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도쿄도지사 선거
1. 개요
2014년 도쿄도지사 선거는 2013년 12월 이노세 나오키 전 도지사의 사임으로 인해 치러졌다. 주요 쟁점은 2020년 하계 올림픽 준비, 탈원전 정책, 재해 대책, 저출산·고령화 문제, 그리고 정치 자금 문제였다. 16명의 후보가 출마했으며, 마스조에 요이치가 자유민주당과 공명당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 투표율은 46.14%로, 역대 세 번째로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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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 이름 | 2014년 도쿄 도지사 선거 |
|---|---|
| 국가 | 도쿄 |
| 선거 유형 | 도지사 선거 |
| 이전 선거 | 2012년 도쿄 도지사 선거 |
| 이전 선거 연도 | 2012년 |
| 다음 선거 | 2016년 도쿄 도지사 선거 |
| 다음 선거 연도 | 2016년 |
| 선거일 | 2014년 2월 9일 |
| 투표율 | 46.14% |
| 투표율 변화 | 16.46% 감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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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보 1 이름 | 마스조에 요이치 |
|---|---|
| 후보 1 소속 정당 | 무소속 |
| 후보 1 지지 정당 | 자유민주당 공명당 |
| 후보 1 득표수 | 2,112,979 |
| 후보 1 득표율 | 43.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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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보 2 이름 | 우쓰노미야 겐지 |
|---|---|
| 후보 2 소속 정당 | 무소속 |
| 후보 2 지지 정당 | 일본공산당 사회민주당 녹색당 그린즈 재팬 신사회당 |
| 후보 2 득표수 | 982,594 |
| 후보 2 득표율 | 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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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보 3 이름 | 호소카와 모리히로 |
|---|---|
| 후보 3 소속 정당 | 무소속 |
| 후보 3 지지 정당 | 민주당 생활의 당 두레당 |
| 후보 3 득표수 | 956,063 |
| 후보 3 득표율 | 19.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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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보 4 이름 | 다모가미 도시오 |
|---|---|
| 후보 4 소속 정당 | 무소속 |
| 후보 4 지지 정당 | 일본유신회 (일부) 유신정당-신풍 |
| 후보 4 득표수 | 610,865 |
| 후보 4 득표율 | 12.55% |
| 당선자 | 마스조에 요이치 |
|---|---|
| 당선자 소속 정당 | 무소속 |
| 선거 전 도지사 | 이노세 나오키 |
| 선거 전 도지사 소속 정당 | 무소속 |
| 선거 후 도지사 | 마스조에 요이치 |
| 선거 후 도지사 소속 정당 | 무소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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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일본의 선거 -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2014년 아베 신조가 이끄는 자유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난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는 아베노믹스, 소비세 인상, 원자력 발전, 집단적 자위권, 미군기지 이전 등을 쟁점으로 다루었으며 자유민주당-공명당 연립이 승리하여 제3차 아베 내각이 출범하였다. -
호소카와 모리히로 -
고이케 유리코
고이케 유리코는 카이로 대학교 졸업 후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 정계에 입문하여 환경대신, 방위대신 등을 역임하고 현재 도쿄도지사로 재임 중인 일본의 정치인으로, 도민제일회를 창당하고 희망의 당을 이끌기도 했으며 경제 자유주의와 우익 포퓰리즘 성향으로 논란을 겪기도 했다. -
호소카와 모리히로 -
일본신당
일본신당은 호소카와 모리히로가 1992년 창당한 일본 정당으로, 정치 개혁과 55년 체제 타파를 목표로 1993년 중의원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호소카와 내각 구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나, 정책 혼선과 내부 갈등으로 1994년 해산되었음에도 일본 정치에 큰 변화를 가져온 정당으로 평가받는다. -
도쿄도지사 선거 -
1999년 도쿄도지사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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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지사 선거 -
2012년 도쿄도지사 선거
2012년 도쿄도지사 선거는 이시하라 신타로의 사임으로 치러졌으며, 이노세 나오키가 65.27%의 득표율로 당선되었으나 1년 만에 사임하여 2014년 선거가 조기에 실시되었다.
