 중서부에 위치했던 군으로,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으며 삼한시대에는 마한, 삼국시대에는 백제, 고구려, 신라의 영토였고, 2014년 청주시에 통합되기 전 3읍 10면으로 구성되어 문의문화재단지, 대청댐 등의 주요 시설이 있었다. -
2014년 폐지 -
대한민국 해양경찰청
대한민국 해양경찰청은 해양 안전과 치안을 담당하는 해양수산부 소속 외청으로, 해상 경비, 해난 구조, 해상 범죄 수사 등의 임무를 수행하며 해양 주권 수호와 국민의 생명 및 재산 보호에 힘쓰고 있다.
2. 역사
2013년 12월 에다 겐지와 유어 파티를 탈당한 13명의 다른 국회의원들에 의해 창당되었다. 유어 파티는 처음에는 6명의 의원이 참의원에서 자당의 의원 총회를 떠났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2014년 2월에 유니티 파티가 상원에서 공식적인 대표성을 가질 수 있도록 유어 파티에서 그들의 탈당을 인정한 통지서를 제출했다.
이 정당은 2014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호소카와 모리히로를 지지했다.
에다는 2014년 초에 두 정당의 정책 입장을 조율하기 위해 일본유신회와 논의했다. 일본유신회 공동 대표인 이시하라 신타로는 일본 헌법에 대한 그들의 지지를 이유로 유니티 파티와의 조율을 거부했지만, 다른 일본유신회 공동 대표인 하시모토 도루는 헌법 개정의 범위에 대해 합의할 여지가 있다고 보았다.
2014년 9월 21일, 유니티 파티와 일본유신회는 합당하여 일본유신당을 결성했다.
2.1. 창당 배경 (2013년)
2013년, 에다 겐지는 모두의 당 내에서 당 운영 및 일본유신회와의 합당 문제를 둘러싸고 대표 와타나베 요시미와 갈등을 빚었다. 8월 7일 간사장직에서 해임된 에다는 신당 창당을 추진하였다. 12월 9일, 에다 겐지를 포함한 14명의 국회의원(중의원 8명, 참의원 6명)이 모두의 당에 탈당계를 제출하고 12월 18일에 신당 설립 총회를 개최, 12월 20일에 정당설립신고를 하여 유이노당을 창당했다. 모두의 당 탈당 의원 외에, 이전에 탈당했던 가키자와 미토도 합류, 총 15명으로 창당했다.
하지만, 모두의 당은 에다와 가키자와를 제외한 의원들의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며, 모두의 당 원내 회파로부터의 이탈을 거부했다. 에다는 "만약 회파 이탈이 인정되지 않으면 질문도 할 수 없고, 전혀 국회 활동을 할 수 없다"며 회파 이탈 허가를 요구했다.
2014년 1월 18일, "유이의 당" 결당 대회를 열고 야당 세력 결집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표명했다. 이에 따라 모두의 당은 같은 달 23일, 중의원에서 유이의 당으로 이적한 의원 7명에 대해 개별적으로 사정을 청취하는 것을 조건으로 모두의 당 회파 이탈을 인정하여, 중의원에서는 신 회파 "유이의 당"이 탄생했다. 참의원에서도 늦게 회파 이탈이 인정되어, 2월 14일에 신 회파 "유이의 당"이 탄생했다.
2.2. 당명 결정
2013년 12월 에다 겐지와 유어 파티를 탈당한 13명의 다른 국회의원들에 의해 창당되었다. 당명은 12월 13일의 준비 회합에서 50개 이상의 후보에서 추려진 "아시타노 당", "신당 히비키", "정의당", "민권당", "유이노 당"(가나다순)의 5후보에 대해 회합에 참석한 국회의원 14명·비서 3명의 총 17명이 2표씩 무기명 투표를 실시했다. 그 결과, "민권당", "유이노 당"이 각각 10표, "아시타노 당"이 7표, "신당 히비키"가 5표, "정의당"이 2표를 얻었으며, 그 후, 동수 1위였던 "민권당"과 "유이노 당"의 2후보에 대해 국회의원 15명이 전자 메일로 결선 투표를 실시하여 "유이노 당"으로 결정했다.
