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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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루이 뒤레는 프랑스의 작곡가로, 1914년 12음 기법을 사용한 작품을 발표했으며, 1920년대 초반에는 '레 6인'에 속해 활동했다. 이후 정치적 활동을 병행하며,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참여하여 유대인을 돕고 반파시즘 음악을 작곡했다. 전후에는 공산주의 신문에서 음악 평론가로 활동하며, 베트남 전쟁에 대한 혐오감을 담은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피아노 듀엣곡 'Carillons', 오페라 'L'Occasion', 현악 4중주, 플루트 소나티나 등이 있다.

루이 뒤레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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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뒤레 (1930년)
원어 이름루이 뒤레
로마자 표기Lui Dyure
출생지프랑스, 파리
사망지프랑스, 생트로페
직업작곡가
활동 기간미상
참고 자료
ISBNISBN 0-674-37299-9
관련 링크
위키포털 링크클래식 음악
위키포털 클래식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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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ISBN 0-674-372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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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루이 뒤레는 프랑스 파리에서 지역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나, 19세에 클로드 드뷔시의 작품 공연을 보고 음악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작곡가로서 주로 독학했으며, 그의 작품 L'Offrande Lyrique(1914년)은 프랑스 12음주의의 최초 작품으로 불린다.

레 6인 시기 이후, 뒤레는 자신의 경력을 계속 이어갔다. 그는 음악계에 속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평생 동안 지속된 예술적 고립 속에서 자신의 좌파적 이상을 표명했다. 장 콕토와 결별 후, 프랑스 남부 생트로페의 자택으로 은퇴했다. 1929년 안 그랑제옹과 결혼 후 이듬해 파리로 돌아왔다. 1930년대 중반 공산당에 가입, 대중 음악 연맹에서 활동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 점령기에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에서 활동하며 전국 음악가 전선의 주요 멤버로 유대인을 숨기고 나치 통치하에서 프랑스 음악을 보존했다.

전후 뒤레는 강경한 공산주의를 받아들였고, 타협하지 않는 정치적 태도는 그의 경력을 방해했다. 생계를 위해 1950년 파리의 공산주의 신문 음악 평론가 직을 수락했다.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에 계속 작곡했지만, 이 작품들은 널리 인기를 얻지 못했다. 프랑스가 베트남(구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남긴 혼란과 그로 인한 베트남 전쟁에 대한 혐오감을 바탕으로 한 1960년대 베트남 관련 작품들은 당시 파리에서 외로운 외침처럼 보였다. 호치민과 마오쩌둥의 시를 가사로 사용했다.

1979년 생트로페에서 사망했다.

2.1. 초기 생애 (1888-1919)

루이 뒤레는 프랑스 파리에서 지역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클로드 드뷔시의 작품 공연을 들은 19세 이후 음악 경력을 추구하기로 결정하였다. 작곡가로서 주로 독학했다. 그의 작품 L'Offrande Lyrique(1914년)은 프랑스 12음주의의 최초 작품으로 불리고 있다. 음악계에서 인정을 받은 그의 첫 작품은 피아노 듀엣곡인 Carillons였다. 1918년 콘서트에서 이 작품은 모리스 라벨의 관심을 끌었고, 라벨은 그를 자신의 출판사에 추천했다.

뒤레는 동료인 다리우스 미요와 교류하며, 1920년에 레 6인으로 불린 6명의 작곡가를 하나로 묶는 피아노 곡을 기증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공동 프로젝트는 L'Album des Six이었다. 그들이 찬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뒤레는 그룹의 1921년 협업 작품인 에펠탑의 신혼 부부에 참여하지 않았고, 이 결정은 장 콕토에게 큰 분노를 일으켰다.

2.2. 프랑스 6인조 시절 (1920-1921)

뒤레는 동료인 다리우스 미요와 교류하며, 1920년에 프랑스 6인조로 불린 6명의 작곡가를 하나로 묶는 피아노 곡을 기증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공동 프로젝트는 L'Album des Six이었다. 6인조가 찬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뒤레는 그룹의 1921년 협업 작품인 에펠탑의 신혼 부부에 참여하지 않았고, 이 결정은 장 콕토에게 큰 분노를 일으켰다.