2. 배경
이노세 나오키 전 도쿄도지사는 2012년 도쿄도지사 선거 직전에 의료법인 "도쿠슈카이(徳洲会일본어)"로부터 50을 받았다가 돌려준 혐의를 받았다. 이로 인해 도정의 혼란을 초래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2013년 12월 19일에 도쿄도의회 의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했고, 12월 24일 도의회 본회의에서 사임이 동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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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도쿄도 선거관리위원회는 2014년 1월 23일에 선거를 고시하고 2월 9일에 투표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여, 약 1년 2개월 만에 다시 선거가 치러지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도쿄도지사가 민선으로 전환된 이후 2011년 선거까지 도쿄도지사 선거는 통일지방선거의 일부로서 실시되었고, 2012년 선거는 제46회 총선거와 함께 실시되었지만, 이 선거는 도쿄도지사 선거 사상 처음으로 단독으로 실시되는 선거였다.
이노세 나오키 도쿄도지사의 사퇴는 2020년 하계 올림픽 개최 확정 이후, 조직위원회 구성, 올림픽 관련 예산 배정, 새로운 국립올림픽경기장 건설에 대한 중앙 정부와의 협상 등 여러 준비 작업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3. 선거 정보
* 고시일: 2014년 1월 23일
* 투·개표일: 2014년 2월 9일
투표 시간
* 일반: 오전 7시 ~ 오후 8시
* 히노하라촌, 오쿠타마정 제2투표소: 오전 9시 ~ 오후 8시 (폭설로 인한 제설 작업으로 2시간 지연)
* 오메시 제1투표소(산간 지역): 오전 7시 ~ 오후 4시 (케이블카 단축 운행으로 4시간 단축)
*** 오쿠타마정(정내 전 13투표구) 및 니이지마촌(촌내 전 3투표구): 오전 7시 ~ 오후 6시 (2시간 단축)
* 사전투표: 1월 23일 ~ 2월 8일
* 조기투표: 2월 8일 (오가사와라무라 제2투표구(하하지마))
* 개표: 당일 21시까지 개표 시작 (즉일 개표)
* 당선증 수여일: 2014년 2월 11일
* 캐치프레이즈: 우리가 할 수 있다(わたしたちにできることがある。일본어)
4. 주요 쟁점
2020년 하계 올림픽 개최가 2013년 9월 도쿄로 결정되면서, 개최 준비, 도시 환경 개선, 경기 시설 건설 비용 등 대회 운영 관련 계획 및 구상이 주요 쟁점이 되었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탈원전 정책을 포함한 에너지 정책, 미나미칸토 직하지진 등 재해 대책, 저출산·고령화 대책도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특히 호소카와 모리히로, 우쓰노미야 겐지 등은 "탈원전"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노세 나오키 전 도지사의 불법 정치 자금 수수 문제로 인해 "정치와 돈" 문제 또한 중요한 쟁점으로 다루어졌다.
5. 후보자
2014년 도쿄도지사 선거에는 총 16명의 후보가 출마했으며, 그중 15명은 무소속이었다. 유일하게 정당 소속을 주장한 후보는 아카사카 마크였다. 주요 후보는 다음과 같다.