"유이노 당"은 에다의 발안에 의한 것으로, 에다는 "야당 재편을 명확히 하는 당을 위해 각 정당을 묶고, 묶는 결절점이 되어 야당 연합 세력을 결집해 나가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2.3. 모두의 당과의 갈등
모두의 당은 유이노당으로 이적한 의원들의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며 원내 회파 이탈을 거부했다. 이는 국회 활동에 제약을 초래할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에, 에다 겐지는 회파 이탈 허가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2.4. 원내 회파 결성 (2014년)
2013년 12월 에다 겐지와 유어 파티를 탈당한 13명의 다른 국회의원들에 의해 창당되었다. 유어 파티는 처음에는 6명의 의원이 참의원에서 자당의 의원 총회를 떠났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2014년 2월에 유니티 파티가 상원에서 공식적인 대표성을 가질 수 있도록 유어 파티에서 그들의 탈당을 인정한 통지서를 제출했다.
이 정당은 2014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호소카와 모리히로를 지지했다.
에다는 2014년 초에 두 정당의 정책 입장을 조율하기 위해 일본유신회와 논의했다. 일본유신회 공동 대표인 이시하라 신타로는 일본 헌법에 대한 그들의 지지를 이유로 유니티 파티와의 조율을 거부했지만, 다른 일본유신회 공동 대표인 하시모토 토루는 헌법 개정의 범위에 대해 합의할 여지가 있다고 보았다.
2.5. 지방 의회에서의 움직임
2013년 도쿄 도의회 의원 선거(6월 23일 실시) 전후부터 도쿄도의회에서는 모두의 당 내의 대립이 표면화되어 국정보다 먼저 당이 분열되었다. 모두의 당은 선거 전 1석에서 7석으로 크게 당세를 늘렸으나, 의원들 사이에 간사장 자리를 둘러싼 대립이 일어났다. 와타나베 파 4명의 의원이 이탈하며 분열되었고, 이후 양 회파의 병립 상태가 계속되었다. 2014년 1월, 에다 겐지에 가까운 의원들이 '도의회 유이노당'(노가미 대표)을 결성했다.
에다 겐지의 지역인 가나가와현에서는 2014년 1월, 에다에 가까운 가나가와현 의회 의원 3명으로 유이의 당 계열의 회파 「가나가와의 미래를 잇는 회 현의원단」이 결성되었다. 이후 모두의 당을 이탈한 무소속 의원 2명이 입당하여 5석이 되면서 현 의회 교섭 회파가 되었다.
2.6. 일본유신회와의 합당 (2014년)
2013년 12월, 에다 겐지와 유어 파티를 탈당한 13명의 다른 국회의원들에 의해 유이노당이 창당되었다. 유이노당은 창당 초기부터 일본유신회와의 합당을 추진했으나, 일본유신회 공동 대표인 이시하라 신타로는 유이노당을 '호헌 정당'이라며 합당에 반대했다.
2014년 5월, 일본유신회가 유이노당과의 합당 찬성파와 반대파로 분열되었고, 이시하라 신타로 등은 차세대당을 결성했다. 같은 해 4월 25일, 참의원에서 통일 회파 "일본유신회·유이노토"를 결성했으며, 7월 9일에는 중의원에서도 통일 회파 "일본유신회·유이노토"를 결성했다.
2014년 9월 19일, 일본유신회와의 합당 및 유신의 당 결성이 발표되었다. 9월 21일, 유이노당은 해산하고, 유신당에 합류했다.