2.3. 6인조 이후와 정치적 활동 (1921-1979)

레 6인에서 탈퇴한 이후, 뒤레는 자신만의 음악적 길을 걸었다. 그는 음악계에 얽매이지 않고, 평생 동안 예술적 고립 속에서 자신의 좌파적 신념을 표현했다.

장 콕토와 결별한 뒤, 뒤레는 프랑스 남부 생트로페의 자택으로 은퇴했다. 생트로페에서 그는 실내악곡 외에 유일한 오페라인 L'Occasion을 작곡했다. 1929년 안 그랑제옹과 결혼한 뒤 이듬해 파리로 돌아왔다. 1930년대 중반 공산당에 입당하여 새롭게 결성된 대중 음악 연맹에서 활동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 점령기에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가담, 전국 음악가 전선의 핵심 구성원으로 활동하며 유대인들을 숨기고 나치 치하에서 프랑스 음악을 보존하는 데 힘썼다. 그는 반파시즘 노래를 작곡하기도 했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나치 치하에서는 작곡을 중단하고 대신 오래된 프랑스 음악과 민요를 편곡하고 수집했다.

전후 뒤레는 강경한 공산주의 노선을 걸었고, 타협하지 않는 정치적 태도는 그의 음악 활동에 어려움을 초래했다. 생계를 위해 1950년 파리의 공산주의 신문에서 음악 평론가로 일했다.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에도 계속 작곡 활동을 했지만, 이 시기 작품들은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프랑스가 베트남(구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남긴 혼란과 그로 인한 베트남 전쟁에 대한 혐오감을 바탕으로 한 1960년대 베트남 관련 작품들은 당시 파리에서 외로운 외침과 같았다. 그는 호치민과 마오쩌둥의 시를 가사로 사용했다. 이 외에도 현악 4중주, 플루트 소나티나, Images à Crusoe 등을 작곡했다.

루이 뒤레는 1979년 생트로페에서 세상을 떠났다.

3. 주요 작품

루이 뒤레는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대표적인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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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작품 번호작품명
1916-8Op.7피아노 4중주를 위한 두 개의 소품, "카리용"(1916)과 "네이쥬"(1918)
1917Op.9서커스 장면
1919Op.21무언의 로망스 (6인조를 위해)
1920Op.26세 개의 전주곡
1920Op.28전주곡과 비가
1921Op.29두 개의 연습곡
1921(?)Op.30푸른 밀
1926Op.36세 개의 소나티네
1928Op.40내림 라 장조 녹턴
1924-8Op.41열 개의 인벤션
1951Op.68열 개의 바스크 소품
1953Op.75여섯 개의 소품: "1953년 가을"
1956-7Op.83피아노, 16개의 관악기, 콘트라베이스 및 팀파니를 위한 콘체르티노


위 표에 있는 작품들은 모두 피아노 작품으로, 자세한 내용은 하위 문단인 '피아노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외의 작품에 대한 정보는 '기타 작품' 문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3.1. 피아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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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작품 번호작품명
1916-8Op.7피아노 4중주를 위한 두 개의 소품, "카리용"(1916)과 "네이쥬"(1918)
1917Op.9서커스 장면
1919Op.21무언의 로망스 (6인조를 위해)
1920Op.26세 개의 전주곡
1920Op.28전주곡과 비가
1921Op.29두 개의 연습곡
1921(?)Op.30푸른 밀
1926Op.36세 개의 소나티네
1928Op.40내림 라 장조 녹턴
1924-8Op.41열 개의 인벤션
1951Op.68열 개의 바스크 소품
1953Op.75여섯 개의 소품: "1953년 가을"
1956-7Op.83피아노, 16개의 관악기, 콘트라베이스 및 팀파니를 위한 콘체르티노

Frederic Robert, Louis Durey: L'aîne des Six, Les Editeurs Francais Reunis, 1968