| 후보자 | 주요 경력 및 특징 | 정당 및 지지 세력 |
|---|---|---|
| 마스조에 요이치 | 전 후생노동대신. 1999년 도지사 선거 출마 경험. | 자유민주당, 공명당 지지. 민주당 일부 지지. 렌고 도쿄 지부 지지. |
| 우쓰노미야 켄지 | 변호사. 2012년 도지사 선거 2위.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한 견제, 원전 폐쇄, 올림픽 예산 삭감 공약. | 일본 공산당, 사회민주당, 녹색당 그린스재팬, 신사회당 추천 |
| 호소카와 모리히로 | 전 내각총리대신. 원자력 폐지, 에너지 소비 감축, 복지 시스템 개혁 공약.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지원. | 민주당, 생활의 당, 결의의 당 지지 |
| 다모가미 도시오 | 예비역 장군, 전 항공자위대 참모총장.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지사 등 일본유신회 일부 인사 지지. 재해 대책 강화 공약. 민족주의적 성향. | 이신정당·신풍 지지, 일본 이신의회 일부 지원 |
| 이에이리 카즈마 | 인터넷 신생 기업 창업자. 시민 참여형 정책 결정 플랫폼 제안. | 무소속 |
| 나카마츠 요시로 | 발명가, 상습 출마자. 7번째 도쿄 도지사 선거 출마. | 무소속 |
| 맥 아카사카 | 상습 출마자, 스마일 파티 대표. 2012년 도지사 선거 출마. | 스마일당 |
이 외에도 히메지 겐지, 나카가와 도모하루, 스즈키 다쓰오, 나이토 히사오, 가네코 히로시, 이가라시 마사이치, 사코 에이이치, 마쓰야마 치카노리, 네가미 다카시 등 9명의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 후보자명 | 연령 | 당파 | 직업 |
|---|---|---|---|
| 히메지 켄지 (ひめじ けんじ) | 61 | 무소속 | 건물 관리업 |
| 나카가와 도모하루 (なかがわ ともはる) | 55 | 무소속 | 1급 건축사 |
| 스즈키 다쓰오 (すずき たつお) | 73 | 무소속 | 변호사 |
| 나이토 히사오 (ないとう ひさお) | 56 | 무소속 | 전 건설기계기구리스회사 직원 |
| 카네코 히로시 (かねこ ひろし) | 84 | 무소속 | 전호텔 운영업 |
| 이가라시 마사이치 (いがらし まさいち) | 82 | 무소속 | 일반사단법인 이사장 |
| 사코 에이이치 (さこう えいいち) | 64 | 무소속 | 전세토시청 농무과 직원 |
| 마쓰야마 치카노리 (まつやま ちかのり) | 72 | 무소속 | 경비회사아르바이트 |
| 네가미 다카시 (ねがみ たかし) | 64 | 무소속 | 전도쿄도 직원(나카노구 교육위원회·건설부) |
5.1. 정당·단체의 동향
자유민주당은 2013년 12월 비공개 여론조사를 통해 마스조에 요이치, 히가시코쿠바루 히데오, 이시하라 노부테루, 카타야마 사츠키, 고이케 유리코, 마루카와 타마요 등을 후보로 검토했다. 히가시코쿠바루 히데오는 출마 의사가 없음을 밝혔고, 시모무라 하쿠분과 하시모토 세이코는 2020년 하계 올림픽과 2014년 동계 올림픽 관련 업무로 제외되었다. 이케가미 아키라는 출마 의사가 없음을 밝혔고, 전 도쿄 부지사 사토 히로시는 출마를 거절했다.
총리 아베 신조와 전 지사 이시하라 신타로는 카와부치 사부로를 타협 후보로 고려했으나, 결국 각각 마스조에와 타모가미 도시오를 지지했다.
자유민주당은 마스조에 요이치를 지지하기로 결정했지만, 과거 마스조에가 당을 탈당하고 제명된 경력이 있어 당내 반발이 있었다. 그러나 마스조에의 높은 지지도와 당 지도부의 판단에 따라 자유민주당 도련(都連)은 마스조에 추천을 결정했다. 고이즈미 신지로와 카타야마 사츠키 등은 마스조에 지지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공명당도 마스조에를 추천했다.
민주당은 후루타 아츠야와 토리고에 슌타로에게 출마를 제안했으나 거절당했고, 렌호는 유력 후보로 거론되었다. 독자 후보 추대가 난항을 겪자, 민주당은 호소카와 모리히로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생활의 당과 결의의 당은 호소카와 모리히로를 지지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지지 기반인 연합 도쿄(連合東京)는 마스조에를 추천하여 엇갈린 대응을 보였다.
일본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은 우쓰노미야 겐지를 추천했다. 녹색당 그린스재팬과 신사회당도 우쓰노미야 겐지를 추천했다.