2.7. 유이노당 해산 이후 (2014년~현재)
2014년 9월 21일, 유이노당은 일본유신회와 합당하여 유신당을 결성했다. 유이노토는 일본유신회와의 합류를 요구했지만, 유신 공동 대표인 이시하라 신타로는 유이노토가 "호헌 정당이라 손을 잡을 수 없다"고 말하며 반대했다. 그러나 유신 내부의 대립으로 하시모토 도루 공동 대표가 이끄는 그룹과 통일 회파를 결성하는 등 합당이 진행되었다.
2015년 10월, 유신당은 오사카 유신회 및 개혁 결집의 회로 다시 분열되었다. 유이노토 출신 의원 대부분은 유신당에 잔류하여, 후에 민주당과 합쳐 민진당에 합류했다.
민진당 내에서 구 유신당 그룹은 2016년 민진당 대표 선거 등에서 의견 차이를 드러내며 분열했다. 마에하라 세이지를 지지하는 일본유신회 출신자들과 렌호를 지지하는 유이노토 출신자들 간의 대립이 있었다. 유이노토 출신자들은 민권정경 아카데미를 결성했고, 일본유신회 출신자들은 창신회를 결성했다.
2017년 9월 민진당 대표 선거에서도 양 그룹은 다른 행보를 보였다. 제4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민진당이 희망의 당으로 합류를 결정하고, 입헌민주당이 창당되면서, 구 유이노당 계열 의원들은 각자 다른 정당으로 흩어졌다. 그 후, 양 그룹 모두 활동 없이 소멸했다.
3. 정책 및 이념
유이노당은 '개혁'과 '반기득권'을 당의 주축으로 삼았다. 자유주의와 평화주의적 이념을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은 자민당의 "1강 다약"으로 평가되는 가운데 관료 주도, 족의원 주도가 강해지고 국민이 소외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정치 이념과 기본 정책의 일치를 전제로 야당 세력을 결집하여 여당인 자민당을 대신하여 정권 담당이 가능한 일대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당은 이를 위한 "촉매"가 되어 몸을 던질 각오로 당의 발전적 해소도 마다하지 않고 진정한 개혁 세력을 결집해 나갈 것이다.
주요 이념:
* 「보수 대 진보」(55년 체제)를 넘어선 정치를 지향한다. 이데올로기가 아닌 국민 본위로, 내정, 외교 모두 항상 정책마다 판단한다.
* 「자유」(프리)롭고 「공정」(페어)하며 「열린」(오픈) 사회를 지향한다.
* 「정치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존재한다」를 근본으로 한다.
* 과제를 다음 세대로 미루지 않고, 미래를 위한 지속 가능한 제도·구조를 구축한다.
* 일본의 옛 좋은 「전통」을 지키고, 풍요로운 자연과 다양한 문화의 근원인 지역을 육성하며, 좋지 않은 「관습」 「기득권」은 타파한다.
* 자율적인 외교와 안전 보장으로 여러 국가와의 평화적 공존을 도모하며, 결코 전쟁의 길을 걷지 않는다.
* 전후, 일본국 헌법이 수행해 온 역할을 정당하게 평가함과 동시에, 시대의 요청에 따라 끊임없이 재검토를 실시한다.
3대 탈피:
* 탈 관료주의: 민간이 주역
* 탈 중앙집권: 지역이 주역
* 탈 연고주의·이권: 생활자가 주역
으로 "이 나라의 모습"을 바꾼다!
4. 역대 지도부
wikitable
| 번호 | 이름 | 사진 | 임기 | |
|---|---|---|---|---|
| 취임 | 퇴임 | |||
| 전임 정당: 귀하의 정당 | ||||
| 1 | 에다 켄지 | 2013년 12월 18일 | 2014년 9월 21일 | |
| 후임 정당: 일본 유신회 | ||||
| 대표 | 부대표 | 간사장 | 정책조사회장 | 중의원 국회대책위원장 | 참의원 국회대책위원장 | 취임 년월 |
|---|---|---|---|---|---|---|
| 에다 켄지 | 테라다 노리키 | 오노 지로 | 카키자와 미토 | 하타나카 미츠나리 | 시바타 타쿠미 | 2013년 1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