일본유신회와 모두의 당은 자유투표를 결정했다. 일본유신회 내에서는 이시하라 신타로 등이 타모가미 도시오를, 마쓰노 요리히사 등은 호소카와 모리히로를 지지하는 등 분열된 모습을 보였다.
신당개혁은 마스조에 요이치를, 이신정당·신풍은 타모가미 도시오를 지지했다. 도쿄·생활자 네트워크는 자유투표를 결정했지만, 도쿄도의회 생활자 네트워크는 호소카와 모리히로를 지원했다.
신좌익 단체들은 JRCL 등이 우쓰노미야 겐지를 지지했지만, 혁공 중핵파는 스즈키 다쓰오를 추대했다.
이노키 안토니오는 출마를 고려했으나, 일본유신회에서 제명된 상태였다.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당신의 당의 와타나베 요시미에게 출마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6. 여론조사
産経일본어 계열 뉴스 사이트인 ZAKZAK의 보도에 따르면, 호소카와 모리히로의 출마 선언 직후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마스조에 요이치 지지자는 40%, 호소카와 지지자는 16%, 우쓰노미야 겐지 지지자는 15%, 다모가미 도시오 지지자는 6%였다. 마이니치 신문(毎日新聞), 교도 통신(共同通信), 산케이 신문(産經新聞), 후지 TV(フジテレビ)가 1월 23~24일에 실시한 별도 여론 조사에서도 마스조에가 호소카와, 우쓰노미야, 다모가미를 앞섰다. 마이니치 신문의 2월 1~2일 조사에서도 순위는 같았지만, 유권자 30%는 여전히 부동층이었다. 일본 선거법을 준수하기 위해 해당 언론사들은 실제 여론 조사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다.
주간지 週刊ポスト일본어의 보도에 따르면, 자민당이 1월에 실시한 선거 시뮬레이션 결과, 각 후보 지지 기반의 일반적인 투표율(총 유권자의 약 55%)을 가정했을 때 호소카와 42%, 마스조에 39%, 우쓰노미야 10%, 다모가미 7%였다. 단, 반핵 지지자들의 높은 투표율은 마스조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7. 선거 결과
2014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는 마스조에 요이치가 2,112,979표(43.40%)를 얻어 당선되었다. 우쓰노미야 겐지는 982,594표(20.18%), 호소카와 모리히로는 956,063표(19.64%), 다모가미 도시오는 610,865표(12.55%)를 얻었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46.14%로, 2012년 선거에 비해 16.46% 감소했다.
| 순위 | 후보자명 | 정당 | 신/구 | 득표수 | 득표율 | 석패율 | 공탁금 | |
|---|---|---|---|---|---|---|---|---|
| 1 | 마스조에 요이치 | 무소속 | 신 | 2,112,979 | 43.40% | ---- | ||
| 2 | 우쓰노미야 겐지 | 무소속 | 신 | 982,594.767 | 20.18% | 46.50% | ||
| 3 | 호소카와 모리히로 | 무소속 | 신 | 956,063 | 19.64% | 45.25% | ||
| 4 | 다모가미 도시오 | 무소속 | 신 | 610,865 | 12.55% | 28.91% | ||
| 5 | 이에이리 카즈마 | 무소속 | 신 | 88,936 | 1.83% | 4.21% | 몰수 | |
| 6 | 닥터 나카마쓰 | 무소속 | 신 | 64,774 | 1.33% | 3.07% | 몰수 | |
| 7 | 맥 아카사카 | 스마일당 | 신 | 15,070 | 0.31% | 0.71% | 몰수 | |
| 8 | 스즈키 타츠오 | 무소속 | 신 | 12,684 | 0.26% | 0.60% | 몰수 | |
| 9 | 나카가와 토모하루 | 무소속 | 신 | 4,352 | 0.09% | 0.21% | 몰수 | |
| 10 | 이가라시 마사카즈 | 무소속 | 신 | 3,911 | 0.08% | 0.19% | 몰수 | |
| 11 | 히메지 켄지 | 무소속 | 신 | 3,727.207 | 0.08% | 0.18% | 몰수 | |
| 12 | 나이토 쿠온 | 무소속 | 신 | 3,575 | 0.07% | 0.17% | 몰수 | |
| 13 | 카네코 히로시 | 무소속 | 신 | 3,398 | 0.07% | 0.16% | 몰수 | |
| 14 | 마쓰야마 친켄 | 무소속 | 신 | 2,968 | 0.06% | 0.14% | 몰수 | |
| 15 | 네가미 타카시 | 무소속 | 신 | 1,904 | 0.04% | 0.09% | 몰수 | |
| 16 | 사카무케 에이이치 | 무소속 | 신 | 1,297 | 0.03% | 0.06% | 몰수 |
--
마스조에는 자민당과 공명당의 지지를 받아 조직표를 결집하고, 무당파층과 다른 당 지지층에도 지지를 넓혀 압승했다. 우쓰노미야는 일본공산당과 사민당 등의 지원을 받았지만, 탈원전파 표가 분산되어 마스조에에게 크게 뒤졌다. 호소카와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지원을 받았으나, 준비 부족과 쟁점화 실패로 3위에 그쳤다. 다모가미는 보수 성향 인터넷 이용자들의 지지를 얻어 4위를 기록했다.
이번 선거는 2020년 도쿄 올림픽 준비, 수도 직하형 지진 대비, 저출산 고령화 대책 등 도쿄의 현안과 함께, 원자력발전 정책과 '정치와 돈' 문제 등이 쟁점이 되었다.
7.1.1. 지지 정당별 투표 결과
자민당 지지층의 경우, 마스조에 요이치 후보에게 투표한 비율이 약 60~70%에 달했다. 공명당 지지층은 약 90%가 마스조에에게 투표하여 압도적인 지지를 보였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은 호소카와 모리히로, 마스조에, 우쓰노미야 겐지 후보에게 표가 분산되었다. 일본공산당 지지층은 우쓰노미야 후보에게 70~80%의 높은 지지를 보냈다. 무당파층의 표심은 마스조에, 우쓰노미야, 호소카와 후보에게 분산되었다.
| | colspan="5" | 비율 (%) | |||||
|---|---|---|---|---|---|
| | ...마스조에 || ...우쓰노미야 || ...호소카와 || ...타모가미 || ...기타 후보 | |||||
| 자민당 | 56.6 | 3.5 | 4.4 | 35.5 | (228명) |
| 공산당 | 12.0 | 70.0 | 8.0 | 10.0 | (50명) |
| 민주당 | 15.4 | 17.9 | 61.5 | 5.1 | (39명) |
| 일본유신의회 | 30.8 | 3.8 | 38.5 | 26.9 | (26명) |
| 공명당 | 88.5 | 7.7 | 3.8 | (26명) | |
| 민중의당 | 38.9 | 16.7 | 27.8 | 16.7 | (18명) |
| 사민당 | 12.5 | 62.5 | 18.8 | 6.3 | (16명) |
| 결이의 당 | 8.3 | 25.0 | 58.3 | 8.3 | (12명) |
| 생활의 당 | 9.1 | 81.8 | 9.1 | (11명) | |
| 신당개혁 | 100.0 | (1명) | |||
| 기타 정당·정치단체 | 100.0 | (1명) | |||
| 무소속 | 31.4 | 23.6 | 25.0 | 16.4 | 4.0 (500명) |
| | colspan="5" | 1,105명 |
마스조에는 자민당 지지층의 60~70%, 공명당 지지층의 약 90%를 확보하며 조직표를 결집했다. 또한, 공산당, 사민당, 결이의 당, 생활의 당을 제외한 각 당 지지층의 20% 이상, 무당파층의 30% 가까이 지지를 얻었다.
우쓰노미야는 공산당 지지층의 70~80%, 사민당 지지층의 60~70%의 지지를 얻었고, 민주당 지지층의 20% 정도에도 지지를 확산시켰다.
호소카와는 결이의 당과 생활의 당 지지층의 60~70%의 표를 확보했지만, 민주당 지지층의 지지는 40~50%에 그쳤다.
다모가미 도시오는 자민당 지지층과 일본유신의회, 민중의당 지지층의 20% 정도에 침투했지만, 조직표가 거의 없어 정당 지지층 전체로의 확산은 부족했다.
7.1.2. 연령별 투표 결과
아사히 신문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마스조에 요이치는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후보였다. 특히 고령층의 지지가 강했으며, 70세 이상 연령대에서는 55%, 20대는 36%, 30대는 3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다모가미 도시오는 20대에서 24%의 득표율로 가장 강한 지지를 받았지만, 60세 이상 연령대에서는 한 자릿수에 그쳤다. 호소카와 모리히로는 40대, 50대, 60대에서 2위를 차지했고, 우쓰노미야 겐지는 30대와 70대에서 2위를 차지했다.
| 연령별 투표 결과 비율 (아사히 신문 조사) | |||||
|---|---|---|---|---|---|
| 연령대 | 마스조에 | 우쓰노미야 | 호소카와 | 다모가미 | 기타 후보·무응답 등 |
| 20대 | 36% | 19% | 11% | 24% | 10% |
| 30대 | 38% | 21% | 15% | 17% | 9% |
| 40대 | 40% | 18% | 21% | 14% | 7% |
| 50대 | 44% | 20% | 21% | 11% | 4% |
| 60대 | 47% | 22% | 23% | 7% | 1% |
| 70대 이상 | 55% | 20% | 18% | 6% | 1% |
마스조에는 20대부터 70대 이상까지 모든 연령층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그의 득표율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특히 고령층의 지지가 두드러졌다. 우쓰노미야는 전 연령층에서 고르게 20% 정도의 지지를 얻었다. 반면 호소카와는 40대 이상에서는 20% 가까이 지지를 받았지만, 15년 이상 정치 활동을 하지 않아 20~30대 젊은 층의 지지는 10% 정도에 그쳤다. 다모가미는 고령층의 지지는 10% 미만이었지만, 젊은 층에서는 우쓰노미야나 호소카와보다 높은 20% 정도의 지지를 얻었다. 이는 젊은 층에서 다모가미의 사상과 비슷한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8. 선거 기간 중 사건 및 선거 후 동향
2014년 1월 14일, 도쿄 청년회의소는 조기 후보 등록을 독려하기 위해 우쓰노미야, 다모가미, 마스조에, 호소카와 4인을 초청하여 공개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우쓰노미야 외에는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아 토론회는 1월 18일로 연기되었다. 하지만 1월 18일로 예정되었던 토론회도 호소카와가 공약 미완성을 이유로 불참을 통보하면서 무산되었다. 마스조에와 다모가미도 토론회 참석을 보류했고, 결국 주최 측은 당일 오전에 토론회 중단을 결정했다.
한편, 프리랜서 작가인 하타야마 리히토는 같은 날, 도쿄 청년회의소와는 별개로 니코니코 동화에서 공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토론회에는 주요 후보 4인을 제외하고 나카마쓰, 이가라시, 스즈키, 네가미, 아카사카, 히메지, 나이토, 야마구치 세쓰오 8인이 참석했다.
1월 22일, 일본기자클럽이 주최한 주요 후보 4인의 공동 기자회견도 호소카와의 불참으로 중단되었다. 대신 마스조에, 우쓰노미야, 다모가미의 개별 회견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연이은 토론회 및 기자회견 중단에 대해 각 후보들은 호소카와에게 불만을 표출했고, 호소카와는 선거 준비 부족을 드러냈다.
결국 주요 후보 4인이 모두 참석하는 첫 공개 토론회는 선거 공고 이후인 2월 1일에 도완고와 트위터 재팬 등 인터넷 서비스 제공 7개사가 공동 기획한 니코니코 동화 생중계 정책 토론회였다.
선거 기간 중인 2014년 1월 31일, 일본TV 계열에서는 구마모토번을 다스렸던 히고 호소카와가에 전해지는 가보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호소카와 전 총리가 출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후보자의 방송 출연은 일본민간방송연맹 가이드라인에 저촉될 우려가 있어, 1월 21일 방송 연기를 결정했다. 방송 예정이었던 1월 31일에는 영화 '프레데터스'가 방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